| 고연주님이 진정 작가로써 자리를 잡기 원한다면 좀더 글을 다듬은 후 내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삶의 무게는 느껴지지만 책을 읽는 내내 너무 글에 힘이 들어갔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이틴소설을 쓰는 인터넷 작가랍시고 글을 쓰는 듯 한 느낌도 들었구요.. 글을 잘 쓴다는 얘기를 보구 많은 기대를 해서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같은 얘기도 반복되는 것 같았고.. 자서전이 아닌 소설이라고 우기는게 글을 쓸때 편하다 하셨죠? 어느정도 소설적이 조미료가 가미 되었다면 더욱 그렇구요. 인생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글을 쓰실때 멋을 좀 버리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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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읽고싶은 느낌을 자극한다.
강열한 색을 더 강열하게 만들어놓은 빨간색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라오넬라"라는 말의 어감이 특히 좋았다.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단숨에 반절을 읽었다.
그리고 중간에 끊기는 게 너무 아쉬워서 결국 하루만에 다 읽고야 말았다.
왜 그랬을까에 대한 대답은 아직 못 하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속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라는 것이 날개를 달고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무언가 쓰고 있는 욕구,
이게 너무나도 크게 날개를 펴고 싶어서 책을 읽는 내내 나 스스로도 어쩔 줄 몰라했다.
라오넬라, 고연주.
라오넬라의 이야기인지, 고연주의 이야기인지.
읽는 내내 생각했다.
고연주라는 한 명의 사람이 20년 남짓을 살아온 이야기라기 보다는
라오넬라라는 사자처럼 강하게 신데렐라처럼 강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한 소녀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이것을 읽는 동안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정답일지도.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슬퍼하고 싶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릿했다.
아프면서 슬프면서.
하지만 결코 그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니까, 라오넬라니까.
가슴아파하고, 상처입고, 힘들어했지만 결코 불쌍하다는 말로 그녀를 묶어버리기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강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녀지만, 불쌍하는 말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오넬라, 그저 그녀구나 라고 봐야지 이 사람은 어땠구나라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미안한 일일 것 같았다.
책을 읽고 나서 뻥 터져버릴 것 같은 가슴을 안고,
엄마에게 라오넬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왠지 엄마는 고연주만을 생각할 것 같았다.
고연주라는 아이가 느낀 아픔보다는, 고연주가 했던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나쁜 행동이라는 것에 대해서만 말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른들의 입장에서 공감을 표현해줄 수 있는 이야기만 했다.
라오넬라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왜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을까.
편견에 휩싸일 그녀가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엄마가 죽은 뒤로 나는 철저하게 나를 분리하는 법을 배웠다. 감정이 온 손짓 발짓 언어를 지배하는 순간이라고는 놀랐을 때 뿐, 슬픔, 아픔, 두려움으로 눈물 흘리지 않는 법을 배운다. 아무 리 슬퍼도 울어서는 안되는 시간, 장소를 구분하도록. 눈물을 쌓아 둔다. 울지 말아야 할 곳에서 눈물을 쌓아 울어야 하는 시 간에 토해 낸다. 열 살 이후, 내 눈물샘은 눈물댐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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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이나 읽기 힘든 책들은 책장을 한 장 넘기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눈을 부릅떠야 하고, 한 장을 넘기고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고, 두 장을 넘기고는 물도 먹어야 하고, 또 간식도 먹어야 하고, 몇 장을 더 넘기면 살살 졸기도 해야 한다. 어쨌거나 몰입이 힘들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주까지는 아니지만, 포기하는 사태가 가끔 생겨버리고 만다.
<라오넬라, 새벽="" 두="" 시에="" 중독되다.=""> 고연주 作.
아침 나절에 읽기 시작해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이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는 말은 그만큼 잡은 손을 놓는 것 또한 힘든 매력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전혀 어렵지는 않았지만, 단순하지 않았고, 갈팡질팡했지만, 대체로 명쾌했다. 꼭지와 꼭지 사이의 개연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쨌든 내 눈에도 소설을 가장한 ''에세이''로 보이므로 패스.
책을 읽고 나는, 그녀에 대해 동정심을 가졌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녀를 ''흥미로운'' 인간형이라고 인지했다. 동시에 작가로서의 그녀가 어쨌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여러 가지 체험을 녹여낼 수 있는 작가로서의 경험을 풍부하게 가질 수 있었으니까. (사실, 나는 제대로 된 작품을 온전히 우리려면, 다까지는 아닐 지라도 꽤 많은 부분을 체험에 입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삶의 궤적을 따르고 있자니, 그녀의 삶이 참으로 치열했고, 앞으로도 꽤나 치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사실들과, 제대로 된 정체성이 확립되기도 전에 여과기 없이 많은 부분들을 받아들여야 했을 그 현실의 무거움이, 그녀에게 자양분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많은 의도하지 않은 세상사의 희번득한 칼날이 시시각각으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을 때에도, 그녀는 의젓한 ''악다구니''로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만의 여과기를 만들어 가겠지.
책을 읽고 난 독자로서 생긴 그녀에 대한 나의 두 가지 소원.
그녀 역시 책을 내기 전부터 어느 정도 감수한 일이었을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너무도 쉽게 그녀를 위해 혀를 차 주며 그녀의 약력아닌 약력들을 위대하게 읊어대어 오히려 상처를 주거나 위로 나부랭이를 하는 사람들이 제발 적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한 권에 너무 많은 것을 쏟은 그녀가 앞으로 ''동나지''않게 더 많은 경험으로 찰방찰방 채워지기를 바라는 생각.
걸을 수 있다는 것,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많은 거리를 지나가면서, 등을 밀치며 넘어뜨리기도 하고, 밀쳐져 넘어지기도 한다. 또 멀쩡히 걸어가다가도 문득 발을 접지르고, 계단을 헛디디고, 다리가 꼬이기도 한다. 바닥의 재질도 문제다. 편편한 아스팔트 대로일 수도 있고, 질꺽거리는 논두렁일 수도 있고, 비가 많이 와 물이 찬 개울일 수도 있다. 나는 바닥에 상관없이 누구 하나 밀쳐내지 않았고, 누가 끊임없이 밀쳐도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걸으려고 노력했고, 여태까지 계속 중심을 잃지 않고 걷고 있는 그녀가 대견했다.
라오넬라, 그녀.
지금 이집트에서 따뜻한 햇살 아래 걷기의 즐거움을 누리기를. [인상깊은구절] 그녀 덕에 초코 브라우니와 초코 머핀의 차이를 확실히 알게 되어 기쁘다. ^^ 학교를 가지 않은 지 일주일이 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열흘도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출석일수가 엉망이었던 난데, 그런 내가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한다. 지금 학생주임 선생님은, 내가 학교를 가지 않아 담임 선생님이 걱정을 하고, 그래서 잘 잘린 초코 브라우니 같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초코 알맹이 송송 박힌 초코 머핀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라오넬라, 새벽 두 시에 중독되다 中, 70-71p라오넬라,> |
| 라오넬라에 의한, 고연주에 대한 단상 -------------------------------------------------------------------------- 그녀의 이야기에 들뜨는 시간. 의식적인 새벽 두시의 책 읽기. 믿기 힘드나 그것이 표독한 사실임을 가슴에 꾹꾹 눌러주는 핏기잃은 엄숙에 의해 가슴은 통제하기 힘든 나락에 내몰리고 만다. 햇빛이 소실된 지상의 저편. 허덕이는 그녀의 삶에 온기라고는 닿지 않을 은둔의 시간과 공간속에서 22년의 장막이 숨죽여 틀어박힌채 침묵하고 침잠한 슬픔으로 얼룩져야 하다니.. 초연해온듯 상상만 해도 눈물이 고일것 같은 심정으로 이 글을 썼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으로 부터 참아오던 소녀의 모습을 본다. 어느 것 하나 부여잡고 탓할 것 없던 심약한 가슴의 병동을 안아야만 했던 연주의 뒤안길. 마음을 터놓을 길 없던 그곳에서의 방황과 온갖 사연들은 이제서야 미약한 날개짓을 하려는지 저주스럽게 소스라치듯 놀라며 마주하는 기억의 단편 속에서 당당한 자태로 거듭나고 있다. 붉은 책 커버의 색깔속에서 라오넬라(Laonella)의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 세상속에서 자기보호의 명목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녀의 태생, 존재의 나약함에 대해 가련하다는 말을 함부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억척스러움을 수용시킬 줄 아는 소신의 존재였음이다. 그것은 꿈을 잃지않아야 할 현실에 대한 당면성과 질퍽한 암흑의 굴레속에서도 자신의 생존이 거쳐가야 할 지향점을 결코 저버리지 않은 강한 생명력의 발화다. 이 책 한권을 통해 바라본 연주의 모습은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연상시켰고 주인공 다무라가 겪는 내밀하고 성숙한 자아를 닮아있다. 모래폭풍같은 운명과 부조리의 파도가 밀려오는 악몽의 현실. 그것이 그녀의 한숨에 무게를 가중시키고 말지만 삶의 원형을 더 강인하게 더 터프하게 주조시킬 노력과 배경의 각인체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얘기한다. 터프한 세상에 맞서서 같이 거칠어져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그것은 내 본성이 아니라고. 그러나 세상의 본성이 내 본성을 위협하고 있는 사실을 마주할때마다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거칠게 때려야 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자신의 유일한 도구였을테니. 부조리의 현실인 이모와의 관계속에서 고뇌하고 허덕이거나 어슬픈 글쓰기로 엄마를 꿈꿔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가녀린 갈망, 엄마발은 여름이고 내 발은 겨울임을 또렷이 기억하는 철부지 일곱살의 기억, 홀홀단신 춥고 배고픈 거리위에서 영국의 국제미아가 되버리고만 비참함을 바라 보노라면 더욱 가련하고 순수한 인간의 원틀을 감싸지 않을 수 없고 그녀의 모든 행동거지와 마음에 생생히 밀착되어버린 격한 감정의 시점엔 헤아릴 수 없는 소녀의 밑바닥에 몇번이고 책을 내던지고만 싶었다. 나는 그녀의 기억 한 조각이 발효된 진득한 체험의 내면을 통해 나의 거울로서 의식적인 비추임을 강요시킨다. 내 삶이 저러했다면... 앞날의 행로는 어떤 길을 걷게 됐을까? 연주의 상처가 잠든 지옥, 쉽게 벗지못할 무의식의 자폐를 통해 나는 다행의 감정을 쓸어내린다. 이렇듯 생의 몸부림에 날이 선 라오넬라의 치열은 삶의 투석 가장자리에 내 존재감을 내몰고 수많은 돌들로 이성의 저변 깊숙히 상처를 낸다. 현실의 진행형을 이루는 나의 생각과 행동들에 대해서 얼마만큼 치열할 수 있는가라는.. 산다는 것의 의미..란 우리가 매일 자고 일어나는 잠에서 눈을 떳을 때 이미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일. 그녀가 기억하는 과거의 쇠사슬을 끊고 이제 그만 22살의 편안한 마음길을 열수 있길 바란다. 또한 새롭게 소생하는 라오넬라를 기억하고 싶은 일이 우리 독자의 마음엔 가득하다. 사르트르가 ''천재는 재능이 아니라 절망적인 처지속에서 만들어지는 돌파구'' 라고 했듯이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이 한권의 책으로 묶였고 특출난 작가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고연주의 서막이 라오넬라의 빛으로 부터 시작된 것이라 믿는다. 그녀의 삶을 극복해나간 의지에 갈채를... "인생을 멀리서 조망하지 말고, 어떤 일에든 비참하거나 더러워져보라!" - 아르뛰르 랭보 -해변의> |
| 난 하루를 날잡아서 여러책을 읽기로 맘을 먹었었다..처음으로 ''라오넬라 새벽 두시에 중독되다'' 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책을 읽고 나서 난 다른 아무런 책을 읽을수가 없었다....아니 정확하게 말하면....이책을 읽고나서 멍하게 앉아있을수 밖에 없었다고 해야 맞을꺼 같다.... 연주 넌 굉장하고 특별한 아이야..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이 힘들고 지칠떄, 자기가 처한 상황이 가장 않좋다고 느낀다. 무기력해지고 더할나위 없이 나자신과 나의 무능력에 허무하기까지 한다.....연주도 그런 감정이 들었을텐데.....우리는 마냥 지금 처한 위치에서 원망만하고 있을텐데....연주는 지금 자기 자리에서 누구보다 더 그상황을 최선을 다해 보낸거 같다....이 아이는 나보다 어리다. 근데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느낌이 들게 한다. 나도 이런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작다면 작은책 한권인데...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남의 자서전일뿐인데....남의 이야기일 뿐이야..라고 넘길수 있는데...나를 참 많이 생각하게 하는책 같다.. 페이지를 한장 한장 넘기기가 무서웠다. 다음장에는 어떤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이장을 넘기고 나면 끝나버리면 어떻게 하지..이런생각까지 하면서...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정말 내가 아는사람에게 꼭 한번 읽어보도고 하고 권하고 싶다.. 난 글 재주가 없다.그래서 이런 리뷰를 쓰게되면 거의 몇줄 못쓴다.. 근데 내가 아닌것 같다.. 참 많은 글을 써서 다른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책의 내용을 전부 적을수만 있다면 적고 싶을정도로.... |
| 내게는 너무나도 이른 시간 햇살이 나긋하게 피어오르던 11시에 휴대폰으로 매혹적인 붉은 색으로 치장한 책이 내게로 왔다. 라온넬라 라이온과 신데렐라의 합성어라고 하는 새빨간 카피 문구와 표지 전체의 붉은 색은 아주 매혹적으로 혹은 아주 당돌하게 내게로 얼굴을 쳐켜올렸다. 하드커버의 딱딱한 느낌이 좋았다. 하드커버도 붉은색일까 하드커버를 벗겨본다. 이번엔 하얀 색으로 꾸며져 있다. 붉은 색으로 포장된 하얀색이라 웃어버렸다. 하지만 글을 다 읽고 책을 덮을 때즈음에는 붉은 커버는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고 몸 이곳 저곳 많은 상처를 간직한 고연주의 영혼은 어쩌면 하드커버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화이트 양장 커버 책 소개글에 누군가가 소설인지 에세이- 개인적으로 에세이보다 수필이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즉 수필인지 알 수 없고 굳이 규정짖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글을 읽어 가면서 처음에 소개 되었던 고연주라는 스무살 지금은 이집트 어딘가에 살고 있을 사람의 연혁과도 같은 짧지만 단단한 프로필을 읽어버린 탓인지 소설인지 수필인지 규정짓기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생각한다. 글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고질병이 재발했으믈 직감한다. 글이라는 것은 작가의 경험- 직접 또는 간접을 모두 아우른 - 을 토대로 하여 허구성을 가미하여 글을 쓰게 되어있노라고 아무리 사실이라도 글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이미 사실이 아닌 것이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내 기억속에 지식들이 꾸준히 정형화된 신호를 보내는데 이것은 기획사에서 자전적 성장 소설이라고 마케팅을 했기 때문일 것라고 생각해버렸다. 여러분은 혹시 진실게임이 아닌 거짓말 게임을 알고 있는가. 이 게임에서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면 안 된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짓말 뿐이다. 여러분들은 게임에 빠져들기 위해 처음에는 많은 생각으로 상황을 거짓으로 만들기 위해 조작을 가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어떠한 질문에 진실한 대답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도 놀랄 것은 없다. 듣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진실을 거짓말이라는 포장으로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연주의 글도 그런 것이 아닐까 소설이라고 해서 허구의 존재를 증거하지만 어쩌면 모른다. 소설같은 이야기가 절절한 자신의 이야기인줄 말이다. 소설같아 더 믿기어려운 현실도 있는 법이다. 우리는 어쩌면 거짓말로 점혈된 진실을 탐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 책 이야기를 좀 해볼까? 이 글에는 한 사람의 인간 고연주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대한 민국의 국민들이 평범하게 살아온 길이 아닌 길을 걸어가게 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우리가 탈선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들을 겪은 어쩌면 스스로 선택해서 겪은 - 이 점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에게는 판타지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일들과 상황을 술회했다. 어머니와의 원치 않는 헤어짐과 가출후에 만난 친구들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단속적으로 이어져 나열되고 있었다. 회상의 형식을 취했으나 평각가 아니라 그 시절의 한 부분을 필름에 담듯 한 장면을 잘 잡아 놓고 있다는 생각이들게 했다. 고연주의 문체는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매혹적이다. 마르다. 문체가 단단히 말라 건드리면 바스락 소리와 함께 깨어져 버릴 낙엽처럼 마르다. 그러기에 더욱 담담하고 과장되거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이러한 글쓰기는 고연주의 살아가는데 힘이 되었을지 모른다. 담담하게 사실적이게 쓰기 상처였다면 상처로 기쁨이라면 기쁨으로 슬픔이라면 슬픔으로 있는 그대로 쓰기는 어쩌면 현실에서 유리된 환몽의 세계를 허우적 거릴 수 있는 문체를 -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문체를 쓰기보다는 -다 잡아 더욱더 현실에서 강단있게 중심을 잡게 하기에 충분한 문체였다. 책 커버에 무릎에 반창고를 한 일러스트를 차용하고 있는데 고연주에게 글쓰기는 반창고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반창고 상처가 아물게 하기 위해서 약을 바르고 봉합하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글로써 자신의 아픔과 고통과 모든 감정들을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상처가 덧나거나 더럽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고연주는 글을 쓰고 또 쓰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평탄한 삶 평온하고 안늑한 삶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아둥바둥하는 어른들 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그릴고 생각된다. 여러분들에게 고연주는 소설을 가장한 이야기와 마른 문체로 당신의 나태해진 감정을 다잡아 줄것이기 때문이다 |
| 해마다 가출 청소년이 늘고 ,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이 곧 바로 비행 청소년으로 대부분 바뀌어 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매번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 남 같지 않은 점은, 청소년들의 문제가 곧 우리 어른 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원인 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 나쁜 길로 빠지는 청소년 들을 첮아내어 바른 길로 인도 되어 꿈을 키워 나갈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 일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불완전한 가정 문제가 원인이 되어 중도에서 학업을 그만 두어야 할때 막상 사회의 시선은 따뜻하지 못해서 마땅한 대책이 미약한 현실에서 , 청소년 스스로가 세상을 향해 올바로 나아 갈 수 없는 나약한 마음을 먹을때 그들의 곁에서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지켜 봐 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길중에 독서의 힘을 빌리는 방법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겠디.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비슷한 경험을 토해놓은 동질감이 느껴지는 이런 책을 만난다면 , 미치 큰 빛을 발견 한 듯한 무척 좋은 느낌이 드는 내용의 실감나는 이야기의 진실성에 매혹되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저자의 아픔이 묻어나는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서 감동적이면서 눈물겨운 사연 들을 엮어낸 그녀의 아름다운 용기와 아울러 그녀의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운명을 향해 돌진하는 라오넬라 정신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이책을 방황의 기로에 서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꿈꾸는 청춘은 아름답다 라고 누군가 말 했지만 ,저자의 삶은 순탄치 않아 보이는게 사실이고 그런 중에도 아픈 과거를 남의 일처럼 이야기 할수 있는 그 저력은 젊음 이라는 힘이 아닐까? 고통의 삶에서 벗어 나려는 처연한 몸부림 속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짧은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꿈과 용기를 잃지않은 라오넬라가 되고자하는 저자의 강인한 정신력이 밑바탕을 버텨주고 있음 으로서 청춘의 끓는피가 솟아 오르는 것 일것이다. 라오넬라 이기에 큰 야망을 지닌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겟지만 , 알고 보면 따뜻한 가슴을 숨길 수 없는 마음 여린 소녀 이기도 하기에 그 힘든 교통사고의 기억을 이겨내고 자신을 괴롭히는 이웃들에게 용서하고 이해해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착한 마음씨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 싫은 내색 하나없이 노력하는 삶을 이뤄내는 장한 여성으로 거듭 태어나는 라오넬라 이기 때문 이리라 . 빨간 정열적인 표지속 그안의 순수하고 맑은 어린 소녀의 꿈들이 매일 밤 한밤 중까지 쉬지않고 토해 낸 아픈 조각들의 이야기와 꿈속에서 만나던 엄마의 그리움을 글로서 대신하여 아쉬움을 표하며 거친 사회에 혼자 던져진 듯한 고독한 심정을 혼자 삼키며 이겨낸 라오넬라의 진솔함은 인터넷 블로그를넘어 이제 새로운 감동으로 미래을 향한 미지의 세게로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으니 , 사하라 모래바람이 아무리 휘몰아치고 세파에 씻기는 어떤 어려움도 나보란 듯이 굳굳이 헤쳐 나가게 됨을 믿어 의심치 않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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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았을 때, 책의 강렬한 빨간 표지(빨강이라고 하나..이 색을..선홍색인가..)에 놀랐었다. 다시 한번 놀란 것은 그 표지를 걷어냈을때 드러난 너무나 새햐얀 표지. 궁금해졌다. 왜 이런 디자인일까...? 라오넬라 그녀의 자전적 성장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길래 이렇게 전혀 닮지 않은 빨강과 흰색으로 책이 나온걸까. 강렬함 속에 숨은 순수함인가...? 아니면 강인함 뒤에 숨은 약함인가...? 궁금함에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책은 라오넬라가 말하는 새벽 두시가 되어 마치게 되었다. 라오넬라는 새벽 두시에 중독되었지만 나는 라오넬라에게 중독되어 갈 것같다. 라오넬라. 그녀의 자작글이 카페에 올라오는 것을 읽으면서 어떤 감성이길래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걸까 호기심이 일어났었다. 이 책이 어느정도 그 호기심에 해답을 준듯하다. 이 리뷰를 다 쓰고 어여 라오넬라의 블로그에 들어가 글을 남기고 싶다. 라오넬라님은 글을 써야하는 사람이 맞다고. 당신의 책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을 봤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라오넬라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몇줄 읽어내려가다가 가슴이 뻐근해지는 아픔을 느껴야했다. 엄마의 죽음에도 울지 못하는 열살아이...흰 소복대신 돌고래티를 입은 아이가 아프게 내 가슴속에 들어왔다. 라오넬라는 어머니를 10살에 여의였다. 아버지는 다른 여자의 남자이므로 그녀는 사생아였다. 어머니와 그녀 단둘이 살다가 어머니를 10살에 잃었다. 아이는 울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이를 독한 아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울지 않는 자신이 슬퍼서 더욱 슬픈 표저을 지어야했다.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도록. 고작 10살인 그녀는 자신이 울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야했다. 라오넬라에겐 아무도 없었다. 친척은 있었지만 라오넬라가 맘편히 울 수있는 가슴은 없었다. 자신이 살아있음에 죄책감에 시달리는 하얀 소복대신에 돌고래 티를 입어야했던 아이에게 너가 살아있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산사람은 살아야지'' 라오넬라에게 그 말을 해준것은 지나가는 할머니...아들을 잃어 할머니 스스로를 위로하느라 한 한마디가 라오넬라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였던 것이다. 가능하다면 그녀의 10살로 돌아가 내가 돌아가 가만히 그녀의 옆에 앉아있다 오고 싶었다. 서로 손만 잡은채.
자전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암담한 라오넬라의 십대. 이모의 가혹한 구타에도 이모를 미워할 수 없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라오넬라는 이모를 미워하지 않기위해 집을 나온다. 도망친거라고 해야하는건가...아니..그건 단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홀로 세상에 버려진 라오넬라. 그녀의 몸에서는 기름냄새가 사라질줄 모르고 바퀴벌레로 커다란 하트를 다 채울만큼 바퀴벌레가 많은 방에 여럿이 살면서도 그녀는 불평하지 않는다. 피곤함과 초라함으로 느껴져할 라오넬라의 십대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물방울들을 보았다. 투명한 물방울...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위 밑바닥이라는 곳에 그녀는 있었지만 라오넬라가 내뿜는 빛은 너무 강렬해서 그 밑바닥마저 빛이난다.
라오넬라는 강하다. 그녀의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라오넬라->Lion + Cinderella = laonella) 무엇이 그녀를 강하게 만든걸까...? 그녀의 꿍이 그리고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버텨내게했다. 자신의 힘든 시절을 글을 쓰기 위해 참아내는...언젠가는 이 힘듬을 글로 풀어내겠다는 그녀..사자의 강인함과 신데렐라의 꿋꿋한 의지를 가진 라오넬라.
!엄마.
힘든 고비에서도 그녀는 공부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꼭 자신은 책상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엄마를 너무나 사랑한 라오넬라. 이모가 하는 험한 엄마의 욕에 주먹을 너무 세게 쥐어서 피가 맺힐정도지만 참아야했던 라오넬라. 그녀는 엄마를 너무나 사랑했으며 이해했으며 엄마를 자랑스러워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자신이 바로서야 엄마가 인정받는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한순간도 포기한적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꿈
라오넬라..k가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글을 써야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꿈은 작가였다. 자신의 힘든 시간은 글을 쓰기위해서라고 눈물도 참고 아픔도 참고 배고픔도 참고 모든 것을 참아냈다. 그녀에게 작가라는 꿈이없었다면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라는 그녀의 꿈은 그 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올 한줄기 빛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말 글을 써야한다. 그녀의 글에 위로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 그녀는 알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라오넬라..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가정을 한번도 가져본적 없는 그녀. 아버지와 어머니가 둘러싸인 식탁에서 밥을 먹어본적 없는 그녀.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일찍 일어버린 그녀. 그래서인가...? 그녀가 그토록 사람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것은...그녀와의 인연을 거친 사람을 그녀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는 그녀. 어릴때부터 사람이 고팠던 그녀에게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제일먼저 쓰고 싶었다던 맘 약한 그녀. 그녀를 곁에 둔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물론 그녀도 행복할 것이다.
라오넬라 새벽 두시에 중독되다. 이 책 괜찮다. 솔직함이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낸...그녀의 상처와 삶에 반창고를 붙여주고 싶다. 이미 내 상처에는 그녀가 반창고를 붙여주었으므로. [인상깊은구절] 하얗고 예쁜 한복이 아니라, 돌고래 티셔츠를 입었기 때문에 착한 아이 땨윈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투정한다.결국 문제는 메마른 눈가가 아니라 돌고래 티셔츠이다. p.20 나는 작가가 될 거라고, 그러니까 이것들은 모두 내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며 혀를 찰 때마다 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것으로 점점 고통은 줄어들고 그 고통마저 희열이 되곤 했다. p.23 엄마 발은 여름이고, 내 발은 겨울이다. p.46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쓸 거야. 열여덟의 내가 얼마나 시렸는지, 그런 이야기를 쓸 거야. 그러니 지금은 괜찮 아.''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는, 눈을 뜨고 나면 굉장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는 꿈을 꾼다. 어느 날, 갑자기 공주가 되어 버린 부엌되기처럼. p.158~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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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독자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는 책이다. 저자는 술자리에 앉은 그 누군가에게 나 이렇게 살았어요, 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작가가 설정한 삶이 아닌데 거기다 대고 이러쿵 저러쿵 참견을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만 그녀의 친구가 되어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따른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면 그만이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거품이 없다. 마치 소주같은 느낌이다. 소설과도 같은 삶을 실제로 그녀는 살아왔다. 내가 교복을 입고 하얀 양말에 검은 구두를 신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반항할 때 그녀는 주유복을 입고 검은 양말에 질긴 운동화를 신고 거친 세상에 맨몸으로 부딪쳤다. 수도 없이 배신당하고 외면당하며 아파했을 그녀. 그럼에도 그녀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글엔 애정과 슬픔이 가득 배여 있다. 그래서 더욱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련하고 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아팠다, 라고 하는 것만이 내 감상의 전부는 아니다.
그녀는 현실이라는 차가운 땅에 뜨거운 꿈을 내뱉는다. 자신을 영화 주인공으로 만들 듯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 미션을 수행하듯 순간순간을 이겨낸다. 세상을 원망하고 그에 온갖 욕지거리를 퍼붓거나 또는 절망의 나락으로 스스로를 침체시키는 대신에 그녀는 꿈꾸고 변화하기를 선택한다. 마치, 신데렐라처럼.
꿈꾸는 청춘은 아름답다, 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라오넬라는 그 표본이 될 자격을 충분히 지녔다고 감히 생각해본다. 그녀의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고 그녀를 온전히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팠던 과거에 참 안됐구나, 라고 말할 자격도 내겐 없다. 다만,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느낀 건, 이런 게 청춘이구나, 하는 것이다. 끝없이 아파하고 세상에 배신당하고 넘어지면서도 꿈이라는 뜨거운 불을 가슴에 지니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청춘의 아름다움이라고. 라오넬라가 그랬던 것처럼 이 땅의 또다른 라오넬라들이 그러기를, 또 내가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 또 저자가 어떤 글을 써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대해본다. 다음에는 짝이 맞지 않은 양말을 신고 반창고를 붙인 라오넬라가 아니기를 또한 바라면서. [인상깊은구절] "열일곱 내가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영화를 찍는 일이었다. 나를 ''공항 히드로'' 라는 제목의 영화 주인공으로 만든다. 양팔을 뻗고 눈을 지그시 내려 감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그들을 향해 소리 질러 주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는다. 여러분, 여기 보세요. 내가 영국에 왔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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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기의 부끄러운 부분도 공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글이 생각난다. 어디에서 읽은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때 이 부분에서 주저주저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를 알 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허물을 숨김없이 내어 놓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나에게 이렇게 하면 되요 라는 듯 용기 있게 대중에게 자기를 열었다. 마치 조교의 멋진 시범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어쩜 이렇게 까지. 그래서 그녀가 힘들어 하는 순간에 접하게 되면 그 속으로 들어가 내가 슈퍼히어로의 역할을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열 살의 나이에 엄마의 죽음 앞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이모로부터 멍이 사라질 날이 없도록 맞고 있는, 가출해서 기거할 곳이 없어 늘 남의 더부살이를 선택하고 있는, 친한 사람으로부터 열심히 모은 돈을 한 순간에 사기당하고 있는, 그리고 영국이라는 오지에서 추위에 떨며 잠잘 곳을 찾아다니고 있는 그런 그녀에게 말이다.
하나, 너무 솔직하다. 그래서 좋았다.
아무리 자전적인 성장소설이지만 이토록 리얼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너무나 솔직하다. 남의시선을 의식하고 나를 여러 가지로 치장하면서 ‘~인체’ 하며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그녀의 글에 투영되면서 얼굴이 붉어졌다. 나의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 점점 강하게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대부분은 전쟁터에서 창을 들고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것처럼 자기 방어에 더 철저해 진다. 점점 폐쇄적인 공간 속으로 나를 가두어 간다. 그러기에 이 책은 마치 그러다가 터지고만 풍선이라고나 할까. 과히 나에게는 그 솔직함이 큰 충격으로 다가 왔다. 그래서 좋았다. 그래서 사생아 고연주는 라오넬라가 될 자격을 충분히 획득했다.
다섯 살의 나는 체념이 빠르다.
“너네 아빠는 다른 부인이 있어. 다른 엄마가 있는 거지. 아빠는 엄마와 결혼을 하지는 않았단다. 하지만 너를 낳은 거야. 그러니까 아빠는 다른 부인이랑 같이 살고 있단다. 그래서 너는 아빠가 없는 거야. 사람들이 물으면 아빠는 돌아가셨다고 해. 너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아, 그래서 나는 아빠가 없구나.’ (p.77)
둘, 꿈이 있으면 환경 탓은 하지 않는다.
그녀만큼 성공할 수 없는 조건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그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량소녀’였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이 그녀를 인생의 바닥에 내동댕이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구체적인 꿈을. 아니 어머니의 바램을.
뭔가 잘 되지 않으면 ‘나만 왜 이런 거야’라며 주위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버린 건 아닐까. 그렇게 아무리 자위하더라도 나의 형편은 더 나아질 수 없는데도. 그러기에 꿈은 참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것을 열망하며 그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동기를 주기 때문이다. 라오넬라 그녀는 늘 꿈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나는 너희들처럼 살지 않을 거야. 나는 공부를 할 거야. 그래서 서울예전에 갈 거야. 거기서 글을 쓰는 공부를 시작해서 작가가 될 거야. 나는 단란주점에도 나가지 않고, 원조교제를 하지도 않을 거야. 검정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경이 될 때가 되면 바로 시험을 볼 거고, 하루 벌어 하루 마시고, 그렇게 살지 않을 거란 말이야. (p.92)
셋, 그녀의 필력에 감동받았다.
똑같은 상황을 보고 전할 때 그 표현에 따라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극도의 차이를 준다. 내가 아마 라오넬라와 같은 경험을 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했더라면 책으로 발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단순한 글 나열에 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디에서 이런 글쓰기의 능력을 배웠을까. 선천적으로 글쓰기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하더라도 그것을 키우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땅에 묻혀 그 씨를 발아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녀는 힘들고 지칠 때 책 읽기(선데이서울 포함)와 일기쓰기를 꾸준히 했던 것 같다. 이 책 속에 직접적으로 언급 된 것은 없었지만 책 내용 속에서 짐작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의 끊임없는 싸움을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지속적으로 이것을 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라오넬라는 이 좋은 습관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이 맛깔스런 책을 세상에 내 보내게 한 것이리라.
여덟 살의 나는 선데이 서울을 편다. 남부 터럭 터미널 건물의 해남식당 막내딸과 함께. 식당 뒤 골방으로 들어간 나는 자랑스럽게 봉투에서 책 뭉치를 꺼낸다. 그제 양양운수 아저씨가 주고 간 책 상자들 중에서 찾아낸 찢긴 잡지. 여덟 살의 나와 열 살의 해남식당 막내딸이 배를 깔고 누워 한 유부녀의 불륜을 들여다본다. (p.48)
"아, 내 정신 좀 봐. 네가 일기장에 선생님 싫다고 썼다면서. 선생님이 싫으니? 그래, 그 나이 때는 선생님이 미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학교를 그만둔 건 아니잖니. 그런데 너네 이모가 그 일기장을 복사해서 교무실에 다 돌리고, 교육청에도 알린다고 난리도 아니야. 선생님은 이제....... 흑.......“ (p72)
갑작스레 나의 삶에 침입한 라오넬라의 진솔하고 솔직한 자전적 성장소설을 대하면서 나도 성장통을 치르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런 고통의 시기가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강인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아름다운 여성인 라오넬라를 만들어 가고 있기에 이 책의 작가 고연주는 또 다시 놀라게 할 멋진 책으로 다시 찾아오리라. 라오넬라 홧팅! [인상깊은구절] 그런 나는 “어른들에게는 그 커다란 몸을 가득 채우는 사랑이 있듯, 우리에게는 우리의 작은 몸을 가득 채우는 사랑이 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던 나를 잊는다.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렇게 내 사랑해 대해 변호했지만,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중학교 1학년들의 사랑이 대단한 것이라 여기지 않는 아를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 “그땐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 내가 되어 바리고 만다. 지난 사랑이어서 아픈 것 같지 않다. 그들에게는 현재진행형이지만 내게는 이미 십여 년이 지난 사랑이어서 아픈 것 같지 않다. 그런 연유로 그들의 아픔에 등 돌리고 있다. 몇 년이 지나 중학교 1학년 때의 내 짝사랑아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은 ‘그저 그맘때쯤 누구나 겪어 볼 법한 일’로만 치부해버린다. 정작 중학교 1학년 때의 나는 ‘내 사랑은 세상에 하나맘 있는 꽤나 대단한 것''이라 소리친 주제에. (p.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