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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몸, 두 개의 인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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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수록된 을 읽고 느낀 게 많았다. 이 작품은 샴쌍둥이에 대해 쓴 작품인데 하나의 몸에 두개의 머리를 가진 자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장실에도 함께 가야 하는 이들에게 비밀이 있을 수 있을까. 성욕을 느끼는 것마저 한쪽에게 들켜야 하는 자매. 책을 덮고 나서도 자꾸만 그들이 생각나 우울했다. 결국 분리 수술로 한쪽은 죽고 만다. 도 만만치 않은 소설이다. 한 사람의
"하나의 몸, 두 개의 인격체" 내용보기
처음에 수록된 <메리와 헬렌>을 읽고 느낀 게 많았다. 이 작품은 샴쌍둥이에 대해 쓴 작품인데 하나의 몸에 두개의 머리를 가진 자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장실에도 함께 가야 하는 이들에게 비밀이 있을 수 있을까. 성욕을 느끼는 것마저 한쪽에게 들켜야 하는 자매. 책을 덮고 나서도 자꾸만 그들이 생각나 우울했다. 결국 분리 수술로 한쪽은 죽고 만다. <김분녀의 일생>도 만만치 않은 소설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어쩜 이리 박복할까 싶은데 그 시절의 여성들의 삶으로 치자면 신기할 것도 없는 인생인 것도 같다. <경리 7년>도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이 소설에 실린 단편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전직인 기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전직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전작인 <열정의 습관>에 비해 이 작품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독자로서 좀더 작가가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라서 그녀의 차기작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너 아까 자위했어." "자위했다고? 어떻게? "여기를 이렇게 손으로 만지면서 신음소리도 냈어." "신음소리도 냈다고? 거짓말!" "몸도 배배 꼬던걸." "몸을 꼬았다고? 그럴 리 없어. 난 하나도 기억 안 나." "기억할 리 업지. 몽정이었으니까." "몽정이 뭔데?" "몽정도 몰라? 꿈에서 섹스하는 거지." "꿈에서 섹스했다고? 난 그런거 안했어." 메리는 단호하게 부인하면서 헬렌을 노려보았다. 헬렌은 메리에게 경멸의 시선을 던졌다.
l****7 2006.06.30.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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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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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에 조선희의 인터뷰가 실렸다. 씨네21편집장이었던 때인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선 시기였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녀가 편집장이었는지도 몰랐지만(세상에 어느 누가 잡지의 기자나 편집장을 눈여겨 본단 말인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었다. 절대 대충이나 대강이나 그냥 같은 말은 안나올 유형의 사람처럼 보였다. 하나를 해도 아주 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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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에 조선희의 인터뷰가 실렸다.

씨네21편집장이었던 때인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선 시기였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녀가 편집장이었는지도 몰랐지만(세상에 어느 누가 잡지의 기자나 편집장을 눈여겨 본단 말인가?)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었다. 절대 대충이나 대강이나 그냥 같은 말은 안나올 유형의 사람처럼 보였다. 하나를 해도 아주 야무지게 하는 사람. 사람은 나랑 닮지 않은 사람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하여튼 난 그녀의 치열한 삶이 몹시도 부러웠다. 오랜 직장을 그만둔 뒤의 허전함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인터뷰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고 정확히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었다. 그 인터뷰가 몇년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에서 조선희라는 이름을 본 순간 주저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대개 첫번째 단편집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실리는 듯 하다. 공들였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많았다. 공간을 뛰어넘는 소설도 있어 아주 의외였다. 대개 외국이 배경일지라도 사람은 한국인일 경우가 많은데 생뚱맞게 외국인이 등장하여 처음부터 당혹하게 한다. 샴쌍둥이의 이야기인 메리와 헬렌 이야기. 헬렌이 자신을 희생하자 정상인이 되는 메리. 사람들은 대단하다. 혼자 태어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살아가고 위대하다.

 

김분녀의 일생은 할머니 김분녀와 손녀의 삶이 비교된다. 할머니는 악착같이 살아내고 손녀는 공부한답시고 너무 오래 부모 밑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가 정말 급격히 발전했다는 생각이 여지없이 드는 이야기다. 손녀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 쓰고 나면 그녀 삶은 달라질까?

 

지나간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짧다. 햇빛 찬란한 나날은 아름답고 짧았다. 그 기억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 기억 때문에 평생이 어려울 수도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경리 7년'이었고 가장 공감간 내용은 '에덴의 건너편'이었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어려운 순간을 넘겨봤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 어려움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 밝고 명랑하고 친절하기가 쉽다. 정말 그렇더라. 그런데 위로했던 상대방 일이 자신에게 닥치면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젊어서는 고생을 사서도 한다고 했으리라. 고생은 젊어서 하는 것이지 나이 들어서 하면 못견딘다.

 

전체적으로 좋은 단편집이다.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여하튼 재미있다.

n****5 2007.05.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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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세상에서의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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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병든 사람의 몸을 관찰하고 이를 치료하는 사람들이라면 작가는 병든 세상을 들여다보고 그 환부에 날카로운 시선의 메스를 대는 사람일 것입니다. 적어도 오늘 만날 작가 조선희는 제게는 그런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의 환자수첩인 <햇빛 찬란한 나날>에는 그가 본 병든 세상에서 힘들게 병을 견디며 살아가는 다양한 병력의 소유자들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든 세상에서의 길찾기" 내용보기
 
의사가 병든 사람의 몸을 관찰하고 이를 치료하는 사람들이라면 작가는 병든 세상을 들여다보고 그 환부에 날카로운 시선의 메스를 대는 사람일 것입니다. 적어도 오늘 만날 작가 조선희는 제게는 그런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의 환자수첩인 <햇빛 찬란한 나날>에는 그가 본 병든 세상에서 힘들게 병을 견디며 살아가는 다양한 병력의 소유자들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설 읽기를 위한 준비 운동


언어학을 연구하는 방법 중에는 정태언어학(공시언어학)적 방법과 통시언어학(진화언어학)적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가 하나의 언어체계를 때와 장소의 다름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시점 혹은 장소나 집단의 언어체계를 연구하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때에 따라 변화하는 말의 모습을 연구하는 방법입니다. 단편과 장편을 가름에도 위 언어학적 관점은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입니다.


분량의 많고 적음과는 별개로 장편이 문제적 주인공이 거치며 살아온 긴 생애와 그가 살아온 세상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단편은 어느 특정 시점에서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바라본 작가의 시선이 머무르는 짧은 기록이라 말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단편에서도 한 인간의 살아온 이력이 기록되는 경우가 많으나 그것은 주인공의 특정한 사건만을 기록하고 있거나 그것을 회상하는 화자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장편이 지난 시점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의 수직적 탐구라면 단편은 특정 시점의 인물에 대한 수평적 관찰이라 바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환부에 메스를 대는 사람이 작가들이라 인정한다면, 아마도 장편을 쓸 때의 작가는 병의 통시적 연구를 담당하는 병리학자일 것이고 단편을 쓸 때의 작가는 병자의 환부에 따라 다양한 전문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모든 걸작들은 병든 세상과 그 병든 세상에서 실존을 견디기 위해 고군분투 절치부심한 처절한 삶의 기록이라 말해도 무방합니다. '문제적'이지 않으면 작품성이란 이미 실종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곧 병들었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가의 치열한 정신의 결과물이 작품입니다. 연애소설의 범주에 드는 소설들 역시 관습과 가치와 인성 등으로 인한 연인들의 갈등과 대립이 없다면 이는 한 개인의 연애편지 혹은 일기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병든 세상의 집단병실 - '햇빛 찬란한 나날'


각기 다른 작품이 실려 있는 단편집에 대해 하나의 주제로 서평을 쓰기란 난감한 일입니다. 작가론, 작품론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기자가 할 수 있는 작업이란 작품집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소설적 소재나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는 정도이거나 또는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아내어 독자의 소설읽기에 약간의 편의를 제공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자의 진단처럼 독자들이 '후기자본주의' 같은 골치 아픈 낱말에 주눅이 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오늘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가벼운 기대 정도로 독서를 시작하면 그 뿐입니다. 실려 있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병원이 등장합니다. 어딘가 아픈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말입니다.


'메리와 헬렌'의 두 주인공인 메리와 헬렌은 두 몸이 아닌 한 몸으로 태어난 샴쌍둥이입니다. '김분녀의 일생'에서 손녀는 낙태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고 주인공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바람기와 시댁의 구박을 피해 집을 나와 한 많은 세파를 헤쳐 온 남성우월주의 사회의 피해자입니다.


'서울의 지붕 밑'의 K는 사고로 거동이 어려운 남편에게 얻어터지면서도 참고 살아가는 파출부이고 '부두키트 세러피'는 말 그대로 세러피(치료, 요법)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 혹은 정신적 심리치료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경리 7년'의 주인공 정희는 숫자(화폐 또는 회계)로 획일화된 산업자본주의시대의 정신 병리를 앓고 있는 상징적 인물이고 '한 때 우리는 신촌에서 만났지'의 옛 연인은 젊은 나이에 돌연사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에덴의 건너편'에서 뇌종양을 앓는 정연의 딸을 위해 기도해주고 상담을 해주던 심리 상담가(원우 엄마)는 정작 자기 남편의 죽음은 이겨내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지난여름의 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상의 탈출을 꿈꾸지만 통화권 이탈로 전화가 불통되자 불안에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현대인들이며 '백일몽'의 애영은 자궁검사를 낙태수술로 상상하는 노처녀로 등장합니다. '향수'의 등반가는 이혼이 현실이 되어서야 그동안 무심했던 가족 혹은 부부의 사랑을 깨닫는 도피증 환자처럼 보입니다.

 

건강 찾기 혹은 견디기


조선희의 첫 단편집 <햇빛 찬란한 나날>에서 기자는 그 작품에도 매료되었지만 책의 말미에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의 진단에 더욱 깊은 감명과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는 조선희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조선희는 아직도 후기 자본주의 시대 한국의 한복판에서 버림받고 미쳐가는 사람들의 고백을 기꺼이 듣고 기록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일상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고,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그리고 그것을 기록한다. 그에게 소설가란 모름지기 만인의 고백을 들어주고 기록하는 자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희는 여전히 신이 죽어버린 시대의 사제다"(본문 해설 중에서)


조선희를 진찰한 그의 진단은 날카로우면서 경쾌합니다. 그의 진단이 이미 나와 있는 상태에서 똑같은 진단을 하기에는 기자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동의하고 맙니다. 그만큼 조선희의 단편집에 실린 11편의 작품들은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증의 한 가운데에서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병들어 고통 받는 환자수첩 같기만 합니다.


병력만을 기록한다면 이는 올바른 작가의 역할이 아닙니다. 조선희는 그들 환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이 병든 세상을 견딜 수 있는 처방을 내어 놓습니다. 김형중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작은 대안들'이고 곧 '세러피'입니다. 이는 '부두키트 세러피'에서 보이듯 직장상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부두교 인형에 바늘을 무수히 찌름으로 해서 일정부분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경우 등입니다.


여러 단편들 중 가장 덧없이 읽힌 '햇빛 찬란한 나날'이 하필이면 책의 제목이 되었을까? 기자는 궁금하였습니다. 이루지 못한 이상 앞에서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 주인공은 거식증 환자입니다. 그가 서울의 마지막 밤에 버섯요리를 맛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기자는 그에게서 병든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사월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듯, 대학문을 나선 뒤부터 내 육신에서 천천히 퇴화해온 이상이라는 기관이 불현듯 활동을 개시했다. 수많은 판단착오와 유치한 다툼들이 얼룩을 남겼지만.... 쉽게 상처 받지만 또 쉽게 지치지도 않는, 그렇게 젊었던 한때의 일이었다." ('햇빛 찬란한 나날' 중에서)


"서쪽 바다로 지기 직전에 진경을 펼쳐 보이는 해처럼 왜 사람은 돌아서서 사라지는 뒷모습에서 비로소 진심을 읽게 허락하는 것인가"('향수' 중에서)


그 깨달음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열망이 이 병든 세상을 견디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 조선희- 전 한겨레 신문 기자, <씨네21> 편집장 엮임


* 햇빛 찬란한 나날/조선희/실천문학사/9800원


 

e******1 2007.05.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