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중일의 독특한 미의식 지상현 아트북스/2015.8.5.
지리적으로 동북아에 위치한 한중일은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들 삼국의 미의식은 같은 듯 다른 각각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저자가 <한중일의 미의식>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바로 한 민족의 세계관이며 기본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기저문화다. 기저 문화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문화적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옛 미술양식을 분석하여 한중일의 미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한 개인의 인생관과 성격이 그 사람의 성취를 결정하듯이 한 민족의 기저 문화는 그 민족의 현재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모두 7장으로 이루어진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은 은유와 해학을 좋아하고 사고의 유연성과 융통성이 큰 기질적 특성을 갖고 있다. 한국인은 완만한 곡선적 양식을 좋아 하고, 기본적으로 색상대비가 강한 미술 양식을 갖고 있다. 이것에 더해 작위 대 비작위와 같은 현대적인 대비를 발전시켰다. 우리 미술에서는 이런 혁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건축에는 ‘덤벙주초’라는 것이 있다. 주초는 주춧돌을 말하는데, 덤벙주초란 주초를 제대로 다듬지 않고 대충 다듬어 덤벙덤벙 놓은 것을 말한다. 주춧돌이 반듯하지 않으니 그 위에 놓인 기둥의 길이도 주초의 높이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p.12) 이렇게 우리는 일본과는 정반대로 매뉴얼 없는 사회다. 중국은 관계 의존성이 매우 크고 구체적, 시각적 사고에 능하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명확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실적이 되는 것일 수 있다. 급격한 곡선적 양식을 좋아하는 중국인은 사실적 재현을 중시한다. 그러기 위해 밝기 대비, 색상대비를 모두 이용한다. 그리고 둘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주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색상의 채도를 살짝 낮추는 지혜도 발휘했다. 그래서 통합적이다. 일본은 압축을 통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다분히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진 것이 일본인이다. 타고난 구조주의자들인 셈이다. 그들의 옛 미술품이 미니멀리즘적이고 현대의 모더니즘 미술 양식과 유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일본을 매뉴얼 사회라 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비해 개인주의적이며 따지고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따지고 분석하면 그만큼 세상을 잘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일본인은 직선적 양식을 좋아한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밝기 대비가 강한 양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형태 중심 양식을 심화시켜 볼거리가 많은 조각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홍익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연세대에서 지각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성대학교 예술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시각예술과 디자인의 심리학>, <뇌, 아름다움을 말하다>, <디자인의 법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우리가 알아야 될 우리의 문화를 몇 가지 특징적인 것을 소개하며 그를 마무리하려한다. 산수화 한국과 중국의 산수화는 화가가 마음속에 그리는 이상향을 담고 이다. 그리고 감상자들은 이 그림 속 풍경 구석구석을 눈으로 탐색하며 산을 오르기도 하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이것이 산수화 감상이 주는 즐거움의 하나다. 그러므로 산수화에서는 어떤 풍경이 그려졌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자연의 모습은 그린이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p.309) 중국의 산수화에 나오는 가옥들은 도피처의 성격이 매우 강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중국의 전통 가옥인 사합원이나 토루에서 보는 극도의 내향성, 폐쇄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전망의 성격도 강했다. 도피처와 전망 사이의 진폭이 큰 것이다. 우리의 산수화에서는 전망이나 도피처 사이를 오가는 진폭이 좁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상외인 것은 일본의 산수화다. 한, 중의 산수화에 비해 풍경자체보다 풍경과 장방형 화면이 이루는 기하학적 구성에 더 관심을 기울인 기색이 역력하다. 이와 더불어 매우 개방적인, 다시 말해 전망 중심적인 가옥 배치가 두드러졌다.(p.285) 일본 산수화는 구도의 심미성을 살리기 위해 풍경을 선택하거나 조작했다는 인상을 준다. 쉽게 말해 벽을 장신할 멋진 그림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일본의 산수도는 화면이 좁고 긴 족자형이 많다. 이런 화면에서는 그림이 시각적 무게중심이 아래에 몰려 있기 마련이다. (p.310) 풍요로운 너무나 풍요로운 조선의 단청 첫째, 중국의 채화는 색면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청색과 적색면은 각기 자기 영역을 갖고 다른 색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우리 금단청은 색면들이 서로 섞여 있다. 둘째, 문양의 전개가 화새를 포함 중국의 건축 채화는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평면적인 인상을 준다. 그러나 우리의 금단청은 머리초(기둥이나 서까래의 시작 부분에 있는 문양)에서부터 겹겹이 쌓이듯이 문양이 전개된다. 그 결과 층이 5-6층 정도로 느껴진다. 셋째, 한국의 단청은 자연을 모사한 배색을 사용한다. 상로가단이라고 하여 기둥은 소나무와 같이 석간주라는 붉은 색을 칠하고 기둥 위, 그러니까 지붕 밑이 공포에는 소나무 잎처럼 녹색 위주로 배색하는 원칙이 있었다. 그 녹색에 박혀 있는 붉은 색은 잎 사이에 피어있는 꽃이나 열매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중국의 건축 채화에서는 이런 자연주의적 발상을 보기 어렵다. (pp.273-274)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단청의 시작점 역할을 하는 머리초와 같은 문양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가칠단청에 해당하는 단청을 한다. 가칠단청은 문양을 그리지 않고 바탕색으로만 마무리하는 것이다. 바탕색으로 사용되는 것은 옻칠이 많다. 백제와 교류가 많았던 간사이 지방으로 가면 장단(오렌지색과 비슷하다)이나 주홍과 같은 화려한 바탕색을 칠한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p.277) 푸르킨예 현상과 조선의 단청 한국과 중국은 모두 색상 중심의 단청 배색을 하고 있다. 모두 보색의 충돌을 피하기 어려운 정적인 디자인이다. 그러나 배색법 그 자체만 보면 우리의 배색이 중국의 배색법보다 더 발전된 형태다. 색채의 충돌을 피하는 데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채도와 밝기의 파이가 있는 색들을 보색 사이에 배치한 것도 그렇고 층위가 있는 것처럼 색을 칠한 디자인도 그렇다. 반면 중국은 평면적이지만 세밀한 문양을 넣어 보색의 가현 체도를 낮추고 또 보색 사이에 금색을 넣어 색채 충돌을 조금 완화 시켰다. 우리 단청이 주는 중요한 감성은 청량감이다. 현대인의 시각에도 우리 단청은 전통 염료의 색감을 넘어서는 맑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특히 녹색이 많은 모로단청(혹은 모루단청)은 에메랄드 같은 광채를 발산한다. 이런 색감의 비밀은 우리 단청의 두 가지 원칙에서 비롯한 것이다. 상록하단과 층단식 우림법이다, 상록하단으로 칠을 하면 추녀 밑의 녹색들이 그늘 속에서 조금 더 밝게 보이게 된다. 푸르킨예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푸르킨예 현상은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푸른 물체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p.282 처마 선의 곡선성은 한·중·일의 매우 중요한 심리적 차이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예컨대 집단주의가 강하고 갈등 회피적인 문화와 심성이 강하면 곡선적인 미술 양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p.8) 중국 건축의 처마 끝은 거의 원에 가깝게 휘어 있다. 중국에 비하면 우리의 곡선은 상당히 느슨하다. 이렇게 보면 한국적 아름다움의 핵심은 완만함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뿐히 접어 올라간 버선코처럼 말이다.(p.23) 일본의 처마의 선이 좀 휘어 올라간 듯이 보이지만 이는 아래에서 올려 찍었기 때문에 과장되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보면 거의 직선이다. 한·중·일 건축의 처마 곡선은 서양건축과 다른 지붕 결구의 특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것이다. 사찰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도 우리 것에는 절묘한 은유의 반전이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풍경에는 꽃(중국)이나 구름(일본)문양 등 산사에 있을 법한 형상이 종 밑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의 풍경에는 난데없이 물고기가 달려 있다. 종과 물고기의 조합! 더구나 산사에 물고기를 달아 놓을 생각은 쉽게 하기 어렵다. 들리는 바로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스님들이 불법을 깨닫기 위해 ‘용맹정진 하라’는 뜻으로 달아 놓았다고 하기도 하고, 물고기는 물을 의미하므로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달아 놓았다고도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풍경 밑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거리는 물고기를 보고 있으면 하늘을 물 삼아 헤엄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물과 물고기의 관계가 하늘과 물고기의 관계로 옮겨간 것이다. 은유가 만든 의외성이다. p.129 근정전의 7조룡과 돈화문의 오문 중국의 영향력 때문에 조선시대 왕궁 건축에는 제약이 많았다. 예컨대 금색을 사용하지 못했고 발가락이 다섯 개인 5조룡을 그릴 수 없었다. 중국에서는 천자만 5조룡을 사용할 수 있고 제후는 4조룡, 세자는 3조룡을 사용해야 했다. 조선의 왕은 제후에 해당해 4조룡을 사용해야 하지만 대한제국의 황제임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근정전을 중건하며 황제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7조룡을 그려 넣게 했다. 뿐만 아니라 곤룡포도 붉은 색이 아닌 황색으로 하여 중국과 차별화 하였다. (참고로 그 전에 지어지고 그려진 사정전의 용은 발가락이 4개인 4조룡이다.) 궁궐의 문도 천자가 사는 곳에만 다섯 개의 문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광화문, 홍화문은 모두 문이 세 개다. 그러나 돈화문만 유독 다섯 개다. 광해군 때 중건하며 문을 다섯 개로 만든 것인데 중국 사신을 속이기 위해 양쪽 끝의 두 협문은 진짜문이 아닌 장식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p.276)
|
|
처마 선의 곡선성은 한·중·일의 매우 중요한 심리적 차이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예컨대 집단주의가 강하고 갈등 회피적인 문화와 심성이 강하면 곡선적인 미술 양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p.8) 완만한 곡선적 양식을 좋아 하는 한국인, 급격한 곡선적 양식을 좋아하는 중국인에 비해 일본인은 직선적 양식을 좋아한다. 한국인은 은유와 융통성을, 중국인은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사고를, 일본은 압축을 통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문화는 한 민족의 세계관이며 기본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인생관과 성격이 그 사람의 성취를 결정하듯이 한 민족의 기저 문화는 그 민족의 현재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
|
한중일의 독특한 미의식 지상현 아트북스/2015.8.5. sanbaram 지리적으로 동북아에 위치한 한중일은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들 삼국의 미의식은 같은 듯 다른 각각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저자가 <한중일의 미의식>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바로 한 민족의 세계관이며 기본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기저문화다. 기저 문화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문화적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옛 미술양식을 분석하여 한중일의 미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한 개인의 인생관과 성격이 그 사람의 성취를 결정하듯이 한 민족의 기저 문화는 그 민족의 현재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모두 7장으로 이루어진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은 은유와 해학을 좋아하고 사고의 유연성과 융통성이 큰 기질적 특성을 갖고 있다. 한국인은 완만한 곡선적 양식을 좋아 하고, 기본적으로 색상대비가 강한 미술 양식을 갖고 있다. 이것에 더해 작위 대 비작위와 같은 현대적인 대비를 발전시켰다. 우리 미술에서는 이런 혁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건축에는 ‘덤벙주초’라는 것이 있다. 주초는 주춧돌을 말하는데, 덤벙주초란 주초를 제대로 다듬지 않고 대충 다듬어 덤벙덤벙 놓은 것을 말한다. 주춧돌이 반듯하지 않으니 그 위에 놓인 기둥의 길이도 주초의 높이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p.12) 이렇게 우리는 일본과는 정반대로 매뉴얼 없는 사회다. 중국은 관계 의존성이 매우 크고 구체적, 시각적 사고에 능하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명확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현실적이 되는 것일 수 있다. 급격한 곡선적 양식을 좋아하는 중국인은 사실적 재현을 중시한다. 그러기 위해 밝기 대비, 색상대비를 모두 이용한다. 그리고 둘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주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색상의 채도를 살짝 낮추는 지혜도 발휘했다. 그래서 통합적이다. 일본은 압축을 통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다분히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진 것이 일본인이다. 타고난 구조주의자들인 셈이다. 그들의 옛 미술품이 미니멀리즘적이고 현대의 모더니즘 미술 양식과 유사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일본을 매뉴얼 사회라 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비해 개인주의적이며 따지고 분석하기를 좋아한다. 따지고 분석하면 그만큼 세상을 잘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일본인은 직선적 양식을 좋아한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밝기 대비가 강한 양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형태 중심 양식을 심화시켜 볼거리가 많은 조각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홍익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연세대에서 지각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성대학교 예술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시각예술과 디자인의 심리학>, <뇌, 아름다움을 말하다>, <디자인의 법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