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누군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성격을 탓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에는 제멋대로 이유를 붙인다. 상대를 잘 안다는 믿음은 때로 판단을 서두르게 만든다. 김성규의 『지상의 모든 심리』는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열두 가지 심리학적 주제를 다룬다. 책을 읽으며 타인을 향해 품었던 확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해했다고 믿는 타인의 모습은 자신의 기대와 편견으로 완성한 허상일지도 모른다.
영화 『블랙스완』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완벽한 무대를 향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니나의 불안과 집착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난 영화에서는 어머니 에리카가 눈에 들어왔다. 에리카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에게 투사하며 니나를 통제한다. 딸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을 어머니는 정작 딸이 원하는 삶을 바라보지 못했다. 니나가 흑조를 완성하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어머니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집착의 감옥과 마주한다. 같은 영화가 전혀 다른 질문을 건넨 셈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하는가.
생각해보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에는 묘한 오만이 숨어 있다. 오랜 시간 함께했다는 이유로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변화를 놓친다. “내가 너를 잘 아는데”라는 말은 얼마나 쉽게 상대의 목소리를 가로막는가. 에리카가 딸에게 씌운 완벽한 백조의 모습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배역을 맡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정해진 역할에서 벗어나면 낯설어하고, 기대를 저버리면 실망한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지 못해 괴로운 순간에도 자신이 만들어놓은 타인의 모습에 스스로 갇혀 있을 수 있다. 이 생각에 이르자 이해라는 말이 이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
『지상의 모든 심리』를 읽고 나니 타인을 바라보는 일에도 여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일 수 없고, 오래된 친밀함이 오늘의 마음까지 보증해주지는 않는다. 니나를 향한 에리카의 집착을 떠올리며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의 무게를 다시 헤아린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확신할수록 그가 미처 보여주지 않은 얼굴을 놓치기 쉽다. 어쩌면 타인과의 갈등은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해석을 다시 써야 할 때가 왔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타인이라는 거울이 깨뜨리는 것은 상대의 낯선 모습보다, 그를 다 안다고 믿었던 나의 오만이다. |
|
살아온 나날이 쌓이고 인연의 겹이 늘어나면, 적어도 사람 때문에 당황하거나 상처받는 일은 줄어들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더라. 인간관계는 깊어지고 많아질수록 더욱 복잡해졌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마음조차 어느 순간 낯설어졌다. 언젠가부터 작고 단출한 인간관계를 지향하게 된 것도 그 복잡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뭐, 사람을 대하는 일이 예전 같지 않게 버거워진 사람의 변명이랄까.
김성규의 <지상의 모든 심리>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에는 서툴다. 몇 마디 말과 행동으로 성격을 판단하고, 때로는 MBTI 같은 유형에 기대어 사람을 구분한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 존재인가.
이 책은 익숙한 심리 현상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게 한다. 그중 공황장애를 다룬 영화 <병훈의 하루> 부분에서 한동안 생각이 머물렀다. 공황장애를 겪는 병훈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황 발작은 갑작스럽게 찾아오지만,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은 발작이 없는 순간에도 공황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정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마저 불안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경험한 만큼 세상을 이해한다. 내가 견딜 만했던 일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고통에는 쉽게 의문을 품는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담담하고 누군가는 무너진다. 그것을 단순히 마음의 강약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나 역시 불안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미래와 부모님의 건강, 아직 닥치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걱정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걱정해야 할 대상만 늘어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불안에는 내 경험을 기준으로 답을 내리려 했던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사람을 이해한다고 믿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젊었을 때는 진심을 다하면 통하고, 노력하면 그만큼 돌아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선의가 오해를 낳기도 하고, 같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했다. 결국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내가 짐작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에는 굳이 가까이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고, 애써 이해하려다 오히려 자신을 소진시키는 관계도 있다. 다만 거리를 두는 것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다른 일일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인간관계를 대하는 내 태도도 조금 돌아보게 된다. 관계의 폭을 줄이는 것은 여전히 편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생각까지 좁아질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예전에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해진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확신이 조금씩 사라진다. 오래 살아온 만큼 아는 것도 많아졌겠지만, 그만큼 내가 모르는 삶의 모습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지상의 모든 심리>를 읽고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그 사람에게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여유는 조금 생겼다.
어쩌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그 정도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
『지상의 모든 심리』의 저자 김성규 교수는 동국대학교에서 같은 이름의 강의를 운영하고 있다. 강의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고 한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이 책에는 ‘타인을 읽는 시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앞으로 이어질 책에서는 또 어떤 마음을 읽는 시간을 만나게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생긴다. 이쯤에서 심리학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내가 꺼내는 말을 다시 한번 해본다. 여러 번 말해서 조금 지겨울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거듭 말해야겠다. “이 세상에 이유 없는 마음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때로는 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만, 때로는 당사자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깊숙한 곳에 숨어 있기도 하다. 심리학은 그 이유를 탐색하는 학문이다. 어떤 마음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보다, 그 마음이 어떻게 생겨났고 무엇에 영향을 받아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다양한 이유를 품은 마음들이 시나브로 모습을 드러낸다. 성격, 자존감, 착한 아이 콤플렉스, 공황장애, 트라우마, 자기애성 성격장애, 적대적 반항장애, 사랑의 본질, 색정망상, 외로움, 죽음까지. 상당히 방대한 주제를 아우른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감정과 행동부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적 현상까지,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할 때 마주하게 되는 여러 장면을 펼쳐 보인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가까운 사람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분노하고, 때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선택 앞에서 고개를 젓는다. 대체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조금은 덜 괴롭지 않을까. 그러나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무지 이해하기 싫고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을 꼭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모든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행동에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마음에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 어쩌면 심리학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중요한 태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을 자신에게도 돌려보면 어떨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동안 정작 자신의 마음에는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이유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는지. 스스로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이 반드시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끝나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스스로의 마음에 이유를 하나둘 찾아주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것. 타인의 마음을 읽는 시간은 그렇게 나의 마음을 읽는 시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
|
우리가 하루 일과 중 매일 겪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면 단연 점심 식사 메뉴일 것이다. 흔히 우리는 우스겟 소리로 '결정 장애'라고 말하지만, 《지상의 모든 심리》에서는 이를 '선택 장애'라고 말한다. 학교 급식을 먹는 나에게 선택지란 없다. 하지만 하루는 국그릇에 뜨끈한 미역국 대신 방울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를 잔뜩 받을지 고민하던 찰나, 어디선가 나타난 영양사님이 미역국을 한가득 퍼주신 적이 있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어색한 미소를 남기며 퇴장한 적이 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재미있는 선택 장애 에피소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챕터마다 특정 심리적 장애를 다루는 영화를 선정해 설명해 준다. 이미 본 영화도 있었고 낯선 영화도 있었지만, 인용된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문득 ‘혹시 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한두 가지 성격장애와 비슷한 성향을 품고 살아간다. 다만 그것을 알아채고 변화하려 노력할 뿐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 객관화'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극단적으로 자존감이 낮은 선택 장애를 겪는 이들의 이야기와는 결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거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만 엄격한 사람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요즘 세상에는 사소한 일상이나 타인의 말과 행동에 습관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을 가리켜 ‘프로불편러’라는 신조어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 모난 사람들을 보며 "참 이상하다"고 멀리하곤 했지만, 어쩌면 그 역시 누군가가 가진 심리적 불안이나 아픔이 그들의 성격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유연하게 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건강한 심리를 갖게 된다.” (p345) 에필로그에 남긴 작가의 말이다. ‘나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새 친구가 생기면 이상하게 그 친구의 글씨체를 따라 하게 되던 나의 버릇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정자체로 상을 받을 만큼 반듯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친구들의 귀여운 글씨를, 대학생 때는 선배 언니의 단정한 글씨를 흉내 내곤 했다. 그러다 선배 언니가 내게 “욱이야, 니 글씨 정말 예쁘다”라고 격려해 주었을 때 비로소 내 글씨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언니의 글씨와 비교해 보니 내 글씨는 들쭉날쭉 제멋대로였지만, 멀리서 보니 그것은 나의 활발한 성향(E)이 담긴 나만의 개성이었다. 언니의 따뜻한 한마디로 나 자신의 멋짐을 알아차린 이후부터, 나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도 내 글씨체만큼은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상의 모든 심리》를 읽으며 나의 성격과 자존감, 내 안에 숨겨진 콤플렉스는 없는지 차분히 둘러보게 되었다. 어떤 책은 읽고 싶은 부분만 보다가 덮어버리기도 하는데, 이 책은 다음 챕터에서 또 어떤 유형의 사람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 제목 아래 ‘타인을 읽는 시간’이라고 적혀있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와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겪는 아픔을 다독이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따뜻한 문화심리학 책이다. #지상의 모든 심리(타인을 읽는 시간) #책이라는신화 #김성규작가 #러블리비블리 |
|
#지상의모든심리 (#김성규 지음 #책이라는신화 출판)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너’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뜻하는 자존감.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인 자존감이 타인과의 비교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비교라는 단어에 불편함(또는 불쾌함)이 생겨날 수 있다. 보통 자신을 위해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의 비교는 잘못된 비교이다. 비교란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다른지를 통해 자신 고유의 특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저 사람은 이것을 잘하고 나는 이것을 잘하고처럼, 자신만의 무언가들을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과정이다. ⠀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나에 대한 데이터는 자존감을 만들어주고 그와 동시에 쌓은 타인에 대한 데이터는 간접 경험으로 좋은 교훈이 됨은 물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게 되고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쉽게 말하는 것을 막아준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우울증 같은 것도 나도 우울하다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며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타인의 힘듦을 절하하지 않는 것. 쉽게 입에 담지 않는 것. 그것이 자신과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비관적이지 않게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 그렇다고 모든 타인들을 무조건 곁에 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처럼 타인을 공격하고 자신의 잘못을 납득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악행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반드시 관계를 단절’하라고 한다. 사람 쉽게 끊는 것 아니라며. 언젠가 다 돌아온다고 세상에 배웠지만 자신을 위해, 곁에 있어 주는 든든한 내 사람들을 위해 때로는 결연한 각오도 필요하다. ⠀ <지상의 모든 심리>는 <굿 윌 헌팅>, <어떤 인생>, <블랙 스완>, <김씨 표류기> 같은 명작 영화들을 보여주며 심리학 개념들을 설명하고 이해시켜 주기에 재미는 물론 스스로 더 나아가 자신만의 생각(물음)을 이끌어 준다. 이 영화 속에는 길을 잃은 사람도, 험난한 세상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도, 여러 이상심리들도, 인간의 끝이자 삶의 한 부분인 죽음까지 인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당연히 나도, 내 곁의 사람들도. ⠀ 이 영화들처럼, 타인도, 나도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으로 단단히 이 세상에 두 발 딛게 해주는 책이다. |
|
『지상의 모든 심리』를 읽기 시작한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프롤로그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성격과 성품의 차이였다. 성격이 타고난 기질과 특성에 가깝다면, 성품은 교육과 환경,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다. 타고난 성향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자신을 이해하고 노력한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숙은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면서 가꾸어 가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역할에 관한 내용도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자녀가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려면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큰아이는 가끔 다른 엄마들처럼 자신을 챙겨 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 같다.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에게는 엄마의 관심과 돌봄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독립심을 길러 주면서도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부모로 곁에 있는 것. 그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 부모로서 계속 배워야 할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의 고유함을 소중히 여기고,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청하며, 자신의 감정만큼 타인의 마음도 중요하게 여기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자신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나는 유아 영어 강사들을 지도하는 한편, 유치원에서 직접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영어뿐 아니라 바른 자세로 앉기, 친구의 말을 경청하기, 자신이 안다고 친구의 말을 끊고 먼저 말하지 않기, 함께 사용하는 공간을 정리하기 등의 태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당연하게 지도해 온 작은 규칙들이 아이들의 성품을 가꾸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시간이 아이들의 성장에도 보탬이 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사춘기 자녀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직접적인 답을 주는 내용은 기대보다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모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는 충분했다. 특히 에필로그에서 이야기하는 건강한 심리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자신을 이해하고 고유한 생활 방식을 지키면서도 타인과 유연하게 관계를 맺는 사람의 모습이다.
김성규 저자의 『지상의 모든 심리』는 성격과 자존감부터 불안과 외로움,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심리 주제를 관련 영화와 연결해 흥미롭게 풀어낸다. 실제 대학 강의를 바탕으로 심리학을 일상의 경험과 연결해 생각해 보게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만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
“인간의 마음이 작은 우주와도 같아, 우리의 마음을 탐구하는 과정은 우주를 탐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 말로 시작한다. 나 자신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데, 타인의 마음까지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가까운 사람의 말과 행동에 서운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나조차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있다. AI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인간다움’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2027 트렌드 노트』를 쓴 생활변화관측소 박현영 소장의 이야기처럼, 기계와 인간을 비교할수록 인간만이 가진 감정과 느낌, 마음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답을 찾아내는 능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깊어진다. 이런 시기에 이 책은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12가지 문화심리학 주제를 펼쳐 보인다. 성격과 자존심에서 시작해 외로움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다양한 심리와 행동을 살펴본다. 이 책은 심리 진단이나 치료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여러 관점에서 살펴보는 데 초점을 둔다. 앞부분에서는 성격과 성품, 자아존중감처럼 개인의 내면을 살펴보고, 중간에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비롯해 콤플렉스,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색정망상 등 여러 심리 현상을 다룬다. 마지막에는 외로움과 고독, 죽음이라는 주제로 시선을 넓힌다. 무엇보다 책의 구성이 재미있다. 심리학 이론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 속 인물과 상황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에 등장하는 영화만 20여 편에 이른다. 익숙한 영화 속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심리학 개념을 살펴보니 어렵게 느껴졌던 내용도 한결 쉽게 다가온다. 책을 읽다 보면 영화를 다시 찾아보고 싶어진다. 예전에 봤을 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인물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인물에게 공감하다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들의 말과 표정을 보며 편안하거나 불편했던 관계와 상황을 떠올리곤 한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서는 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곱씹었다. '은중과 상연'이나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같은 작품을 볼 때도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나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 속 인물을 이해하려던 일이 어느새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경험을 심리학의 관점에서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 책은 동국대학교에서 같은 이름으로 진행한 강의를 준비하며 모은 자료를 재구성해 만들었다. 해당 강의는 개설 첫해 많은 수강생의 관심을 받았고 높은 강의평가를 기록했다고 한다. 앞으로 20년 동안 2년마다 한 권씩, 총 10권을 출간할 계획인 김성규의 ‘문화심리학 읽기’ 시리즈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영화 속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장면과 대사를 되짚어 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이 더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익숙한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사람의 마음도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재미는 바로 그런 점이다. 심리학을 어렵지 않게 접하고 싶은 사람, 타인의 행동과 마음이 궁금한 사람, 영화와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나와 타인의 마음을 조금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
"자기소개는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첫 숙제"라는 작가의 말처럼,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다. ENFJ인 내가 성격 유형을 통해 타인과의 접점을 찾듯, 우리는 끊임없이 나를 닮은 혹은 나를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김성규 작가의 『지상의 모든 심리』는 이처럼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12개의 심리고개를 넘어서는 깊은 탐색의 여정이다. 책은 영화라는 친숙한 창을 통해 자존감, 알코올 사용장애, 공황장애 등 현대인의 마음 그늘을 조명한다. 집단 관음과 비교의 시대 속에서 나 역시 마음속 예민함을 쓸어내리며, "제가 좀 아프거든요"라는 구절 앞에 오래 머물렀다. 약함과 아픔을 투명하게 고백하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닌, 나를 지키고 타인과 안전한 거리를 확보하는 가장 정직하고 용기 있는 선언이다. 사악한 자기애성 성격자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 또한 이 정직한 거리 두기에서 시작된다. 경제적 쓸모로 가치가 매겨지는 현대사회에서 외로움은 질병처럼 찾아온다. 그러나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채고 연민의 지점까지 나아가는 일이다. 능동적인 홀로서기를 통해 외로움을 '고독'이라는 자아 회복의 시간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온전한 온도를 나누는 사랑이 가능해진다. 닥쳐올 단절과 죽음 앞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솔직히 고백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히 어깨를 기댈 수 있다. 작가가 죽음심리학과 영화비평으로 심리문해력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삶이라는 놀이터에서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으며 놀다가 다가올 죽음마저 다정하게 맞이하는 것. 책을 덮으며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를 읊조려 본다. 타인을 향했던 시선이 따뜻하게 나에게로 돌아오는 깊은 시간이다. |
|
“외로움은 자아의 기아이자 결핍이고, 고독은 자아의 풍족이자 풍만함이다.”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면서도 누군가의 부재 앞에서는 깊이 외로워진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면서도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지니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상의 모든 심리》를 읽으며 사랑과 이해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마음을 모두 알아내거나 고통을 대신 해결해 주는 일이 아닐 것이다. 끝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외로움을 지나치지 않는 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넘어 타인의 삶에도 조금 더 다정한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책이다.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문장들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