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풍스러운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와 로맨스 영화의 해피 엔딩. 그때의 설렘과 애절함이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다시 만난 『오만과 편견』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고, 가부장적인 영국 사회의 성차별과 계층 간 갈등, 당시 여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 풍속도로 읽을 수도 있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하이틴 로맨스처럼 유쾌하다. 고전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한 가지 해석으로 가둘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사람의 시선과 삶의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그것이 고전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옮긴이 원유경 님은 『오만과 편견』을 “끊임없이 신선한 물이 솟아오르는 영원한 샘물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이 소설은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 한 마을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딸을 가진 집마다 그를 사윗감으로 점찍을 만큼, 이 작품에서 결혼은 삶의 중요한 조건이자 여성의 미래를 결정짓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은 명랑하고 재치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여성이다. 반면 피츠윌리엄 다시는 상류 계층에 속한 남성으로, 자신의 계층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오만함을 드러낸다. 엘리자베스는 상류층의 오만과 위선,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돌며 아부하는 속물근성을 경계한다. 자신은 그들과 달리 분별력 있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 역시 서로의 첫인상에 사로잡혀 편견을 갖게 된다. “오만은 무척 흔한 결점이라고 생각해. 내가 오래 독서해 본 바에 비추어 볼 때, 오만이란 정말 흔한 것이고, 인간 본성은 오만한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 확실해. … 오만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더 연관되어 있거든.” (본문 27p) “이제 저를 당신을 괴롭히려고 하는 우아한 여성으로 보지 말고, 진심으로 진실을 이야기하는 이성적인 존재로 봐 주세요.” (본문 128p) 두 사람은 갈등과 오해를 겪으며 서로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 간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상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판단과 편견 또한 돌아보게 된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누군가가 정해준 삶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과 감정에 따라 사랑을 선택한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단순히 ‘신분을 뛰어넘은 로맨스’라기보다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는 과정에서 편견을 내려놓고 인간의 가치를 발견해 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묘미는 곳곳에 숨어 있는 제인 오스틴의 유쾌한 사회 풍자다. 결혼을 둘러싼 욕망, 계층에 대한 허영, 사람들의 속물적인 모습까지 날카롭게 바라보면서도 무겁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웃음과 해학 속에 당시 사회의 여러 문제를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은 2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생생하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생기는 판단, 내가 옳다고 믿었던 생각, 그리고 내가 가진 편견.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첫인상’ 속에서 사람을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 이야기인 줄 알고 펼쳤다가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까지 돌아보게 되는 책. 그래서 고전은 읽을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오만과 편견』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결국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는 법에 관한 이야기였다.
@openbooks21 서평단 선정을 통해 도서를 증정 받아 작성했습니다. #오만과편견 #제인오스틴 #열린책들 #세계고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