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 책은 우리의 10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삶은 어땠을까. 코로나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넓혔고, 전쟁과 재난, 수많은 참사는 우리에게 깊은 고통과 상처를 남겼다. 비트코인과 주식은 현대인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고, 부동산과 주거 문제는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성혜령의 『대부호』에는 그렇게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관통해 온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혐오와 분열, 가족의 단절, 세대 간의 갈등, 경제적 불안, 주거와 독립의 문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나와 전혀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삶을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고, 힘을 얻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책 속 타인의 삶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책 속에는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이 나온다. 타인이 어느 정도까지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하면서도, 그 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는 요즘의 우리. 우리는 누구도 함부로 문을 두드릴 수 없는 공간, 누군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한 나만의 집을 꿈꾼다. 하지만 그 마음은 단순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사람들,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넉넉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책임져야 할 것은 많고, 가족을 성가시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고통에는 예민하지만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다.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궁금해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주변을 맴돌 뿐, 누구와도 온전히 부딪히지 못한다. 사람들은 쉽게 남의 일이라고 선을 긋고, 자신은 정상이고 타인은 비정상이라고 구분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역시 그 구분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모른 척 하는 사람들. 어떤 일이 벌어진 뒤에는 그럴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하며 잠시 죄책감을 느낄 뿐이다. 타인을 보살피는 일은 귀찮지만 자신은 누군가에게 보살핌 받고 싶어 한다. 남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들어주기를 바란다. 책은 우리가 애써 감춰 둔 속마음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감추고 있던 비겁함과 나약함을 마주하게 한다. 어쩌면 이것이 지난 10년간을 살아온 우리, 그리고 지금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이유가 있다. 이유가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용서되는 것도 아니지만.”(p.36, 「임장」) 우리는 모두 이유가 있다고. 누군가의 행동과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물론 이유가 있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용서할 필요도 없다. 다만 『대부호』는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기 전에 한 번쯤 그 사람의 이유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타인의 이유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의 이유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처음 『대부호』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엄청난 부자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대부호』가 카드 게임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즐겨 하는 게임인 ‘달무티’와도 무척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무티 역시 계급이 존재하는 게임이다. 가장 높은 계급에 오른 사람은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시킬 수 있고, 이전 게임의 결과에 따라 다음 게임의 시작 조건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 게임의 가장 큰 재미는 계급이 뒤바뀌는 순간의 카타르시스에 있다.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아래로 내려가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한 사람이 판을 뒤집어 정상에 오르기도 한다. 그 전세 역전의 순간이 무척 짜릿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호 역시 굉장히 사회적인 게임이다. 게임은 이전 라운드의 결과에 따라 대부호와 대빈민으로 계층이 나뉜다.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다음 게임에서도 유리한 조건으로 시작하고,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그 격차를 뒤집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이전의 성공이 다음 성공으로 이어지고, 가진 사람은 더욱 유리한 위치에 놓인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처럼. 그래서 『대부호』 속 여덟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쩌면 모두 대빈민의 자리에서 게임을 시작한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처음부터 넉넉한 패를 쥐지 못했고, 세상으로부터 같은 조건을 제공받지도 못한 사람들. 하지만 대부호 게임에서 한 번 대빈민이 되었다고 해서 영원히 대빈민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같은 숫자의 카드 네 장을 내면 혁명을 일으켜 판을 뒤집을 수도 있다. 물론 현실은 게임처럼 간단하지 않다. 노력한다고 반드시 대부호가 되는 것도 아니고,혁명을 외친다고 세상이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끝내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게임을 한다. 언젠가는 대부호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카드 몇 장에 따라 계급이 뒤바뀌는 게임처럼, 우리의 삶 역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 대부호인 사람이 빈민이 될 수도 있고, 대빈민이었던 사람이 언젠가 대부호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더 이해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쉽게 구분 짓고 판단했던 그 사람이, 어느 순간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호』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살아온 사람들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 누군가는 좋은 패를 쥔 채 게임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불리한 자리에서 시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패를 손에 쥔 채 오늘도 게임을 계속한다. 이 불평등한 게임판 위에서, 어떻게든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