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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해외생활을마치고고향땅을밟았다. '여기야눈감고도다니지' 하는마음에내비게이션을끄고도심으로들어섰다. 그런데이게웬일인가. "여기가어디여~?" 익숙하다고믿었던길위에서나는이방인처럼헤매고있었다. 익숙함이오히려눈을가린셈이다. 결국다시내비게이션을켜고서야그미로를빠져나올수있었다. 히브리서가꼭그렇다. 잘안다고여겼던본문앞에서도불현듯방향을잃을때가있다. 이튿날해가떠오른뒤그길을다시달려보았다. 새로닦인도로와옛길이하나로맞물려있었다. 어둠속에서는낯설기만하던길이햇살아래서비로소제모습을드러낸것이다. 십년이면강산도변한다는옛말이실감났다. 그런데지금필자의손에들린한권의책이바로그아침햇살이었다. 사랑하는동역자의누님께서쓰신책이라반가운마음으로펼쳤는데, 행간을따라갈수록깊이매료되었다. 하나님께서노하셔서광야의백성을사십년동안방치하신것이아니다. 그사십년동안당신의행사를보게하신것이다(76쪽; 히 3:9). 그것도참된가나안의안식으로이끄시기위해서다. 이책의가장큰미덕은험준한산자락을관통하는기찻길을닮았다는데있다. 처음부터끝까지한맥락으로이어져독자를흔들림없이끌고간다. 기찻길은높은산을만나면터널을뚫고, 깊은골짜기를만나면다리를놓는다. 조금더디게돌아가는구간이있을지언정끝내목적지를향해곧게뻗어있다. 저자는종말론적관점에서하나님께서자기백성에게주시는소망을그려낸다. 그런데그소망의길은결코평탄하지만은않다. 맏아들되신예수께서먼저걸어가신길, 곧낮아지심을지나높임을받으신길이기때문이다(히 1:6; 2:9). 우리역시그소망안에서낮아지기도하고, 길고어두운터널을지나기도한다. 그러나이철길은결국약속된안식에닿는다. 이책은독자를바로그열차에태운다. 이렇게이책은내게히브리서의내비게이션이되었고, 어둔길을비추는아침햇살이되었으며, 마침내안식으로향하는기찻길이되었다. 이미알던옛길위에새로운관점의길을겹쳐놓는, 참으로귀한책이다. 출간소식을듣자마자손에넣었고, 방금또다른소중한벗들을위해몇권을더주문했다. 그리고지금, 이서평을쓰고있다. 흔히서평이라하면저자소개와핵심내용, 가슴에남은대목을차례로풀어내기마련이다. 그러나이글에서는그일을과감히내려놓으려한다. 대신질문하나를건네고싶다. 혹시아직도광야를 '시험의자리'로만여기며그곳에머물러있지는않은가? 히브리서를그렇게만읽고있지는않은가? 만일우리의광야가끝없이길게만느껴진다면, 그것은하나님께서하신일을바라보지못한시간만큼길어진것은아닐까. 그래서더이상의내용소개는삼가려한다. 그답은독자가직접책장을넘기며찾아가기를바라는마음에서다. 이책은주석에깊이를지닌신학서이기에신학생과목회자에게먼저권한다. 동시에성도들도어렵지않게따라갈수있을만큼가독성이뛰어나다. 성경을곁에펴두고, 책에인용된구절을하나씩찾아읽어가보라. 히브리서강해설교를한편씩듣듯, 어느새본문이풀려가는경험을하게될것이다. 길을잃고헤매던그날, 다시켠내비게이션이나를집으로데려다주었듯이, 이책이당신의히브리서여정을약속된안식까지안내해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