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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서평하기에 앞서 솔직히 밝히겠다. 난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난 보통 책을 고를 경우 약간의 책의 정보라도 알고 보는 편인데 이 책은 박하 출판사의 이벤트에 당첨된 이유도 있지만 여하튼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책을 만났다. 미국의 40살 남짓한 작가의 450여쪽이 넘는 그의 3번째 장편소설 <일어나라! 불면의 밤을 넘어>는 정말 밤(Night)만큼 어둡고 심해(深海)만큼 깊다. 이 책을 완독한 지금도 그 깊이는 헤아리지 못하겠다. 마치 발이 땋에 닿지 않는 바다에 있는 기분이다. 이 책은 저명한 언론사들의 리뷰가 보여주듯 한 편의 블랙 코미디 영화만큼이나 위트 있으면서도 담아내는 메세지는 심오하다. 미국 뉴욕의 치과의사인 폴 오로크르 라는 사람의 시점으로 돌아가는 이 소설은 현대문명과 종교 그리고 인간, 이 세 꼭지점의 현대 사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풍자한다.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굉장히 재밌는데, 폴은 일단 현대문명을 싫어한다. (혐오한다 는 편이 더 맞겠다.) 별 것도 없으면서 십 분마다 본의 아니게 확인하게 되는 스마트폰, (자신의 최愛구단인 레드삭스의 정보를 놓치지 않고 불 수 있게 해주는 최신식 문명), 이제 인터넷 없이는 업무조차 볼 수 없게 된 업무환경때문이다. (자기보다 스마트폰에 더 죽고 못사는 간호사(이자 전 여친)인 코니 때문인지도 모른다. ) 이는 이 소설의 본격적인 발단인 자신을 사칭하는 SNS 때문에 더 확대된다. 그는 위에서 언급하였듯 SNS를 싫어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도 뉴욕에 잘나가는 치과를 차렸으면서 자신의 홈페이지 하나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가 자신을 사칭하여 자신의 치과 홈페이지를 차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 '닥터 오로크르' 로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만들어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는 최대의 관심사를 곧 부르는데 바로 폴이 싫어하는(싫어한다기보다 그 밖의 세상에 있는) '종교' 얘기를 늘어놓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성경얘기(아말렉인, 울름, 그리고 유대인) 처럼 보였고(나중에 알고보니 허구였다.) 뜨거운 감자와 같은 주제인 '종교'를 하루가 멀다하고 SNS상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늘어놓아 그 사람은 폴을 자극하고 미치게 하였다. 하여 폴은 이 사람을 만난 후로 전과 확연히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SNS(컴퓨터 활동 포함) 와도 먼 사람이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사람과 메일을 주고받고 종교를 두고 입씨름을 하게 된다. 자신은 그 사람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을 사칭하여 SNS활동을 한다. 자신에게 얻을 것도 없는데 왜 그러는걸까? 폴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미칠 지경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폴의 인생을 바꿨다. '당신은 당신을 얼마나 아십니까?' 라는 이 질문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그려진 폴은 이렇다. 폴은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정서가 불안한 아이로 자랐다. 매일 자신이 잠들 때까지 '엄마 자?' 를 수십 번 물으며 귀찮게 구는 아이였다. 대학교 때는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여자 친구가 기숙사에 없으면 기숙사방에 몰래 침입하여 여자친구의 옷가지의 냄새를 맡으며 안정을 찾아야만 하는 아이였다. 여자친구를 사귀면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어했다. (그들의 완전체인 '가족'의 일원을 소망하였다.) 최근엔 코니 라는 유대계의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이도 잘 풀리지 못했다. 그의 여자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받아주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뉴욕의 잘나가는 치과의사처럼 보이지만 속은 어린 아이인, 어쩌면 아직 어른은 되지못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모르는 사람과 접촉하는걸 싫어했지만 실은 그는 매일같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는 손님을 상대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주는 직업을 가졌으며 종교를 싫어하지만 그의 여자친구는 유대인이고 다른 유능한 치위생사인 벳시 콘보이는 기독교인으로 늘 그에게 복음을 전달하였다. 그는 혐오하고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고 믿었을지 모르지만 실은 늘 그의 주위에 1미터도 안되는 곳에 있었다. 현대기술문명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이제 뉴욕에 치과를 개원한 후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하나라도 병실을 더 만들기 위해 원장실도 없앴고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공허한 사람이었다. 이게 비단 '폴'만의 모습일까? '폴'은 온라인상의 도난 당한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한 뜻하지 않은 여행을 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왜 전전 긍긍하며 살았을까? 왜 레드삭스를 한번이라도 놓치면 불안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을까? 왜 남들처럼 그저 한 번이라도 시냇물 흐르듯 시간에 자신을 맡기며 살지 못했을까? 난 남들처럼 살지 않을거고, 남들처럼 SNS에 하루를 쏟으며 살지 않을거고, 패배자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을거라 믿어왔으나 사실은 정작 자신도 자신을 모르며 살아왔고 레드삭스 한번 놓치면 끙끙대는 미련한 놈인 사실은 자신도 별반 다른 놈이 아니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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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첨단 과학 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도 인류가 여전히 풀지 못하는 숙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즉, 인류의 기원이다. 그동안 인류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인류의 기원은 한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한계란 영원히 뛰어넘을 수 없는 넘사벽은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인류학자와 같은 지식인들이 그 수수께끼 같은 비밀을 풀기 위해서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며 노력하고 있다. 인류의 기원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존재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에 대해 엉뚱하지만 유쾌하게 풀어쓴 소설이 있다. 스티븐 킹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소설이며 2014년에는 딜런 토마스상을 수상하기도 한 바로 이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게 과연 허구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그 내용이 디테일하다.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될 정도다. 뉴욕에서 성공한 치과의사인 폴 오로르크. 그는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면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 환멸, 냉소적, 심드렁, 무신론자. 미프로야구 보스턴 레드 삭스의 광팬임에도 불구하고 86년 만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또한, 그 자신은 무신론자이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이 속한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어 그들의 종교에 집착하기도 한다. 타인의 접근을 가로막는 냉소적인 말투와 분위기는 이 세상에서 그를 홀로 만든다. 모두가 잠든 사이 자신만 깨어있는 시간을 참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심리를 갖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누군가 인터넷상에 그의 명의를 도용하여 병원 홈페이지를 만들고 SNS 계정을 만들고 그의 이름으로 이상한 글들을 퍼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철저히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칭한 누군가가 올리는 글들은 지극히 종교적인 성향의 글들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일을 벌인 작자의 정체를 밝혀내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그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정체성의 기원을 쫓아가기에 이른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 삶의 변화에 맞딱드리게 된 폴. 과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될까. 책을 읽는 동안 소설 속 주인공 폴 오로르크와 작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는데 혹여 작가 본인의 모습을 소설 속에 그려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치과의사 폴의 냉소적이고 심드렁한 면이 사진 속 작가의 얼굴에서 보인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뉴욕에서 살고 있는 뉴요커라서? 어찌 되었든 내게는 그런 상상이 더 재미있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한 것만은 틀림없다.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가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실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보도 듣도 못한 생소한 종교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짬뽕해놓은 듯한 신흥 종교라고 해야 될까. 헌데, 이게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엔 그저 알 수 없는 종교적 색채를 띈 블랙코미디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아~ 이거였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다. "충치가 생긴 것 같지만, 통증이 없다면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저자가 떠올랐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저 독백이야말로 저자가 치과의사 폴 오로르크를 통해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싶다. 책을 처음 받은 날 느꼈던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지금 조슈아 페리스의 팬이 되어 버렸다. 이제 그의 차기작을 기다리면서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그의 작품들을 읽어볼 차례다. 떨쳐낼 수 없는 아리송한 매력을 지닌 그의 소설 세계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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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식힐 요량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다가 선택한 책이다.
타이틀의 의미는 모르지만 꽤 좋은 타이틀을 보유하였고, 많은 매체의 극찬을 받았기에 그 내용이 무척 궁금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제목에 있는 것처럼 나도 불면의 밤을 넘었다.
그러나, 일어서지는 못하였다. ㅜㅜ
이 책의 주인공인 폴은 치과의사이다.
뉴욕의 번화가에 병원을 차렸고, 뉴욕의 문화를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뉴욕에도 번듯한 구단이 2개나 있음에도 그는 열렬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이다.
(어쩌면 레드삭스는 그에게 하나의 종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 여자친구인 코니와는 밀당(?)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는 전형적인 DINK족이기도 하다.
오프라인에서는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그이지만, 온라인에서의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온라인 문화를 싫어하고,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자친구와 레스토랑에 함께 가서도 자신의 앞에서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여자친구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어느 날, 엄청난 일이 생긴다.
의뢰도 하지 않은-아니, 의뢰할 마음조차 없었던- 병원 홈페이지가 생긴 것이다.
병원 직원들은 모두들 좋아하지만, 온라인을 좋아하지 않던 폴은 이 홈페이지를 없애기 위해 방법을 찾는다.
단순히 명의를 도용하여 홈페이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과 직원들의 정확한 프로필까지 등록되어 있었기에 꺼림직하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철저한(?) 무신론자-비신론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인 그의 소개에 성경 구절과 비슷한 글이 등록되어 있었기에 그것을 지우고 싶어하였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단순히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의로 된 메일, 트위터까지 생성하여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마구 생성하고 있다.
과연 폴은 이 모두를 없앨 수 있을 것인가?
없앤다면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말 흥미있는 컨셉의 책이지만, 작가의 화법은 무척이나 시니컬하다.
나에게는 블랙코미디보다도 조금 더 무겁고, 어둡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이 책의 화두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와 같은 '나 자신을 알고 있는가'이다.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런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현대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과 '종교'에 대해서 '온라인을 싫어하고 무신론자'인 폴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 자체가 상당히 많은 분량이고, 무엇보다 그 많은 분량중에서 상당부분이 특정종교와 연관된 글들이다.
그렇기에 해당 종교를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그리 호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소설은 소설일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불면의 밤을 새울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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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부커상 방식이 달라져서 영국 연방과 아일랜드 이외의 작가도 심사 대상에 포함이 되어, 그래서 미국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이 상의 최종후보 2편 중 1편이 바로 이 작품 조슈아 페리스의 “일어나라! 불면의 밤을 넘어(To Rise Again at a Decent Hour)”입니다. (다른 작품으로는 카렌 조이 파울러의 “모두 완전히 넋을 잃고(We Are All Completely Beside Ourselves)”이고 수상작은 리처드 플래너의 “안쪽의 좁은 길(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이었죠.) 조슈아 페리스는 2007년 데뷔해서 장편인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가 화제가 되어, 뉴요커 잡지의 “40세 이하의 뛰어난 작가20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광고 대행사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우리'라는 1인칭복수로 말하는 데뷔작과 걷기를 그만 둘 수 없는 변호사가 주인공의 2번째 장편 "익명(The Unnamed)"에 이은 3번째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치과를 무대로 한 철학적 희극 소설이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입은 기묘한 곳이다"라면서 소설은 이런 희한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피부도 아니고 장기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몸속으로, 암이 발병하고 가슴이 찢어지고 어쩌면 영혼이 들어차지 못하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어둡고 축축한 관문.” 주인공이자 화자인 폴 오로르크도 이상한 놈입니다. 치과의사로 성공하고 있지만 세상에 혐오감을 품고 아이러니한 언동과 불편한 대인관계는 그릇된 사고방식의 무척 개성이 강한 약간 일반적인 기준과는 많이 어긋나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뉴욕에 살면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응원하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무신론자임을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특징인 그는 현대의 테크놀로지(주로 인터넷)에 불신감을 안고 있습니다. 자신의 치과 웹사이트는 만들지 않으며, SNS를 사용하지 않고,(그런데 Facebook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사회에서 격리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하긴 국내로 치지면 카톡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의외로 카톡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사회와 격리되어 있다고 단정하긴 무리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불신에 어떤 의미에서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이라고 불을 붙이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는 그 인터넷으로 인해 모종의 소동에 말려 들어가게 되죠. 사건의 시작은 폴의 치과의 웹 사이트가 누군가가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게 된 것을 알게 되면서입니다. 이윽고 그 탈취 행위는 점점 더 파장이 커지고 Facebook과 Twitter상에 폴 오로르크를 사칭하는 인물이 나타나게 됩니다. 온라인상의 폴은 종교에 관한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반유대적인 발언과 주장을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인물로 비춰지게 됩니다. 오프라인상의 진짜 폴은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주장에 당황하지만, 어시스턴트와 지인으로부터 의심의 눈총과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죠. 그도 그럴것이 평소의 원활한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혼자만의 세계관에 빠져 있는 평소의 폴을 보자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는 이미지로 인해서 그런 의심과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폴은 정체성에 혼란이 오게 되어서 무엇이 올바른 자신인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인터넷 온라인상의 폴과 상호작용을 시작한 그는 “과연 자신이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 인생의 무엇을 정말 알고 있어?”라고 질문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비틀리고 굴절된 감정은 종종 가족에 대한 강박 관념에서 형성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살로 인해 잃은 폴은 지금도 그 트라우마를 끌고 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 할 때, 그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족을 둘러싼 탐구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인터넷상의 폴과의 상호 작용에서 자신이 ‘울름’이라는 '유대인의 역사를 부러워하는 만큼 비참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 민족의 역사를 파헤쳐가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외면해온 알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해서 해답을 찾아가게 됩니다. 책은 인터넷으로 인한 명의도용으로 인한 헤프닝을 시작으로 은둔형에 폐쇄적으로 살던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그의 과거와 현재의 자신과 주변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된 계기를 가지면서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알아간다는 그런 스스로를 알아가는 긴 여정의 작품입니다. 자신에 대한 혼란과 정체성에 의문이 든 폴이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하나씩 퍼즐을 맞추어나가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끝에 과연 불면의 밤이 끝이 날지. 오늘날의 이 사회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반문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꼭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작품으로 과정속에서 유머와 재미가 있었던 무척 색다른 신선한 맛이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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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폴 오로르크다. 뉴욕 맨해튼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뉴욕이 지상최대의 낙원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대단히 까칠한 남자이다. 이 남자를 열광시키는 것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 시합과 목마른 우승, 근데 막상 우승반지를 구경했으면 만족할 법도 한데 86년만이라는 세월 앞에 루저라는 객체적 삶에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괴팍함도 있다.
게다가 종교도 타인과의 교류도 싫어하기에 이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겠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를 사칭한 치과 홈페이지가 짠하고 개설된다. 이것만이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도 생기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 분명히 자산은 이런 짓을 한 적이 없다. 다른 이들까지 충격에 의심까지 하자 누가 이랬는지 알아야겠다면 펄쩍 뛰게 되고.. 그런데 놀랐다. 이런 SNS 계정사칭에 대한 미국적 법적처벌이 예상 밖으로 관대하다. 닥치는 대로 잡아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그렇담 당한 피해자는 억울하지 않을까 열 받은 폴은 이러지 말라며 항의 메일도 보내보고 그 놈 정체를 까발리기 위해 추적해보았더니 맙소사 옛날 옛적 유대 다비드 왕에게 능멸 당했던 고대의 아말렉 족을 숭배하는 이단 종파와 관련 있음을 알게 된다. 분명 자신은 무신론자란 말이다. 이상한 답글이 온다. 성경의 한구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니라는 점. 그럼 뭔가? 여기저기 들불처럼 타오르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난리치는 동안 그동안 외면해왔던 자신을 탐구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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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책을 받아서 펼치면 작가의 이력을 먼저 본다. 낯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에 읽었던 <호모오피스쿠스의 최후>를 쓴 작가다. 책을 읽기 전 예전에 쓴 서평을 찾아볼까 하다가 그냥 읽었다. 읽으면서 약간 잊기는 했지만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우디 앨런의 뉴욕과 커트 보네거트의 블랙유머가 한데 모였다’란 평이었다. 모두 읽은 지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전에 다른 소설의 서평을 찾아봤다. 상당히 힘들게 읽었던 기록이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도 그렇다. 문장이 어려워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어렵다는 의미다.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고 오랫동안 주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첫 문장은 ‘입은 기묘한 곳이다’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치과의사이고 이름은 폴 오로르크다. 그에게 입은 아주 중요한 곳이다. 그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곳인 동시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 광팬이다. 전 경기를 비디오로 녹화할 정도다. 86년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게 되어 기뻐했지만 이 우승으로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면서 예전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잘 이해되지 않는 마음이다. 그는 치과의사로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치료보다 예방에 신경을 쓴다. 환자들이 치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순간 뜨끔했다. 나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하고.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의 병원에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뛰어난 치위생사 콘보이 부인이 있다. 서무를 보고 한때 사귀었던 아름다운 유대인 코니와 배우를 꿈꾸는 직원이 한 명 더 있다. 병원은 잘 되어 돈을 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불면으로 가득하다. 이 불면의 시작은 그의 아버지가 자살한 후에 생겼다. 잠을 자지 못하는 그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성과 감성이 충돌한다. 홀로 자기를 두려워하는 소년이 엄마에게 계속 말하는 것과 힘들지만 이것을 받아주는 엄마의 모습 때문이다. 그가 몇 시간을 그냥 조용히 잔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소설 속 한 장면에서 이것이 나오는데 새벽에 깬 후에 다시 잠들지 않고 녹화해두었던 레드삭스 경기를 본다.
그는 종교와 신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다. 그는 메일에도 보스턴 레드삭스 관련 글을 올리는 게시판에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병원은 홈페이지도 없다. 오죽했으면 콘보이 부인이 책을 주문해서 병원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의사에게 조언했겠는가. 이런 조용한 삶에 큰 돌이 하나 날아와서 파문을 일으킨다. 바로 병원 홈페이지다. 그가 만들지 않았고, 자신의 이력에 대한 설명도 엉망이다. 당연히 만든 곳에 메일을 보내지만 답이 없다. 그리고 그의 본명을 사용한 트위터 계정이 생긴다. 이렇게 하나씩 온라인 공간에 그가 아닌 그의 이름을 이용한 누군가가 활동을 한다. 미스터리소설이라면 의식이 분리되어 다른 사람처럼 활동하는 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지만 최소한 여기서는 아니다.
그의 이름으로 올려진 글들은 함축적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글도 있다. 이것을 발견하고 알려주는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던 코니다. 그인 척하는 하는 누군가가 올린 이야기는 구약을 뒤집은 내용이 있다. 아말렉인과 관련된 이야기다. 나중에 나오지만 유대인의 율법에도 이 아말렉인이 나온다고 한다. 그들을 반드시 물리쳐야 할 존재다. 그리고 울름이란 단어가 나온다. 처음 이 단어가 나왔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이 글을 쓰면서 뒤적이다가 환자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유대인과 유대교와 아말렉과 울름은 나를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다.
닥터 오로르크인 척하는 존재는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압니까? 하고. 이 질문은 나중에 그의 가족 족보와 연결된다. 수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 그 이력은 그조차 잘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의 자살 때문인지 그는 누군가의 가족이 되고 싶어 한다. 첫 번째 실패는 그가 무신론자라는 이유였고, 최근의 코니는 아이를 갖는 것 때문이다. 그는 아이 갖기를 두려워한다. 이것도 아버지의 자살 탓이다. 아이가 생기면 자살을 고민할 수 없다는 현실적이고 부성애 가득한 판단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세상과 직접 부딪히면서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은 없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보면 인터넷에 자신인 척하는 누군가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내용일 것 같지만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메일로 교신을 하고, 누군가가 찾아오지만 이것이 자아 찾기나 영적 문답을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르크가 보여주는 독설과 비판이 블랙유머의 재미를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뒤에 그를 사칭한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이를 둘러싼 해석이 갈라지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분명한 결론을 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닌가? 재미있는 부분과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하지만 이것을 전부 하나로 꿸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어렵다. 물론 미 프로야구에 대한 부분은 쉽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올해 그 팀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떤 결과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