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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약간의 딴지로 시작해 본다. 제목과 내용의 관련성에 대해서다. 저자 김영준은 현재, 즉 이 책을 내는 시점에 ‘편집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편집자 일을 해왔으되,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은 ‘전’ 편집자다. 그럼에도 제목에 ‘편집자’라고 한 것은, 이 책에 쓴 글들이 상당 부분 ‘편집자적’인 각도를 지니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혹은 ‘편집자’라는 제목 자체가 팔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인다고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책읽기’는 어떤가? 음... 애매하다. 2부(책 바깥을 읽기)는 분명 책읽기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4부(일상 읽기)도 엄밀하게는 아니다. 비록 ‘전’ 편집자가 일상을 읽는 방식이 상당 부분 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읽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1부(깊이 읽기)도 전적으로 책만을 읽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 얘기 위주인 글이 많다. 그렇다면 제목의 ‘책읽기’에 명확히 대응하는 것은 3부(빠르게 읽기)와 5부(미스터리 읽기) 정도다. 그럼에도 제목에 아주 당연하다는 듯 ‘책읽기’라 적어 놓은 것은, 그래도 책에 관한 내용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앞에 썼듯이 책이 아닌 얘기도 결국은 책에서 시작하거나 책으로 맺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에세이’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에세이라고 규정하고 싶어한다. 나는 어떤 글을 에세이라고 하는지 궁금할 때가 종종 있는데, 김영준은 현실에서 분명한 쓸모를 가지지 못하는, 자신을 소재로 삼는 글(몽테뉴의 예, 즉 에세이의 시작에서 보듯이)이 에세이라고 보는 듯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여기의 글을 에세이라고 볼 수 있을지 갸웃거려진다. 종종, 아니 대부분 글의 소재는 글쓴 이 자신이 아니다. 그리고 ‘쓸모’의 면에서도 그렇다. ‘머리말’에서 보듯이 이 책의 글들은 적잖이 다른 매체에 실렸다. 그렇다면 글값이 있었을 터. 그걸 글의 ‘쓸모’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적어도 몽테뉴는 자신의 글로 밥벌이는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짧지 않게 딴지를 걸고 있지만, 나는 책에 실린 적지 않은 꼭지의 글들을 읽으며 여러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생각을 했다. 가장 우선으로는 나에 대한, 아니 내 글(혹은 책)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과학 교양서를 쓴다고 했는데, 출판사 대표가 원하는 것은 에세이였구나, 하는 생각이다. 에세이라야 몇 권이라도 더 팔린다고 보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전직 편집자’의 글을 참조할 만하다. 그가 글쓰기 교실에서 강종한다는 말, “짐작하지 마라”는 것. 의도를 다 안다는 듯이 적기보다는 말이나 움직임을 듣고 본 대로 적으라고 한다. 예를 들어, “모두가 고마워했다”보다 “두 명이 고맙다고 말했다”는 식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적어도 전능함을 드러내는 순간 독자는 당신의 손을 뿌리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도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른 것인가 싶다. 내가 두 번째 책을 낼 때, “~인 듯하다”라는 말은 모두 빨간색으로 그어져 돌아왔었다. 독자들은 그런 불분명한 말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출판사도 과학 교양서를 원하고 있었다. 그밖에는 저자의 현란함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의 책이나 영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인용하는 책과 영화와 일화들. 역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유롭게 꺼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게 자연스레 연결지을 수 있는 솜씨도 필요하다. 김영준은 당연하듯 그걸 잘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많이 고민하고, 찾고, 지우고, 다시 쓰고, 그랬을 거다. 인상 깊은 얘기가 몇 있다. 추리소설이 역사소설이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 인터넷 등으로 모르는 정보가 없는 세상에 미스터리가 존재할 여건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추리소설가들은 하는 수 없이 과거로 떠난다는 얘기다. 다음과 같은 내용도 인상 깊다. “핵심은 마호메트가 코란의 저자인가 속기사인가이다.” (나는 저자가 속기사보다 윗길이므로 이슬람교에선 당연히 저자로 보는 것이 아닌가, 잠깐 생각했다. 그런데...) “마호메트가 신의 속기사라는 것은 정통 이슬람교의 관점이다. 저자라는 것은 자신의 그리고 루슈디의 관점이다. 그것은 코란 속에 여러 인간적인 자의성과 모순과 불확실함이 있을 수 있음을 뜻한다.” (162~163쪽) 스포일러에 관한 내용도 인상적인데, 내용은커녕 무엇에 관한 영화인지도 모르고 봤던 영화로 충격을 받았던 게 생각났다. 바로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Get Out)>. 읽지 않은 미스터리에 대한 글 읽기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해야겠다. 전혀 막막하지 않았다. 저자가 내용을 잘 설명해줘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용보다 그 미스터리가 가지는 사회나 인간성 등과의 접점에 관한 얘기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를 그렇게 읽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읽은 책을 편집자는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다. 많이 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