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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소개하는 글 중 ‘길에 떨어진 머리끈을 발견하면 꼭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 사람’이라는 글도 마음에 닿지만 ‘책이 산책의 줄임말이라고 믿는 사람’ 이라는 소개는 내 마음에 아주 쏙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책과 산책 이므로 그렇다. 《테니스나무》의 주인공은 미아와 태오이다. 달리다 스친 얼굴 하나 때문에 역주행을 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완주를 겨우 1킬로미터 남겨둔 시점에서 역주행이라니. 의무실에서 깨어났을 때, 미아 앞에는 서포터즈 티셔츠를 입은 여자가, “가끔 그런 게 보인대요. 도플갱어. 그거잖아요.” 그렇게 위로해 주지만.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후로도 종종 떠올린다. 도플갱어를 만나는 것은 겨우 몇 초간의 일이라, 40킬로미터 급수대 앞에서 쓰러지지 않았더라도 미아를 홀렸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지만, 미아는 그렇다. 맞다. 방금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만나려고 저 바닷가까지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찰나에 불과하다, 금세 흘러가니까, 왜?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살아 있는 건 늘 뒤척이는 거니까 그러다 아주 잠깐 같은 꼴로 겹치기도 하는 것일 터. 미아는 순간 안다. ‘확실한 것은 내 삶으로 누군가 쿵쿵거리며 들어왔다는 것이고, 그게 실낱 같은 스침에 불과하더라도 이제 나는 그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 누군가는 지하철 K선 역사에서 일하는 인턴 태오라고, 둘은 지하철 역사를 달리는 하프 코스 러닝 대회 ‘라인런’을 진행하기 위한 거래처 관계로 처음 만났고, 생존배낭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미아가 직접 기획한 생존배낭이 라인런 기념품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승객들에게 “여기 사람이 있다,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안심을 주는 사람은 태오다. 물론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버틸 수 있게 하는 생존용품을 고민하는 사람은, 미아이고. 태오와 미아는 거래처 관계였지만, 그보다 둘 사이를 더 정확히 설명하는 말은 ‘홍해파리’다. 언젠가부터 홍해파리는 둘의 대화에서 고명처럼 쓰인다. ‘이거 조금 홍해파리 같은 얘긴데. 이런 홍해파리 같으니라고……’ 태오에 따르면 홍해파리는 필요할 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부 환경이 좋지 않다고 느끼면 성체로 살아가기를 멈추고 다시 유년기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래전 풍경들을 소환하기도 한다. 둘은 서성이고, 멈추고, 부러 되돌아본다. 그러나 삶이 늘 평탄하고 잠잠하기만 할까? 청춘의 이야기가? 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글쎄 작가 윤고은은 가만 놔두지 않는다. 하루치의 움직임을 모두 소진한 테니스코트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 된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라임색 테니스공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무척 율동적으로 느껴졌고. 그것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분명 정물은 아니었다. 나무에서 방금 떨어진 싱그러운 열매들처럼 느껴졌달까. 그러자 태오가 그것이 테니스공인 걸 모르는 사람처럼 “어느 나무에서 떨어진 거죠?” 하고 말한다. 미아는 “그야 테니스나무겠죠.” 하고 대답하고. 그렇게 둘은 테니스코트 옆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테니스나무로 지정했다. 7월, 8월. 여름이 더 짙어지는 동안 테니스코트까지 이어지는 그 길은 둘의 단골 산책로가 된다. 그때마다 테니스공은 라임빛 열매처럼 그곳에 있었다. 때로는 카트에 담긴 채로, 때로는 바닥에 뒹구는 채로. 둘은 테니스코트 울타리에 얼굴을 바짝 댄 채 라임빛 열매들을 하나, 둘, 셋…… 세어보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꼭 바람이 불어와 테니스나무의 무성한 잎들을 마구 흔들어놓았다. 마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 처럼. 무언가 곧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을 예고라도 하듯, 되돌릴 수도 멈춰 세울 수도 없는 휘몰아침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도 균열이 이는 것처럼. 어찌할 도리 없이 마음을 쏟고야 마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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