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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 문제부터 정치적 갈등과 혐오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위기에 놓여 있다는 진단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중이다. 하지만 사회적 과제를 지적하는 것에 비해 그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묻는 일은 쉽지 않다. 강신준의 <비상구는 왼쪽에>는 바로 그 질문 앞에서 오래전에 쓰인 한 권의 책을 다시 펼친다. 바로 마르크스의 <자본>이다. <비상구는 왼쪽에>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출발점으로 자본주의가 만들어온 모순과 그에 맞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시도를 되짚으며, 오늘날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책이다. 저자는 마르크스 사상을 기반으로 노동과 불평등, 민주주의처럼 지금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문제를 이해할 방안을 제시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구조와 역사를 토대로 오늘날 ‘야만의 시대’를 지나는 한국의 현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P.212 마르크스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란 곧 마르크스의 유산을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한국사회가 야만의 우리에서 탈출해 문명의 지평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저자가 로마의 흥망을 설명하며 반복해서 짚는 것은 결국 ‘타인’의 존재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공동체는 유지되지만, 자신의 몫과 이익만을 앞세우기 시작하면 협력은 경쟁으로, 균형은 적대로 바뀐다. 특히 문명이 발전할수록 자연스럽게 야만에서 멀어질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한때 문명을 이루었던 사회도 얼마든지 다시 야만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야만은 문명의 반대편에 고정된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언제든 현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책의 첫머리에서 오늘날 세계와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야만’이라는 단어로 묶은 이유도 여기 있다. 거대한 정치적 사건만을 보고 야만을 판단하기보다, 그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 속 타인에 대한 불신과 배제, 각자도생의 감각이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 해당 대목을 통해 문명과 야만의 경계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한 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는가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15 그러나 사회적 파급을 일으키는 모든 사건에는 시대의 징후가 담겨 있답니다. 사회 곳곳에서 이미 발생한 변화들이 모이고 쌓인 다음 드디어 넘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시대의 징후가 기이한 개인을 통해서 터져 나오는 것이지요. 이러한 시선은 책 후반부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여러 정치적 변화를 되짚으며 제도의 변화만으로 사회의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혁명을 단번에 세상을 뒤집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결국 민주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그 제도를 움직이고 지켜나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사회의 변화가 거대한 사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했다. 비상구를 찾는다는 것은 우선 우리가 빠져나가야 할 공간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차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익숙하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노동과 경제, 정치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 역시 그 과정일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향에 모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지금의 사회가 왜 이러한 모습이 되었는지를 더 긴 역사와 구조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질문은 유효하다. P.81 숙주가 죽으면 당연히 기생생물도 함께 죽습니다. 하지만 내일을 보지 않는 야만적 속성은 이런 걸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출구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위치를 알지 못한다면 같은 공간을 계속 맴돌 수밖에 없다. 해당 도서는 마르크스와 <자본>이라는 오래된 지도를 다시 펼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한다. 그 지도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확한지, 그리고 저자가 가리키는 문이 정말 우리가 나아가야 할 출구인지는 독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과거의 사상이 곧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허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 없는 한국 사회의 현주소, 그리고 수많은 개혁 시도 끝에 다시 ‘야만’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악순환의 고리가 이를 증명한다. <비상구는 왼쪽에>는 이와 같은 사회의 해체와 반복되는 야만의 원인을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르크스의 사상과 그 이후의 역사를 되짚으며 우리가 같은 자리로 회귀하지 않을 비상구를 모색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다.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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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는 왼쪽에》 | 강신준 지음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왠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는 강신준 저자가 왜 지금 다시 마르크스를 소환하는지 궁금했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자본』을 연구해왔다. 《자본론의 세계》에서 『자본』을 풀어 설명하고 《오늘 『자본』을 읽다》에서 오늘의 현실과 연결해온 연구의 흐름을 생각하면, 《비상구는 왼쪽에》는 그 질문을 한국사회까지 가져온 책처럼 느껴진다. 특히 ‘마르크스 없는 한국사회’를 돌아보며, 마르크스의 저작이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역사와 그로 인해 우리가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짚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야만과 문명’을 구분하는 기준이었다. 저자는 야만은 오늘만 살고 문명은 내일까지 계산한다고 말한다.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갈 사람까지 생각할 때 양보와 타협의 자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주 5일제와 하루 8시간 노동처럼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도 누군가가 더 나은 내일을 고민하며 만들어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마르크스 이후의 실패한 실천도 외면하지 않는다. 소련과 볼셰비키를 비롯한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서도 ‘연주에 실패했다고 악보를 찢어버리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실패한 것은 실천이지 교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살펴보고 지금의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읽혔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한국사회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마르크스 문헌을 제대로 갖추는 일,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 같은 실천의 주체를 세우는 일, 사회가 공유할 강령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시민정치교육을 이어가는 일이다.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지까지 질문하는 셈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찬반의 결론을 내려주는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어떤 내일을 만들어갈 것인지 질문하는 책이었다. 오늘만 살 것인가, 내일까지 계산할 것인가. 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비상구는 왼쪽에》라는 제목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비상구는왼쪽에 #강신주 #마르크스 #자본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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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2019년까지 방영한 <왕좌의 게임 > 시리즈의 첫 에피소드 제목은 "겨울이 온다!"였다. 스타크 가문의 구호인 "Winter is Coming"은 단순한 날씨 변화를 넘어 웨스테로스에 닥칠 어둡고 힘든 정치적 혼란과 동시에 장벽 너머에서 다가오는 초자연적인 위협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하며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였다. 그런데 이 문구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시대의 변화를 암시하는 예언처럼 되어 버렸다. 바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서 세계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10퍼센트의 기본 관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관세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트럼프가 촉발한 전 세계의 겨울에는 오로지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삼는 극단적 자기 중심주의가 깔려 있다. 트럼프의 적대세력은 미국 민주당과 이민자들이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거대한 벽을 두른 것도 모자라 자경단과 다름없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을 만들어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다. 이민자나 외국인 노동자 같은 환대와 적대의 문제는 비단 미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이런 무리들을 통틀어 '극우'라고 통칭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 말은 극좌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이나 한국의 민주당이 자본주의 질서 전복을 요구하는 극좌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적대하는 극우도 없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는 극우가 아니라 '야만'에 더 가깝다. 그러니 이들을 야만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야만의 속성이 바로 자본주의가 가진 한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야만을 막을 방벽은 없는 것일까? 1933년 5월 히틀러의 나치당은 독일인의 영혼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책들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일명 '베를린 분서 사건'을 저지른다. 오페라광장에서 불태워진 책이 약 2만 5000여 권 이었는데 마르크스의 책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서막일 뿐이다. 책을 불태운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불태울 것이다." p.24 히틀러는 왜 마르크스의 책을 무서워했을까? 150년 전 마르크스는 야만을 보았고 그것을 막을 방벽을 구상하여 글로 남겼다. 그 교본을 실천한 나라가 바로 소련이었으나 소련이 해체되면서 그들이 쌓은 방벽도 무너져 버렸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1장에 수록된 '야만이 온다'편이었다. 인간이 적대적 혐오의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그저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그것을 극복할 합리적 이성도, 해결방안도 이미 가지고 있다. 바로 오리지널 마르크스주의의 방벽 설계도라는 해결책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오리지널로 읽은 적이 없다. 대부분 자본론을 풀이해 놓은 책들 위주로 읽어서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알고 있는 정도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노동빈곤의 수수께끼를 추적하여 그것이 자본주의의 문명적 구조에 숨어 있는 야만적 속성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낸 책이다 즉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 노동하는 사람에게 기생하는 구조에서 불평등이 시작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제거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야만적 속성을 제거해 자본주의가 이룩한 문명을 지키려 했던 사람이다. 사적 소유를 폐기해 공동소유로 전환하고 하루 8시간 노동을 전격 도입한 소련은 과연 성공했을까?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는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했는데 그중에서 혁명이 이루어지려면 '무르익음'이라는 시간이 필수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오늘날 8시간 노동시간, 여성의 날, 교육, 의료, 주거, 철도 등의 공동소유의 유산은 고스란히 자본주의 국가에 닿았으니 완전한 실패라고는 할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과 공동소유 확대라는 마르크스의 핵심유산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핵심은 왜 마르크스가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가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일단 책이 없다는 것이다. 독재나 국가 보안법에 걸려 제대로 번역이 된 책이 들어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사이 대중들의 관심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북한도 1967년부터 출판을 전면 중단하고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마르크스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자본>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나의 탓이 아니라고 해 준 점도 좋았다. 마르크스 엥겔스 정본 전집을 총괄하는 본부에서 한국어판 출간을 기획했다고 하니 저자의 책으로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왼쪽이라는 해결책이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불씨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일단 책부터 읽어야 하지 않을까!
#비상구는왼쪽에 #강신준 #사계절 #자몽커피 #서평단 #마르크스 #자본 #트럼프 #야만 #극우 #신자유주의 #히틀러 #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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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빗우리가 세우고 지켜온 상식을 비웃는 '선을 넘는 일'들이 폭로되며,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 p.15 마르크스주의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주장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상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렇다. 사회나 세계사 시간에 살짝 배우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지금의 한국 사회와는 조금 다른 사상이었고, 부정적인 뉘앙스로만 기억에 남았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서 점차 그 느낌마저도 흐릿해졌다. 마르크스주의가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의 대한민국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강신준 작가님의 사회학 도서다. 사실 사회 분야의 도서를 종종 읽기는 하지만, 현재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주제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렇게 사회학 이론이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 피하는 편인데, 제목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내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주제일 것 같았다. 기대감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의 사회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뒤흔든 세계의 갈등과윤석열 전 대통령이 촉발한 한국의 갈등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들은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갈등의 밑바탕에는 타인을 향한 혐오와 분노가 있다는 것이다. 갈등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이론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다. 조금 어렵게 다가왔다. 교과서에서 배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고, 그것을 현대에 적용시키는 것 또한 시간이 걸렸다. 사회학 분야의 책들을 자주 접했더라면 충분히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문체가 비교적 친절하게 기술되어 있는 편이어서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눈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속도가 생겼다. 사회학 입문서를 찾는 독자보다는, 마르크스주의를 현재의 갈등과 연결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소련의 공동소유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책에 따르면 공동소유는 사적소유의 반대로, 사회의 주요 기반 시설과 개인의 자본을 국가에서 책임지는 구조를 뜻한다. 책에서는 미국의 민간 보험을 비판한 영화 <식코>를 예로 들어, 공동소유의 장점을 소개했다. 전공을 들으면서 자주 언급이 되었던 영화가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과 함께 공공의료의 연장선으로 공동소유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조건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반대라고 볼 수 있는 자본주의사회의 국가인 대한민국이라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거부감이 들 법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노동자가 마치 부품처럼 굴러가는 사회, 남녀노소 온갖 갈등과 혐오로 가득한 사회에서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우리에게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해답을 주었다. 그것이 정답일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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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기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자 새로운 문제들의 시발점.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최선의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혐오를 줄이고, 빈부격차를 최소화하고, 자본과 노동자의 주객전도를 되돌릴. 당신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본 적 있는가? 다양한 학문을 배우는 대학교에서조차 마르크스 경제학이 자취를 감춘 지금, 저자는 그것이 역사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와 지금의 현대 사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학자의 이론이 등장하는 글은 결코 쉽지 않다. 자주 접해보지 못해 생소한 내용이라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하지만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책 자체의 흐름에, 그리고 앞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짚어주며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구조 덕에 찬찬히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스스로 되짚어보며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이야기로 끝이 나는 구조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세계 혁명 역사의 흐름이 섞여 있다. 여기저기서 들어보았던 이름과 역사적 사건들마저 상세히 설명해 준다. 찬찬히 읽어내리다 보면 머릿속에서도 서서히 정리가 된다. 어렴풋하게 알던 일들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혁명을 비롯한 모든 사회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마르크스의 유산이 남긴 교훈도 이것이지요. 밤이 지나 낮이 오기까지 아주 조금씩 어둠이 물러나는 새벽을 지나야 합니다. (p202) 이 책은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남긴다. 읽기는 독자에 따라 주체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수동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주체적인 읽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애초에 혁명 자체도 ‘내’가 움직여야 하는 주체적인 행동이다. 독자는 240페이지에 걸쳐 저자의 의견을 마주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그러니까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차례다. 저자의 방식을 빌려, 혹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기를 끝내고 덮는 게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움직일 차례다. *본 서평은 사계절출판사(@sakyejul)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비상구는왼쪽에 #강신준 #사계절출판사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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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무기력이 꽤 학습된 상태이다. 사건사고에 대한 뉴스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그런 뉴스가 있어도 '선을 넘는 일'은 줄어들기는커녕 증식하니, 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겠다는 그런 절망 말이다. 개인에서 전방위로 뿜어져 나오는 혐오와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 엥겔스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부르주아 사회는 사회주의로 이행하느냐, 야만으로 후퇴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 지금까지 우리는 이 말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반복해서 말했을 것이다. (Junius, 1916) 자본주의가 가진 야만의 속성에 대한 분석이자 이것을 제어하지 못하면 인류는 야만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타인에 대한 혐오와 적대가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비롯했으며, 그것이 인류를 야만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 P.20 ─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무한경쟁과 노동멸시의 사회를 지나, 마침내 계엄사태까지 이르게 되자 한 교수가 펜을 들었다. 노동 빈곤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대상으로 보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연구해온 강신준 교수가 사계절 출판사를 통해 『비상구는 왼쪽에』를 출간했다. 『비상구는 왼쪽에』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마르크스의 사상을 다시 불러들이고, 그간 쌓여온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으며 한국사회가 야만이 아닌 문명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제대로 된 마르크스를 들여다보는 데에 있음을 말하는 책이다.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인데, 혐오와 적대, 폭력적 약탈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책은 그 갈등이 자본주의에 있음을 밝히며 책은 방벽을 세웠던 로마 야만의 역사부터 살핀다. 야만은 현재의 시간만을 보는 단면적 인식 때문에 타인을 '관계'의 대상이 아니라 부정의 대상으로만 간주했다고. 이 문제에 마르크스는 고쳐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변증법'이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혁명이 번번히 시행되었으나 늘 실패로 돌아가는 역사도 조명한다. 혁명이 단번에 완성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저자의 지적에 세상을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선이 조금은 희망쪽으로 향한다. ─ 왼손잡이로 태어나 꽤 좌편향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했었는데, 책에 공감하면서도 뭔가 풀뿌리를 씹는 듯 소화는 잘 안되었던 책이다. 이미 두 세기가 넘게 이어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 정작 중요했던 마르크스의 사상은 잘못되었거나 삶에서 아예 빠져버렸으니 어려웠던 게 아닐까. 맑스엥갤스연구소를 설립해 번역 작업을 꾸준히 해온 저자의 저작물을 조금 살펴보고 싶어졌다. 얼마 전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님의 필사책에서 받아 적은 문장이 떠오른다. 카를 만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문장을 발췌하고 교수님의 코멘트가 달린 글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다고 믿지만, 어떤 경우 우리의 생각은 특정 시대의 지배적인 생각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일 수도 있다고. 카를 만하임은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려는 욕망 때문에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식의 존재구속성을 알아채는 것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들어가기에 앞서 독자에게 이 글은 그 절망을 의식하면서 꼰대 세대가 MZ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밑천을 긁어모은 것이라는 따뜻한 고백을 한다. 자본주의 시대의 지배적인 생각 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비상구를 들여다볼 것인가? 패배와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 책 한 권에 있을 수 있다. / 변혁 의지가 사라진 세상에는 왼쪽도, 오른쪽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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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경제학을 전공했다면 한 번쯤은 맑시즘에 귀를 기울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수행 교수와 강신준 교수의 책을 통해 자본론 해석을 읽으며, 공황과 정부실패와 불평등을 한꺼번에 해소할 단 하나의 해법이 여기 있는 게 아닐까 혹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실의 논리에 부딪히면서 그 열기는 서서히 식어갔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미완의 물음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강신준이 신간 〈비상구는 왼쪽에〉에서 다시 한번, 여전히 비상구는 왼쪽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서두부터 섬뜩한 장면을 꺼내놓는다. 1933년 나치가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불태운 베를린 분서 사건으로부터 90여 년이 지난 오늘, 트럼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윤석열의 비상계엄, 혐오로 뒤덮인 세계 곳곳의 광장을 겹쳐놓는다. 저자는 이를 극우의 부상이 아니라 변혁 의지 자체가 사라진 야만의 귀환이라 진단한다. 낯익은 뉴스의 장면들이 책장을 넘기자마자 하나의 계보 안에 놓이는 순간, 읽는 사람도 자연히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책의 중심축은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단순한 정의다. 야만은 오늘만 계산하고 문명은 내일까지 셈에 넣는다는 것. 내가 죽은 뒤에도 살아갈 사람을 셈에 넣는 순간 양보와 타협의 자리가 생기지만, 그것을 빼면 남는 건 각자도생뿐이라는 설명이다.
저자의 시선은 곧 한국 사회로 향한다. 2025년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평균을 훌쩍 넘고,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한참 못 미치며, 임시직 비율은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4·19에서 6월 항쟁, 촛불과 응원봉 집회까지 개혁의 시도는 끊이지 않았지만 그 끝에는 늘 폭력이 되돌아왔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마르크스가 거의 한 세기 동안 금서였던 나라에서, 변혁의 의지는 충만했으나 현실을 바꿀 지렛대는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체제 전복 같은 거창한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 문헌을 제대로 갖추는 일, 산업별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당을 세우는 일, 공유할 강령을 만드는 일, 그리고 이를 오래 지탱할 시민정치교육을 만드는 일. 네 가지의 소박하지만 현실에는 부재했던 과제를 제시한다. 소련의 실패는 악보가 아니라 연주의 실패였다는 저자의 비유는, 마르크스라는 이름 앞에서 여전히 멈칫하는 독자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다만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의문도 남는다.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문제는 정말 마르크스의 교본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일까. 저자가 실제로 제시하는 산업별 노동조합, 시민정치교육 같은 처방은 사회주의 혁명이라기보다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결국 노동자의 협상력을 키우는 문제로 수렴될 수 있는 해법을, 저자는 유독 마르크스라는 하나의 뿌리에서만 찾으려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장을 덮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오늘만 계산하며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내일까지 셈에 넣고 사는 사람인지. 그런데 곧이어 다른 질문이 따라왔다.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이 이토록 이상적으로 읽히는 건, 나 또한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어버렸다는 증거일까. 강북의 아파트 소유자가 강남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룬다는 저자의 비유가 유독 마음에 걸렸던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성장의 성적표 뒤에 감춰둔 숫자들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이 두 가지 질문을 함께 안고 가보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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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답이 없다 생각해왔던 자본주의 시대, 마르크스 [자본]을 통해 세상의 출구 가능성을 찾아보는 책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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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를 다루는 것은 어쩌면 위험할 수 있다. 러시아와 같은 극단적인 좌파를 추종하는 나라에서 자신들이 '마르쿠스주의' 라고 얘기하며 마르크스의 이론을 표방했다고 표어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주장들은 단편적으로는 한국에서 의견을 표방하기에는 위험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한국 뿐만아니라 세계가 마르크스의 논리를 표방할 필요가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8시간만 노동하는 등 지금의 민주주의가 차용하고 있는 노동자 인권의 지표를 마련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잘못된 마르크스 주의를 표방한 여러 나라들 덕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오해는 깊어지고 과거에는 그가 쓴 <공산당 선언> <자본> 등의 책이 금서로 지정되고 있기도 하다. 아마 만약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더라도 그것이 와해되고 왜곡되고 의역되어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잘못된 교육을 할 것이라고 본다. 실제 <자본>, <공산당 선언> 을 안읽어 봤기 때문에 저자 강신준의 의견이 옳은지 <비상구는 왼쪽에> 만을 읽고 판단할 수 없다. 허나 그가 말하는 것은 지금 '마르크스'를 표방한다고 믿고있는 좌파, 민주노총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고 확실하게 피력한다. 오히려 정반대에 놓여져있다고 말이다. 로마 공화정, 프랑스 혁명의 역사부터 시작해 마르크스의 이론이 탄생하고 그것이 적용될 때까지의 역사로 독자들을 설득하고 이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 스스로 하며 정치적인 이론에 조금은 관심을 가지고 사회참여도를 늘려보는 게 좋겠다 - - 마르크스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란 곧 마르크스의 유산을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한국사회가 야만의 우리에서 탈출해 문명의 지평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야만과 문명의 경계, 즉 시간에 대한 인식입니다. 전환의 출발점은 눈앞의 오늘만 보던 시야를 어제와 내일을 함께 아우르는 관점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기적 같은 변화가 아니라 성숙을 기다리면서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마르크스의 유산을 수용하는 법을 찾아보기로 합시다 _ 212 4.19는 5.16으로, 6월 항쟁 이후의 민주화는 다시 보수 정권으로, 촛불은 12.3 내란으로, 한국의 개혁 시도 끝에는 늘 폭력이 되돌아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변혁 의지는 충만했으나 현실을 바꿀 지렛대가 없었다. 19세기 유럽의 실패한 혁명들로부터 마르크스가 찾아낸 바로 그것, '혁명의 과학' 이 부재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문명으로 건너가지 못한 채 야만의 벽 안에 갇혀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 벽에서 탈출할 길은 하나뿐이다. 마르크스가 남긴 설계도를 따라서 비상구를 찾는 것이다. 그 문은 처음부터 왼쪽에 있었다. _ 책 뒤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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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건? 혁명,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실패한 소련의 모습 등등. 그래서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은 이미 실패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낡은 이론으로 평가되지 않는가? 그러나 저자는 그런 선입견에서 벗어나 마르크스를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으로 다시 생각한다. 📍저자 역시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는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든 문명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극심한 경쟁과 불평등, 장시간 노동이라는 '야만'의 요소도 품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이론과 그것을 현실에서 적용한 결과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련을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를 곧바로 마르크스의 실패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과거의 사상가로만 치부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시간 줄여 얻은 자유를 누가 갖는가?' 기술이 인간을 덜 일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혜택이 일부에게 집중될 것인지 아니면 사회 전체의 여가와 자유로 돌아갈 것인지가 앞으로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저자는 예측한다. 📍'출구는 왼쪽에 있다' 저자는 단순히 정치적으로 왼쪽에 서라는 뜻이 아니라, 성장과 경쟁만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노동과 분배, 공동체와 미래를 함께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에 동의하느냐" 보다 "자본주의의 성공이 왜 인간의 삶의 성공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