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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학자가 방대한 서양의 지적 흐름에 대해 이렇게 정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아마도
내가
그
쪽
학계의
능력에
대해서
좀
얕잡아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작업을 한 사람의 학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의 일관된 시선을 가지고 해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고, 재미있고, 놀라운
일이라
생각한다.
주제는 한 가지다. '교양'. 여기서 교양은 식탁 예절이나 말하는 품새 정도로 폄훼되어버린 그런
교양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자신을 인식하고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이후 면면히 쌓아올려오고, 또
전복해온
지식의
더미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교양이다. 따라서 '교양의
탄생'은 인류 지식의 탄생이며, 이
책은
그
지식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다루고
있다. 물론 서양에 한하지만.
시작은 당연히 그리스다. 그리스에서
출발하여
로마를
거쳐
중세에
이르고, 12세기 르네상스의 태동, 대학의
탄생, 인문주의의 발흥, 종교개혁, 근대과학 혁명, 백과전서파의
활약, 18세기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대학의 변화, 드레퓌스
사건에서의
지식인의
역할, 스페인 전쟁, 그리고 1968년 5월
혁명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이렇게 서양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교양, 즉
지식의
역사를
살펴보고는
있지만, 단순하게 연대기적 서술에만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지는 가치라 생각한다. 몇
가지
주제에
관해서는
시기는
중첩되고
다시
돌아가면서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서재에 관해서, 근대
소설에
관해서, 극장에 관해서, 살롱에
관해서, 대학에 관해서는 정확히 한 시기에 한해서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특정한 시기를 중심으로 삼되 그런 현상의 맥락을 여러 시기에 걸쳐서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교양의
역사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교양의
내용의
역사까지
얻을
수가
있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마지막에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다.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들의
정치
참여, 스페인 전쟁과 좌파 지식인들의 참여, 그리고
놀랍게도 1968년 5월까지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고리타분하게 먼
과거의
역사에만
침윤되어
공자왈, 맹자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니까
먼
과거의, 그것도 서양의 교양, 지식, 지성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현대의
의미에서
보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 책은 제너널리스트의 책이다. 스페셜리스트가 대우받는 세상에서 제너널리스트의 설
자리는
좁아진다. 그럼에도 제너널리스트는 여러
스페셜한
분야를
통괄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음으로
그
존재
가치를
지닌다. 아무리 그런 제너널리스트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라고는
하지만, 그런 제너널리스트는 언제나
필요하다. 오히려 문제는 그런 제너널리스트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저자가 교양의 역사를 다루면서 근대 과학에 대한 부분은 너무 짧게, 그리고
다소
부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가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얘기했던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을
얘기한
것이리라. 그리고 저자와 같은 인문학자가 거기까지 모두 포괄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는 인정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가끔 드러나는 올드한 문체도 눈의 띈다. '~라 할 것이다'. (2015.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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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란 무엇이며 '교양인'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누구든 이 질문을 접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는 '교양'이라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배운 표준어에 대한 정의가 떠오른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정의를 보면 '교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에 부수적인 해석이 달리지 않아도 우리는 '교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한다. 하지만 좀더 확장된 시선으로 '교양'에 대해 파악해보지는 못했다. 시대별로, 문화별로 각기 다른 교양의 모습은 짚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교양'과 '교양인'에 대하여 기본적인 것부터 역사적으로 훑어볼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이 책 『교양의 탄생』으로 시대와 문화별로 달라진 교양의 흐름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이광주. 고려대학교 사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해오고 있으며, 지금은 인제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양을 고전, 대학, 살롱, 극장, 여행, 도시 등 갖가지 토포스와 관련하여 박학다식하게 두루 살피면서 우리들을 교양의 역사로 안내한다. 이 책을 통해 교양과 교양인의 역사를 짚어보며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을 살펴본다.
초반에 다소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솔직히 제일 어려운 부분은 '책을 내면서'라는 저자의 글이었음을 밝힌다. 그 부분을 벗어나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얹어두었던 마음이 살짝 가벼워진다. 그리스로부터 시작하여 종교, 대학, 극장, 살롱, 서재, 아카데미, 여행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에 신기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 읽어나가게 되었다. 다양한 테마로 그 시절의 모습을 가늠해본다. 방대한 참고문헌이 책 뒤에 첨부되어 있으니 관련 전공자들이 읽고 참고하는 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방대한 자료를 섭렵한 것 이외에도 각종 그림과 사진 등의 자료가 질 좋은 종이에 인쇄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 번만 읽고 넘길 책이 아니라 여러 번 발췌독을 통해 곱씹어야 소화가 가능한 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의 질이 좋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뒷표지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이 책의 핵심 구성을 잘 간추려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양이 정신의 육성을 뜻하건대 교양인은 바로 마음을 경작하는 자이다. 그는 농민이 밭을 갈 듯 도처에 삶의 푸르름을, 교양의 토포스를 마련한다. 중세 가톨릭의 교권체제에서 이룩된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12세기 르네상스, 그 토양 위에 세워진 대학이라는 교양공동체. 그렇듯 정신을 기르는 교양은 밭을 가는 노동과 함께 인간의 본성을 이룬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교양 지향적이다. 중세 기사와 귀부인의 사랑이 궁정풍 교양의 모태가 되었듯 사람들은 사랑을 하면서, 책과 예술을 가까이하면서, 음식과 여행을 즐기면서, 도시와 국가를 가꾸면서 교양인이 된다. (책 뒷표지_이광주)
교양에 관한 갖가지 테마로 방대한 유럽 역사 문화의 정수를 뽑아내어 잘 엮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를 찾게 된다. 이 책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훑어나가야 하는 책이다. 읽다보면 시간 순서에 따라 교양의 변천사를 살펴보게 된다. 또한 어떤 토포스를 현대의 교양과 연관지어 자신만의 논리를 구축해나갈지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진다. 과거를 바라보며 이 시대의 교양은 어떤 모습인지 생각에 잠긴다. 이 시대의 교양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 교양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보고 교양을 쌓아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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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학 교수이며, 지성사 분야의 대가인 이광주 교수의 역작이다. "교양이란 무엇이며 교양인이란 진정 누구인가. 이 물음은 고도의 기술 산업 정보사회에서 존재의 망각, 인간 상실 현상이 날로 격심해지고 있는 오늘날 더욱 더 절박한 문제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다."라고 저자가 서문에 쓰고 있듯이 813 페이지에 담긴 서구 유럽의 교양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천해 왔는지 또는 어떤 일관된 관점을 형생해 왔는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1968년 68혁명까지의 장구한 역사를 훑어내려가며 인문, 사회과학의 정리된 이해를 넘나들며 저자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또는 지리적으로 모든 사회는 교양인을 이상적 인간으로 그리며 한 사회의 이상으로 추구해 왔다. 2007년 디드리히 슈바니츠의 책이 번역되며 우리 사회에 교양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조류에 부흥하여 저자는 지성사의 관점에서 교양의 개념에 대해 좀 더 심도 있는 논의를 지향한다. 최근, 교양, 정의, 자본주의 등 다소 무거운 주제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통칭 민주화 이후의 사회인 현재를 살며 지난 30여 년간과 달리 좀 더 이성적 토양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느낌이 들어 반갑다. 유행보다는 작자의 전공에서 우러나오는 다소 뜬금없는 저작으로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발을 딛는 지반은 교양의 차원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축적된 지적 무게로 쉽게 읽혀지지는 않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이 서문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현재의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클 것 같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포스팅을 통해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카롤링거 르네상스부터, 12세기 대학의 형성, 근대문학의 형성과 극장 문화의 발달로 이어지는 문학적 공중이 18세기 계몽주의 시기를 거치며 사상적/정치적 공중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단순히 교양에 대한 개념 유희가 아니라 인문정신에 대한 거대한 탐구이며 많은 시사점이 있다. 그 방대한 지성사의 흐름을 요역하여 한 권의 책으로 보여 주는 이 책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인문 정신에 대한 정리는 과제로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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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달린 디트리히 슈바니트의『교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즉 ‘교양은 인간의 상호 이해를 즐겁게 해주는 의사소통의 양식이다. 요컨대 교양은 정신의 몸,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형식이며, 다른 사람들의 거울 속에 자기를 비추어보는 형식’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아널드의 교양(liberal)’을 재조명하고 있다. 아널드는『교양과 무질서』에서 ‘교양이 생각하는 완성이란 개인이 고립되고 있는 한 불가능하다.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 손을 잡고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 했다. 이러한 아널드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사회적인 교양’이라고 했다. <책 속 밑줄> 교양이 정신의 육성을 뜻한건대 교양인은 바로 마음을 경작하는 자이다. p 12 뒤르켐은 9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시기를 문법의 시대라고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반화된 12세기는 논리학의 시대였다. p 119 르네상스 운동의 본질과 성격을 규정지은 휴머니스트란 본래 라틴어 또는 인문학 교사를 지칭했다. p 238 19세기 프랑스 시인이며 비평가인 생트 뵈브는 서재를 상아탑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보에티우스가 “상아나 수정으로 장식된 그대 서재의 벽”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된 것일까. p 358 반문화라는 코드를 내세우며 기성 체제와 가치관에 근거한 일반문화와의 구별을 강력히 주장하는 청년문화는 반문화적이며 반사회적이라기보다 반체제적이며 반권력적이게 마련이다. p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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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 바로 교양(敎養)의 사전적 의미입니다. 현대인들은 경제적인 풍요를 바탕으로 종래의 먹고 사는 문제에서 이른바 ‘교양’으로 대변되는 심미적인 취미와 놀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교양’이란 무엇이며 ‘교양인’이란 누구를 말하는지 유럽 문화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교양이 정신의 육성을 뜻하건대 교양인은 바로 마음을 경작하는 자이다. 그는 농민이 밭을 갈 듯 도처에 삶의 푸르름을, 교양의 토포스를 마련한다. 중세 가톨릭의 교권체제에서 이룩된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12세기 르네상스, 그 토양 위에 세워진 대학이라는 교양공동체. 그렇듯 정신을 기르는 교양은 밭을 가는 노동과 함께 인간의 본성을 이룬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교양 지향적이다. 중세 기사와 귀부인의 사랑이 궁정풍 교양의 모태가 되었듯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책과 예술을 가까이하면서, 음식과 여행을 즐기면서, 도시와 국가를 가꾸면서 교양인이 된다.> 위 대목은 서두에 나오는 작가의 서술입니다. 이 짧은 대목만 읽어보더라도 ‘교양’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즉, 작가가 인지하는 교양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나 고귀한 사람, 특정한 소수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 아니라 사회 속에서 일반적인 생활양식을 바탕으로 삶의 영위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양인이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함몰되는 지식인과 구별된다는 작가의 덧붙임도 이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얼핏 제목만보면 단순한 인문학 서적 같지만 책 안에는 한 권의 책으로는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갖가지 담론들이 작가의 짙고 깊은 통찰과 적절히 배합되어있습니다. 인문학을 비롯하여 과학, 기술, 정치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교양의 과거, 현재, 미래를 순차적으로 조망하는 작가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는 중간에 몇 번이고 책을 덮고 깊은 상념에 빠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 오늘날 교양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 책을 통해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