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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을 지배하는 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책을 읽는 이들에게 확실하게 인지시켜 준다. 일본의 의식구조를 면밀하고 심층적으로 파고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허와 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일본에 관해 쓴 책들은 시중에 많지만 이 책은 실제 일본인의 의식세계를 자세히 보여 주고 그렇게 된 배경을 꼼꼼하게 짚어내고 있다. 일단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사는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균일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디테일하게 만날 수 있다. 혼네와 다테마에나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엔료, 이목등이, 그러한 사회적, 개인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고찰한다.
2부에서는 그러한 뒤틀린 ‘와’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언급하며 했던 이야기는 현재의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는 와의 세계에서 배제된 삶을 살아가는 일본인을 상징처럼 만날 수 있다. 저자의 심층적인 탐구와 지적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을 아주 여러 날 깊이 있게 읽었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은 생각보다 뿌리깊은 혐한의식을 갖고 있고 그것이 사회 안에서 묵인되고 있는 현상 등을 주목해서이다. 우리가 반일 감정을 이야기 할 때는 1945년 전 후의 사정을 이야기 하는 오래된 감정이지만 현재의 일본이 우리에게 갖는 감정은 혐오적인 그 이상이라는 것을 자세히 들려 준다. 3부에서는 여론을 이끄는 다수의 공기, 메센이 갖는 구성원의 행동을 강제하는 정신지침들과 오다 토시오의 6세대 구분을 통한 현재 일본의 모습을 독자들이 알 수 있게 해 준 친절한 장이다. 여기서 6세대란 전쟁 참여 세대, 전쟁을 겪은 세대, 단카이 세대, 중간에 낀 세대, 단카이 주니어 세대와 그 이후의 세대를 말한다. 2000년 이후 일본의 새대교체 상황까지 자세히 적고 있어서 이 한 권만 정독해도 일본인이 갖는 생각과 가치관, 미국을 의식하는 이유들을 알 수 있고 뿌리 깊은 혐한 정서에 바탕을 둔 일본인의 정서까지 캐치할 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사건이 아닌 굉장히 오래 된 정서가 행동화되었음을 확인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가 애국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4부에서는 밖의 세계와 일본 편을 실었다. 끊이지 않고 신사참배를 하는 일본인의 속내를 알 수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 편은 일본이 갖는 한국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 그리고 뿌리깊은 차별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이다. 극일 시대의 종언 편에는 작가가 담으려고 한 많은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다양한 자료의 구성과 신문들, 책자들의 인용을 통해 이 책이 갖는 장점과 연구자로서의 장점을 책을 읽는 독자가 만끽할 수 있었다. 오타가 6개 정도만 눈에 보였는데 이 부분은 출판사에 알려 줄 생각이다. 나는 이 책을 정성을 다 해 읽었다.
저자의 열정도 놀랍지만 일본에 대해 문외한인 한국의 독자라 할지라도 현재 일본이 세계 속에서 점하는 위치나 그들이 미국이나 유럽 세계에 갖는 생각들, 한국을 바라보는 눈, 일본 자국민 내에서의 와의 세계나 일본의 이상론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훌륭한 책이다. 아쉬운 것은 정치인들에 대해서 더 깊은 자료가 없어서였지만 이 책이 갖는 주제가 <응집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 해부>이니 그 부분은 저자의 의도한 바 이상 200% 성과를 거둔 책이라 생각된다. 말로만이 아닌 제대로 된 일본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저자의 연구가 지속될수록 더 많은 일본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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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관련된 서적은 많습니다. 저 역시도 간간히 읽어보았지만 대략적으로만 이해를 하고 있었고 읽은 책들 역시도 저자들의 감정이 조금은 베어있었기에 객관적으로 일본을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와! 일본』이라는 책을 통해서는 일본인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 역시도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한국인의 시각에서 일본, 일본인을 무작정 펌하하는 오류를 피하려 노력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역사적 감정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감정을 배제할 수 없었을텐데 참고문헌이나 신문자료, 방송매체(드라마) 등을 통해서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일본이라함은 '와'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바다로부터 고립된 섬나라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와의 세계'에서 배제된 삶을 그렸다고 합니다. "다섯 명은 모두 대도시 교외의 '중상류'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는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로, 아버지는 전문직이거나 대기업 사원이었다. 자식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계층이었다. 가정 또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평온하고 이혼한 부모도 없었으며 어머니는 거의 집에 있었다. 학교는 대학 진학률이 높은 명문고에 성적 수준도 꽤 높았다. 생활환경으로 볼 때 그들 다섯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았다"(p. 13) 배제는 죽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불러왔다. 이 소설은 고등학교 친구 그룹에서의 배제 경험을 극복하지 못한 채 독신으로 사는 30대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배제된 원인'을 찾아 4명의 친구들(실제론 한 명이 사망해 3명의 친구를 만난다) 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면 '와의 세계'는 이상적일 수 있습니다. 좀더 그들간의 유대감을 형성하여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단점들 - 혁신을 막아 조직의 노쇠화를 불러 일으킴, 외부 배척과 갈라파고스의 함정 등- 이 있기에 이를 보다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왜 일본인이 한국을 미워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양심적 일본 지식인조차도 "수백만 명이 희생된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인에게 왜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보다 더 오래된 과거인 식민지를 떠올리는 반일이 더 큰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양국의 엇갈린 인식의 골은 이만큼 크다. -page 248-249 라고 서술하고 그에 대한 조사자료를 근거로 이야기를 서술하였습니다. 패전세대는 의도적으로 한국을 '밖의 3세계'에 놓았으며 '안의 세계' 일원인 재일한국인에겐 말을 걸지 않는 무시라는 이지메를 행했다. 그사이 일본의 험한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한국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기보다는 무시하다보니 존재 자레가 점차 희미해졌고, 싫고 좋고의 문제를 떠나 무관심에 다다른 것이다. -page 252 무관심이야말로 더 무서운 말인 것임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일본. 아무래도 그것은 그 나라의 환경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부족하기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신숙주의 유언은 전후 70년 만에 등장한 '밖의 2세계'에 동요하는 일본 '와의 세계'와 애국론자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기도 하다. 한국과의 '화'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page 352 아직은 해결되지 않은 일본과의 문제들이 신속하게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책을 덮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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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5-181 『와(和)! 일본』 성호철 / 나남 2015년은 일본과 치욕의 역사가 엮어진 후 70년이 된 해이다. 친일(親日), 지일(知日), 克日(극일)등의 단어들은 지금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일본은 가깝게 지내자니 불편하고 멀리 지내자니 불안한 존재다. 이번 중국 항일전승기념일 열병식에 박대통령과 반기문 사무총장의 참석에 일본은 그 불쾌감을 매우 리얼하게 드러냈다. 그 표현이 좀 심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어찌할까? 외면하고 살까? 그러지 못할 바엔 알고 지나가는 것이 좋겠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70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양국 모두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깔린 양국민의 정서는 크게 변화는 없을지라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기존의 분위기와 바뀐 마인드 그 흐름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성호철은 국내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근대문학을 공부했다. 국내에 들어와 기자 생활을 했다. 한 동안 일본을 떠나 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시 일본 열병이 들었다. 세상이 아는 일본을 혼자 모르고 있었던 듯, 다시 일본을 파고든다. 닥치는 대로 읽고, 눈이 충혈 되도록 고민하고, 다음날 일본인 지인을 만나 물어볼 질문을 생각하며 설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내가 읽은 책 중 일본을 이만큼이나 깊게 파고 들어간 책은 아직 없었다. 지금까지 일본, 일본인을 이야기한 책들은 모두 퍼즐 맞추기의 한 과정이자 그런 몇 장의 퍼즐 조각일 따름이라고 한다. 이 책이 찾은 몇 장의 조각은 ‘메센’(目線), ‘부의 향유 세대’, ‘균일론(均一論), ’와‘(和)와 전(戰)의 세계, 눈(目)의 지배 등이다. 저자는 “이런 퍼즐 조각들이 ’일본이 앞으로 가려는 길과 방향 그리고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적고 있다. 양(洋) 큰 바다 저쪽의 세계 “일본인의 잠재의식 속에선 ‘안의 세계’인 일본은 섬나라다. 밖의 세계는 큰 바다 저쪽에 위치한다. ‘양’의 존재는 일본의 ‘안의 세계’를 ‘밖의 세계’와 구분 짓는 절대적 요소이자 ‘밖의 세계’가 쉽게 ‘안의 세계’에 근접하지 못하게 막는 고마운 장벽이다.” 원나라와 고려의 연합군이 일본을 공격했을 때 큰 바다에서 태풍이 불어와 이들의 배를 침몰시켰다는 ‘가미가제’(神 風 : 신의 바람)는 ‘양’이 ‘안의 세계’의 방패 역할을 수행한 실제 사례였다. 가미가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의 자살특공대로 바뀐다. 메센의 정의와 형성 과정 “숱한 눈(目)들이 보는 시선의 합(合)인 메센은 ‘안의 세계’(집단)의 입장에 서서 세계를 보는 자세다. 한번 정해지면 ‘안의 세계’를 지키는 논리로서 하나의 행동지침이 되기도 한 메센.” 현대 일본의 메센은 치열한 갈등 속에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메센이 부딪히며 일본이란 거함의 항로가 흔들리고 있다. 일본인에게 메센은 정치적 지지를 묻는 여론과 달리 생활 전반에 걸친 행동지침이다. 비 오는 날 전철을 타면 모든 일본인이 우산을 다 접어 끈으로 잘 묶는다. 전철에선 신문을 활짝 펴지 않고 읽을 기사만 보이게 접어서 읽어야 한다. 전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안 된다. 이 일본인들은 한국과 중국에 차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른 일본인과 다른 종족인가 일본과의 ‘화(和)’ 일본과의 ‘화’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_류성룡의 《징비록》중 신숙주의 유언 조선시대의 문신 신숙주는 성종(成宗)에게 이 같은 유언을 남겼다. 《징비록》에 따르면 성종이 죽음을 앞둔 신숙주에게 유언을 물었고 그의 대답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성종은 유언대로 일본에 사절을 파견하고 교린 관계를 유지하며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과의 교린은 흐지부지 된다. 그 사이 일본은 하나의 힘(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으로 합해진다.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7년간 전란을 겪었다. 강화도에 들이닥친 일본 함선을 보고 놀라서 작성된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 그리고 치욕의 한일합병으로 이어지는 일본과의 관계역사다. 1980년대에 들어서 한국은 극일을 선언했다. 욘사마의 등장과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 케이팝의 인기 등 2000년 이후 변화가 생겼다. 한류븀이 일었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덴노에 대한 사죄 발언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경제 불황에 따른 애국론의 부상은 한류를 혐한으로 바꿔놓았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냉온요법처럼 왔다 갔다 한다. 이런 행보 속에 한일 관계가 지혜롭게 운영 되어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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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철 저자의 『와(和』)! 일본』은 나남 출판사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받은 책이다. 출판사에서는 서평단 신청자에게 이 책에 대한 기대평을 남겨줄 것을 요청했고, 나는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겼다.
일본에는 두 번 다녀왔습니다. 처음에 간 것은 1993년…, 그때는 간단한 일본어 회화만 배우고 갔지요. 두 번째 간 것은 2014년…, 그때는 그 지역의 명승지만 익히고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것이 일본어와 명승지만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일본인의 의식구조, 그들의 생각을 알고 일본어와 지역을 볼 때 더 많은 것을 보이고,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 네 번, 어쩌면 그 이상일 지도 모를 일본 방문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펼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은 댓글에서 밝힌 그대로이다. 일본이란 나라에 호기심이 있고 읽고 싶은 마음이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읽기에 힘겨운 인문서는 아닐까, 라는 부담감도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펼친 이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이 넘치는 책이었다. 저자는 ‘아름다운 일본의 역설’이라는 첫 장에서 이런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규모 9.0의 대강진과 10m가 넘는 대강진이 동일본을 덮치고 1만 8천명의 목숨을 빼앗아 간 2011년의 비극 당시에 참사가 일어났을 때이다. 현장에서는 약탈도 방화도 없었으며 굶주림 속에서도 배급받는 우동을 서로 양보하면서 질서를 지켰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노숙자들이 살해당하고 폭력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불량청소년이 아닌 주변의 평범한 청소년들이었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는 2014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느 것이 일본의 얼굴인가? 극한상황에서 질서를 지키며 먹을 것을 양보하는 일본인은 누구이고, 노숙자를 폭행하거나 죽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일본인은 누구일까
저자는 아름다운 일본인이 노숙자를 죽이는 일본인이 될 수도 있고, 노숙자를 죽이는 일본인이 극한 상황에서도 질서를 지키는 일본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즉 그들이 모두 ‘아름다운 일본’의 일부임을 ‘와(和)의 세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안’의 세계의 사람들끼리는 질서와 예의를 지키지만, ‘밖’의 세계의 사람들은 인간 이하로 보거나 적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 앞에 고통을 공유하고 있는 이웃은 ‘안’의 세계의 사람이고, 노숙자들은 일본인으로 볼 수 없는 ‘밖’의 세계의 사람이라고 한다.
둘째, 책장을 넘기면서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와(和)의 세계’의 개념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 있다고 한다. 일본의 어느 집단이건 기준인 ‘1’이 있고, 그를 둘러싼 ‘다(多)’가 있다는 것이다. 교실에서는 담임교사가 1이고 학생들은 다이며, 나라에서는 일본왕이 1이고 모든 국민이 다라는 것이다.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의 책가방 규격과 생상까지 동일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서양인의 반응은 두려워하면서 중국인이나 한국인의 비판은 왜 무시하는지, 지금에 와서 중국인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한국인을 무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모든 것들이 ‘와(和)의 세계’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셋째, 우리는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대국이다. 또한 어쩔 수 없이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이기도 하다. 저자의 많은 대안 중에서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인용한 신숙주의 유언이 인상에 남았다. 성종이 죽음을 앞둔 신숙주에게 유언을 묻자, 그의 대답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일본과의 화(和)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신숙주의 속뜻이 여러 갈래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섬나라 일본에 마주한 반도에 위치한 국가로서 ‘섬과 대륙을 이어주는 역할’을 제시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을 정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와(和가)’를 실천하면서 가교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윈윈의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흥미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문서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일본에 관심이 있는 독자, 일본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일본의 일면을 알려주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학생에게는 좀 어려울 수도 있고, 고등학생도 편안하게 읽을 책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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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뱀이나 도마뱀 등의 파충류를 보면 대게 징그럽고 섬뜩하다고 느끼는 것은 예전 파충류인 소형 공룡들이 초기 포유류를 주식으로 잡아먹으면서 생긴 형모감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와 비슷하게 일본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보면서도 정작 재미있게 보면서도 정작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거리감을 가지고 지내는 것은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는 그러한 거리감을 그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 한 감정이라며 위안을 삼으며 ‘일본’, ‘일본인’에 대하여 그간 무관심 속에서 갈아 왔다고 해야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일본의 방문연구원으로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일본과 일본인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물찾기가 아니라 퍼즐맞추기임을 깨달았다고 하는 저자와는 달리 『와! 일본』은 일본에 대한 보물찾기와 같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현대 일본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와 고도성장기 세대 및 장기 불황기세대 등이 공존해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일본인이라는 뿌리가 같으므로 공통되는 큰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데, 저자는 일본인의 특징을 다른 이들과 조화롭게 사는 삶의 방식인 ‘와(わ)’와 그 구성원들의 시선의 합(合)으로 집단의 입장에 서서 세계를 보는 자세인 '메센(目線)'을 일본의 특징으로 보고 있다.
이에 지장학적인 근거로 섬나라라는 특징을 들고 있는데 같은 섬나라인 영국과는 달리 일본은 집단에서 배제되면 섬 밖으로 밀려나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인식이 크므로 자신보다 집단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와’와 그 결과인 ‘메센’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집단의 눈(目) 때문에 개인적인 불편 및 불만을 참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다른 문화권 특히 서양인인 느끼는 친절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살기는 불편한 일본의 공기인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 아베 총리의 뉴스만 보면 치솟던 불편함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인들의 다수는 태평양전쟁을 자신들의 집단이 침략당한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동양 문화권을 서양 열강들로부터 해방시키려다 미국에 패한 전쟁으로 말이다. 그래서 같은 패전국인 독일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면서, 종종 자신들이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인양 그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조정래 작가의 소설 ‘정글만리’를 읽을 때 일본 천황의 항복문을 처음 접했었는데, 주인공격인 송재형 뿐만 아니라 그 글을 보고 울분을 토하던 중국인들을 보고는 같은 생각을 하였었는데, 이번에 일본인들의 와와 메센 등을 조금 알고 나서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일본인들의 생각을 조금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소득이 있었던 『와! 일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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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함도가 세계인류문화유산에 등재, 평화의 소녀상 훼손 및 위안부 문제 외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한국을 자극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저들은 왜 과거사 문제를 외면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특히 8월 29일 경술국치를 맞아 명치제국의 죄악상에 대해 공부하며 그들의 생각과 의식구조가 궁금했던 차에 나남 출판사의 <와! 일본> 책을 접하며 그 들의 생각을 파헤쳐 보기로 합니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단일 민족으로 외부세계의 침입없이 자기들의 영토를 이어왔다는 점과 자연재해로 그들의 생활기반이 송두리째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숱한 내전으로 인한 남자의 평균연령이 무척 낮고,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군의 힘이 강하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실패는 곧바로 죽음을 의미하니까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으로 조선, 중국, 아시아가 가장 큰 피혜를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반대로 일본인은 '일본인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184페이지> - 즉, 중국의 속국이었떤 조선을 독립시키기 이해 중국과 전쟁했고(청징ㄹ전쟁), 당시 영일동맹 중이던 일본에게 가장 위험한 적이었던 러시아에 물정 어두운 조선이 근접(아관파천)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또 전쟁을 했고(러일전쟁), 연약한 조선이 일본과 같은 나라가 되고 싶다고 해서 보호하기 위해 합방(조선을 강제로 병합)했다. 시야를 넓혀 보니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도 모두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에 침탈을 받고 있으니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이들을 도와주러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 <193페이지> - 이런 생각을 갖은 일본인들이기에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배신당했다" 고 느낀다.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저지르며 한국인을 피해 당사자로 보지 않고 같이 침략 전쟁에 나선 2등 국민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패전 후 한국인은 패전국민이 아닌 승전국민으로 행동했다. 일본인에게 수십 년간 차별과 착취를 받았던 한국인, 특히 일본에 살던 제일한국인은 자신들의 권리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냉정한 국제 정세는 당시 한국을 승전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인의 정서로는 2등 국민이 우쭐해서 1등 국민을 비난한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결과가 1949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드러난 혐한 의식이다. -<251~252페이지>-
이렇듯 일본은 과거부터 한번도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정과 안보가 가장 큰 관심거리이다. 또한 그들을 무력으로 굴복했던 미국의 시선에 무던히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강한 일본을 추구하며 이제 그 경계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메이지시대로의 회귀를 꿈꾸는 사람들은 더 이상 노인들이 아니라, 잃어버린 20년을 지내고 꿈도 희망도 잃은 젊은 세대들의 염원이다. 그 결과로 평화헌법 폐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군대 해외파견 등을 준비하며 다시 제국주의의 길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더이상의 반일, 극일 등의 감정적인 부분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감정이 아닌 국가의 안보와 발전을 위해 서로의 상생을 생각하고 극일의 감정을 벗어나야 한다. 일본 또한 제국주의로의 퇴행이 아닌 세계 국가 속의 한 나라로서 외부세계와 평화와 그들의 생각을 바꿔냐 하지 않을까? 저자의 마지막 글이 입을 맴돈다. "한국과의 '和'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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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이렇다. 일본인은 "와"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엔료해야 하고 메이와쿠하지 않는다. 그러나보니 혼네와 다테마에가 다르다. 이것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메센을 의식한 행동이다. 다시 말하면, 주변의 눈을 의식하면서(메센) 엔료하고 메이와쿠하지 않기 위해서 혼네와 다른 다테마에를 행동해야만 "와"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의식 구조를 사례를 들어가며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최근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논란과 우경화, 일본군 위안부 논란, 한류 열풍에서 혐한 시위까지 왜 일어나고 변화하게 되었는지 그 의식의 흐름에 놓이게 된다.
안과 밖을 구분하고 안의 세계에 남기 위해 안의 행동과 사고에 맞추어 응집 유지되는 세계가 "와"의 세계이다. "와"의 사전적 의미는 두개 이상의 수와 식을 합한다는 의미로, 여러이 더해져 새로운 집단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1:다로 응집되는 세계이다. 크게는 1:천황까지 확장된다. "와"의 세계는 구성원 모두 같은 행동을 하는 조화로운 공간이다. "와"에서 균일성을 벗어난 구성원은 왕따의 대상의 되기 십상이다.
주체로서 사물을 보는 것은 시선이지만 다른 주체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행위는 메센이라고 한다. 누군가 나를 지켜 보고 있다는 눈의 지배를 받는 일본인은 타인을 의식하는 행동 방식이 엔료와 메이와쿠이다. 엔료는 선뜻 행동하지 않거나 양보하는 것을, 메이와쿠는 정해진 룰을 지키지 않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메이와쿠인지 아닌지는 옳고 그름과는 상관 없다. 지하철 내에서 전화통화나 큰소리로 떠드는 것은 모두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전화통화는 메이와쿠이지만, 떠드는 것은 메이와쿠가 아니라는 식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여, 즉 메센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다테마에이다. 다테마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듯이, 속마음 혼네와 반대의 행동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다테마에는 와의 세계를 따르기 위해 드러내는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전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인과 한국인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우리의 반일과 일본의 혐한은 그 기본적인 의식에서부터 다르다.
패전후 일본은 밖의 세계, 미국에 의해 "와"의 세계가 새로운 메센으로 변화하여 전쟁을 참회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인다. 1970년대 <금각사>의 저자인 미시마 유키오가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하면서 메이지유신적 애국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이때까지 일본은 한국인이 패전국민이 아닌 승전국민으로 행동한데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한국을 밖의 제3세계로 놓고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가 점차 무관심하게 되었다.
1980년대 경제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자신감이 붙은 일본은 미국에 대등한 외교력을 발휘한다. 이 때한국에게 일본은 증오와 흠모의 대상이었지만, 일본에게 한국은 철저하게 관심 밖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릴 때 즈음에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중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1990~2000년대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일본인은 더욱 응집하여 애국론이 견고해진다. 한류 열풍이 강하게 불었지만 일본인은 한국의 반일 감정을 알게 되고 경제적인 기반이 무너지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혐안의 조류가 불었다. 거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위기 의식이 높아지고 일본인은 더욱 응집하면서 혐한의 분위기는 더욱 거세졌다.
세계 TV 시장 1위, 2위인 삼성전자와 LG 전자는 일본 점유율이 0~2%에 머물렀다. 삼성전자는 일본에서 철수하였고, LG전자는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일본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 라인이 일본에서 한국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한 마케팅으로 이용자가 3억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올렸다. 저자는 삼성과 LG는 이미 한국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거부감을 줄이기는 힘들므로, 마케팅 전략을 바꾸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본 최고 기업의 부품을 탑재해 성능을 극대화', '일본인을 위해 특별하게 제작한 제품' 등 엔료하니 배제에서 풀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것이 절실하게 와닿게 하는 책이었다. 한국은 일본 식민지 지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무조건적인 반일, 극일 감정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은 일본이 20년은 앞서가는 그래서 어찌보면 선진화, 경제화에 따른 폐해들을 답습하지 않도록 반면교사할 나라로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점차 우경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의 의식이 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본의 혐한 조류의 완화를 위해서라도 이 책의 출간은 반가운 것이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