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5)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0%
  • 리뷰 총점8 2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0.0

포토/동영상 (4)

리뷰 총점 종이책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내용보기
소리가 사라진 자리, 고요하고 평온한 순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무는 시간. 침묵은 그저 말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침묵은 너무도 다채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의미까지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돈을 지불해서라도 얻고 싶은 평온이며, 또 다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내용보기


소리가 사라진 자리, 고요하고 평온한 순간,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무는 시간. 침묵은 그저 말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침묵은 너무도 다채로운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의미까지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침묵은 결코 수동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돈을 지불해서라도 얻고 싶은 평온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소음 때문에 누릴 수 없는 사치가 되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자는 상대를 침묵시킴으로써 자신의 힘을 행사하고, 반대로 약자는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 말하지 않는다는 동일한 행위가 어느 순간에는 억압의 결과가 되고, 다른 순간에는 저항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침묵의 의미는 침묵 그 자체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침묵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침묵이라고 믿었던 순간에도 완전한 침묵은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극도로 조용한 공간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몸이 내는 소리가 선명해지고,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을 때조차 우리의 뇌는 문장을 일종의 소리로 받아들인다. 겉으로는 아무 소리도 없는 독서의 순간에 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장 깊숙이 듣고 있는 셈이다. 침묵하려 할수록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역설은 무척 인상적이다.


예술에서 침묵이 작동하는 방식 역시 흥미롭다. 음악에서 음과 음 사이의 멈춤이 다음 소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그림 앞에서 언어가 물러난 자리에는 감각과 감정이 들어선다. 말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이 있다.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말과 소리가 차지하던 자리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올 공간을 만드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는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붙잡고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생각을 끊임없이 뻗어나가게 한다는 데 있다. 음악과 문학, 경제와 계급, 권력과 폭력, 과학과 신체, 독서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이야기는 ‘침묵’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점을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한 가지 주제를 이토록 다양한 층위로 뒤집고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개념 하나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품고 있는지 발견하게 하는 것. 그것이 『침묵』이 주는 가장 큰 지적 즐거움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침묵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침묵은 소리가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미처 듣지 못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비밀스러운 순간인지도 모른다.


#침묵 #지식산문 #복복서가 #인문에세이 #책추천 


*도서증정 @bokbokseoga_publishing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7 2026.09.0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침묵의 여러 얼굴을 마주하다
"침묵의 여러 얼굴을 마주하다" 내용보기
존 비게닛의 <침묵>을 읽기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침묵은 비교적 단순했다. 소음이 거의 폭력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잠시 귀를 닫고 마음을 쉬게 하는 것, 심신을 정화하는 명상적인 시간 같은 것이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침묵이 예술이 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포용의 의미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침묵은 그렇게
"침묵의 여러 얼굴을 마주하다" 내용보기


존 비게닛의 <침묵>을 읽기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침묵은 비교적 단순했다. 소음이 거의 폭력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잠시 귀를 닫고 마음을 쉬게 하는 것, 심신을 정화하는 명상적인 시간 같은 것이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침묵이 예술이 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포용의 의미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침묵은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와 사회, 종교와 예술, 고통과 폭력의 자리에서 침묵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교정시설에서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훈육할 때 때리기보다는 혼자 방에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낫다고 쉽게 말한다. 나 역시 그런 방식이 비교적 평화로운 훈육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침묵과 고립이 사람의 도덕성을 회복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퇴행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극단적인 경우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강요된 고립과 침묵은 절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저자가 청소년기에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머물렀던 경험도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말을 삼가고 침묵하는 생활을 경험했지만, 사제들의 모습이나 자신의 신앙심이 부족해서 사제의 길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곳의 침묵 자체가 어딘가 불편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와닿았다. 침묵은 평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다.


독서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다가왔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잠시 자신의 생각을 멈춘다. 나는 독서를 저자와 핑퐁처럼 생각을 주고받는 행위라고만 생각했는데, 깊이 몰입한다는 것은 한동안 나의 생각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겪은 충격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그 몰입의 경험마저 이전과 같을 수 없었을 것 같다.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영화와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 더 이상 현실을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여성들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깊은 바다에서 고래들의 의사소통이 방해받는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 아팠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고래들이 늘어나고, 결국 더 많은 고래들이 혼자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침묵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 더 많은 외로운 고래들이 아닐까.‘(223쪽)라는 마지막 문장 앞에서 침묵이 더 이상 고요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침묵에도 지켜야 할 침묵과 깨뜨려야 할 침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침묵은 필요하지만, 처벌을 위한 침묵, 학살과 폭력을 은폐하기 위한 침묵, 상대의 침묵을 강제로 끊어내기 위한 고문은 결코 같은 의미의 침묵일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침묵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침묵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존비게닛 #침묵 #지식산문o시리즈 #silence 

@bokbokseoga_publishing 

YES마니아 : 로얄 i********g 2026.09.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침묵의 부재, 그 아이러니함에 대하여
"침묵의 부재, 그 아이러니함에 대하여" 내용보기
몇 년 전, 뒤척이던 밤 유튜브에서 유의 깊게 보았던 ‘아시아 유일의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다큐 영상이 책 《침묵》을 읽는 동안 떠올랐다. 화면 너머로 사람의 목소리가 단 한 자락도 들리지 않던 공간, 그들이 견뎌내는 고요는 과연 어떤 밀도로 빚어진 것일까.이 책은 고요함이 사라진 시대에 ‘침묵’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수도원 생활을 바탕
"침묵의 부재, 그 아이러니함에 대하여" 내용보기

몇 년 전, 뒤척이던 밤 유튜브에서 유의 깊게 보았던 
‘아시아 유일의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 다큐 영상이 책 《침묵》을 읽는 동안 떠올랐다. 
화면 너머로 사람의 목소리가 단 한 자락도 들리지 않던 공간, 
그들이 견뎌내는 고요는 과연 어떤 밀도로 빚어진 것일까.


이 책은 고요함이 사라진 시대에 ‘침묵’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수도원 생활을 바탕으로 종교적 ‘자발적 침묵’을 이야기하며,
모든 잡음과 타인의 목소리를 걷어낸 뒤 침묵을 채우는 언어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모든 인간의 언어는 자기중심적이다. 
한마디 말은 나를 증명하고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출발한다. 
침묵은 내 목소리를 잠시 대화의 공간에서 지우며, 
자신을 위한 요구를 멈추고 마음의 빈자리를 탐색하면서 타인의 목소리가 들어올 공간을 마련한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행위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흥미롭다.
‘침묵의 읽기’에서 독서로 발견한 ‘묵독’의 의미는 조용한 책 읽기보다 깊은 곳에 있었다.

 뇌 과학자 야오의 실험처럼 
우리가 텍스트를 제대로 읽을 때 뇌는 청각 처리 기능을 자발적으로 끌어낸다고 한다. 
머릿속에서는 '내면의 목소리'가 단어를 발음하고, 
작가의 의식이 내 의식의 공간으로 들어와 말을 건넨다.


독서란 타인에게 내 의식을 잠시 내어주고 나의 목소리를 낮추는 침묵의 토론이다. 
그 안에서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__


“우리가 추구하는 침묵과 두려워하는 침묵의 본질적 차이는 
그저 그것이 자발적인가 아니면 비자발적인가 하는 차이뿐일까?”


한 사람의 침묵은 권력이 되기도 하고 형벌이 되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발화의 주체가 입을 다물면 주변은 그의 감정과 의중을 살피느라 긴장 속에 놓인다. 
감옥에 갇혀 타인과의 언어적 교류를 전면 차단당하는 비자발적 침묵은 
한 인간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게 된다. 
침묵은 스스로 선택한 고요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강요된 고립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침묵이 가진 다층적인 의미를 되새기면서 얼마 전 책을 들고 캠핑을 떠났다. 
귀를 찌르고 마음을 어지럽히던 도심의 소음, 
억지로 자연의 소리를 덧입힌 영상 재생 음들을 모두 걷어내고 진정한 고요함을 느껴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날 밤 내가 마주한 것은 ‘침묵'의 부재였다. 
소음을 완벽히 차단한다는 무반향실에 들어간 인간이
 자신의 혈류 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우리 자신이 소리가 된다”라는 진실을 확인하듯, 
세상에 완벽한 침묵은 존재하지 않았다.


계곡의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저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음이 적막을 깨고 들려왔다. 
자연으로 도망쳐 완벽한 정적을 욕망하던 나에게 
인간의 소리도 이 세계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순간이었다.


책에서 발견한 침묵은 입 밖으로 내민 소리가 사라진 상태보다 
타인과 세상을 잇는 내면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현실의 공허한 말과 그 안에 깃든 욕망,
 침묵 속에 담긴 의미를 따라가며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의미를 오래 생각하게 했다.

지식산문 O 10 《침묵》
지은이 존 비게닛
옮긴이 김명남
펴낸곳 복복서가(주)
펴낸이 장은수 

#지식산문 #침묵 #인문에세이 #복복서가 #책스타그램 #KBS다큐
#침묵 #고요 #적요 #침묵의목소리 #책과나 #책읽는시간 #독서기록  #서평 #인문학 #생각의기록 

*본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u*****e 2026.09.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침묵을 사고 파는 시대에 침묵을 사유하기
"침묵을 사고 파는 시대에 침묵을 사유하기" 내용보기
요즘에는 조용한 장소가 드물다. 어딜 가더라도 소리로 가득하고, 그건 대부분 소음이다. 예전에는 카페가 조용히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은데, 요즘의 카페는 시끄러운 케이팝을 팡팡 틀어대서 힘들다. 물론 나는 케이팝을 좋아하고 즐겨 듣지만 카페에서까지 그걸 듣고 싶지는 않다.도서관에는 음악이 없어서 좋다. 아마 이 시대에 음악이 없는 유일한
"침묵을 사고 파는 시대에 침묵을 사유하기" 내용보기

요즘에는 조용한 장소가 드물다. 어딜 가더라도 소리로 가득하고, 그건 대부분 소음이다. 예전에는 카페가 조용히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은데, 요즘의 카페는 시끄러운 케이팝을 팡팡 틀어대서 힘들다. 물론 나는 케이팝을 좋아하고 즐겨 듣지만 카페에서까지 그걸 듣고 싶지는 않다.

도서관에는 음악이 없어서 좋다. 아마 이 시대에 음악이 없는 유일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요새는 어딜 가더라도 음악이 있다. 심지어 스터디 카페에서도 음악을 틀어준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내가 듣고 싶을 때만 음악을 듣고 싶은데. 원치 않는 음악을 듣지 않기 위해 이어폰을 껴야 하는 순간이 싫다. '노이즈 캔슬링'. 없애버려야 할 노이즈가 세상에는 너무 많다.

한편,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술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를 '소음'으로 느끼게끔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옛날이라면 그냥 참아냈을 소리도 근래에는 다 듣기 싫은 소음으로만 느껴져서, 바깥에서는 거의 항상 이어폰을 낀 채로 지낸다. 내가 선택한 소리 이외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

복복서가의 인문 에세이 '침묵'은 이런 내게 정면으로 말을 거는 듯한 책이었다. 침묵이 귀한 시대에, 심지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구매함으로써 침묵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침묵'이라는 것이 갖는 의미를 다각도에서 뜯어보는 책이다.

만약 이 책이 '침묵'을 정적, 고요, 이너피스와 같은 측면에서만 바라보았다면 정말 뻔한 책이 되었겠지만, 저자는 사회적·정치적 침묵에 관해서도 말함으로써 이 책에 독특한 가치를 부여한다. 책을 읽는 동안 말할 수 없는 존재들, 침묵을 강요당하는 존재들에 관해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지식산문O 시리즈는 여행가방, 퍼스널 스테레오, 트렌치코트, 기념품, 유아차, 임신테스트기, 인형, 청바지 등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해 인문학적인 시각을 제공하는 짧은 에세이다. 그런 '사물' 중 하나로 침묵이 선택되었다는 것이 독특하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면서도 평소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사유해볼 기회를 주는 좋은 책들이니, <침묵>을 읽고 마음에 든다면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 서평단 이벤트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r*******4 2026.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침묵》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침묵》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갈수록 침묵의 성소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조용한 세계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는가? 쩌렁거리는 라디오, 재잘거리는 텔레비전, 지지직거리는 스피커, 삑삑거리는 자동차 경보, 따르릉대는 전화, 끽끽거리는 모터, 털털거리는 에어컨, 웅웅거리는 냉장고, 부르릉대는 상공의 비행기, 그리고 그 밖에도 기계시대가
"《침묵》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이다. "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갈수록 침묵의 성소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조용한 세계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는가? 쩌렁거리는 라디오, 재잘거리는 텔레비전, 지지직거리는 스피커, 삑삑거리는 자동차 경보, 따르릉대는 전화, 끽끽거리는 모터, 털털거리는 에어컨, 웅웅거리는 냉장고, 부르릉대는 상공의 비행기, 그리고 그 밖에도 기계시대가 우리 삶에 가져온 갖가지 침입적 소음이 일찍이 1888년에도 예이츠가 그리워했던 "꿀벌 소리 울리는" 고독을 삼켜버리지 않았던 세계를?                p.7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발걸음, 카트를 끄는 소리, 공사장의 드릴 소리... 밖에 있던 집에 있던 마찬가지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면 집에서도 각종 전자음과 사물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소음에 지칠 때면 물 속에 머리를 가만히 담그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물 속에서는 소리가 희미해지거나 왜곡되어 잘 들리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욕조에 머리를 담그거나, 수영장에서 물 속에 들어갔을 때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리들로부터 벗어나 잠시 침묵의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물 속에서 소리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귀가 수중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물 속에서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평소에 워낙 소리에 예민한 편이고, 소음에 유난히 잘 지치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 지식산문 O 시리즈의 주제가 '침묵'이라고 해서 매우 궁금했다. 지식산문 O 시리즈는 들고 다니기에 딱 좋은 판형과 부담없는 분량으로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시리즈는 영국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Object Lessons(오브젝트 레슨스)’ 시리즈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책들을 선별해 나오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조명하는 사물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 작가들은 사물이 겪어온 다양한 변화들을,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풀어낸다. 형식에도 제한이 없다. 그래서 갖가지 주제와 형식의 다채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어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고 있다. 현재까지 열 권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 여섯 권을 읽었다. 그 동안 여행가방, 트렌치코트, 퍼스널 스테레오, 청바지 등 사물을 주제로 해왔던 것과 달리 형체도 질량도 없는 '상태'에 가까운 침묵이라는 주제가 등장해서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로런스 스턴의 백지가 독자에게 잠시 멈추라고, 침묵의 공간처럼 보이는 것 속에서 화자의 언어로부터 피신하라고 권했던 것처럼 종이에 적힌 글 속의 빈 공간은 모두 저자의 목소리로부터 벗어날 기회, 심지어 탈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읽기를 멈출 때 침묵 속으로 피신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늘 주절거리는 의식을 끊고 끼어들어 재잘거리는 화자의 목소리를 음 소거하는 것뿐이다.            p.115


현대사회에서 '침묵'이란 사치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자동차도, 냉장고도, 각종 전자제품들은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공항의 라운지라던가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등 침묵과 부를 연관 짓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일상적 소음에 시달리는 것은 주로 가난한 이들이며, 부자들은 값비싼 비용을 치르며 침묵을 구매하고 있으니 말이다. 침묵이 일종의 사치재가 된 오늘날, 침묵은 사고파는 고가의 상품이 되었다. 소음과 침묵의 분리는 사회계층의 분리를 실현하기도 한다. 침묵이 부자의 사치품이라면 소음은 가난한 자의 질병이며 불평등을 드러내는 계급장인 셈이다. 이 밖에도 강자 집단이 약자들에게 침묵을 강제하는 경우를 비롯해 일상적 차별의 예시와 사회와 기존 권력 유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사유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침묵의 읽기' 파트를 재미있게 읽었다. 독서란 침묵의 토론이 아니겠냐는 저자의 의견도 흥미로웠다. 누구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와 잘 쓰인 문장에 휩쓸려 자신을 잊고 상대의 의식 속에 빠져들었다가 전화벨 소리 같은 것이 방해하는 바람에 퍼뜩 정신 차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서란 어느 한 시점에 저자의 목소리와 독자의 의식의 목소리 둘 중 하나가 침묵되어야만 가능한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독서란 우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침묵시킴으로써 상대의 의식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그것이 우리의 목소리와 번갈아 발화하며 대화하도록 허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의 신경학 연구에서 묵독이 실제로 침묵인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정보도 흥미로웠다. 뇌가 '말없이' 읽기를 청각 현상으로 해석한다는 증거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다층적인 시선으로 침묵을 탐구하고 있다. 번잡한 세상 속에서 어딘가에 침묵의 지대를 설정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느 날, 이 책을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r*******n 2026.09.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