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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연휴에 대형 서점에 갔다가 고전적인 포장의 라면이 한무더기 쌓여있고, 그 옆에 놓여있는 이 책을 보는 순간 그 옛날 라면에 대한 향수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라면은 이제 건강이나 체중조절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왠만 하면 기피하는 음식이다. 요즘 라면은 고속도로 휴게소나 겨울산에서 말고는 별로 먹지 않지만 청년기를 돌이켜보면 거의 매일 라면을 먹었던 것 같다. 대학 졸업반이던 시절 기숙사에서 야식으로 먹던 라면맛은 지금도 간혹 생각난다. 철제로 된 이층침대에서 친구랑 밤늦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사람이 우리 '수면제' 먹으러갈까 말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이불을 박차고 매점으로 향하곤 했다. 라면을 다 끓인 후 생계란을 얹어주면 계란을 휘휘 저어서 국물과 노른자를 걸쭉하게 섞어 먹고 방으로 돌아오면 수면제가 약효를 발휘해 스르륵 잠이 들곤했다. 지금은 별별 라면이 다 나오고 있지만 그때처럼 황홀한 라면 맛은 다시 먹어보지 못했다. 아마 우리 세대의 한국사람 중에 라면에 얽힌 추억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면은 알다시피 일본사람들이 개발해낸 것이다. 우리들이 어렸을때 동네의 작은 국수공장에 빨래처럼 줄줄이 매달려 건조되던 소면의 전통에 중화요리의 국물맛을 더해 인스탄트 음식으로 탄생되었다. 처음에는 스프가 따로 없이 국수에 맛이 스며들게 해서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의 컵라면에 더 가까운 형태였던 셈이다. 나중에 스프를 따로 포장하고 냄비에 끓일 수 있도록 만들어 계란이나 야채 등을 곁들여 조금은 요리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발전해 나갔다. 이 책은 한일 라면역사에 중요한 두 인물인 일본 묘조식품의 오쿠이사장과 한국 삼양식품의 전중윤사장이 라면을 매개로 운명적으로 만나기까지의 개인사를 교대로 써가며 배경이 된 격동의 한일근대사를 기업인의 입장에서 반추하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전쟁의 폐허에서 굶주리고 있던 동포들에게 값싸고 간편한 식품을 공급해야겠다는 공통된 기업이념이 있었기에 만나자마자 마음이 통했고 평생 우정을 이어나갔다. 건면을 만드는 기계를 개발하고도 특허를 신청하지 않고 일반에 공개한 양심적 기업인인 후쿠이 사장이었지만 한국에 생산설비라인을 원가에 제공하고 무상으로 기술지원을 해준데에는 먼저 이탈리아 사람들이 묘조식품에 무상으로 스파게티를 만드는 기술을 원조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다. 삼양라면은 처음에는 고전했지만 미국의 밀가루원조와 쌀부족으로 인해 시작된 혼분식장려운동의 바람을 타고 눈부시게 성장했으니 우리나라 기업성장에는 늘 정치의 바람이 불었던 셈이다. 그후 우지파동으로 사세가 기울어지고 이제 라면업계의 1위 자리는 다른 회사가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의 무게 중심은 일본에 많이 기울어 있어 정작 삼양라면의 이야기는 에필로그 형식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라면의 역사는 속편으로 내도 좋을 것 같다. 후쿠이 사장과 전중윤 사장 덕분에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라면을 찾아볼 수 있으니 그들의 기업가 정신은 칭찬받아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저자가 이들에 대해 한없는 호의와 존경을 담아서 이 책을 썼기에 이들의 과오보다 공적에 대해 주로 기록된 편향된 책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래도 변혁의 열기가 식어버린 일본 시민사회 운동을 위해 한창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고려대학교를 선택해 한국어를 배우고, 동학이념을 좋아해 일본에서 '녹두'라는 한국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에 대해서는 호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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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면 세 끼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으로 한 끼 정도는 면으로 해결할 때가 있다. 다양한 면이 나와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고 있지만 인스턴트식품이 갖는 부적합한 영양 성분 때문에 즉석 식품을 꺼려하는 편이다. 어쩔 수 없이 라면을 섭취해야 하는 경우 열량을 낮추고 몸에 안 좋은 성분을 거르기 위해 두 군데의 냄비에 물을 끓였다가 라면만 넣어 삶은 뒤 그 국물을 따른 뒤 새롭게 끓인 물에 스프를 풀어 라면을 완성한다. 자극적인 맛은 덜하지만 불가피하게 라면을 섭취하는 경우 이 방법을 따른다.
세계 인스턴트 라면협회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 중 1위로 오른 한국은 지난해 1인당 연평균 라면 섭취량은 74.1개라니 날로 이채로운 라면이 출시되는 것만 봐도 라면 시장은 불황을 모르고 있다고 여길 정도다. 라면 마니아가 많은 만큼 한국의 라면 시장은 활성화되어 세계로 수출되는 품목으로 각광받는다니 인스턴트식품인 라면의 성장세를 가늠해볼 수 있다. 제국주의의 침탈로 곤핍한 시기를 지내고 광복 후 국가 재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여력도 없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의 식량난 타개를 목적으로 1963년 9월 한국 최초의 라면으로 삼양 라면은 출시되었다.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 주식인 쌀을 대체하여 한 끼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식품을 공급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라면은 삼양식품 설립자인 전중윤 회장과 일본의 묘조식품의 오쿠이 사장의 인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쿠이 사장은 가난한 나라 한국의 국민들이 누구나 배부르게 먹기를 바란다는 간곡한 전회장의 호소를 받아들여 라면 제조과정에서부터 기밀에 해당하는 스프 배합표까지 알려주며 협력 체제를 굳혀 갔다. 한 집안의 음식 맛은 장맛이 결정짓듯 라면의 국물 맛은 스프 맛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도 오쿠이 사장은 실패를 거듭하여 이뤄낸 스프 배합표까지 내주었다. 그 후 전 회장은 전수받은 라면 제조 공법 기술을 토대로 대량생산으로 박리다매를 내걸고 라면 시장을 이끌어갔다. 라면의 원활한 재료 공급을 위해 대관령 목장을 인수하여 5원 짜리 꿀꿀이죽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 국민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었다.
한국 전쟁 후 보험업계의 실력자로 부상한 전중윤 회장은 위기에 몰린 제일생명을 구하라는 재무부의 요청대로 보험사 사장 자리에 올랐지만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보험계를 떠나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였다. 유지(油脂) 제조회사인 민성산업을 인수해 삼양제유로 바꿔 라면 제조 원료 중 유지부터 시작할 요량이었다. 기존에 걸었던 길과는 다른 길이었기에 무모해보일 수 있는 길이지만 가지 않은 길에 도전하며 척박한 환경을 극복해나갈 용기를 내었다. 일본의 닛신식품 안도 도모후쿠의 라면 발명 이후 오쿠이 사장의 도움으로 건면사업에 착수하여 굴지의 라면 식품업계를 키워 온 동안 공업용 쇠기름 사건으로 타격을 받기도 하였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기업을 키워왔다.
주황색 표지에 삼양 로고가 박힌 라면을 양은 냄비에 끓여 둥근 소반에 둘러앉아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을 피해 후루룩거리며 젓가락질하던 추억은 따스함으로 스며든다. 다양한 즉석 식품들이 주를 이루는 바쁜 시대 트렌드에서도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하면 시장은 다양한 요리법만큼이나 소비자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라면이다. 급식이 이뤄지지 않을 때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컵라면에 물을 부어 후루룩 먹던 기억 때문에 라면은 쳐다보기 싫다고 하지만 가슴이 아려올 때면 따끈한 라면 국물에 식은 밥 한 덩이 넣어서 울음을 삼키던 음식이다. 인스턴트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칼칼한 라면을 먹어야할 때는 냄비 두 개에 물을 끓여서 염분과 칼로리를 낮춰서 먹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해외 오지를 여행 할 때 무심코 들른 구멍가게에서 발견한 한국 라면을 보고 반가움에 일렁이는 눈물을 감추고 라면을 사서는 봉지에 뜨거운 물을 넣어 반쯤 불린 라면을 먹었던 기억은 집을 나설 때마다 생각난다. 지금은 추억 속 아련한 향수를 달래는 음식 라면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기까지의 역사를 통해 굶주림을 면해주는 유용한 음식으로 사랑받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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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탄생과 역사 [라면이 바다를 건넌날]
나는 세계 최고 라면 소비국인 한국의 국민이어서 라면을 허구헌 날 끓여먹는다. 어쩌다 보니 라면은 김치와 찰떡 궁합이 되어서 김치가 떨어질 날 없는 우리 식탁위에 함께 놓여 매콤한 맛으로 나의 혀를 중독시켜 버렸다. 라면 한 봉지를 뜯으면 물만 팔팔 끓여서 꼬불꼬불 라면을 쏙 집어넣고 4분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그 기다림이 싫으면 3분이면 끝나는 즉석 라면도 있다.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라면은 어렸을 적에도 맛있었지만, 지금 먹어도 맛있다. 가정주부가 되어서는 때때로 밥 대신 끼니를 해결해 주는 라면이 고맙기까지 하다. 라면에 대해서는 나쁜 점을 끄집어내기보다 찬양에 가까운 좋은 점 말하기가 더 쉽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라면은 좀 짜게 끓여 먹은 다음 날 얼굴이 좀 붓는 것 말고는 트집 잡을 일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은혜로운 식품 아닌가... (이렇게 하여, 무늬만 가정주부인 나의 본색이 완전히 탄로나게 됨.)
어느 날은 라면을 맛있게 끓여서 먹고 있는데 평소 쓸데없는 질문 많기로 소문난 우리집 딸래미가 "라면은 왜 꼬불꼬불해?" 라고 물어봤다. 음, 뭐~ 튀겼으니까 꼬불꼬불해졌겠지? 라고 대충 둘러대고는, 찾아봐~ 라며 등을 떠밀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어디선가 그 답을 한 세 가지 정도 들은 적이 있는데 기억이 안 나서는 이 머리를 마구 쥐어뜯은 적이 있다.
이 책은 주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면이 일본으로 건너와 인스턴트 라면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다시 우리 나라로 들어오기까지의 삼국의 라면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라몐, 일본에서는 라멘, 우리나라에서는 라면이라고 불린다.) 그 중에서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라면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두 인물, 오쿠이 기요스미와 전중윤의 라면에 대한 열정을 그려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 식탁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인스턴트 라면의 발명가 안도 모모후쿠와 동시대를 살았던 오쿠이 기요스미는 묘조식품을 세워 일본 최고로의 비약을 꿈꾸었다. 한편, 해방 후 체신부 행정관으로 일하던 전중윤은 동방생명의 부사장으로서 경영 능력을 널리 알리게 되고 제일생명 사장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꿀꿀이죽을 얻어먹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식품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하여 삼양식품을 만든 그는 일본에서 라면제조기술을 배워오려 하지만 배타적인 일본 라면업계로부터 거절만 당하다가 묘조식품의 오쿠이 기요스미를 만난다. 전중윤의 진심을 알아주고 한국을 머나먼 이웃이라 생각하지 않는 오쿠이 기요스와의 만남은 파격적인 기술제휴로 이어졌고 오쿠이는 별첨스프의 비법을 선물로 전해주기까지 했다. 전중윤과 오쿠이 기요스미의 인연은 각 인물들의 '전기' 속 일화처럼 생생하게 읽힌다. 어찌 보면 그 생생한 대화를 소리로 옮겨다 놓는다면, 격동의 근대사를 다룬 라디오 드라마처럼도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은 일본인이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작가는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일본인으로 자부하며, 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의 탄생과 역사를 추적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한일 양국의 근대사 뿐만 아니라 기업가들의 경영 멘토링, 기업가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책의 말미에는 라면에 관한 오해와 진실, 코너를 만들어두었다. 앞서 내가 궁금해 했던 라면의 면발이 꼬불꼬불한 이유도 명쾌하게 실려 있음은 물론이다. 라면의 초창기, 일본에서는 면에 양념을 가미해서 끓여먹다가 나중에 별첨스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우리나라로 건너와 한 끼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을만큼 양이 많아졌고, 일본 라면과는 달리 매운 맛이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주눅들지 않을 만큼 다양한 맛과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우리 라면의 문화사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라면에 사활을 건 한국과 일본의 두 남자 이야기가 뜨끈한 라면 국물처럼 짜르르 마음 속에 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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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바다를 건넌날> 재미있는 라면인문학 라면을 통한 근현대사 이야기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이책을 읽고 난 뒤 제일 먼저 했던 생각은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그날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날이 될 것을 한국과 일본의 두 남자들은 예견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책을 읽기전에는 인스턴트식품인 라면처럼 책의 내용도 흥미위주의 이야기일꺼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가면서 라면이 바다를 건너 대한민국에 오기까지의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한일 관계,일제강점기, 한,미,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삼양라면의 탄생을 있게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흥미롭게 전개되어 책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삼양라면의 고 전중윤 회장과 묘조식품 오쿠이회장의 라면이야기는 인스턴트 라면의 기술을 정치적목적을 떠나 잿더미가 된 나라에서 생존을 위해 먹어야하는 배고픈 인간을 생각하며 삼양라면에 전수해준 묘조식품 오쿠이회장의 결단력과 6.25전쟁후 빈민국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배고픈이들에게 부담없는 가격의 라면으로 배고픔으로 벗어나게 하기위해 노력했던 전중윤회장에게서 감동을 받았다 또한 라면이 바다를 건너 한국에 오기전까지의 이야기에서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만날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체제가 되면서 미국괴 소련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누어진다 오쿠이회장이 바라본 한국동란 그리고 일본의 시각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일본은 '한국특수 '라고 불리는 경제부흥이 일어난다 이때 오쿠이 회장은 본격적인 라면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이때 일본은 일본의 어업 활동을 통제했던 연합군 사령부의 맥아더 라인을 샌프란시스코조약을 맺어 그 효력을 잃게 했다 (대한민국에서보면 샌프란시스코 조약또한 불평등하고 억울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어업의 피해를 막기위해 맥아더 라인 안쪽에 새로운 선을 긋고 영해주권을 발표하는데 일본언론은 분노로 들끊었다고 한다 패전의 좌절과 열등의식이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행동을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의식에서 자유로운 계층은 하층노동자들과 잿더미가 된 집터에 주저앉아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상대방의 상황에 마음 아파했던 소수의 사람들이었고 이런 소수의 사람들에는 오쿠이회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오쿠이 회장이었기에 삼양식품 전중윤회장이 식량난에 고통받는 한국인들의 실정을 이야기했을때 즉각적으로 동감을 표현하고 라면이 바다를 건너 한국에 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을 이책을 통해 알수 있어 일본에도 소수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 게되었다 이책 <라면이 바다를 건넌날>에는 라면을 둘러싼 굵직한 정치적이슈들도 등장한다 그런 라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고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이책의 매력인것 같다 라면의 인기가 대한민국에서 지속되는 것은 전쟁후 빈민국으로 온국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팠던 시절 따뜻한 라면한그릇이 주는 따뜻함이 우리들의 내면에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인지 왠지 라면을 여유있게 준비를 해놓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라면이 바다를 건넌날>책을 통해 알게된 재미있는 라면의 인문학 책인 것 같다 라면을 애정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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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 세상에 나온지는 다른 음식들에 비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은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중에 하나가 되었다. 짧은 시간에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는 아마도 조리의 간폄함이 가장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입맛에 따라 야채나 식재료의 첨가를 통해 다양하게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 또한 이유가 될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마음놓고 먹을 수 없는 이들도 있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라면이 이룬 성공 신화의 비밀은 무엇일까. 라면의 최대 미덕은 조리의 간편함이다. 가스레인지 불을 켤 줄만 알아도 조리가 가능한 라면은 대부분의 한국인이 생애 최초로 시도해보는 요리이다.... 조리의 유연성도 라면 성공 신화의 중요한 요인이다. 세계화에 성공한 로컬푸드의 공통점은 바로 조리의 유연성이다.... 라면은 지역에 따라 개인 취향에 따라 조리법과 부가 재료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한 음식이다.” - P. 253~258.
이런 라면이 사실 모든 정크식품의 대표로 욕을 먹고 있다. 높은 칼로리와 나트륨, 그리고 각종 합성첨가물, 특히 MSG 덩어리란 오해를 받으면서 먹는 것을 자제해야만 할 식품으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한끼 식사로서의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았던 라면이 이제는 몸을 망가뜨리는 피해야 할 음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 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한국과 일본,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 이야기>는 일본인 저자가 기록한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과 일본 묘조식품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의 라면으로 연결된 인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직 서로가 나눈 진심만으로 자신의 제조 노하우와 설비를 저렴하게 공급해 주었던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이나 얼마든지 다른 사업으로 더 성공할 수 있었음에도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해결해 주고픈 일심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라면기술을 익혀온 전중윤 회장의 이야기는, 모든 것을 돈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현대의 우리에게 가슴 따뜻한 무엇인가를 전해준다.
“국제관계가 전례없이 복잡 미묘하여 상호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요즘, 반세기전 라면이라는 맛있는 음식을 매개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 사이에 이어져온 돈독한 관계와 뜻 깊은 일들이 앞으로 두 나라의 미래를 인도하는 나침반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 P. 17~18.
“이탈리아가 전해준 스파게티 제조기술은 한 가닥의 면이 두 나라 사람들을 이어준 우의의 증거가 되었다. 라면 제조기술 역시 이윤을 낳아줄 비밀병기라는 비정한 갑옷을 벗어던지는 순간, 증오와 불신을 온정으로 바꾸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먹는다’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행위에 이어, 끝없이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과 사람의 강인한 의지가 만들어낸 끈이었다.” - P. 219.
이 책은 매일 또는 매주 먹으면서도 잘 몰랐던 라면의 역사와 거기에 담긴 창업주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 안타깝게도 국민들에게 나름 영양분이 충분한 한끼 식사를 만들어주고픈 마음으로 창업하여 발전했던 회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또는 어떤 권력의 힘에 의해서인지 오해를 받고 고발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사세가 꺾인 것이 아쉬울 뿐이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했던 힘든 노동자들에게 뱃속의 따뜻함을 주었던 라면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다. 왠지 오늘 밤에도 라면이 먹고 싶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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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으로 살펴보는 한국과 일본의 현대사,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이 책의 저자 무라야마 도시오는 ‘한국인의 영혼을 가진 일본인’이라고 자신을 설명한다고 하는데, 책을 읽다보니 일본에서 만들어져서 한국의 문화에 맞게 발달해온 라면 역시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가 탐구한 라면의 역사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의 경제는 한국전쟁 특수를 누리면서 회생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당시 전쟁에 필요한 물건들이 큰 수익을 내주었지만, 그런 일시적인 풍조에 휩쓸리지 말라는 조언을 받은 오쿠이 기요스미는 사람들이 삼시세끼를 걱정하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산업을 구상하며, 일본인의 식생활 향상에 필요한 ‘건면’ 제작에 힘을 쓰게 된다.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메이지 이후의 대발명’이라는 건면을 만들어낸 그는 이후 고도성장에 따라 변화하는 서민들의 식생활에 발맞추어 인스턴트 라면으로 눈길을 돌린다. 시식회장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묘조맛 라면’을 성공시킨다. 아내의 조언을 기억하고 맛을 연구하는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스프별첨제품을 만들어 위기를 뛰어넘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그가 시시회장에서 나와 홀로 걷다가 60년대 안보투쟁의 함성을 들으며 했던 생각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 세상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내가 멈춰서든 뒤로 물러서든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이 흐름에서 낙오되어버릴지 모른다. 멈추지 말고 무조건 앞으로 나가자!’ 그리고 묘조 식품의 오쿠이 사장과 다른 세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던 삼양라면의 고 전중윤 회장이 있다. 그는 한국전쟁당시 피난열차에서 굶주림을 경험하게 된다. 해방후 제일생명 사장에 취임했지만, 꿀꿀이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하여’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러던 중 일본에 가서 인스턴트 라면을 맛보게 된다. 일본인들이 물만 부으면 만들어지는 인스턴트 라면을 ‘마법의 라면’이라고 생각했다던데, 아마 그에게는 기아에 허덕이는 한국인을 구할 수 있는 ‘마법의 라면’으로 보였을 거 같다. 특히나 미국에서 원조해주는 밀이 있었지만 활용할 방법을 몰랐던 한국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묘조식품의 기술을 전수받아 만들어지는 삼양라면의 탄생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은 정말 드라마틱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마음은 오쿠이가 전중윤에게 전해준 스프배합표와 함께 첨부된 편지속의 내용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디 한국에서 이번 경험을 잘 살려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배고픈 서민들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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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은 2012년 기준으로 72.4개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세계 1위라고 한다. 와우~ 나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국민들이 인스턴트 라면과 정말 많이 친숙하다. 물론 라면은 다이어트의 적....이고....건강에는 그다지 좋은 음식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한동안 많이 뒷전으로 밀린 적도 있었지만...여전히 그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르는 것 같다.
그런 라면을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게 한 분이 바로 작년에 작고하신 삼양라면(1963년에 처음 라면이 등장했다)의 전중윤 회장님이라고 한다.
![]() 이 책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은 우리나라 라면의 선구자였던 전중윤 회장님 말고도 일본에서 인스턴트 봉지라면(스프가 별첨인)을 만들어낸 오쿠이 기요스미씨를 함께 서술하면서 어떻게 서로가 교류를 했었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책에선 그분들이 라면을 위해 평생을 연구와 노력에 힘을 쓴 것을 보여주는 것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상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의 라면은 침략자의 입장인지라 배를 곯거나 하는 그런 의미에서 라면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간식의 일종으로 조금더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국수를 만들려다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허나 우리나라에서의 라면은 식민시대 뿐 아니라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된 후 얼마 후 있었던 남북간의 전쟁으로 인해 국민 모두가 정말 헐벗고 굶주려서 그것을 어떻게든지 해결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정말 말그대로 생존을 위한 식량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라면은 보통 70~80g의 양을 가지고 있지만...우리나라는 100g 이상으로 한끼 대용으로도 충분할 정도의 양을 가지고 있게 만들었다.(현재도 우리나라의 라면은 보통 120g정도의 양으로 출시가 된다.)
그냥 이런 점에서도 그들과 차이가 보이는 것에서 그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양 자체가 우리가 더 많은 것은 좋지만....그 이면에 있는 그 이유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해아하나...
여튼....그렇게 그들은 라면이라는 것에 목숨을 걸고 오랜 시간을 연구와 투자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실패를 했다. 일본의 그는 제대로 말리는 방법을 몰라 고군분투하고... 우리나라의 그는 기술이 없어 외국의 기술을 들여와야하는데 자본이 없어 고군분투하고...
어쨌든 작가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라면이라는 것이 두 나라간의 간격을 살짝 좁히는 계기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라면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왜 그들은 라면이라는 것에 그리도 마음을 빼앗겼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만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이젠 국민음식으로 자리잡은 라면... 라면의 역사가 살짝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한번 만나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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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이 글귀를 읽으니 어느새 어린시절 100원짜리 지폐를 들고 구멍가게를 뛰어가던 어린 나를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라면값은 20원정도였던 것 같은데 100원으로 5개정도의 라면을 사서 즐겁게 집으로 향하던 그 시절의 나! 60년도 후반이었으니 나는 베이비붐세대인 셈인데 한가정에 아이들이 적어도 서 넛 이상은 되었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그만 낳으라는 표어가 여기저기 보이던 시절이니 한국전쟁후 태어난 그 많은 아이들에게 먹이고 입히는 일들이 걱정스런 시절이기도 했다.
'통일벼'가 나오고 '알랑미'-아마 동남아의 안남미를 그렇게 불렀던 것같다-가 수입되면서 '정부미'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나오고서야 국민들의 배고픔은 어느정도 잦아들었던 것 같다.
'혼분식'이 장려되어 보리밥을 섞은 도시락을 검사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수제비'며 '라면'을 참 많이도 먹었던 것 같다. 배가 고파 굶었다는 할아버지 이야기에 '라면 먹으면 되지'했다는 손주 이야기가 우스개처럼 말하는 시대가 온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세월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렇게 번창하고 가난을 옛이야기처럼 할 수 있는데는 '라면'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라면조차 사먹을 수 없을만큼 가난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비교적 쉽게 라면으로 주식을 대신 할 수있었던 것이 우리나라 라면의 대부 '전중윤'회장 덕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삼양라면'! 지금도 내가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이 라면의 탄생을 보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온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북이 고향이었던 전중윤 회장은 국내 최초로 보험회사를 설립하고 금융계에서 잘 나가던 시절 남대문 시장에서 '꿀꿀이죽'이라고 부르던 미군부대 쓰레기탕을 먹는 가난한 국민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식품업에 뛰어든 사람이다.
'국민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란 제목에 코끝이 시려온다. 유복하게 자라 배고픔을 몰랐다가 전쟁 피난 후 배고픔을 경험한 전회장은 가난한 국민들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 '삼양식품'을 설립한 셈이다.
하지만 그 한 봉지의 라면이 우리 가난한 국민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정말 다사다난한 스토리가 있었다.
일본 역시 전후 배고픈 시절을 경험하고 있었고 건면사업을 하던 묘조식품의 오쿠이씨의 노력으로 라면이 탄생된다.
건면은 저장성을 높히고 유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탄생했지만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름에 튀긴 라면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기름을 선별하기 위해 시간도 참 지난했었다. 산패가 쉽게 되는 기름을 걸러내고 지금의 라면이 튀겨지기까지 모든 발명이 쉽지 않듯 지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라면의 진화는 참 고단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한일관계가 차가왔던 시절 오로지 배고픈 국민들을 구하겠다는 소신하나로 일본으로 건너가 오쿠이씨에게 진심으로 호소하던 전중윤회장의 열정이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 국민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라면을 많이 소비하고 가장 다양한 라면을 생산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물만 부어서 먹는 라면에서 스프를 분리하고 한끼 식사로 탄생시킨 오쿠이씨의 노력에도 감동받았지만 그 귀한 스프의 제조비법을 전중윤회장이 비행기 트랩에 오르기직전 몰래 전하던 오쿠이씨의 진심을 보자니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사람이지만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일본에서 탄생된 라면이 현해탄을 건너 '삼양라면'으로 재탄생되고 그 비화속에 숨은 감동을 보자니 무심코 끓여먹던 라면 한 그릇이 갑자기 소중하게 다가온다. 라면에 깃든 추억이야 어디 한 둘이랴.
멀리 해외에 갈때도 소중하게 챙기는 음식이었고 요리의 번거로움을 해결해주었던 라면!
안타깝게 전중윤회장은 작년에 타계를 했다고 한다. 우지파동이 일어나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만큼 큰 타격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라면의 대부에게 새삼 고맙고 그에게 라면의 비법을 전수한 오쿠이씨에게 정중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 두 사람은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식탁에 날마다 오르고 있는 라면속에 두 사람의 시간이 함께 담겨있다.
'라면 쉽게 보지 말라.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주던 그 역사를 오롯이 담은 음식일지니...'
라면에 사활을 건 두 남자의 라면이야기! 참 감동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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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부터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였다. 때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내게 라면은 제2의 주식이었다. 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끓이다가 면과 스프만 넣으면 뚝딱 끼니가 해결되는 라면은 어린 내가 해 먹기에도 너무 편해서 절로 이렇게 좋은 것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꼬 궁금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다는 무라야마 도시오의 책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은 말하자면 그런 나의 오래된 궁금증을 제대로 풀어준 책이다. 책은 무엇보다 두 사람의 삶의 담는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고 사업화시킨 오쿠이 기요스미. 또 한 사람은 미국 부대에서 버린 잔반으로 만든 겨우 5원짜리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란 이후의 한국인들이 너무 가련해서 저렴한 먹거리로 그들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오쿠이 기요스미에게서 기술을 빌려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 라면’을 만든 전중윤이다. 책은 차분한 어조로 둘이 어떻게 해서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는지 말해준다. 계기는 비슷했다. 모두 전쟁이 있었고 전후의 사회에서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고자 하는 사회적 책임이 라면 사업에 뛰어들게 만든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오쿠이 기스요미는 ‘전쟁은 언젠가 끝이 납니다. 누군가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일은 오래 지속될 수가 없으니까요. 그보다는 똑같이 먹고사는 일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그것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앞으로 분명히 일본 뿐 아니라 세계 각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거대한 사업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P.35~36)’란 마음으로 건면 업자가 되었고 당시 한국 전쟁의 특수로 경기가 호전되어 일본 정부가 건면 업자에 대한 밀가루 할당제를 폐지하고 자유 매수를 허용하자 대량으로 신속하게 면을 말릴 수 있는 자동건조장치의 발명으로 눈을 돌려 결국 성공하고는 라면 산업으로 나가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전중윤도 다르지 않았다.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으로 불안한 한국인의 삶을 경험한 그는 보험으로 국민들에게 삶의 안정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제일생명의 CEO까지 되었으나 취임 후 얼마되지 않아 들른 남대문 시장에서 단돈 5원의, 그것도 담배꽁초와 깨진 단추 조각까지 들어있는 꿀꿀이죽을 사려고 길게 줄서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는 그만 왈칵 눈물이 솟구쳐 그대로 주저 앉아 통곡하고는 ‘국민들은 이런 것도 음식이라고 줄까지 서가며 허기를 채우려고 하는데 대체 보험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야...(P. 93)’라는 생각 끝에 보험을 접고 일본 여행 중 우연히 먹었던 인스턴트 라면을 한국에서도 만들려 한다. 하지만 뜻을 세우기는 쉬우나 이루기는 어렵더라고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의 장애물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오쿠미 기스요미가 그랬는데 1957년 당시 일본엔 이미 닛신식품에 의해 인스턴트 라면은 개발된 상태였다. 닭 국물을 사용하여 이름이 ‘치킨 라면’이었는데 용기에 라면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2분만 기다리면 되는 것으로 지금의 컵라면과 같은 것이었다. 오쿠미 기스요미는 사업의 전망이 밝으려면 이와 전혀 다른 라면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보니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온갖 난관을 뚫고 그는 즉석라면엔 주부가 음식을 만들 때 느끼는 조리의 재미가 없다는 아내의 말에 착안, 그리고 선두 주자인 닛신 식품 조리법에 대한 특허 분쟁을 피하기 위해 스프가 버무린 형태(당시 닛신의 즉석라면은 스프가 별첨되지 않고 미리 부어져 있었다.)가 아닌 국물 맛의 조절이 가능한 스프가 별첨된 오늘날의 일반 라면과 같은 형태인 ‘묘조맛 라면’을 만든다. 즉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라면은 바로 오쿠미 기스요미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전중윤의 상황도 순탄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의욕적으로 뛰어들었으나 정부의 정책은 전혀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승만 정부가 미국과 체결한 ‘한미잉여농산물원조협정’에 따라 조약이 체결된 57년부터 67년까지 10년 간 무려 5억 7천만 달러 어치의 농산물이 한국에 들어왔으나 국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기는 커녕 곡물류 유통을 주도하고 있던 삼성 등 신흥 재벌의 기반을 다지는 데 공헌했을 뿐이었다. 전중윤은 경제계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보리 고개에 나무껍질, 풀뿌리로 겨우 연명하는 농촌과 도시 서민들이 궁핍을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계속 라면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결국 63년 가까스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는 것에 성공하고 이제 일본과 라면 기술 제휴만 하면 되는 상황이 왔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전중윤이 만났던 일본의 라면 기업들 중 누구도 약소한 한국 시장 진출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강한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드디어 그 믿음의 결실을 보게 된다. 바로 오쿠미 기스요미에게서였다. 반신반의하면서 들렀던 전중윤이 한국의 식량 상황을 가감없이 설명하자 오쿠이가 2만 7천 달러라는 파격적으로 싼 설치 비용에다 기술 이전 비용과 로열티 모두 무료로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한 오쿠이의 말이 참 감명 깊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한국 전쟁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고통과 슬픔을 주었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본은 패전 후의 극도로 악화된 경제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한국 특수가 우리 일본에 얼마나 큰 은혜를 베풀고 일본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에서 보면 이 정도는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사장,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p. 226) 이걸 읽으며 아베 총리가 오쿠이와 같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조금은 스트레스를 덜 받을텐데 말이다. 오쿠이 기스요미는 결국 라면 사업에 뛰어든 초심을 잊지 않았고 끝까지 관철한 셈이다. 덕분에 우리는 ‘삼양 라면’을 볼 수 있었고 어릴 때의 나 역시도 라면으로 손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오쿠이의 이런 마음은 그 역시도 전쟁을 깊이 체험했기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불에 데어 본 자만이 그 아픔을 안다고 하지 않던가. 이것은 전중윤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때 가진 것 없이 불안한 가운데 낯선 곳으로 피난할 때의 경험이 어려운 이들에 대한 공감과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하도록 하는 의지를 낳았을 것이다. 지금 내가 즐겨 먹는 라면은 알고 보면 바로 그 공감과 배려의 산물인 셈이다. 새삼 라면이 달라 보인다. 그리고 깨닫는다. 설령 아무리 이윤이 목적인 사업이라 하더라도 내가 아니라 타인을 더 중심에 둘 때 더 큰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앞으로 라면을 먹을 때마다 이것을 되새길 것 같다. 거기에 깃든 오쿠이와 전중윤의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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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의 이런 고정관념과 편견을 확 깨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책이네요, 라면없는 라면책이라니 뭔가 좀 빠진듯하고 서운해서 선뜻 읽어내기가 그랬는데 의외로 일본과 우리의 라면역사를 들려주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롭더라구요 , 게다가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고 공부한다는 일본인이 저자라는 사실도 의외다. 라면하면 삼양라면이 젤 먼저 떠오르게 되는데 60원인가에 팔때도 귀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지금은 맥주안주로도 종종 올라오고 가끔 기름없는 후라이팬에 볶아서 아이들 간식으로도 먹곤하는데 정작 최초로 라면을 들여왔던 삼양라면이 처음엔 그닥 별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구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세계에서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가 되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일본의 닛신식품 안도 도모후쿠의 라면발명 이후 오쿠이라는 사람이 건면사업을 하게 되는 이야기와 한국의 전중윤이라는 사람이 삼양회사를 건립하고 일본에서 라면기술을 들여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비참했던 일제강점기와 6.25사건을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어요,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일본의 라면이야기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지만 전중윤과 오쿠이라는 두 사람이 그런 관계를 넘어서 서로 우정을 다지게 된 이야기는 죄가 나쁘지 사람이 나쁜건 아니라는 이야기를 증명해보이는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오쿠이의 온갖 실패와 좌절끝에 발명하게 되는 자동건조기계는 놀라운 발명품이지만 특허를 내지 않고 영세한 기업인들이 누구나 활용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전중윤 사장이 전쟁직후 폐허더미위에서 살기위해 먹어야했던 꿀꿀이죽을 보며 누구나 배불리 먹을수 있는 식품을 만들어 보고자 라면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이야기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할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네요 , 전중윤 사장이 일본에가서 오쿠이를 만나 참 여러가지 대화를 하게 되는데 서로 마음이 통해 자동화기기와 라면만드는 기술을 알려주면서도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던 라면스프 배합까지 넘겨주게 되는 이야기는 왠지 가슴을 뭉클하게까지 하더라구요, 지금은 한끼 식사로 대신하기까지 된 라면의 역사를 알게 되니 더 각별해지네요,
책의 마지막즈음엔 우리나라 식탁에까지 오르게 된 라면의 문화사가 간략하게 소개되구요 삼양 라면 가격의 변천사와 최초 라면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된 모습을 부러 흑백사진으로 담아 놓고 있어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 기분이에요^^ 저의 최초의 라면 역사라고 하면 과자처럼 먹었던 60원짜리 삼양라면인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