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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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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의 화두는 복지였다. 아쉽게도 보수정당이 복지라고 하는 진보가치를 선점에서 선거에 이겼다. 복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함께 대두되었던 말이 ‘경제민주화’이다.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민주화를 통해 결실을 얻는다. 생경한 이 말은 곧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가 약속한 경제민주화가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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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의 화두는 복지였다. 아쉽게도 보수정당이 복지라고 하는 진보가치를 선점에서 선거에 이겼다. 복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함께 대두되었던 말이 경제민주화이다.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민주화를 통해 결실을 얻는다. 생경한 이 말은 곧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가 약속한 경제민주화가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미덕임을 강조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이 단어는 지금 잊혀졌다. 지금은 아무도 경제민주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속은 것이다.

 

이미 뭔가를 가진 사람들은 그 뭔가를 얻기 위해 자신이 땀 흘리고 수고한 것을 기억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것을 누릴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이렇게 된다. 어떤 사람이 지금 뭔가를 가지지 못한 것은 그 뭔가를 얻기 위해 땀 흘리고 수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뭔가를 누릴 권리가 없게 되는 셈이다. 참으로 무서운 논리다. 뭔가를 가진 이들은 자기 혼자의 힘을 그것을 얻었다고 착각한다. 정말 혼자의 힘으로 그것을 얻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홀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특히 노동자들의 땀과 헌신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지금의 부를 결코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받은 법률적 제도적 혜택은 별도다.

 

부자들에 대한 증세는 빼앗는 것이 아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 까지 받았던 여러 가지 혜택을 세금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이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증세를 말하는 자들을 사회주의자 더 나아가서 빨갱이라고 몰아세운다. 오히려 낙수효과를 내세우며 더 많은 혜택을 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빈곤의 책임을 개인의 무책임과 게으름에만 돌릴 수 없다. 일자리가 문제의 핵심인데 그렇다면 빈곤은 구조의 문제고 법의 문제가 된다. 복지는 빈곤한 자들이 경제적인 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이 책은 영국에서 벌어지는 노동계급 혐오 현상에 대한 고발이다. 영국주류 사회가 의도적으로 노동자 계급을 혐오한 것으로 취급하면서 노동계급 전반에 대해 불신을 조장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감소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의 결과는 극심한 경제적인 차별이다. 대처가 총리를 맡고 난 다음이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었고 영국은 황폐해져 갔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26세의 젊은 나이의 저자가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렇게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가 소개하는 영국사회는 한국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점에 더 놀랐다.

 

우선 노동자에 대한 혐오라고 하면 우리나라도 저리 가라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가 아직도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천문학적인 급여를 받는 사장들에 대해서는 당연시 하면서도 노동자들이 급여를 많이 받으면 귀족이라는 말을 붙이며 못마땅해 한다. 문제는 노동자들 역시 이런 현상을 받아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존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노동에 대한 가치가 굴절되어 있는 것이다. 높은 교육열은 이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대학의 서열화는 이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

 

그 외에도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를 위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나 보수정권이 노동조합을 탄압하며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못하게 막고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것도 영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가 대처리즘의 특징을 개인화라고 진단한 것에 백번 공감한다. 공동체를 무산시키고 개별화시키면 결국 힘 있는 놈만 살아남게 되는데 우리는 이런 사회를 동물의 왕국, 정글이라고 부른다. 사회와 역사를 이처럼 퇴보시킨 사람을 좋아하고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개탄스럽다. 개별화되면 힘없는 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실제 대처의 정책을 통해 노동자들의 공동체는 와해되었고 가정이 파괴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그 예를 쌍용 자동차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오언 존스의 해법은 좌파에 뿌리를 둔 운동이다. 노동자들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맥 빠진 중도정치를 벌이는 노동당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더욱 선명한 정치적 좌파가 노동운동의 미래라고 진단한다. 이런 그의 해법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다. 좌파라는 말이 주홍글씨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좌파의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야당은 점점 오른 쪽으로 기울고 있는 실정이다. 집권을 위해서란다. 이런 정당은 결국 집권을 해도 노동자들과 빈곤한 자들을 위해 용기있게 나서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88만원 세대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하지만 지금의 정치상황과 시민들의 의식 수준으로 봤을 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존스가 제시한대로 비정규직으로 개별화된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카트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비정규직의 연대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노동자들이 연대하며 바리게이트를 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이렇게 힘겹게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을 돕자고 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합당한 급여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 정치적 민주화와 아울러서 경제 민주화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우리가 사람이기에 추구해야 할 가치다. 사람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동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물론이고 좋은 번역으로 영국을 알게 해준 번역자에게도 감사드린다. 이 책을 통해 노동과 경제와 사회에 대해 참 많이 배웠다.

s******3 2014.12.22.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4/70]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가?
"[4/70]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는가?" 내용보기
빨간 망토를 뒤집어 쓰고 손에는 몇 개의 병이 든 바구니를 들고 가는 뒷모습의 소녀의 모습이 책 표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에 붉은 색으로 씌어진 글귀 "모독당한 인간 존엄을 위하여"  요즘 우리 사회의 젊은층에서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잉여'라는 말이 차브라고 하는 큰 제목 아래에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이라는 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잉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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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망토를 뒤집어 쓰고 손에는 몇 개의 병이 든 바구니를 들고 가는 뒷모습의 소녀의 모습이 책 표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에 붉은 색으로 씌어진 글귀 "모독당한 인간 존엄을 위하여" 


 요즘 우리 사회의 젊은층에서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잉여'라는 말이 차브라고 하는 큰 제목 아래에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이라는 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잉여라는 말이 상대적으로 가진 것없고 기댈 곳 없는 젊은이들의 처지를 빗대어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면, 차브라는 말에는 현재의 내 위치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향한 비아냥거림 내지는 분노가 깃들어 있습니다. 마치 인간구실도 하지 못하면서 국가의 복지를 공짜로 누리고 있다는 식의 반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대처가 정권을 잡고 도입했던 신자유주의의 여파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 영향력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가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체제를, 그 아래에서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다시금 살펴보게 됩니다. 

 대처리즘이란 이름으로 영국에 불어닥쳤던 자본은, 공공부문의 민영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복지의 축소 등 자본에게 이익이 되는 모든 것들을 노동자들의 손에서 앗아갑니다. 무엇보다 제조업 중심이던 산업구조를 서비스, 그 중에서도 금융업 중심으로 바꾸면서 사라져 버린 수 많은 일자리들이 현재 영국의 노동자들이 '차브'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게 되는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수 많은 탄광, 조선소 등 인간의 노동을 필요로 하던 산업을 닫고 노동자들을 내쫓는 순간, 그들이 다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다고 봐야 합니다. 수 십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우리에게 닥친 그 자본이 우리에게 요구했던, 지금 요구하는 것 역시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IMF 이후 이루어진 민영화, 수 많은 제조업의 몰락, 그나마 형편없는 복지정책은 없는 것과 진배없고, 평생직장이 믿었던 곳에서 쫓겨난 이들이 몰려간 자영업 등등 그리고 우리는 자본의 이름으로 우리보다 처지가 못한 나라에 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3차 서비스 산업이라고 불리는 서비스산업 혹은 금융산업은, 설사 제조업이나 농업 등 전통산업에 비해 더 많은 부를 가져올지는 몰라도, 고용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을 뿐더러 그 수익 역시 소수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가지던 부가 이젠 소수에게 집중되어 나타납니다. 

 영국의 보수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가장 처음으로 타겟을 삼은 게 노동조합이었다는 게 인상적이며 가슴이 아픕니다. 강력했던 탄광노조나 조선노조 등이 모두 정부에 투항하면서 노동조합의 시대가 저물었기 때문이고, 그 때부터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하던 노동당이 노동자를 버리고 '중간계층'이라고 불리는 일정 부분 부를 소유하고 있는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보수당이나 노동당이나 모두 소리를 높여, 지금 노동자들이, 차브라 불리는 노동계급이 어려운 처지에 몰린 것은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다는 말은, 지금 이 땅의 기득권자들이 소리높여 외치는 말이기도 합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정도에 머무르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강력한 노동조합을 근간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의 구축은 요원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에 대한 노동당의 배신은 일면 부럽기도 합니다. 적어도 한 때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정당이 있었고, 그들이 정권을 잡기도 했었으니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처지는 영국의 노동자들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자본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자본화하고 이익을 가져가고 있고, 빈부의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불안전한 고용이 늘고,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노후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다만, 아직 우리는 제조업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는 점과 지난 겨울 광장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했다는 경험과 그로부터 출범한 새로운 정권이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게 될 것이란 점에서,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은 정말 중요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s*****2 2018.04.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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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껴던 감정은 우리도 맞이해야 될 상황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슬픔이었습니다.얼마전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사망했을때 우리에게 전해진 뉴스는광장에서 그 죽음 축하하는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이른바 영국병을 치료했다고 추앙하던 한국내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된 뉴스였습니다.왜 대처는 그러한 조문을 받게 된 것일까요?이 책에서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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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껴던 감정은 
우리도 맞이해야 될 상황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슬픔이었습니다.

얼마전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사망했을때 우리에게 전해진 뉴스는
광장에서 그 죽음 축하하는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른바 영국병을 치료했다고 추앙하던 한국내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된 뉴스였습니다.

왜 대처는 그러한 조문을 받게 된 것일까요?
이 책에서는 대처는 자신의 업적을 노동당마저 바꿔놓은 것이라고 자랑 했습니다.
그게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이 대처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대처의 추진했던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처는 갔지만 대처가 남긴 유산은 아직도 영국을 좌지우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사회적 안전판이라고 보는 복지제도와 
그 수혜층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난과 경멸, 온작 희화화에 더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그 근원을 파헤치기 시작해서 영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냈습니다.

그러한 비난을 우리도 언론을 통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복지 혜택을 받고자 10대에 임신한 미혼모들, 
외국인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젊은이들,
축구장에서 극도로 폭력적인 훌리건들..

그들에 대해서 극도로 비판적은 뉴스들은 
실제로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가리고 잘못된 행동만 부각된 뉴스들이었습니다.

심지어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았던 축구마저도 그들의 손을 벗어 났습니다.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하고 많은 자본이 몰려오면서 입장권은 어마어마하게 치솟았고
결국 전통적인 클럽팀의 팬들은 축구장에서 경기를 보기 어렵게 됏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리미어 리그가 인기를 상실하고 자본이 빠져났을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 집니다.

영국의 전통적인 제조업은 대처 집권기간 중 완전히 박살히 났습니다.
국영화된 광업이라든가 자동차 같은 제조업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해체되었습니다.
그 일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은 파업으로 대응했지만 공권력은 그들을 분쇄했지요.

그 결과는 수많은 노동 계급을 빈곤으로 떨어뜨렸고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빈곤은 가정해체와 범죄증가, 도시 슬럼화와 같은 온갖 후폭풍을 가져왔습니다.

살고자 버둥거리는 이들에게는 이제는 조롱과 경멸이 가해졌습니다.
저자는 그 근거를 파헤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돈을 함부로 쓴다라는 점은 실제로는 동전 한닢까지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있었고
10대 높은 임신률은 가정해체로 그나마 아이라도 있는 경우는 공영주택 입주권 확보하고자는 몸부림으로
알콜 중독에 빠져 있다는 점은 실제 술을 살 돈도 없었고 중산층의 마약 복용 비율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삶은 어디나 눈물겨운가 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9***d 2015.04.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 나라의 과거와 현재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일 수도 있는... 오언 존스,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이 나라의 과거와 현재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일 수도 있는... 오언 존스,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내용보기
까페 여름에서 형 누나들과 가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작년, 지금은 양평에 있는 H 누나가 아직 그곳으로 가기 이전, 한 번은 도대체 이 놈의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냐, 라는 투의 이야기들을 한참 나눈 적이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상은 곧 우리 바깥 세상으로까지 넓어져고, 현재의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에게만
"이 나라의 과거와 현재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일 수도 있는... 오언 존스,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내용보기

  까페 여름에서 형 누나들과 가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는 한다. 작년, 지금은 양평에 있는 H 누나가 아직 그곳으로 가기 이전, 한 번은 도대체 이 놈의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냐, 라는 투의 이야기들을 한참 나눈 적이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상은 곧 우리 바깥 세상으로까지 넓어져고, 현재의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에게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결국 이민을 가네 마네 하던 초반부의 투정은 지구에서 사는 한 별 수 없다는 체념으로 바뀌고 말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세상은 그저 물신주의에 기반하였던 자본주의를 뛰어넘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적인 세계 경제는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그 진원을 찾을 수 있으나 이제는 그 욕망의 생산력을 극대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로 진입한 것이 아닐까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차브》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던 대처의 나라 영국에서 2011년 발간된 책이다. 책의 저자는 당시 고작 스물 여섯이었는데, 그 통찰력이 놀랍다. 신자유주의라는 일종의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견고화 하는지를 저자는 잘 (그리고 쉽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고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영국 내에서 회자되는 ‘차브’라는 단어를 이용한다. 애초에 ‘아이’를 의미하는 집시 언어인 차비Chavi에서 유래된 이 말이 어떤 식으로 노동 계급의 일부를 지칭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차브’라는 용어가 어떤 식으로 노동 계급 사이의 균열에 이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 계급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다시금 노동 계급적 가치를 세워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나 책을 읽으면 영국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들이 우리의 현재 그리고 (아마도) 미래와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왜곡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변태적이고 천민적인 자본주의는 항상 한발 늦게 세계를 따라가고 있으니 (하지만 이제는 간발의 차) 말이다. 다양한 인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어쨌든 동남아를 비롯한 외국인의 유입 뿐만 아니라 조선족과 탈북자까지 포함한 다양한 외부 세력)의 유입,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노동 계급 내의 서열화는 이미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성적 소수자를 비롯해 여성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향한 조롱이 횡행하고, 각종 사회 계급적 문제들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버림으로써 하향평준화된 사회에서의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사회 구조를 향해야 마땅할 분노를 또 다른 개인에게로 돌리는 태도 또한 만연해 있다. 그러니 책에서 전달하고 있는 이런저런 내용들을 저기 멀고 먼 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읽고 새겨 놓아야 할 내용들이 적지 않다. 아래의 발췌문은 그 내용들 중의 일부이다.


  “... 그들 모두 ‘차브’란 특별히 노동 계급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언사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그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그 말을 했으며 함께 웃었느냐는 것이다.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모두 연봉이 괜찮은 전무닉 종사자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인정하든 안하든, 자신들의 성공에는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은 안정적인 중간계급 가정에서, 흔히 말하듯 나무가 우거진 교외에서 자란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조롱하는 그 수백년 묵은 현상을 목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pp.8~9)


  “... 2005년 처음 ‘차브’라는 말이 처음 콜린스 영어사전에 등재되었을 때, 그 말은 ‘캐주얼 스포츠 복장을 한 젊은 노동계급’이라고 돼 있었다. 그때부터이 말의 의미는 상당히 확대되었다. 급기야 차브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Council Housed And Violent, CHAV)'을 뜻한다는 유명한 신화가 만들어졌다. 많은 경우 그 말은 신중하고 우아한 부르조아와 달리 소비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조잡하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돈을 쓰는 노동계급을 향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최근 거론되는 ’차브‘라는 단어는 폭력, 게으름, 청소년 임신, 인종주의, 주정 같은 노동계급의 부정적인 특징과 연결된다... 현재 그 말은 ’프롤레타리아‘ 또는 ’가난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인간‘ 같은 폭넓은 의미를 가진다...” (pp.16~17)


  “이 책의 목적은 노동계급의 악마화를 폭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간계급을 악마화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이미 계급의 감옥에 갇힌 몸인데 계급편견의 감옥에 이중으로 갇힐 필요까지는 없다... 이 책이 목표하는 바는 ‘차브’ 풍자가 만연하는 가운데 그 존재가 지워져버린 다수 노동계급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계급편견은 계급을 통해 깊게 분열된 사회의 본질적인 면모다. 결국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편견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편견이 뿜어져나오는 연못인 것이다.” (p.22)


  “영국 엘리트가 중간계급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것은 어떤 이중잣대가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에 의한 범죄는 하류층 사람들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지만 중간계급 사람들의 범죄는 그렇다고 할 수 없다...” (p.48)


  “... 핵심은 사회에서 정치경제적 힘으로 존재하는 노동계급을 지워버리고 그것을 개이들, 또는 기업들의 집합으로 대체하며 각자의 이익을 위해 서로 투쟁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도 지위향상을 목표로 삼는 새로운 영국에서 모든 사람은 사다리를 오르려고 열망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개념으로서의 계급은 제거된 반면, 실제에서의 계급은 강화되었던 것이다.” (pp.71~72)


  “... 대처리즘은 성공이 소유에 따라 측정된다는 새로운 문화를 촉진시켰다. 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도태되었다.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인간이라는 열망은 사라졌다. 그것은 사회적 희생과는 상관없이 개인으로서 자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되었다.” (pp.88~89)


  “삶에서 당신의 운명을 증진시키는 공식적인 길이 중간계급이 되는 것이라면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이 되는가? 확실히 모든 사람이 중간계급 전문직업인이나 사업가가 되지는 못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사무실이나 가게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하는 노동계급으로 일해야 한다. 그러니 그들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직업에서 벗어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은 결국 그들을 부적합한 사람으로 내몬다는 뜻이다. 그래서 슈퍼마켓 종업원이나 청소부, 공장 노동자처럼 사회적 유동성에 의해 제공된 사다리를 타고 오르지 못한 의무태만자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다.” (pp.139~140)


  “백인 노동계급을 사회적 계층이 아니라 인종적으로 정의함으로써 진보 성향의 차브 혐오주의자들은 노동게급의 문제를 경제적 요인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에서 기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다시 말해 차브들의 생활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불공정한 사회구조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백인 노동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이 무책임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진보적 성향의 차브 혐오주의자들은 소수인종에 대한 전반적인 차별 때문에 실업과 가난, 그리고 심지어는 폭력과 같은 문제까지 발생한다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백인 노동자들도 그와 같은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pp.163~164)


  “문화는 정치를 반영한다... 대처 집권 기간 동안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 대처가 집권했던 시기는 ‘넘쳐나는 돈’의 시대였으며,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대였고, 온갖 종류의 보석, 빨강색 멜빵을 맨 시티 보이(City Boys, 런던의 금융권에서 일하는 젊은 남성들을 일컫는 말 - 옮긴이)들의 시대 즉, 자본을 숭배하던 시대였다... 이후 노조의 수가 줄어들었고, 노동계급 문화 역시 위축되었으며, 노동계급의 문화를 향유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그러한 정치적 시기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p.198, 영화 감독 켄 로치의 말)


  『신경제학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아일리스 로울러(Eilis Lawlor)의 표현을 빌리자면, 숙련된 일자리가 사라진 결과 ‘중간 지대’도 사라졌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좋은 제조업 일자리들이, 보수가 훨씬 형편없는 서비스 분야 직종으로 대체되고 있는 거죠.” 아일리스 로울러의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모래시계’ 경제라고 부른다. 한 끝에는 보수가 높은 고임금 일자리들이 자리잡고 있고 다른 끝에는 점점 더 수가 불어나는 저임금 비숙련 일자리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를 메우는 중간 일자리들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p.223)


  “현대 영국에 더이상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위선적 주장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가들이나 언론들은 실력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든지 영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실력주의를 칭송해댄다. 그러나 슬픈 아이러니는, 사회가 중간계급의 구미에 맞추어 부당하게 조직될수록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신화가 힘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선명하게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p.247)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삶의 안정망을 제공받는다. 설령 당신이 선천적으로 그다지 영리한 편이 못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성공할 가능성이 남아 있고, 적어도 성인이 되어서는 결코 빈곤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문화자본’과 재정적 지원, 인맥으로 구성된 양질의 교육은 항상 당신을 도울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노동계급 가정에서 태어난 영리한 아이라면, 이런 조건들 가운데 어떤 것도 갖지 못할 것이다. 부모에 비해 처지가 나아지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계급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감옥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잔인하도록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들을 악마화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그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게 이뤄지는 부와 권력의 분배를 사람들이 지닌 가치와 능력을 공정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합리화하는 것. 그러나 이런 악마화는 훨씬 더 치명적인 의제를 갖는다. 오직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교의는 특정한 노동계급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 전반에 적용된다. 그것이 빈곤이든 실업이든, 혹은 범죄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부서진 영국(Broken Britain)에서 희생자들은 자기 자신들 말고는 탓할 사람이 없다.“ (p.270)


  “... 자유주의적인 다문화주의는 불평등을 계급이 아닌 순수하게 인종의 프리즘을 통해 이해해왔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면서 결국 백인 노동자들은 다문화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민족적 자부심과 유사한 관념을 발전시키고, 인종에 기초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도록 고무받았다. 국민당은 백인 노동계급 구성원들을 이처럼 재앙에 직면한 사람들로 재정의함으로써 그들을 또 하나의 주변화된 인종적 소수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p.333)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에게 있어 임금은 정체되거나 하락해왔다. 심지어 경기침체의 충격이 가해지기 전부터 그랬다. 그리고 이민은 오랫동안 임금하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돼왔다. 그러나 제3세계의 이용 가능한 거대한 저임금 노동력과 불구상태에 빠진 영국의 노동조합 운동이야말로 임금하락의 훨씬 더 중요한 요인이다. 어찌 됐든, 회사의 이윤은 늘어나고 고용주들은 수십억의 돈다발을 쌓아두고 있다. 그들에겐 이윤을 나누라는 압력조차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화가 진전되고 노조의 권리가 박탈되는 가운데 진행되는 ‘바닥을 향한 경주’는 정치인들이 관심을 기울여온 이슈가 아니다. 은행가들의 탐욕과 뒤이은 정계 앨리트들의 재앙에 가까운 정책들이 빚어낸 경제위기 때문에 일자리들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주류 정치인들은 현대 경제 시스템의 가장 근본적인 몇가지 가정들을 위협할 수 있는 어떤 질문도 던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람들의 편견에 호소하거나 우익 미디어의 떠들썩한 후원을 받는 부차적인 이슈들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p.360)


  “... 많은 정치인과 논평가들이 불평등을 유행처럼 찬양하고 있다. 이들이 볼 때 불평등은 선한 것이다. 경쟁을 촉진하고, 학설의 뒷받침을 받을 뿐 아니라, 부를 창출하는 것은 상위층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를 창출하는 것은 상위층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p.372)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이 우려하는 것들,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파에 의해 냉소적으로 취급돼온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민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과 반발을 그저 무시하거나 인종주의로 비난하기보다, 거기로부터 응답없는 분노에 휩싸여 잘못된 길로 인도된 노동계급의 좌절을 현대의 계급정치는 읽어내야 한다. 이민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완화시키려면, 양호한 집과 일자리 부족 같은, 정말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전체 노동계급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을 인지하고 적극 대처해야 한다.” (p.391)



오언 존스 / 이세영, 안병률 역 /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CHAVS) / 북인더갭 / 427쪽 / 2014 (2011)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정하는 것이 곧 변화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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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는 것이 곧 변화의 출발   이 책을 읽는 내내, 분명 이것은 영국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에 생소하고 낯선 부분도 있지만, 사라진 듯 보이나 엄연히 존재하는 현대사회의 ‘계급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도 분명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차브’는 특별히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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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는 것이 곧 변화의 출발

 

이 책을 읽는 내내, 분명 이것은 영국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에 생소하고 낯선 부분도 있지만, 사라진 듯 보이나 엄연히 존재하는 현대사회의 계급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도 분명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차브는 특별히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언사이다.(8p) 현재 영국 사회, 특히 주류 중간계급 사람들의 입장에서 차브는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며, 이런 계급혐오는 없어서는 안될 영국 문화의 존경받을 만한 일부가 되었다.(15p) 저자는 이 책에서, 계급을 통해 깊게 분열된 사회의 본질적인 면모를 들여다볼 것을 요구한다.

 

다뤄지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현재 영국의 공영주택에 나타난 차브쏠림현상(53p)은 우리나라 영구임대아파트의 슬럼화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골칫거리라고 부르는 이른바 낙후지역의 여러 문제점들은 그 곳에 살고 있는 하층민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주택정책에 따른 결과임을 꼬집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임대아파트 정책도 그 출발은 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시작했을지언정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어준 것과 다름없다.

 

저자는 계속해서 지난 수 십년 동안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한 보수당이 장기집권을 이어가며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켜온 여러 가지 시도들을 보여준다. 지난 정권에 이어 계속해서 정통보수정권이 집권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국민 모두의 행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정부의 행보가 과연 어떤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현대 영국에 더 이상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위선적 주장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가들이나 언론들은 실력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든지 영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실력주의를 칭송해댄다. 그러나 슬픈 아이러니는, 사회가 중간계급의 구미에 맞추어 부당하게 조직될수록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신회가 힘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선명하게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247p)

 

저자는 해법을 던져준다기보다 현실의 날것 그대로를 우리에게 파헤쳐 내보인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한다. 나는 과연 이러한 계급전쟁에 뛰어들어 거대한 중간계급의 힘에 맞설 자신이 있는가, 아니면 나 역시 계급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저 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회색지대에 머무를 것인가. 이러한 고민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m******4 2014.12.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점점 나빠져가는 노동 환경에 대한 보고 - 슬프지만 대한민국도 같다
"점점 나빠져가는 노동 환경에 대한 보고 - 슬프지만 대한민국도 같다" 내용보기
1. 차브 차브의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로 보면 노숙자 혹은 가난한 자들 사람들이 살아가는 빈민촌의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있는 노숙자나, 10대 혼숙을 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인 비행 청소년을 보면 된다. 역자께서는 잉여라고 말씀하시고 부제까지 붙여 주셨지만 유쾌한 의미로
"점점 나빠져가는 노동 환경에 대한 보고 - 슬프지만 대한민국도 같다" 내용보기


1. 차브

 차브의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로 보면 노숙자 혹은 가난한 자들 사람들이 살아가는 빈민촌의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있는 노숙자나, 10대 혼숙을 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인 비행 청소년을 보면 된다. 역자께서는 잉여라고 말씀하시고 부제까지 붙여 주셨지만 유쾌한 의미로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2. 모든 것은 다 정치

 영국은 산업혁명의 나라이고 세계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그리고 제조업의 바탕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강하고 노동조합이 활성화된 사회였던 것 같다. 이때 1979년 대처가 등장하고 소위 영국의 병이라고 하는 고비용 저효율을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민영화 작업이 실시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 광부가 사라지게 되고, 자동차 기업 노동자, 조선 등의 대규모 사업장들이 해체하게 되고 노동계급이 해고 당하여 경제적 기반을 잃는다.

 새로 들어선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여기서는 신노동당) 정권에서도 노동계급을 잡을 노력은 하지 않고 중간계급을 잡을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조업 기반의 노동계급은 길을 잃는다.


3. 대중매체

 언론의 환경도 호의적이지 않다.

 통계는 왜곡되고 노동계급에 대한 낙인 찍기가 시작된다. 같은 사건에 있어서 당사자가 어느 계층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과 태도가 달라진다. 주로 미혼모의 경우 자식이 잘못될 경우 엄마의 양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같은 10대의 마약 행위에 대해서도 중간 계급에 대해서는 일탈이지만, 노동계급에 대해서는 범죄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방송의 경우에는 시트콤이나 드라마를 통해 노동계급에 대해서 캐릭터를 만들어준다. 게으르고 맥주만 마시고 책임을 지지 않는 쓰레기.


4. 성공시대

 대부분의 논리가 그렇다. 너가 노력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고 성공한 사람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안다.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만약에 이튼스쿨 같은 사립학교가 있다면 이곳 출신과 일반 시골학교 출신은 다른 출발점에 서있고 앞으로의 길도 다르다. 결코 능력에 의한 차별이 아니고 출신에 의한 차별이다. 우리나라도 특목고 자사고등 교육체계가 그런식으로 가고 있어 안타깝다.


5. 결론

 작가는 새로운 진보운동을 제안한다. 현재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해 줄 정당이 없다는 것이다. 결과는 투표 무관심이 층이 되어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진보 운동은 이들을 품어주고 이들에게 뿌리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주면 범죄 음주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의지이다.


(영국 정치 사실을 모르는데 워낙 많은 정치인과 TV 및 잡지 편집인이 나오는데 참 읽기 힘든 책이다. 잠자기 전에 읽으면 쉽게 잠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영국의 2011년의 악화되어 가는 부의 분배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일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시점에 경제 민주화는 사라지고 노동 개혁이 기다리고 있다. 노동 개혁이 정규직도 비정규직처럼 노동이 유연화되고 언제든지 해고를 받아 들일 수 있으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대처가 나오는 것인가? 다행히 임기가 길지 않다.


 

z******g 2015.08.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