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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의 화두는 복지였다. 아쉽게도 보수정당이 복지라고 하는 진보가치를 선점에서 선거에 이겼다. 복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함께 대두되었던 말이 ‘경제민주화’이다. 정치적 민주화는 경제적 민주화를 통해 결실을 얻는다. 생경한 이 말은 곧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가 약속한 경제민주화가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미덕임을 강조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의 개념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이 단어는 지금 잊혀졌다. 지금은 아무도 경제민주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속은 것이다. 이미 뭔가를 가진 사람들은 그 뭔가를 얻기 위해 자신이 땀 흘리고 수고한 것을 기억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것을 누릴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이렇게 된다. 어떤 사람이 지금 뭔가를 가지지 못한 것은 그 뭔가를 얻기 위해 땀 흘리고 수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뭔가를 누릴 권리가 없게 되는 셈이다. 참으로 무서운 논리다. 뭔가를 가진 이들은 자기 혼자의 힘을 그것을 얻었다고 착각한다. 정말 혼자의 힘으로 그것을 얻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홀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특히 노동자들의 땀과 헌신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지금의 부를 결코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정부로부터 받은 법률적 제도적 혜택은 별도다. 부자들에 대한 증세는 빼앗는 것이 아니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 까지 받았던 여러 가지 혜택을 세금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이것을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증세를 말하는 자들을 사회주의자 더 나아가서 빨갱이라고 몰아세운다. 오히려 낙수효과를 내세우며 더 많은 혜택을 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빈곤의 책임을 개인의 무책임과 게으름에만 돌릴 수 없다. 일자리가 문제의 핵심인데 그렇다면 빈곤은 구조의 문제고 법의 문제가 된다. 복지는 빈곤한 자들이 경제적인 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경제민주화의 첫걸음이다. 이 책은 영국에서 벌어지는 노동계급 혐오 현상에 대한 고발이다. 영국주류 사회가 의도적으로 노동자 계급을 혐오한 것으로 취급하면서 노동계급 전반에 대해 불신을 조장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감소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의 결과는 극심한 경제적인 차별이다. 대처가 총리를 맡고 난 다음이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었고 영국은 황폐해져 갔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26세의 젊은 나이의 저자가 자신이 속한 사회를 이렇게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그가 소개하는 영국사회는 한국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점에 더 놀랐다. 우선 노동자에 대한 혐오라고 하면 우리나라도 저리 가라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가 아직도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천문학적인 급여를 받는 사장들에 대해서는 당연시 하면서도 노동자들이 급여를 많이 받으면 귀족이라는 말을 붙이며 못마땅해 한다. 문제는 노동자들 역시 이런 현상을 받아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존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노동에 대한 가치가 굴절되어 있는 것이다. 높은 교육열은 이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대학의 서열화는 이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 그 외에도 가난한 노동자들이 부자를 위한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나 보수정권이 노동조합을 탄압하며 노동자들이 연대하지 못하게 막고 철저하게 고립시키는 것도 영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가 대처리즘의 특징을 개인화라고 진단한 것에 백번 공감한다. 공동체를 무산시키고 개별화시키면 결국 힘 있는 놈만 살아남게 되는데 우리는 이런 사회를 동물의 왕국, 정글이라고 부른다. 사회와 역사를 이처럼 퇴보시킨 사람을 좋아하고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개탄스럽다. 개별화되면 힘없는 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실제 대처의 정책을 통해 노동자들의 공동체는 와해되었고 가정이 파괴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그 예를 쌍용 자동차 사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오언 존스의 해법은 좌파에 뿌리를 둔 운동이다. 노동자들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맥 빠진 중도정치를 벌이는 노동당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더욱 선명한 정치적 좌파가 노동운동의 미래라고 진단한다. 이런 그의 해법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다. 좌파라는 말이 주홍글씨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좌파의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야당은 점점 오른 쪽으로 기울고 있는 실정이다. 집권을 위해서란다. 이런 정당은 결국 집권을 해도 노동자들과 빈곤한 자들을 위해 용기있게 나서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88만원 세대>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하지만 지금의 정치상황과 시민들의 의식 수준으로 봤을 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존스가 제시한대로 비정규직으로 개별화된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카트>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비정규직의 연대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노동자들이 연대하며 바리게이트를 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이렇게 힘겹게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을 돕자고 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에게 합당한 급여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 모르겠다. 정치적 민주화와 아울러서 경제 민주화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우리가 사람이기에 추구해야 할 가치다. 사람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동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물론이고 좋은 번역으로 영국을 알게 해준 번역자에게도 감사드린다. 이 책을 통해 노동과 경제와 사회에 대해 참 많이 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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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망토를 뒤집어 쓰고 손에는 몇 개의 병이 든 바구니를 들고 가는 뒷모습의 소녀의 모습이 책 표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에 붉은 색으로 씌어진 글귀 "모독당한 인간 존엄을 위하여" 요즘 우리 사회의 젊은층에서 자조적으로 사용되는 '잉여'라는 말이 차브라고 하는 큰 제목 아래에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이라는 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잉여라는 말이 상대적으로 가진 것없고 기댈 곳 없는 젊은이들의 처지를 빗대어 자조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면, 차브라는 말에는 현재의 내 위치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향한 비아냥거림 내지는 분노가 깃들어 있습니다. 마치 인간구실도 하지 못하면서 국가의 복지를 공짜로 누리고 있다는 식의 반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대처가 정권을 잡고 도입했던 신자유주의의 여파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 영향력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말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가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체제를, 그 아래에서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다시금 살펴보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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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껴던 감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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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처리즘은 성공이 소유에 따라 측정된다는 새로운 문화를 촉진시켰다. 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도태되었다.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인간이라는 열망은 사라졌다. 그것은 사회적 희생과는 상관없이 개인으로서 자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되었다.” (p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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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는 것이 곧 변화의 출발 이 책을 읽는 내내, 분명 이것은 영국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에 생소하고 낯선 부분도 있지만, 사라진 듯 보이나 엄연히 존재하는 현대사회의 ‘계급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도 분명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차브’는 특별히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언사이다.(8p) 현재 영국 사회, 특히 주류 중간계급 사람들의 입장에서 차브는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며, 이런 계급혐오는 없어서는 안될 영국 문화의 존경받을 만한 일부가 되었다.(15p) 저자는 이 책에서, 계급을 통해 깊게 분열된 사회의 본질적인 면모를 들여다볼 것을 요구한다. 다뤄지는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현재 영국의 공영주택에 나타난 차브쏠림현상(53p)은 우리나라 영구임대아파트의 슬럼화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골칫거리라고 부르는 이른바 낙후지역의 여러 문제점들은 그 곳에 살고 있는 하층민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주택정책에 따른 결과임을 꼬집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임대아파트 정책도 그 출발은 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시작했을지언정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어준 것과 다름없다. 저자는 계속해서 지난 수 십년 동안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한 보수당이 장기집권을 이어가며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켜온 여러 가지 시도들을 보여준다. 지난 정권에 이어 계속해서 정통보수정권이 집권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국민 모두의 행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정부의 행보가 과연 어떤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현대 영국에 더 이상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위선적 주장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가들이나 언론들은 실력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든지 영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실력주의를 칭송해댄다. 그러나 슬픈 아이러니는, 사회가 중간계급의 구미에 맞추어 부당하게 조직될수록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신회가 힘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영국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선명하게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247p) 저자는 해법을 던져준다기보다 현실의 날것 그대로를 우리에게 파헤쳐 내보인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한다. 나는 과연 이러한 계급전쟁에 뛰어들어 거대한 중간계급의 힘에 맞설 자신이 있는가, 아니면 나 역시 계급의 존재를 무시하고 그저 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회색지대에 머무를 것인가. 이러한 고민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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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브 차브의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로 보면 노숙자 혹은 가난한 자들 사람들이 살아가는 빈민촌의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주로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있는 노숙자나, 10대 혼숙을 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인 비행 청소년을 보면 된다. 역자께서는 잉여라고 말씀하시고 부제까지 붙여 주셨지만 유쾌한 의미로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2. 모든 것은 다 정치 영국은 산업혁명의 나라이고 세계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그리고 제조업의 바탕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강하고 노동조합이 활성화된 사회였던 것 같다. 이때 1979년 대처가 등장하고 소위 영국의 병이라고 하는 고비용 저효율을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민영화 작업이 실시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게 된다. 광부가 사라지게 되고, 자동차 기업 노동자, 조선 등의 대규모 사업장들이 해체하게 되고 노동계급이 해고 당하여 경제적 기반을 잃는다. 새로 들어선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여기서는 신노동당) 정권에서도 노동계급을 잡을 노력은 하지 않고 중간계급을 잡을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조업 기반의 노동계급은 길을 잃는다. 3. 대중매체 언론의 환경도 호의적이지 않다. 통계는 왜곡되고 노동계급에 대한 낙인 찍기가 시작된다. 같은 사건에 있어서 당사자가 어느 계층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과 태도가 달라진다. 주로 미혼모의 경우 자식이 잘못될 경우 엄마의 양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같은 10대의 마약 행위에 대해서도 중간 계급에 대해서는 일탈이지만, 노동계급에 대해서는 범죄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방송의 경우에는 시트콤이나 드라마를 통해 노동계급에 대해서 캐릭터를 만들어준다. 게으르고 맥주만 마시고 책임을 지지 않는 쓰레기. 4. 성공시대 대부분의 논리가 그렇다. 너가 노력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고 성공한 사람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안다.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만약에 이튼스쿨 같은 사립학교가 있다면 이곳 출신과 일반 시골학교 출신은 다른 출발점에 서있고 앞으로의 길도 다르다. 결코 능력에 의한 차별이 아니고 출신에 의한 차별이다. 우리나라도 특목고 자사고등 교육체계가 그런식으로 가고 있어 안타깝다. 5. 결론 작가는 새로운 진보운동을 제안한다. 현재 노동계급의 이익을 대변해 줄 정당이 없다는 것이다. 결과는 투표 무관심이 층이 되어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진보 운동은 이들을 품어주고 이들에게 뿌리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를 주면 범죄 음주 등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의지이다. (영국 정치 사실을 모르는데 워낙 많은 정치인과 TV 및 잡지 편집인이 나오는데 참 읽기 힘든 책이다. 잠자기 전에 읽으면 쉽게 잠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