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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을 하지만. 참 묘한 게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말만 하려는 사람들.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건, 그만큼 외로운 것일까?
고향인 구화로 돌아와 이모 언희의 펜션에서 살고 있는 설원. 인적 드문 수원지에서 비명이 들리고, 설원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그곳엔 설원의 고등학교 동창 준목이 죽어 있었다. 준목과 각별했던 설원은 자살로 종결된 이 죽음이 석연치 않다. 준목이 다니던 공장의 공장장이가 고등학교 동창인 ‘경우’. 그는 준목의 행동이 못마땅하다. 설원과 준목, 경우와 동창인 해지 또한, 묘한 말을 던지곤 한다. 준목이 일하던 곳은 ‘가드 온’. 턱 밑에 붙이는 동그란 스티커 ‘온’은 무절제한 말이나 격앙된 말이 나올 때마다 호르몬의 변화를 감지, 진동하게 되어 막말을 막아주는 장치다. 광고 덕분인지 예의와 배려를 위해선지 사람들은 ‘온’을 붙이고 사람을 만난다. ‘온’을 붙이는 사람이 많아지자 사람들의 말실수는 줄어든다. 하지만 ‘온’의 사용으로 가로막힌 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사람은 왜 말실수를 할까. 왜 실수하고야 말까 (94) 사람들은 왜 가끔 원한 살 만한 말을 그렇게 쉽게 툭툭 내뱉을까. 비수가 될 말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일까? (193) 어떤 항변은, 어떤 침묵은 죄가 된다. (196~197) 말은 늘 말을 끌고 다니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관여하지 않아도 되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 했던 말을 철두철미하게 기억해 낼 필요도 없었다. 때려 꽂기와 흩날리기. 상대가 고통을 더 느끼는 쪽도 후자였다. (239)
‘온’을 붙이고는 세상 예의 바른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예의를 가장한 송곳 같은 말. 상대가 그걸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온’을 붙였으니까. 어떤 말을 하고는 혹 이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을 했던 적이 있던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나이가 되니 만나는 사람이 한정된다. 나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멀리하면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래서 실수할 사람이 줄어든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어떤 이야기를 해도 적당히 이해하고 적당히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이 들어 좋은 건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입을 다물게 된다는 것. 굳이 친해지려고 먼저 말하지 않는 뻔뻔(?)함도 갖출 수 있다는 것.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직장 상사가 직원에게 직원이 직장 상사에게. 매일 좋은 말만 할 수 없다. 매일 나쁜 말도 할 수 없다. 말이라는 칼날이 상대를 아프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문영 작가의 책을 찾아봐야겠다. 매력적인 소설이니까. 출처 : https://blog.naver.com/heygirl0903/224445716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