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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160페이지 정도로 제목처럼 정말 짧은 이야기지만 독자들을 엄청난 실존적 공포로 몰아넣는다는 책 소개에 강렬하게 이끌렸다. 서사가 짧으면 대체로 기억에 남는 강도도 적게 마련인데,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짧은 분량 안에서도 충분한 공포감을 선사할 수 있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작품의 내용은 일면 간단하다. 한 남자가 지옥에 떨어져 겪은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제목이 반어법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작품 속 지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던 지옥과는 매우 다르다. 일단 물리적인 공간부터 악마들이 채찍을 들고 유황불이 떨어지는 곳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도서관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 원하는 음식은 키오스크에 말하기만 하면 언제든 제공되고, 의복도 매일 새로 지급되며 일정한 시간에 잠들어 일정한 시간에 깨어난다. 그리고 본인이나 타인이 일부러 가하지 않는다면 신체적인 고통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전날 죽음에 이른다 하더라도 다음날이면 다시 눈을 뜰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작품의 무대가 무슨 지옥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도서관에서의 삶이 왜 지옥인지를 한 장 한 장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실감하게 된다. 이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임무는 딱 하나다. 그 거대한 도서관에서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책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 이 도서관에는 일정한 분량 안에서 쓸 수 있는 모든 책이 존재한다. 저자가 계산한 바로는 95의 1,312,000제곱에 달하는 책이 있는 것이라 한다. 워낙 큰 숫자라 실감이 나지 않을 텐데, 이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라고만 이해하면 된다. 즉,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서관은 유한하다. 하지만 그 유한함이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무한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따라서 이곳이 지옥인 단 하나의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한에 가까운 권태로움 속에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점에 있다.
모든 층이 똑같이 생긴 데다 만나는 사람들마저 미국에서 특정한 시기에 사망한 백인에 한정되어 있다. 사망자들의 인종적, 문화적 백그라운드마저 비슷하니 그들이 모여봤자 새로운 자극이랄 것이 금세 바닥나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게 무리를 지어 일정한 사회를 이뤄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과 교제를 하기도 하며 대학을 만드는 무리도, 사이비 종교를 만드는 무리도 생겨나지만 결국 무한에 가까운 시간 앞에서는 모두 허망한 것이 되기 마련이다. 무작위로 배열된 책들을 매 순간 수없이 들추면서 어쩌다 발견하는 '말이 되는 문장'을 찾는 정도의 희열이 그 지옥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되고 만다.
결국 이 장소의 가장 잔인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지루함을 견디기보다는 전기 충격 버튼을 누르고 만다는 심리학 실험도 있듯이 인간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무료함인데 이 무료함을 무한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경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한하지 않다'라는 것이 확인되지만 그 유한함이 인간의 상상력을 한참 벗어나는 것일 때, 인간은 실낱같은 희망조차도 품을 수 없게 된다.
정말 명성 그대로 소름이 돋는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저자의 상상력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왔지만, 정말로 지옥이 이와 같다면 지금부터라도 조로아스터교를 믿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로아스터교의 신들이 진짜 신이라는 설정이 있는데, 물론 저자가 블랙코미디로 만든 장치일 것이라 생각한다.) 두께에 비해 책값이 살짝 비싼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장담하건대 읽어보면 한없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특이하게도 저자의 본업이 진화심리학자이자 대학교수이기도 해서 발표한 소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모쪼록 이 책이 잘 팔려서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출시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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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설정이 정말 신박했어요. 죽은 뒤 도착한 곳이 거대한 도서관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생이 적힌 단 한 권의 책을 찾아야 한다니. 책을 좋아하는 저한테는 이 설정부터 너무 흥미로웠어요.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싶으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꽤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특히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이렇게 기묘하고 독특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재미있게 읽고만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더라고요. 읽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희망이라는 게 정말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끝이 완전히 정해져 있다면 포기할 수 있을 텐데,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으면 사람은 계속 기대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이 책 속에서 희망은 살아갈 이유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계속 붙잡아두는 것이기도 해요. 부분이 저는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어요. 아무리 낯선 곳에 떨어져도 사람들은 결국 무언가를 믿고, 관계를 만들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잖아요.
그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인간답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계속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 인생이 적힌 책이 정말 있다면 나는 그 책을 찾아볼까?’ 궁금해서라도 찾아볼 것 같다가도,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쉽게 펼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좋았던 순간뿐 아니라 내가 외면했던 것들까지 전부 적혀 있을 테니까 망설일 거 같긴하거든요. 처음에는 정말 신박한 SF 호러를 기대하고 읽었는데, 재미있게 읽고 나니 이상하게 삶에 대한 생각이 남았습니다. 무겁게만 흘러가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볍게 읽고 잊을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신박해서 재미있었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생각은 또 오래 남는 책. 이런 이야기는 스포 없이 직접 읽어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ᐟ 잘 읽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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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하게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책만 읽으면 될 것 같은 이곳이 지옥? 이라고?? 옮긴이의 말에서와 같은 이곳이 왜 지옥일까? 의구심 가득하게 읽어 갔다. 곧 지독한 지옥임을 알게 됐다. 서가에 빼곡히 꽂힌 모두가 같은 표지와 제본의 책들은 펼쳐보아도 읽어갈 수 없는 의미 없는 글자들의 나열만 가득하다. 그 끝을 알 수없는 크기의 서가 속에서 자신의 삶을 그대로 옮긴 책을 찾아 키오스크에 책을 밀어 넣어야 벗어날 수 있다. 오로지 백인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뿐인 다양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곳. • 100년이 흐르고 그 속에서 무리 지어 지내는 모습과 한 해를 정리하는 행사를 보며 비록 권위주의적인 것 같아도 그 안에서 무엇이라도 창조해 내는 모습이 인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애써 의미를 찾는 듯 보이지만 의미 없는 상황이 끝없는 좌절로 이끈다. 다시 1000년이 흐르고 여기서 더 좌절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야기 시작의 7천억 년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갔다. 도서관의 압도적인 크기와 실낱같은 희망도 허락되지 않는 우연도 존재할 수 없는 진정한 지옥임을… 🔖p.9 약 7천억 년 동안 나는 단편집 한 권을 들고 다녔다. • 다양성, 새로움, 변화와 같은 것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얼마나 큰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의미라는 것이 무언가를 행하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꼈다. 아주 사소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간 지옥을 묘사하는 책에서는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한 지옥과도 같은 현실을 체감했다면, 이 책은 우리가 현재 얼마나 다채로운 행복 속에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느끼게 해줬다. 주위의 모든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진정한 지옥을 체감하고 온 기분이었다. 지옥에서의 짧은 체류임에 감사한다. #지옥에서의짧은체류 #스티븐l펙 본 게시물은 아카님의 모집으로 자음과모음에서 보내주시고 SF탐사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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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의짧은체류 #스티븐L펙 #자음과모음
얇지만 강렬한 책이다. #역주행 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믿음이 간다. 일단_ 종교적 관점은 치우고 읽어보길 권한다.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무서운 책. 잔인한 장면 없이 끔찍함을 느끼는 책 이랄까. #무한 이라는 단어가 오싹함을 주는 공포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지옥 유황불에서 몸부림 치며 괴로워하는 이들? #악마 는 그들이 연기자라 말하며 퇴근 시간이 다됐으니 너희들도 어서 어울리는 지옥을 배정해 주마.라고 말하는 곳. 주인공 '소런 조핸슨'의 지옥에서의 일기 랄까. 처음 느낌은#스크루테이프의편지 가 생각났다. 무심한듯 신랄하다. 무한 의 #도서관 지옥이라니_ 우리 독서핑들은 처음엔 의아해할 것이다. 말하는대로 원하는 음식이 제공되는 키오스크 편안한 잠자리와 깨끗한 욕실 죽었을 당시의 나이나 피폐해짐과는 상관없이 건강하고 탄탄한 젊은 시절의 모습 죽거나 다쳐도 아침이면 건강하게 재생되는 몸 지켜야 할 아홉 가지의 규칙_ 그 외에는 모든것이 자유롭다!! 이 곳에서 나가려면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찾아야한다. 하지만 이 무한의 책장들속 책들은 모든게 어지러운 기호들의 뒤섞임이다. 진정한 문자가 단 한줄 들어있는 책을 찾는대에도 백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새로운 연인과 함께한 천년. 하지만 이 무한의 공간에서도 인간과 대인관계에는 끝이 있었다. 처음엔 #희망 과 #기대 를 붙잡았다. 그것이 무너졌을 때의 상실감은 감히 말로 설명 할수없다. 특히 그가 추락하는 장면은 끔찍하고도 생생했다. 상상 할 수록_'아 이건 정말이지 끔찍한 지옥이야'를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몇 억 광년을 헤매어도, 이 곳에서 만나는 모든이들은 모두 같은 언어를 쓴다. 모두 같은 백인이다. 다른 인종은 없으며 모든것은 그저 반복될 뿐이다. 이 세계는 현실일까? 이 곳은 진짜 지옥인가? 나는 진짜인가? 그들은 진짜 였을까? 내가 겪는 이 모든것이 진짜인가?존재 하는 것일까? 무한과 반복 #영겁의시간 이라는 것은_ 감정과정신,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소모시킨다. 몇억 광년이 흐르고 또 흐른뒤의 현재도, 앞으로도, 그는 그 공허한 곳을 헤매이고 있겠지... 정말 '창의성'이 대단한 #고통 을 주는 지옥이다 - 그리고-: 책에서는 #조로아스터교 가 나온다. 이란에서 기원전 600년 전 시작된 #종교 로 #아후라마즈다 라는 신을 중심으로 선과 악을 구분한다고 한다. _그렇다고 하더라. . . 🕸 지옥을 다스린다고? 말도 안 되지. 신이 우주 전체를 다스리고 있다면, 어찌 지옥 같은 곳이 존재하도록 허락할 수 있겠어? 지옥을 운영한다는 건 이런 상상력과 치밀함이 필요한 일인데, 지혜로운 심판의 신 말고 누가 맡을 수 있겠냐고? (20) 🕸 어쩌면 신은 악마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상의 고통 중 많우 부분이 설명될 테니까.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알 수 없었다.(27) 🕸 의미 없는 책으로 가득한 이 도서관에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묘사하는 책이 있다. 우리는 바로 그 책을 찾아내야 했다. (51) 🕸 도대체 어떤 신이 악마들을 시켜 이런 기괴한 지옥을고르게 한단 말인가? 왜 의식을 가진 존재를 이런 고통 속에 몰아 넣겠는가? 그게 그분에게나 우리에게나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88) . . 서평단 @happiness_jury @jamobook #AShortStayinHell#StevenLPeck#호러#공포#SF#미스터리#영상화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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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속에서 고통받는 곳, 악마에게 끊임없이 고문당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지옥.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지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곳에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고, 사람들은 먹고 자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심지어 사랑에 빠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왜 지옥이라고 할까? 45세에 죽은 소런 조핸슨은 자신이 믿었던 종교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옥에 도착한다. 그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 중 자신의 지상에서의 삶을 정확하게 기록한 책을 찾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도서관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고, 책을 찾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조차 알 수 없다. 소런은 그곳에서 레이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지옥에서도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결국 레이첼을 잃게 되고, 소런은 다시 홀로 책을 찾아 헤맨다. 수천 년이 흘러도 책은 발견되지 않고, 이제 고통보다 무한한 시간이 지옥을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삶이 언젠가 끝나기에 사랑과 우정 등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지금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의미를 잃을 수 있지않을까? 이 책은 비록 분량은 짧지만,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종교와 믿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끝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에게 지옥은 죽음 뒤의 장소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은 채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을 말하는 듯하다. 어제와 똑같은 삶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게 지옥일수도..ㅠ 이 책은 책읽는 쥬리님을 통해 자음과모음에서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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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도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무도 가보지 못했고, 설령 가보았다 해도 돌아 온 사람이 없으니 모두 제각각의 상상이 만들어 낸 지옥들을 지옥이라 표현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지옥이 탄생할 수도 있고 평범하지만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함께 주거나 각각 다르게 주는 상황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 고통은 신체적 고통도 큰 고통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신적 고통도 큰 고통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에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짐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이나 지옥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인간의 삶에 희망이나 존재의 의미를 희미하게 하는 현실을 마주하면 어떨지 곱씹어 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지옥에서의 짧은 체류" 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옥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뛰어넘어 특수성이 아닌 평범하고도 흔한 상황으로의 거대한 도서관이 지옥으로 등장, 우리의 지나 온 삶의 과정들이 낫낫이 기록된 책을 찾아야 하는 형벌 아닌 형벌을 악마에게서 받고 이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의 인생 이야기의 스펠링이나 문법 등의 오류 없이 설명하는 책을 20년이든 50년이든 100년이든 찾아야 하는 심리적 고통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 고통과 존재의 속박에 대한 자유를 희구하게 하는 책이다. 거대한 도서관에 쌓인 수 없이 많은 책들은 나 아닌 또다른 누군가의 인생이 기록된 책일터 하나 하나 읽고 찾아 언제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까? 10년, 100년도 긴데 1천년, 5억년이 걸린다면 과연 우리는 영혼이라해도 지쳐 포기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머물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나의 인생을 찾아 헤메는 일은 나의 존재를 부각 시키면서도 존재를 희석 시켜 없애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야말로 나로 인해 스스로가 존재를 지우게 하는 것이 지옥이 아니고 뭘까 하는 생각에 답답함이 부풀어져 온다. 보편적인 지옥도를 생각했을 많은 사람들에게 그 모습은 이제 낮설지 않은 클리셰와도 같은 느낌으로 전해진다면 저자의 지옥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새롭고 참신한 지옥도를 만나보게 한다. 인간에게 공포감을 주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적당히'라는 단어가 얼마나 안성맞춤의 완벽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적당히 길어야 100년의 삶이 인간에게 신이 부여한 행복한 삶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한 모든것이 기록된 책을 찾아 헤메길 1천년, 1억년을 한다 생각하면 그 자체로 지옥임을 실감하게 될것 같아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저자의 독특한 사유를 바탕으로 생각의 전환에 따라 느껴질 지옥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라 오래도록 마주할 수 있는 책으로 기억되길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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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자 스티븐 L. 펙은 진화생물학자이자 생물철학자다. 베트남에서 생태 조사를 하던 중 시신경을 통해 희귀 세균에 감염되어, 일주일 동안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심각한 환각 상태에 빠졌다가 겨우 회복했다고 한다. 그는 이 강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옥에서의 짧은 체류』를 썼다. 마침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그 책에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 속 지옥을 설계했다고 한다. '반복이 곧 지옥이다'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이 소설이 설정한 지옥이 실제로 얼마나 끔찍할지는 몇 페이지 만에 순식간에 이해해버렸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무엇이건 키오스크 주문으로 뚝딱 나오고, 매일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살아간다. 언뜻 들으면 천국이지 지옥일 리가 없다고 여겨지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내 한숨이 나온다. 안타깝게도 그 책들은 읽어보고 싶은 재미난 책으로 가득한 게 아니다. 의미 없는 문자가 무작위로 나열된, 우리가 알고 있는 '책'과는 거리가 먼 물건들이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이 지옥에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담은 단 한 권의 진짜 책을 찾아야 한다. 그 확률을 계산해 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무한에 가까운 시간과 책들이 존재한다. *계산에 약한 편이지만, 책이 친절하게 그 규모를 숫자로 알려준다. 이 지옥에 있는 책의 권수는 95의 131만 2천 제곱이다. 다시 말해 이 도서관에 있는 책의 수는 우주 전체의 전자 개수보다도 많다. 죽어도 다시 태어나는 세상에 과연 평화가 깃들지, 아니면 어차피 죽여도 다시 태어날 테니 거리낌 없이 살육과 살생을 일삼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지옥에 적응하지 못해 절망한 인간들의 선택이 결국 그 지옥을 더욱 지옥답게 만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처음 지옥에 도착한 사람들이 읽었다는 안내문 하나가 다시 강렬하게 떠오른다. '낙담하지 마십시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언젠가는 지금 이 순간도 아득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처음엔 그저 상투적인 위로 문구로 스쳐 지나갔던 이 문장이, 뒤늦게야 얼마나 잔인한 아이러니인지 깨닫는다. 이 지옥은 영원함이 이어지고, 지나온 삶의 아주 세세한 기억까지 전부 간직하고 있으며, 그 어느 순간도 '추억'으로 흐릿하게 놓아버릴 수 없는 곳이다. 끝없이 선명한 채로 이어지는 삶,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지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 안내문이 실제로는 결코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그 순간 큰 위안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자살을 시도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1차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살고 싶지 않아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앞에는 반드시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지, 순수하게 삶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 '이렇게'는 사람마다 사정에 따라 무수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 소설 속 지옥에서는 오직 한 가지 형태로만 존재한다. 단조롭고 획일적인 무의미함에 짓눌려 살아가는 삶.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고, 맥락이 실종된 채로 똑같은 부조리가 영원히 반복되는 세계 속에서, 떠도는 암호 한 조각으로만 존재하는 삶. 소설은 그런 삶을 지옥이라 부르고 있다. 현실에도 지옥처럼 느껴지는 삶이 있다. 지금의 처지가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두려움에 잠식당한 삶. 폭염, 혹한, 폭우, 폭풍 같은 자연재해로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는 기가 막힌 현실과, 자유를 억압당한 채 정해진 업무 시간과 기간, 성과의 압박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삶. 그런 삶을 몇십 년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무망감에 잡아먹히는 때가 찾아온다. 생각해 보니 요즘처럼 절실히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이렇게 살기 싫다'는 말은, 다르게 말하면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다행히도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그 유한함 덕분에, 지금 이 순간의 괴로움도 언젠가는 정말로 흐릿한 추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아직은 지옥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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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은 현생만큼이나 크다. 누군가는 다녀왔다고 하지만 임사체험이지 사후 세계를 경험한 것은 아니라고도 하고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도 극히 소수일 뿐이다. 그런 가운데 논픽션으로 다루기 힘든 이 소재를 픽션의 세계에서는 제법 많이 다루고 있는데 『지옥에서의 짧은 체류』 역시 그렇다. 흥미로운 점은 사후 세계 중 지옥을 다루고 있다는 점인데 이 지옥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죄 지은 자가 가서 살아생전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그래서 현생을 더 잘 살고 착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곳이 아니라는 점이 굉장히 특이하다. 지옥인데 어떻게 보면 천국보다 더 좋은 조건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괜찮은 곳이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보다 좋을 순 없다 싶을 정도인 것이 엄청나게 큰 도서관으로 가게 되는 설정이니 말이다. 게다가 다른 조건들도 천국보다 더 좋아 보이는데 아프지도 않고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고 키오스크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음식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그럼 누군가는 생각할 것이다.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이곳에 갇혀 지내면 그게 바로 생지옥 아닌가 하는... 그런데 놀랍게도 나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책이 단 한 권, 도서관 내에 있고 그것을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방법도 책 좋아하는 사람에겐 나름의 도전 같아서 하루가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는... 물론 책의 권수가 엄청나다는 사실은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아픔도 고통도 없이 영생을 사는 건가 싶은 이 조건은 오히려 그래서 무한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또 도서관 내의 여러 물리적 환경이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조건이 제한적이라는 점 역시 무한한 시간 속에서 요즘 흔히들 말하는 도파민 터질 일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무료함의 방점을 찍을 것 같은 상황이라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빠져 나갈 방법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과연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가는 미지수이며 무한한 시간 동안 해내면 되지 싶지만 그 무한한 시간이 오히려 형벌같이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료함을 넘어선 어떤 무력감의 공포를 느끼게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저자의 전공을 생각하면 스토리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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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의 짧은 체류"는 처음부터 내가 생각했던 ‘지옥’의 모습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만든 책이었다. 조로아스터교와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설정을 접하면서 처음에는 “여기가 지옥이 맞나?” 싶었다. 영원히 책에 둘러싸여 있고, 지식도 넘쳐나는데, 정작 읽을 수 있는 책은 없다면 어떨까.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곳이야말로 꽤 확실한 지옥일 것 같다. 특히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담긴 책을 찾아라”라는 미션이 인상적이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책을 찾으라는 미션이 주어진다면 나는 과연 내 인생이 담긴 책을 찾아낼 수 있을까?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책이 내가 바라본 나의 인생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혹은 내 곁에 있었던 사물의 관점에서 나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내 인생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나와 타인이 바라본 나, 그리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시선 속의 나. 이 책은 지옥이라는 독특한 공간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지옥에서도 인간은 결국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대학을 만들고, 놀이와 유행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고, 지식을 뽐낸다. 지옥에 와서도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세계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낸다. 그래서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겼다. 지옥과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옥 안에서도 사회가 만들어지고, 지식이 쌓이고, 즐거움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정말 지옥일까? 반대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곳에도 절망과 반복, 고통이 존재한다면 현실과 지옥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결국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세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영원한 삶’에 대한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천국에 가까운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대할 미래가 없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 같은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그곳이야말로 지옥일 것이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는 오히려 지금의 삶을 생각하게 됐다. 살아가는 데 거창한 행복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고, 아주 작은 즐거움이라도 있고, 무언가를 기다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을 살아갈 이유가 되지 않을까. 기대와 희망이 없는 무한한 삶이 지옥이라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지옥’을 그려낸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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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생각보다 얇은 책이다. 덕분에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에 ‘짧은’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데 사실은 아니다. 오히려 ‘영원히’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그럼 이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그 지옥일까? 아니다. 작가가 창조한 지옥은 완전히 다르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이 잔혹한 형벌로 영원히 고통받는 그것과 다르다. 처음 지옥의 모습을 봤을 때 역자가 상상한 것과 같은 것을 떠올렸다. 끝없는 서가를 채운 책들, 원하는 음식을 바로 내주는 키오스크. 그런데 이 책들은 알 수 없는 기호로 되어 있어 읽을 수 없다. 읽을 수 없는 책들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을 찾아야 한다. 한 층의 길이는 몇 개월을 달려도 끝에 도달할 수 없다. 난간 밖으로 보이는 곳은 얼마나 떨어져야 바닥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중에 이곳으로 떨어지는데 떨어지다 굶어 죽는다. 무한의 공간, 무한의 시간 속에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이 지옥은 백인을 제외하면 다른 비백인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고, 금방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책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곳이 왜 지옥인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문장 하나가 완성된 책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소런 조핸슨은 모르몬교의 신자였고, 마흔다섯에 뇌암으로 사망했다. 책을 꽤 사랑했던 것 같다고 말하면서 바로 지옥으로 보낸다. 악마가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냉소적이고 기존의 종교관을 비튼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나 착실한 모르몬교 신도라도 그들은 지옥에 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로아스터교의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종교의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독교 신자에게 악마는 한 마디 한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고 중국인 등을 지옥으로 보내지 않았느냐고? 이 문장을 보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구호가 떠올랐다. 그리고 도착한 지옥의 모습은 앞에 설명한 그대로다. 사람들과의 대화, 관계, 현실 파악 등이 이어진다. 젊은 몸으로 다시 돌아와 건강해졌고, 각각 다른 시간대에 죽었다. 평범한 일상의 연속, 지옥의 모습은 그대로고, 사람들이 바뀐다. 이 장면은 종교가 공포와 두려움 속에 탄생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의미 없는 좌절뿐이었다.” 이 문장이 지옥의 풍경을 대변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획일성과, 어떤 유형에서도 절대 벗어나지 않는 단조로움”을 지옥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단조로움,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끝없는 시간. 새로움이 탄생하지 못하는 공간, 아니 노력이 없는 것일까? 다시 프롤로그로 돌아가서 그가 책을 발견한 시간을 본다. 23의 439승의 시간. 내가 가진 계산기로 계산이 불가능하다. 이 책이 주는 공포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 심리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이 곁들여진 상상에서 비롯한다. 반복과 단조로움이 일시적이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지옥을 계산한 수를 보고 사람들이 우는 장면은 이것을 잘 대변한다. 길지 않은 분량은 금방 읽을 수 있게 하지만 머릿속은 그 무한에 갇힌다. 내가 단숨에 한 번에 끝까지 달리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그 무한의 시간 끝에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글로 쓰면 쉽지만 숫자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고 무시무시하다. 다행이라면 나의 상상력이 부족해 그 무한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