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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웠다. 목사님의 신앙을 갈구하는 인생의 일대기가. 못된 신앙에 더 가까운 나의 모태신앙은 그 뜨거움을 알지 못한다. 내가 신앙의 갈증을 깨닫게 된 시기가 약 6-7년전쯤이니 이제야 좀 따뜻해졌달까? 그래서 목사님의 삶 속에 신앙이 여기저기를 돌아왔다 하더라도 나는 그저 그 삶이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 그렇게 내 기준에서는 목사님의 삶에서 "유배지"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부재? 인간적인 삶에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적어도 내 눈에 목사님은 강했다. 종교, 군사, 교육, 언론, 역사, 예술 등 대부분의 분야가 "정치"와 연관되면 항상 그 말로가 좋지 않았다. 직업적 특성 탓도 있지만 그래서 어지간하면 정치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고 있다. 맨날 싸우는 꼬라지도 보기 싫은 것도 한 몫 했고. 그래서 초반에 민주화를 이뤄낸 시대를 사셨던 목사님의 대학시절은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고 읽었다.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행 8:31) 언젠가 신학에 뜻이 생겨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시작한 전도사님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 교회에 취직하고 싶다. 덕업일치하고 싶다." 라고. 그만큼 그 시절 우리는 사역에 열심이었고 그 순간순간이 매우 행복했었다. 게다가 이 전도사님은 원래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집사님이었다. 신학이 하고 싶다고 해버리는 추진력이 부러웠고, 그럴 수 없는 내 상황이 오히려 "유배지"였다. 그러다, 여러 질문들을 통해 스스로 해답을 얻게 해주는 목사님 내외를 만났고, 약 1년의 시간동안 신학적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목사는 바쁘게 보여서는 안됩니다." 이 말씀은 정말 성도들을 위한 원로목사님의 혜안이었다. 여전히 나는 그러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렘 29:7)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은, 나의 힘듦이 끝났다고 해서 유배지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 어느 곳에서 신앙생활응 하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든 곳이 그저 유배지였다. 그렇다면 내 유배지, 나의 바벨론은 이제 또 어디에 준비되어 있는 것일까? 복있는사람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북서번트 서평단과 함께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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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만난하나님 #김기현 #도서제공 ’유배지…‘ 자신의 삶이…자신이 있는 곳이… 유배지라고 생각되는 때가 있는가?? 이미 지났거나… 아직 오지 않았거나… ‘지금‘ 이거나…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때가 있다. 단지, 작은 차이가 있을 뿐… 예레미야 29장에서는… 하나님께 죄를 짓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 이야기가 나온다. 바벨론 강변에서 고향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 우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곳에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며 살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썩은 무화과처럼 느낄 그들을 향해 ‘좋은 무화과 열매’ 라고 칭하신다. 삶이 고달퍼 서울로 돌아가고 싶던 김기현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떼를 쓰다 이 말씀을 받았다. 아버지를 여의고 빚 독촉에 시달리며 수없이 이사를 다녀야 했던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신앙의 분투… 1980년대의 민주화 현실 속에서 겪은 믿음과 사회의 부조화 속에서의 혼란… 책을 통한 신앙의 성숙과 신학자로서의 길… 신앙과 현실 속에서의 반복되는 삶의 배고픔을 보며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삶과 신앙을 통해 아버지를 얼마나 찾고 싶어했는지 느껴졌다. 개척을 하며 겪은 재정적, 관계적, 신앙적 어려움과 무엇보다 교회와 자신의 민낯을 마주하는 비통함… 📖 그러므로 개척은 실패였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나락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직하겠다. 그러나 그 나락에서 복음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복음은 내가 옳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논리가 아니었다. 복음은 용서였다. 내가 죄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한다. 고향을 떠나 원망으로 앉아 있다면 이곳이 바벨론이고, 부르심으로 다시 들으면 이곳이 갈릴리라고… 📖 유배지는 이상한 곳이다. 사람에게서 멀어졌는데 하나님에게로 가까워지는 곳이다. 길이 막혔는데 다른 길이 열리는 곳이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줄 알았는데 바로 그 때 남은 것은 무엇인지 보이는 곳이다. 내게 남은 것은 책이고, 글이고, 성경이고, 예배이고, 가족이고, 교회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이었다. 그가 발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은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알려주셨다. 그는 현재 원하던 교수가 되었고, 로고스 교회 담임 목사이며, 로고스 서원 대표로 ‘위기 청소년을 위한 희망의 인문학‘을 통해 글쓰기로 여러 사람을 회복하고 살리고 있다. 📖 그리하여 내 비망록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아바 하나님, 당신으로 인해 참 잘 살았습니다. 비참하다 여겨진 유배지에서 하나님과 진정한 자신을 만난 고백이 담긴 이 책을 나는 김기현 목사님의 말을 빌어 추천하고 싶다. 📖 사역과 생계에서 오래 버텨 온 사람, 신앙의 언어는 많지만 자기 이야기를 잃어버린 사람, 하나님이 내 삶 어디 계셨는지 되묻는 사람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당신의 유배지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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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헤매던 곳이 황무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곳이 보물섬이었다면? 벗어나고 싶었던 그 자리에 내가 찾던 보물이 묻혀 있었다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막다른 골목이 하나님을 만나는 징검다리였다면? 📖 “유배지는 종착역이 아니었다. 선교지였다. 아니, 모든 곳이 유배지다.” (p.12) 왜 하필 ‘유배지’였을까. 주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하늘나라라는 찬양이 있다. 그런데 매일의 삶이 유배지처럼 느껴진다면 얼마나 고단할까. 유배는 원치 않는 곳으로 내몰리는 일이다. 익숙한 삶에서 밀려나는 일이다. 돌아갈 길마저 막혀 버린 자리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곳을 유배지라 부른다. 이 책은 성공한 목회자나 신학자의 자서전이 아니다. 하나님이 삶의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만나 오셨는지 기록한 고백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한 권의 비망록이다. 아버지의 부재가 있었다. 가난과 상실이 있었다. 어느 편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다. 저자의 삶에 드리운 그늘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 그늘에서 길어 올린 신앙의 언어는 놀랍도록 단단하다. 📖 “나는 고아가 아니다. 나는 아바의 자녀다.” (p.41) 지상의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천상의 아바를 발견하기까지.. 자신의 결핍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던 사람이 복음 안에서 새로운 이름을 얻기까지.. 그 여정은 신학이 되었고, 글이 되었고, 삶이 되었다. 특히 도전이 되고 울림을 주었던 것은 저자의 신학이 책상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학은 예수 이야기를 살아내는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는 삶의 언어다.” (p.115) 신학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내느냐의 문제였다. 교회가 기억하는 이야기. 반복해서 드리는 예배. 일상에서 실천하는 믿음. 그 모든 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드러낸다. 📖 “유배지는 이상한 곳이다. 사람에게서 멀어졌는데 하나님에게로 가까워지는 곳이다. 길이 막혔는데 다른 길이 열리는 곳이다.” 어쩌면 이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래서 정작 내게 남아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닫힌 문 앞에서 낙심한다. 하나님이 열어 두신 다른 길을 발견하지 못한다. 내게 없는 것만 헤아린다. 이미 주어진 은혜를 놓치고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나의 일상에도 크고 작은 유배지가 있다. 가정이라는 자리. 교회라는 자리. 사역의 자리. 그곳에는 기쁨과 보람도 있지만 때로는 책임의 무게에 짓눌린다. 관계의 어려움에 마음이 닳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아직 가보지 못한 꿈의 자리에서는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설 때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자리를 떠나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신다. 때로는 그곳에 머물며 발견하라고 하신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은혜를.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을. 그 자리에서만 배울 수 있는 사랑과 믿음을. 황무지가 보물섬이 되는 것은 땅이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배지는 여전히 아프다. 여전히 외롭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상실이 상실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믿는다. 그곳이 내 인생의 종착역은 아니라는 것. 하나님은 가장 척박한 땅에서도 당신의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신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내게 건넨 위로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한다. 📖 “아바 하나님, 당신으로 인해 참 잘 살았습니다.” (p.247)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의 마침표인가. 고난이 없어서 잘 산 것이 아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났기에 잘 살았다는 고백이다. 저자가 ‘유배지’라 부른 그 자리를 나는 ‘구름다리’라 부르고 싶다. 내 일상은 실패한 곳이 아니며, 하나님과 나를 이어 주는 다리임을 증명하며 길을 잃은 듯한 날에도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다시 길을 찾는 내가 되기를.. #북서번트서평단 #유배지에서만난하나님 #김기현 #복있는사람 #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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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나의 유배지는 어디였을까? 이 책을 시작하며, 던져준 질문이 바로 ___________에서 만난 하나님에 빈칸을 채워보라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나의 유배지는 언제나 싱크대 앞이었던 것 같다.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반복되는 일상. 한때는 하찮게 여겼던 그 자리가 오히려 하나님을 가장 깊이 만나고 예배했던 자리였음을 다시 깨달았다. 김기현 목사님의 삶을 따라가며 신학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는 고백이라는 사실도 마음에 새겼다. 그중 가장 강렬했던 표현 하나! '시편으로 지랄하기' 읽는 순간 마음이 시원해졌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경건하고 점잖은 언어만 사용해야 할 것 같았는데, 시편에는 원망도 있고 분노도 있고 절규도 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마음까지 외면하지 않으신다. 나에게도 그랬던 시간이 있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그저 쓰고 또 썼다. 잘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살고 싶어서 썼다. 그렇게 쓰다 보니 조금씩 숨을 쉴 수 있었고, 엉켜 있던 마음이 풀리기도 했다. 어쩌면 그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진짜 마음을 꺼내 놓았던 기도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나의 유배지는 여전히 나의 일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이 더 이상 버려진 자리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그 자리에서도 나를 만나 주셨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 속에서도 나를 조금씩 빚어 가셨다. 그러니 오늘도 나의 싱크대 앞에서, 책상 앞에서, 사람들 곁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살아가고 싶다. 기도하고, 읽고, 쓰고, 살아내는 일.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가야 할 신학이자 일상의 예배일 테니까.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_______________________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분들에게,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질문하며 하나님을 알아가고 싶은 분들에게, 사역의 성과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본질을 회복하고 싶은 분들에게,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과 믿음을 돌아보고 싶은 분들에게, 고난과 실패의 자리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북서번트서평단 #유배지에서만난하나님 #김기현 #복있는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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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은 책을 읽기 전 미션과 함께한 책이다. 작가님은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 한다면, '나는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고, 만났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작가님은 오랜 기간 자신이 속해 있던 비제도권, 가정집 교회, 청소년 인문학 수업, 글쓰기 학교, 위기 청소년들과 함께한 시간, 지금의 자리 조차도 유배지라 하셨다. 김기현 교수님의 솔직한 삶과 생각을 읽다보면, 믿는자로서 부끄러운 내 모습이 드러나 숨고 싶다가, 무지한 나를 만나고 또 부끄러워진다. 여러모양으로 나를 깨우는 책이다. 결국 유배지는 하나님이 없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새롭게 알아 가는 자리, 선교의 자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작가님의 독서하며 치열하게 공부하는 삶, 글쓰기하며 글쓰기를 가르치며 영혼을 살리는 삶이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의 삶과 오브랩되었다. 삶의 여정 구비구비 유배지에서 길어올린 방대한 철학과 신학을 삶으로 풀어내주어 새로운 지혜들을 접할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다만, 내 짧은 식견으로 다 품을수 없는 깊이와 넓이여서 아쉬움과 함께 더 많은 호기심을 향한 숙제를 남겨주었다. 요즘 하나님은 겸손의 자리로 나를 이끄신다. 한동안 무능함과 무가치함에 잠못드는 날이었다. 그 자리가 유배지처럼 느껴졌지만, 돌아보니 하나님 앞에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시간, 사람 앞에 사랑으로 다가가는 시간, 다시 사명의 땅으로 나아가는 시간 이었다. 다산 정약용의 18년의 유배지에서의 삶, 김기현 교수님의 일생을 통한 유배지 같은 삶은 결국 학문을 실현하고, 사람을 살렸다. 이 책은 지금 광야같은 삶을 살고있는 분들에게 희망을 건네주는 책이 될것이다. ☆나누고픈 문장☆ 107쪽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과 다르지않다. 지식은 단순한 추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의 길이다. 지식 없는 은혜는 맹목적이기 쉽고, 은혜 없는 지식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참된 신학은 경건의 훈련이다. 245쪽 나의 유배 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유배는 사명이 되었고 유배지는 선교지가 되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사역과 생계 사이에서 지친 분들께 - 하나님이 내 삶 어디에 계셨는지 다시 묻는 분들께 - 현실 앞에서 당황하는 중인 분들께 #유배지에서만난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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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김기현/복있는사람) 이 책은 결핍과 부재의 시간을 하나님의 치열한 은혜로 살아온 목회자의 비망록입니다.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어본 독자로서 아직 비망록을 출간할 때가 이르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지금이야말로 의미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목회자들에게 주는 위로와 소망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큰 성공담보다 소명과 생존의 경계선에서 살아남은 선배의 발자국입니다. 버티고 인내하고 생존하면서 자신만의 여정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가 필요합니다. 저자는 그런 여정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 충분히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자가 고백하듯이 ‘예수, 고통, 아비부재, 책’(p.201)이 삶을 바꾼 이야기를 서술합니다. 고통은 책을 통해 의미를 얻었고, 독서는 아비부재의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책을 통해 만났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독서를 통해 얻은 지적 신앙의 여정은 아닙니다. 저자의 글에 힘이 있고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 이유는 삶의 고민으로 출발한 다양한 이슈들을 책을 통해 깨닫고 삶을 통해 책의 내용을 점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저작의 특징 중 하나는 본인의 경험으로 출발한 글이 많다는 겁니다.(아마 설교집 형태의 책들이 그러할겁니다.-하박국,고통을 노래하다/욥,까닭을 묻다 등등) 그에게 신학과 신앙은 한없이 자비로운 이론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독서는 살아내는 자양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의 대부분은 독서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삶의 결핍과 아버지의 부재(不在)에서 나온 인생과 신앙의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직면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시대의 아들답게 운동권과 신앙적 갈등에서도 끊임없이 독서하며 자신의 삶의 자리를 확인하고 분석하는 태도는 훗날 목회와 신학공부에서도 이어집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세계관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교회에 대한 경험입니다. 기존의 기독교세계관의 한계를 직면하면서 저자가 봤던 한국적 상황은 오히려 성과 속의 문제가 아니라 혼합주의라는 진단입니다.(pp.54-62) 성경에서 많은 부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책망하는 부분에서 혼합주의를 언급합니다. 예수님도 바울서신 역시 비슷합니다. 역사도 콘스탄틴주의나 실용주의와 결합된 미국식 교회, 한국의 국가조찬기도회 등등 혼합주의 문제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관 운동의 수혜자인 저자는 오히려 세계관 리모델링을 주장하며 관념에서 삶으로, 설명체계에서 제자도로, 철학적 도식보단 성서의 이야기로 전환하여 새롭게 용도변경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하면서 때론 당시에도 익숙하지 않은 교회형태인 가정집 교회를 하면서 깨달은 저자의 고백이 인상적입니다. “교회는 옳은 말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을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서로를 견디고, 용서하고, 자기편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다시 관계 맺는 사람들의 모임이다”(p.144) 결국 이 시대의 교회 모습은 정답을 말하는 교회를 넘어 복음을 경험한 사랑의 공동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저자의 현재 위치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교수입니다. 본인은 여전히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유배(p.224)임을 천명하며 유배가 사명이 되었고 유배지는 선교지가 되었다고(p.245)고백합니다. 즉 자신의 삶을 관통한 그 정신으로 교수사역을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다는 다짐이겠죠. 하지만 제3자가 봤을 때 침례신학교 교수자리는 유배지가 아니라 중원(中原)입니다. 그 곳이 피비린내 나는 무림의 중원 일지 아니면 천하태평(天下太平) 누리는 장소가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에게 여전히 유배지의 정신으로 그의 글이 인생을 관통하며 시대를 깨우는 알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좀 더 칼을 갈아 신중하게 세상의 부조리를 진리로 베어내는 견고한 신학과 신앙적인 묵직한 글이 되기를... 많은 부분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아버지 찾기와 아버지 되기가(p.163) 주된 서사의 여정이었는데 책에서는 주로 아버지 찾기가 주를 이룹니다. 9장에 ‘낮은 곳을 향한 희망의 인문학’ 부분이 아버지 되기의 변주곡(變奏曲)이 될수도 있지만 저자의 자녀 양육 이야기는 빠르게 지나가서 아쉬웠습니다. 저자의 아들 역시 인문학자로 저자와 함께 공저(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SF출판부/부전 자전 고전-홍성사)를 출간 할 정도로 장래가 기대되는 저술가입니다. 아들과 함께하며 어떻게 저자가 아버지 되기를 했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 해줬다면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좋은 선물이 됬을 텐데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참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결핍속에서 목사가 되었고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여정속에서 겪었던 고민과 몸부림이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그리고 저자처럼 유배지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재미와 의미로 가득 찬 삶을 희망합니다.(p.247)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인생과 신앙의 선배로 저자가 마치 제게 등두드리며 “여기까지 잘 왔다. 앞으로도 하나님과 함께 재미와 의미로 남은 시간을 즐겨라” 위로하듯 들렸습니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저자가 후배에게 이야기 해준 “준비된 사람이라고 반드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은 아니야.........그러나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은 반드시 준비된 사람이었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때에 쓰임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도록 스스로 준비하는 일이야”(p.222)고백이 우리 삶과 사역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북서번트서평단 #유배지에서만난하나님 #김기현 #복있는사람 #협찬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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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런 책이 다 있나. 도대체 어디에 분류해야 하나. 놀라워서 정신이 혼미하다. 육신의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바로 부르고, 마침내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가는 이야기인가. 몸으로 살아내는 세계관과 책과 공부에 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치열한 삶과 교회, 용서와 소명의 기록인가. 이 책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래서 분류하기 어렵다. 자서전이면서 신학서이고, 영성서이면서 한 사람의 신앙적 비망록이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하나님을 아바로 부르기까지의 여정이 첫 물길을 낸다. 그러나 그 여정은 개인적인 치유에 머물지 않는다. 고아와 나그네의 하나님을 만난 경험은 그를 삶의 가장자리로 이끈다. 교회의 제자 훈련과 1980년대 거리의 사회 참여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는 세계관을 세상을 보는 안경이 아니라 예수를 따라 걷는 몸으로 다시 배운다. 정의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명분이 될 수 없지만, 처벌만으로 상처와 관계가 회복되는 것도 아님을 고백한다. 그렇게 신학은 권력을 대하고, 약자를 환대하고, 원수와 다시 관계 맺는 삶의 방식이 된다. 읽고 공부하는 일은 그에게 유배를 견디는 법이자 아버지의 부재를 건너는 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말하면서 정작 하나님을 잃어버릴 만큼 몰두한 끝에, 앎이 기도와 몸과 삶을 살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배운다. 여러 스승에게서 건네받은 질문도 마침내 남의 이론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낼 신학이 된다. 책을 읽고 쓰는 일은 밥벌이이자 목회가 되고, 이중직은 부끄러운 차선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또 하나의 소명이 된다. 건물과 프로그램을 내려놓은 가정집 교회에서는 둥글게 앉아 말씀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는 일이 교회의 본질을 되묻게 한다. 위기 청소년과 사회적 약자에게 책을 읽히고 글을 쓰게 하는 희망의 인문학 또한 강단 밖의 설교가 된다. 이 책에서 유배는 실패하거나 밀려난 자리의 다른 이름만은 아니다. 도망치고 싶던 변방은 끝내 평안을 구해야 할 선교지가 되고, 숨으신 줄 알았던 하나님은 떠나가는 등이 아니라 앞서 걷고 업어 주는 등으로 발견된다. 유배가 끝나는 대신 사명이 시작된다. 책과 함께했기에 쓰러지지 않았고, 끊임없이 고민했기에 견딜 수 있었다. 벼르고 벼른 앎은 삶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저자의 문장은 따뜻하면서도 냉철하고, 묵직하면서도 섬세하다. 독자는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이 책과 만날 것이다. 한 사람의 스승을 만날 수도 있고, 오래 묻어 둔 자기 삶의 질문과 마주할 수도 있다. 단 한 줄의 문장 안에도 여러 권의 책과 한 사람의 오랜 삶이 포개져 있으니, 오래 읽고 오래 생각하고 끝내 살아낸 사람의 문장은 역시 다르다. #김기현 #유배지에서만난하나님 #복있는사람 #다시읽는복음 #모찌모찌의맛있는책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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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협찬 받은 책입니다. 1. 본 것 | 삶의 이야기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이야기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새롭게 하소서’가 있습니다.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게스트를 초대해,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토크쇼라는 점입니다. 반면에, 미묘한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게스트가 전하는 이야기의 방향성입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한 사람의 삶과 선택, 도전과 성취에 주목한다면, ‘새롭게 하소서’는 그 인생에 개입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립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 회복하시는 하나님, 치유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각자만의 인생의 이야기를 써가는 작가와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누가 이끌어 가고, 무엇으로 채워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인생의 이야기를 써 가는 사람들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의 이야기도 쓰고 계시고, 완성하실 분이심을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김기현 목사님의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은 유배지로 밀려난 것 같은 깊은 고난의 순간에도 더 깊은 은혜로 채우셨던 하나님의 흔적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어린 나이에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과 가난, 리어카를 끌고 야반 도주하며 이사해야 했던 순간,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던 거리에서의 신앙적 고민, 그리고 신학과 목회의 길에서 겪은 좌절과 고뇌의 장면이 차례로 펼쳐집니다. 그러나, 깊은 고난의 순간보다 하나님은 더 깊은 은혜로 그의 인생을 채우셨습니다. 비록 이른 나이에 육신의 아버지를 잃었지만, 참 아버지이신 '아바 하나님'을 만났고, 인생의 고비와 고뇌의 순간마다 책과 씨름했던 시간들은 이후,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청소년인문학교를 인도하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한, 그의 두 자녀 역시 작가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고난을 낭비하지 않으셨음을, 아니 깊은 고난 속에서도 더 깊은 은혜로 그의 인생을 돌보시고, 인도하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책입니다. 마치 고구마 줄기 하나를 잡아당기면 그 아래 매달린 고구마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것처럼, 저자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여정 중에 그가 읽었던 책들, 만났던 사람들, 그의 신학과 철학을 형성해 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도 함께 만나게 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의 여정을 소개하면서 그와 함께 역사와 사회, 교회와 교육에 대한 그의 담론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2. 깨달은 것 | 유배지 같은 인생의 변방에 찾아오시는 하나님 "유배지는 이상한 곳이다. 사람에게서 멀어졌는데 하나님에게로 가까워지는 곳이다. 길이 막혔는데 다른 길이 열리는 곳이다. 잃은 것이 너무 많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줄 알았는데 바로 그 때 남은 것은 무엇인지 보이는 곳이다. 내게 남은 것은 책이고, 글이고, 성경이고, 예배이고, 가족이고, 교회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단어는 역시 ‘유배지’입니다. 저자는 실제로 귀양을 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 대부분을 제도권 밖에서 살아온 ‘자발적 유배자’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중심에서 밀려나면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인정하는 자리에 서지 못하면 삶의 가치마저 작아진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유배지같은 변방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책을 구입할 여유가 없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수십 권씩 빌려 언덕길을 오르던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에는 책 살 돈이 없어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길이었지만, 세월이 흐른 뒤 저자는 그 언덕이 자신의 집 서재였다고 고백합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가 결핍이라고 부르는 시간이 훗날 은혜의 기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고난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가난은 고통스럽고, 실패는 아프며, 억울한 일은 여전히 억울합니다. 저자도 그 시간을 쉽게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고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시고, 선용하십니다. 저자는 바벨론 같은 유배지의 땅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새롭게 듣는 순간 갈릴리가 될 수 있음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줍니다. 환경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는 내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분의 손길을 얼마나 발견하느냐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3. 추천하는 이유 | 깊은 고난보다 더 깊은 은혜를 발견하게 하는 책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깊은 고난보다 더 깊은 은혜를 발견하게 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밀려난 자리에 밀려온 주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유배지같은 변방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났기에, 김기현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 이 책의 메시지가 닿기를 소망한다고 서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을 살아간다고 느끼는 사람들" "사역과 생계 사이에서 오래 버텨 온 사람들" "신앙의 언어는 풍성하지만 정작 자기 이야기를 잃어버린 사람들" 이 책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침내 성공했다는 식의 결말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상처와 실패를 지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한 사람의 정직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위로뿐 아니라 도전도 받게 됩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분에게는 삶과 연결된 신학의 깊이를, 목회자에게는 교회와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선을, 평신도에게는 일상의 고단함 속에 감추어진 은혜를 발견하는 기쁨을 선물할 책입니다. 특히 자신의 삶이 유배지에 밀려난 것처럼 느껴지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남들 눈에는 보잘것없는 변방일지라도, 하나님께는 그 밀려난 자리에, 밀려온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실패했다고 느끼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가십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당신의 인생에는 어떤 하나님의 이야기가 쓰여지고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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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입니다. ⠀ ‘유배지’라고 하면 어디론가 쫓겨나 홀로 남겨진 모습이 떠오른다. 이 단어를 마주하니 최근에 보았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생각났고, 다산 정약용과 바울도 떠올랐다. 이들은 모두 외부의 힘에 의해 원래의 자리에서 밀려나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김기현 목사가 제목에서 말하는 ‘유배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떠밀려 간 곳이라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삶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 ― 이 책의 제목은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이다. (...중략...) 유배지라는 말을 붙인 것은 내 삶의 대부분을 제도권 밖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내 삶은 주류의 가장자리를 맴돌았고, 내 선택은 남들이 보기에 엉뚱했다. 그렇게 나는 자발적 유배자로 살았다. p.11 저자는 자신의 삶을 ‘자발적 유배’라고 부른다.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가기보다 가장자리에 머물렀고, 남들이 기대하는 길과는 다른 선택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삶이 처음부터 분명한 확신과 평온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그 선택 뒤에 놓인 삶의 무게와 신앙의 고민을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 시절부터 신앙과 사회참여 사이에서 고뇌하던 청년기, 목회와 학업, 가정집 교회, 글쓰기와 위기 청소년들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걸어온 길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로 이어져 있다. 그동안 써 온 수많은 글 뒤에는 책상 위의 사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경험과 치열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자의 글을 읽는 다는 것은 그 생각이 어떤 삶을 통과하며 빚어졌는지, 그가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 왔는지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의 끝자락에 이르러 만나는 이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 ― 유배는 몇 년이면 끝나는가가 아니라 유배지에서 나는 누구를 만났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p.226 ⠀ 저자에게 유배는 단지 삶의 특정 시기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언어였고,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의 유배생활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유배의 끝이 언제인지 묻는 대신,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는지, 누구와 함께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깊게 와닿았다. ⠀ ― 내 비망록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아바 하나님, 당신으로 인해 참 잘 살았습니다. p.247 ⠀ 책을 덮으며 나 역시 내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한 사람의 신앙 여정을 따라가며 내 삶의 이야기를 그 길에 포개어 보게 되었다.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은혜의 자리인가? 실패의 자리인가? 유배지가 원망의 자리에 머물면 바벨론이지만, 부르심으로 다시 들으면 갈릴리가 될 수 있다는 것! 삶의 자리는 그대로일지라도, 그곳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에 따라 그 안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뜻은 달라질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 ⠀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몰라 방황하는 이들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한 이들에게, 지나온 시간을 실패로 해석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지금의 자리가 유배지처럼 느껴진다면, 이 곳을 벗어날 날만 기다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물어보면 좋겠다. 나는 이 유배지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그 대답이 언젠가 이 시간을 은혜로 돌아보게 하는고백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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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대표적인 실학자: 1762-1836)을 좋아하는 저자의 비망록이다.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책을 만나고 유배라는 단어부터 떠올리게 되었다. 오피셜 기록에 따르면 최근 1,693만 명 영화관람 관객을 동원한 ‘왕과 사는 남자’에서 조선 제6대 왕 단종 (1441-1457) 이홍위 유배가 생각나기도 했다. 유배(流配, penal transportation) 사전적 의미를 보니, 죄인을 먼 곳으로 격리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사전적 의미를 더해 '유배'는 죄인을 먼 곳으로 격리 수용하는 것이지만, 유배지는 결코 죄인들 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성경의 인물들 중 다니엘과 에스겔, 에스더 그리고 사도 요한 이 생각났다. 도피를 했던 모세와 다윗 그리고 엘리야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만났다.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은 경험하고 있었다. 책을 처음 마주하고 나의 유배지는 어디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상을 생각해 보니 운전을 평균보다 많이 하는 나는 자동차 안이 유배지 같았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할 수 있고, 거기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들은 분명 복이여라. 내용 중에 마음에 와닿아 기억에 남아 묵상하고 싶었던 와락 안겼고, 왈칵했던 구절을 소개한다. P.153 그분은 매번 정면으로 오시지 않았다.... 다만 등을 보이셨다. 나는 그 등을 처음에는 외면으로 읽었고, 부재로 읽었고, 침묵으로 읽었다. 얼굴은 끝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등은 보았다. 내게 서 돌아서는 하나님의 뒷모습. 지나고 보니 그것은 떠나가시는 분의 등이 아니었다. 앞서 걸어가시는 분의 등이었다. 내게 등을 돌 리신 하나님은 나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나를 업으시려고 당신의 너른 등을 내어 주신 것이었다. 돌아서서 앉으셔서 나를 '어부바' 해주시는 아빠 하나님, 엄마 하나님. 나는 그 하나님의 등에 와락 업혔다.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내용을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돌이켜 보니 그때도 어쩌면 나는 유배 중이었던 거 같다. 그러나 돌보시고 지키시는 은혜가 있었음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와닿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네. 주와 함께 바닷가 거니는 꿈을 꾸었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 위에 두 쌍의 발자국을 보았네. 한 쌍은 나의 것, 또 한 쌍은 주님의 것. 거기서 내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네. 마지막 내 발자국이 멈춘 그곳에서 내 인생의 길을 돌이켜 보았을 때, 자주 내 인생길에는 오직 한 쌍의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슬펐던 계절이었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당신은 저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러나 보세요.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던 그때 거기에는 한 쌍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저를 떠나 계셨지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였고 너를 조금도 떠나지 않았단다. 너의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쌍의 발자국, 그것은 나의 발자국이니라. 그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p.151 용서와 화해는 다르다. 용서는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화해는 둘이 함께 진실 앞에 설 때 가능하다. 하나님은 그날 밤 내게 용서를 명하셨지, 모든 관계가 이전처럼 회복되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용서는 악을 악 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없던 일로 덮는 것도 아니다. 용서는 심판을 내 손에서 하나님 손으로 넘기는 일이며, 그를'원수'라는 한 가지 이름 안에 가두지 않기로 결단하는 일이다.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 속에 유배지를 축복으로 여길 수 있는 지혜가 신앙인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저자의 이 책을 통해 독서의 폭을 더 넓혀야겠구나 생각했고, 저자의 또 다른 책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를 이미 읽기 시작했으니, 가을의 독서는 몰입해서 책 읽기 참으로 좋은 날들이다. *이 책은 서평단 제공 도서 협찬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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