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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린 시절](2026) _ J.M. 쿳시 지음 (서평)
"[예수의 어린 시절](2026) _ J.M. 쿳시 지음 (서평)" 내용보기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사실 이 책을 받기 전 내가 기대했던 것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예수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신약성경에서 예수는 12세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등장한 뒤, 약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의 삶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예수의 어린 시절](2026) _ J.M. 쿳시 지음 (서평)" 내용보기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실 이 책을 받기 전 내가 기대했던 것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예수의 알려지지 않은 시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12세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등장한 뒤, 약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기까지의 삶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처음 『예수의 어린 시절』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혹시 그 알려지지 않은 시기의 예수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J.M. 쿳시의 『예수의 어린 시절』은 그런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소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예수의 더 어린 시절을 상상해서 쓴 이야기인가, 아니면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다. 심지어 ‘예수’라는 이름은 책의 제목에만 있을 뿐 소설 속에서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제목에 당당하게 ‘예수’를 넣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예수라는 인물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예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다섯 살 소년 ‘다비드’가 있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는 ‘시몬’과 ‘이네스’가 있다.

다비드와 시몬은 친부자 관계가 아니다.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다비드를 시몬이 보호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시몬은 다비드의 진짜 어머니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이네스를 보는 순간 그녀가 다비드의 어머니라는 이상한 확신을 갖는다. 이네스 역시 결국 다비드를 자신의 아이처럼 받아들인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닌데도 세 사람은 어느 순간 가족처럼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설정은 자연스럽게 예수의 탄생을 떠올리게 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으로 서술되고, 요셉은 예수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 쿳시의 소설 역시 ‘부모란 무엇인가’, ‘가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다비드와 시몬, 이네스의 관계를 통해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느낀 감정은 의외로 ‘불편함’이었다.


다비드는 세상의 일반적인 관점과 사회의 규칙이라는 틀에서 바라보면 상당히 불편한 존재다. 당장 나부터 책을 읽는 내내 다비드가 답답했고 때로는 무례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른들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규칙에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학교와 교육의 방식에도 좀처럼 순응하지 않는다.


그런 다비드를 가르치고 어떻게든 현실의 질서를 이해시키려는 시몬과, 반대로 다비드를 거의 무조건적으로 감싸고 보호하려는 이네스의 모습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특히 법과 제도, 교육이라는 사회의 틀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이네스가 그것을 무시하면서까지 다비드를 두둔하는 모습에서는 ‘아무리 특별한 아이라고 해도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느낀 이 불편함마저 쿳시가 의도한 것은 아닐까?


예수가 살았던 시대 역시 이미 견고한 종교적·사회적 질서가 존재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훗날 예수의 가르침과 행동은 당시의 종교적 권위 및 사회적 규범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렇다면 만약 그런 존재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 아이를 ‘특별한 존재’라고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면 말을 듣지 않고, 규칙을 따르지 않고, 어른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의심하는 ‘문제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다비드에게 느꼈던 불편함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다비드가 옳다는 것도 아니고, 그의 행동이 모두 정당하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다비드는 불편했다. 다만 그 불편함을 통해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정상적인 아이’, ‘올바른 교육’, ‘사회가 정한 규칙’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적인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제목에 ‘예수’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예수라고 알려주지 않은 채 예수와 비슷한 존재를 우리 앞에 던져놓고, “당신이라면 이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책에는 이런 종교적·철학적 질문 외에도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많았다.


새로운 나라에 도착해 새로운 이름과 생일을 부여받고, 새로운 언어인 스페인어를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시몬과 다비드의 모습을 통해 이방인과 이주자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의 기억과 욕망이 희미해진 노비야 사람들의 무미건조한 인간관계를 보면서는 사랑과 욕망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생각하게 된다. 시몬과 부두 노동자들의 관계에서는 우정과 노동, 공동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수의 알려지지 않은 어린 시절’을 기대하며 펼쳤지만, 책을 덮었을 때는 전혀 다른 질문들이 남았다.


가족은 무엇인가.
정상은 누가 정하는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인가.
그리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예수의 어린 시절』은 쿳시가 쓴 ‘예수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이후 『예수의 학창 시절』과 『예수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첫 번째 책을 읽은 지금도 나는 다비드가 불편하다.


그래서 오히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내가 다비드에게 느끼고 있는 이 불편함이 해소될지, 아니면 오히려 더 커질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쿳시가 왜 이 이상한 아이의 이야기에 굳이 ‘예수’라는 제목을 붙였는지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2013년에 처음 출간된 작품이 이제야 내 손에 들어왔다는 것도 묘한 기분이다. 최근에는 이 작품을 바탕으로 한 영화도 제작되어 영화제에서 소개됐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 표현된 다비드와 시몬, 이네스의 모습도 한번 보고 싶다.


처음 기대했던 예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이상한 책이었고, 더 불편한 책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도 계속 다비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이 나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튼, 다음 책도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


#예스24 #리뷰어클럽 #리뷰어클럽리뷰 #예수의어린시절 #쿳시 #예수3부작 


c*******i 2026.10.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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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환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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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잃은 다섯 살 다비드와 우연히 다비드를 보호하게 된 시몬에게 항구도시 노비야는 낯선 곳이다. 이 둘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로 왔다. 다비드, 시몬이란 이름도 그들 이름이 아니다. 주어진 이름이다. 다비드의 어머니로 이네스가 이 둘 사이에 끼어듦으로써 세 사람은 가족 아닌 가족이 됐다.' "...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어떻게 내 아이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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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잃은 다섯 살 다비드와 우연히 다비드를 보호하게 된 시몬에게 항구도시 노비야는 낯선 곳이다. 이 둘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모든 기억이 지워진 채로 왔다. 다비드, 시몬이란 이름도 그들 이름이 아니다. 주어진 이름이다. 


다비드의 어머니로 이네스가 이 둘 사이에 끼어듦으로써 세 사람은 가족 아닌 가족이 됐다.
' "...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어떻게 내 아이일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겠죠. 부탁드리건대, 의심하는 마음은 거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저 아이를 보세요. 당신의 마음이 무슨 얘기를 합니까?" (p. 113)'


시몬과 이네스는 마치 다비드를 낳은 부모처럼 아이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노비아에서 집, 일터 등 많은 것을 제공해 준 덕분에 그럭저럭 평온한 삶을 지내지만, 어딘지 모르게 특별한 다비드가 학교에 가면서 이들 셋의 삶은 위기를 맞는다.


'"오히려 그들이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다. 네가 특별한 아이라서 그래. 특별한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야." (p. 290)'


여느 아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다비드를 노비아 사람들은 전문적 보살핌을 위해 푼토 아레나스에 보내려고 한다. 이곳은 인간이 만든 규칙을 따르지 않는 아이들의 위한 시설이다. 결국 시몬, 이네스, 다비드는 노비야로 오기 전 그들이 살던 곳을 떠났듯이 노비야를 떠나 다른 곳으로 향한다. 또 다른 디아스포라 삶을 그들은 찾아나선다.


'"그래, 너와 이네스와 후안과 볼리바르와 나지. 우리는 이렇게 말할 거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는 새로 도착한 사람들입니다. 머물 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다음은요?"
"그게 다야. 머물 곳을 찾아 새 삶을 시작하는 거지." (p. 375)'



항구도시 노비야, 이곳에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과거 기억을 씻어내고 새 삶을 살기 위해 온 시몬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곳은 시몬을 당황스럽게 한다. 당연히 느껴야 할 욕망도 없고, 남녀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노비야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쿳시는 사후세계를 암시했지만, 이 책을 번역한 왕은철 작가는 디아스포라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다. 태어난 곳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디아스포라의 삶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나만 해도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낯선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어서 왕은철 작가는 디아스포라의 삶은 곧 환대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환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p. 385, 옮긴이 해설)'


환대란 무엇일까. 인류학자 김현경 교수에 따르면,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자리를 준다/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들을 준다/인정한다는 뜻이다. 또는 권리들을 주장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환대 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p. 207)'


시몬과 이네스는 다비드에게 '절대적 환대'를 했다. 마치 요셉과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보여준 환대와 흡사하다. 절대적 환대란 김현경 교수를 말을 다시 한번 빌리면, 아기가 태어날 때 누구인지 묻지 않듯이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 아이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환대', 상대방이 적대감을 보여줄지라도 '복수하지 않는 환대'를 일컫는다.


하지만 노비야 사람들이 다비드에게 보여준 환대는 다소 부분적이다. 장소는 내어줬지만 따로 관리해야 할 사람으로 다비드를 분류했다. 다비드는 누군가를 태울 시간도, 태운 자리도 없지만, 히치하이커를 차에 태우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이네스를 협박할 정도로 모든 사람을 환대한다. 그런 다비드를 노비야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셉의 형제들은 동생 요셉을 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을 찾아온 형제들을 요셉은 환대했다. 세월이 흘러 애굽에 정착한 유태인을 애굽 사람들이 환대하지 않자 유태인들은 하나님이 환대를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디아스포라 한다.


2000년 전 요셉과 그 형제들의 후손인 유태인들이 예수님을 환대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절대적 환대가 가능한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런 예수를 유태인들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결과 그들은 유럽인들로부터 환대 받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에 정착할 때 유태인들은 그곳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유태인들은 요셉을 환대하지 않았듯이, 예수님을 환대하지 않았듯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환대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람다움'을 무시하고 인종 청소를 하고 있다. 



우리들의 환대는 어떤가. 일꾼으로 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느 정도 환대한다. 하지만 이주하려는 외국인들에게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유태인을 보고서도 환대하지 않으면 우리도 환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기를, 내가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장소를 내어주기를 바란다면, 내가 먼저 타인을 사람으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장소가 되어주는 환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c******9 2026.09.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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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되지 않은 인물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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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산다는 것은 대단한 거란다. 그 어떤 것보다도 대단한 거란다.시몬과 다비드는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 낯선 도시 노비야에 도착한다.시몬은 다비드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를 보호했으며 그의 어머니를 찾아주고자 한다. 기억은 잃었지만 시몬은 다비드의 어머니를 보면 분명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느날 만난 이네스를 보고 시몬은 그녀가 다비드의 어머니라고 확신했다.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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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

산다는 것은 대단한 거란다. 그 어떤 것보다도 대단한 거란다.






시몬과 다비드는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 낯선 도시 노비야에 도착한다.

시몬은 다비드의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를 보호했으며 그의 어머니를 찾아주고자 한다. 기억은 잃었지만 시몬은 다비드의 어머니를 보면 분명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느날 만난 이네스를 보고 시몬은 그녀가 다비드의 어머니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네스가 다비드를 아들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가정이 탄생했다.

생물학적 어머니가 아니지만 어머니가 되는 이네스,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지만 아버지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는 대부 시몬, 특별한 아이 다비드.






고정되지 않은 인물과 세계


이 소설은 교육, 가족, 철학, 실존, 종교, 난민 등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는 책이었고 나는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는 인물과 세계에 집중하며 읽었다. 하나의 주제만 다루자니 책이 납작해지는 느낌이었고, 모든 주제를 이야기하자니 나는 쿳시를 따라잡을 수 없을테니 일찍 포기해버리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인물과 세계에 집중한 나의 독서는 성공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다. 왜냐하면 인물과 세계를 하나의 의미로 규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정되지 않은 인물과 세계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작가의 의도를 잘 따라간 착한 독자였지싶다.








다비드는 세상의 규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글자와 숫자를 배우는 방식에도 저항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숫자를 이해한다. 이런 모습은 마치 사회 규범에 균열을 내는 특별한 아이처럼 보이지만 그의 행동을 모두 사회에 대한 의도적 저항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네스의 모성 역시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다비드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아님에도 그녀는 다비드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강한 애정을 보인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과잉보호한 것은 아닐까.

이네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제공하는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다비드를 정의하는 폭력적 어머니는 아니었을까.



시몬 역시 양면성을 가지는 인물이다.

부족한 것 없는 풍요로운 도시 노비야에서 시몬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당신들은 왜 욕망하지않고,왜 더 나은 것을 찾지 않고, 왜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느냐고..

그는 노비야 사회에서 돈키호테이다.

하지만 다비드 앞에서 그는 말한다. 사회 규범을 따르라고 왜 남들과 같이 읽고 계산하지 않느냐고..

시몬은 다비드 앞에서는 돈키호테가 아니었다.



이러한 양면성은 노비야라는 도시에서도 보여진다.

기본적인 생활 조건이 안정되어있고, 모두가 친절하며 사회적 갈등도 없는 세계 노비야.

이곳은 어쩌면 천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으며, 고통도 없지만 기억도 없는 자신을 누구인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재의 평온을 얻기 위해 잃은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위에도 말했지만 이런 인물과 세계의 설정은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대립되는 두 이미지 중 하나를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은 작가는..

이 결정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로 규정하지 않음의 중요성과 경험을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얼마전에 읽었던 쿳시의 다른 책 #마이클K의삶과시대 가 떠오른다.

마이클은 시대의 언어로 규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를 규정하려 했고 이해하려 했다. 체제와 보호라는 이름으로 그를 수용소, 병원 등으로 보냈다. 그것은 동정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다.


인물 각각을 나의 잣대를 기준으로 정의하고 이해하는 순간 각자의 인물은 정체성을 잃고 투명해질 것이고..

노비야는 마이클이 살던 시대의 또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d********7 2026.09.2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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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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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예수의어린시절#JM쿳시#말하는나무@hyejin_bookangel ..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결심’ 여기(노비야) 과거의 기억도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잊은 채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정착한 곳이 있다. 이곳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고 버스도 무료이고 교육원 강좌도 무료이며 정착지원비도 나오는 곳이다. 심지어 아파트도 제공해준다. 이곳은 천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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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

#예수의어린시절

#JM쿳시

#말하는나무

@hyejin_book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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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결심’


여기(노비야) 과거의 기억도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잊은 채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정착한 곳이 있다. 이곳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고 버스도 무료이고 교육원 강좌도 무료이며 정착지원비도 나오는 곳이다. 심지어 아파트도 제공해준다. 이곳은 천국일까?


시몬과 다비드가 그곳에 “새로 온 사람들”로 등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둘 사이는 혈연관계가 아니며, 어린 다비드를 보호하고자 ‘작정한’ 시몬이 벨스타 수용소를 거쳐 이곳으로 왔다. 시몬은 마흔 살로, 다비드는 다섯 살로 ‘정해져’ 있다. 물론 이들의 실제 나이는 아니고 이들의 이름도 수용소에서 정해준 것이다. 다비드는 부모에 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분실하면서 부모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이 이곳에 왔기 때문에 시몬의 보호가 절대적이지만 시몬은 무슨 이유(근본적)에서인지 – 그의 고집스러운 신념인가 – 다비드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만나기만 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채 마침내 만나게 된 이네스에게 다비드를 넘겨준다. ‘이건 뭐지?’하면서 생각이란 걸 해보지만 작가의 의도를 아직도 모르겠다.


다비드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데 다비드의 뛰어난 창의성과 상상력이 문제였을까 교사와의 갈등으로 다비드는 특수 교육기관으로 보내질 처지에 놓이지만 이네스의 고집은 절대 그곳으로 다비드를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고 심지어 그곳을 떠나 “집시”가 되겠다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른다. 디아스포라적이지 않은가!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무작정 타지역으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는 것,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결심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무모해 보이지만 이들의 결심은 실행에 옮겨진다. 탈영토화로 이해해도 될까 싶다. ‘천개의 고원’에서 이런 탈영토화는 위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반복된다고 한다.


작품에는 적잖은 철학적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어렵다. 작가의 전작 ‘추락’을 읽었다지만 –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이 작품은 전혀 다른 색채가 느껴진다. “옮긴이 해설”을 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이 “예수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라는 것도, 이 작품이 2013년에 출간되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옮긴이가 이 작품을 6~7년 전에 번역했다는 것도... 삼부작 중 나머지 두 작품은 아직 국내에 소개도 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여기(Aqui)”란 제목으로 프리미어 상영을 가졌다는 것도 참 독특한 부분이다. 옮긴이는 이것을 국내 출판계의 현실로 “우리의 현실은 부끄러움이라는 말 갖고는 표현이 안 된다.”라 표현했다.


이 작품은 한번 읽어서는 문장들을 이해하지도 못하겠더라. 재미가 있고 흥미를 계속 끄는 이야기지만 어렵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삼부작 중 나머지 두 작품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하니 궁금하지만 언제 소개될지도 모르겠다. 출판사에서 속히 삼부작을 온전히 읽을 수 있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계속 출간해주길 기대한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자고 추천해야겠다. 그럼 좀 쉬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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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헤세드의 서재(@hyejin_bookangel)님의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k*****0 2026.09.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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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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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M. 쿳시 『예수의 어린 시절』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예수는 등장하지 않는데, 왜 제목은 예수의 어린 시절일까?J. M. 쿳시의 예수의 어린 시절에는과거의 기억을 잃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노비야와 그곳에서 만난 특별한 아이 다비드가 등장한다.다비드는 어른들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끊임없이 질문하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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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M. 쿳시 『예수의 어린 시절』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예수는 등장하지 않는데, 왜 제목은 예수의 어린 시절일까?

J. M. 쿳시의 예수의 어린 시절에는

과거의 기억을 잃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노비야와 그곳에서 만난 특별한 아이 다비드가 등장한다.

다비드는 어른들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왜요?”라고 묻는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무엇일까?

아이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가 가진 질문과 다름을 존중하며

그 아이에게서 나도 무언가를 배우는 것일까?


기억에 남는 문장

"산다는 것은 대단한거란다.그 어떤 것보다도 대단한거란다."

“아이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살아요. 그들에게서 배우면 어때요?”

“싫어요! 저는 옛 삶을 원하진 않아요, 저는 새 삶을 원해요!”


예수의 어린 시절은 난민과 이주, 교육과 언어, 가족과 사랑, 환대와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정답을 쉽게 알려주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계속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낯선 사람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의 삶에 정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종교소설일 거라고 생각하고 펼쳤지만 내가 만난 것은 한 아이를 통해 삶과 가족, 교육과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소설이었다.


본 도서는 예스24리뷰어클럽으로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예수의어린시절 #jm쿳시 #말하는나무 #책추천 #리뷰어클럽J. M. 쿳시 『예수의 어린 시절』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예수는 등장하지 않는데, 왜 제목은 예수의 어린 시절일까?

J. M. 쿳시의 예수의 어린 시절에는

과거의 기억을 잃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노비야와 그곳에서 만난 특별한 아이 다비드가 등장한다.

다비드는 어른들이 정해놓은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왜요?”라고 묻는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무엇일까?

아이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가 가진 질문과 다름을 존중하며

그 아이에게서 나도 무언가를 배우는 것일까?


기억에 남는 문장

"산다는 것은 대단한거란다.그 어떤 것보다도 대단한거란다."

“아이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살아요. 그들에게서 배우면 어때요?”

“싫어요! 저는 옛 삶을 원하진 않아요, 저는 새 삶을 원해요!”


예수의 어린 시절은 난민과 이주, 교육과 언어, 가족과 사랑, 환대와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정답을 쉽게 알려주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계속 질문하게 만든다.

나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낯선 사람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의 삶에 정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종교소설일 거라고 생각하고 펼쳤지만 내가 만난 것은 한 아이를 통해 삶과 가족, 교육과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소설이었다.


본 도서는 예스24리뷰어클럽으로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예수의어린시절 #jm쿳시 #말하는나무 #책추천 #리뷰어클럽


c********0 2026.09.2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가족이란? 교육이란?
"가족이란? 교육이란?" 내용보기
[도서 제공]#예수의어린시절#J_M_쿳시#말하는나무왕은철옮김#헤세드서평단<390p> 194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어나 대학에서 영문학 공부. 영국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함.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주립대 영문과 교수. 다시 본국에서 영문과 교수로 지내며 소설을 씀. 2003년 노벨문학상과 부커상 2회 수상 기록을 갖은 작가. 저자의 최근작 <폴란드인>만 읽어본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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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제공]

#예수의어린시절

#J_M_쿳시

#말하는나무

왕은철옮김

#헤세드서평단


<390p>


 194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어나 대학에서 영문학 공부. 영국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함.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뉴욕주립대 영문과 교수. 다시 본국에서 영문과 교수로 지내며 소설을 씀. 2003년 노벨문학상과 부커상 2회 수상 기록을 갖은 작가. 


저자의 최근작 <폴란드인>만 읽어본 사람으로 저자의 작품을 내가 잘 읽어낼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 작품에 함축된 의미를 내가 다 읽어내지 못했었다. (도움이 필요한 작품) 저자의 다른 작품들도 혼자 읽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리뷰를 읽었었기에 이 시리즈 작품을 읽기 전 걱정이 있었지만, 저자의 매력을 느끼기에 이 책은 좋은 선택이었다. 그가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책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 자체가 좋았고, 스토리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아 저자 입문작으로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40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시몬과(시몬이라 하기로 했다.) 한 다섯 살로 추정되는 다비드라 부르기로 한 아이는 낯선 도시에 도착한다. 그들의 과거는 배를 타고 오는 도중에 사라져 그들의 과거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시몬은 같이 배를 타고 오던 중 혼자인 아이 다비드의 보호자가 되기로 한다. 정착을 위해 일자리와 머물 곳을 찾는데 센터의 직원은 친절한 듯 친절하지 않다. 

 안내를 한 곳은 잠겨있고, 자신들이 배정받은 방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피곤과 배고픔과 갈증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런 그들에게 안내를 한 여인은 물을 제공하고 자신의 거처의 야외의 잠자리를 내준다. (친절인가? 아닌가?)


 임시 거처에 짐을 풀고 일자리를 찾아 나선 시몬은 부두로 향한다. 스페인어가 능숙하지 않아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나를 만한 몸으로 보이지 않지만 감독은 시몬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가 일하는 동안 다비드와 함께 있어준다. 감독과 함께 자신을 감독하는 아이에게 자신이 약하지 않음을 아이에게 창피함을 주지 않으려 그는 힘을 내 일을 한다. 


 시몬에겐 목표가 있다. 다비드에게 엄마를 찾아주는 것. 그리고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 새로 제공된 거처에서 아이의 친구인 피델과 그에게 대가 없이 음악을 가르쳐 주는 그의 엄마, 엘레나를 만나며 또래와 교류도 시작된다. 다비드의 어머니라고 시몬이 확신한 이네스를 만나기 전까지.. 


 시몬은 우연히 만난 이네스에게 다비드의 엄마라 확신하고 그에게 다비드의 엄마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다비드가 엄마와 함께 지낼 수 있게 거처를 내어주고 자신은 부두에서 지내는 것을 선택한다. 처녀인 그녀가 다비드의 온전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네스는 다비드를 과보호하고, 그런 다비드의 곁에서 시몬도 함께 돌본다. 과보호하며 키우고 싶어 하는 이네스와 사회 속에서 키우고 싶어 하는 시몬. 하지만 양육의 결정은 전적으로 엄마인 이네스의 선택에 달렸다. 


 친구와의 교류가 단절되고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다비드.

돈키호테를 옆에 끼고 천재 스멜을 풍기지만 학교라는 틀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특수 교육을 받는 것을 권하지만 이네스는 아이와 떨어지는 것을 거부한다. 

아이의 호기심과 자유로운 생각을 존중해야 할 것인가? 사회화하는 교육을 받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왜 여기에 있게 되는 걸까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이유로 여기에 있는 거야. 우리에게 살 기회가 주어졌고 우리는 그 기회를 받아들였다. 산다는 것은 대단한 거란다. 그 어떤 것보다도 대단한 거란다. 33p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81p


아이가 자궁을 떠나게 되면, 생명을 주는 자로서의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소진된 힘에 불과해요. 그때부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배려이고, 그것은 남자도 여자처럼 줄 수 있는 것이에요. 145p


아이는 자유로워야 해요. 아이는 어린 시절을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아이가 학교에 온다고 자유를 포기하는 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자유를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의 말을 듣는다고 자유를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자유는 규율과 노력과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276p




 책의 내용으로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를 정확하게 찾기 어렵다. 성경 지식이 있다면 다비드의 모습이나 부모의 모습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연결 지을 수 있긴 하지만,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제목 발목이 잡혀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며, 그보다 가족의 의미와 사랑과 책임에 대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하는 행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다비드가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 앞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1+1이 꼭 2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로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고민하게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언제부터 사라지는 것일까? 작디작은 부드러운 손을 잡고 너를 끝까지 지켜줄게! 너의 호기심을 지켜줄게! 다짐하던 그 마음은 언제 사라졌을까?


<예수의 어린 시절>, <예수의 학창 시절>, <예수의 죽음> 예수 삼부작은 2026년 후반기 영화로 나온다는데 감독은 이 작품들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노벨문학상작가 #부커상작가 #예수삼부작 #교육 #자유와규칙 #양육의방향 #부모의자리 #가족이란 #장편소설추천 #독서모임추천도서 #영화원작 


s****o 2026.09.2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예수의 어린 시절” 서평
"“예수의 어린 시절” 서평" 내용보기
#리뷰어클럽리뷰 "YES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관념론과 실재론 모두 결국 ’관념‘의 틀이라는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부딪혀 깨져 버린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사유가 산산조각나버린 파편들을 가지고 관념을 가지고 실재로 나아가게끔 해주는 공존을 가능케 해준다. 얼핏 보기에 시몬은 실재론에서, 다비드는 관념론에서 각자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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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클럽리뷰 

"YES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관념론과 실재론 모두 결국 ’관념‘의 틀이라는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부딪혀 깨져 버린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사유가 산산조각나버린 파편들을 가지고 관념을 가지고 실재로 나아가게끔 해주는 공존을 가능케 해준다. 얼핏 보기에 시몬은 실재론에서, 다비드는 관념론에서 각자의 서사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생계와 목적에 맹목적이던 초반부의 시몬은 자신의 이상(때때로 소박하게는 바람조차)에 동의하지 않는 인물들에 의해 갈등을 겪는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새로운 삶보다는 스스로가 원했던 새로운 삶을 바랬던 그가 겪게 되는 시련들은 다비드와의 교류가 지속됨에 따라 해결되지 않은 채 새로운 서사 뒤로 물러나고 잊혀지고 어느새 존재하지 않게 된다. 


다비드라는 완전히 형이상학적인 과제가 그의 쇠약한 어깨 위로 지워지게 된 것이다. 그는 곡물 자루에 의해서가 아닌 다비드에 의해 걷고 비틀거리다가 정신적인 한계에 내몰렸을 때, 자신의 이상(관념)의 총체인 다비드를 품에서 보냄으로써 현실이라는 실재에 순응하고자 하였다. 


책 속에서도 종종 등장하지만 삶에서의 구원이란, 어쩌면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진다.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린 다비드를 포기하고 현실에 무릎을 꿇으려는 그때, 다비드의 서사적 어머니인 이네스가 반강제적으로 시몬의 육체를 ‘제 자리에’ 되돌려놓는다. 


시몬의 정신은 힘을 잃었고, 현실의 영역을 떠도는 와중에 몸은 가족과 함께 기존의 현실에서 벗어나는 아이러니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물이 최소한으로 등장하는 대목에서 다비드의 헛된 관념들이 더욱 증폭되는데, 이는 시몬의 정신이 말미에는 이상(관념)과 현실과의 양립에서 현실과 다가올 현실과의 양립을 유지할 수 있는 훈련으로 작용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과 라이프니츠의 최선의 세계를 부정했던 그는 불가항력적인 요소들과 인물들에 의해 누구보다도 애를 쓰며 문답하고 (라이프니츠에 긍정함은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애를 쓰며 최선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나아가게 되었다.’ 그것은 용기나 객기에 의해서가 아닌, 좌절과 체념, 타인에 대한 의무감을 지나 마치 자기 자신의 ‘선택’이 기둥이 되고 다비드와 그 외의 요소들은 주변부를 이루는 듯한 양상으로 초연하게 나아가게 되었다.


.

.

.


특히나 삶 자체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 관해서는 참으로 무어라 감상했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삶에 대해서 가르치거나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느낌 자체를 서술하는 일조차 엄청난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감상, 즉 나의 시야에 들어선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 풍경을 쓰는 의무를 저버릴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감히 몇 자 더해보는 것으로, 소설을 지배하는 시련의 굴레에 그대로 빠져버렸지만 서평 한 번 쓰지 않은 나를 선정해준 예스24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런 류의 책을 읽고 “나는 이렇게 느꼈고 삶에 대해 이런 부분을 배웠다.”고 말한다면 거짓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참은 아닐 것이다. 진정성있게 책을 읽었다면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게 말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더이상 말한다면 그것은 정해진 영역을 넘어선 오만함일 것이므로, 이제 나는 나의 일상을 감당하기 위해 이 글을 마친다. 새로운 인생을 희망하는 사람으로서! 

YES마니아 : 로얄 e*******0 2026.09.22.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해하려 할수록 어려워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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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리뷰어클럽리뷰J. M. 쿳시의 <예수의 어린 시절>은 과거를 잃어버린 채 낯선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제목의 예수만 보고 성경 속 예수님의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막상 책을 펼치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몬과 다비드는 배를 타고 노비야라는 도시에 도착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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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J. M. 쿳시의 <예수의 어린 시절>은 과거를 잃어버린 채 

낯선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목의 예수만 보고 성경 속 예수님의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막상 책을 펼치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몬과 다비드는 배를 타고 노비야라는 도시에 도착한다.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이름과 생일이 주어지고 

이전의 삶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서로 가족도 아니었던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시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다비드의 어머니를 찾는 것. 

하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시몬은 어느 날 만난 이네스를 보고 단번에 다비드의 어머니라고 확신한다. 

혈연도 증거도 없지만 이네스는 결국 다비드의 엄마가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이상한 이야기인데, 책을 읽을수록 의문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 어느것도 상식과 같지 않고 그 어느것도 종잡을 수 없었다.



제일 어려웠던건 젊은 친구, 다비드의 말이었다.

5-6살이니 그의 모든 말을 곧이 곧대로 들어선 안되겠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다비드를 통해 느낀건 

숫자는 순서대로 세고, 글은 쓰인 대로 읽고, 

학교에서는 정해진 방식으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기듯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으며 그게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에 

어쩌면 다비드처럼 의문을 갖기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제목에 사로잡혀 

대체 이게 예수의 어린 시절과 어떤 연결이 있는지 

하나하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읽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던 것 같다.

그러나 의미를 하나도 찾지 못한채 ㅠㅠ 중간부터는 그냥 읽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도가 나가지 않을것 같아서.


결국 다비드가 특별한 아이인지, 

그저 제멋대로인 아이인지 책은 끝까지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읽기 어려웠음에도 작가의 예수 3부작이라고 불리는 그 다음의 책들이 궁금해짐;


<예수의 어린 시절>은 읽는 사람마다 전혀 다른 답을 내놓을 것 같은 소설이었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 감독이 의미한 바를 찾게 되는 것처럼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의 느낌과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만드는 책📚



b******1 2026.10.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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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린 시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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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J.M. 쿳시의 소설 『예수의 어린 시절』은 제목이 주는 선입견과 달리 예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들이 모여드는 가상의 스페인어권 도시 노비야를 배경으로, 고아가 된 난민 소년 다비드와 그의 대부를 자처한 노인 시몬의 서사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노비야는 환상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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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J.M. 쿳시의 소설 『예수의 어린 시절』은 제목이 주는 선입견과 달리 예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들이 모여드는 가상의 스페인어권 도시 노비야를 배경으로, 고아가 된 난민 소년 다비드와 그의 대부를 자처한 노인 시몬의 서사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노비야는 환상적이거나 신비롭지 않았다. 오히려 의식주와 의료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평화 이면에 철저한 통제와 전체주의적 단조로움이 도사린, 현실의 지독한 연장선에 가깝게 느껴졌다.


소설은 서사 자체의 극적인 변화보다 실존과 사유의 담론에 집중한다. 시스템의 규격화된 정답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우리가 왜 여기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다비드의 모습은 지적으로 매혹적이다. 『돈키호테』를 품에 안고 세상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소년의 삐딱함은 메시아적 암시를 풍기며, 핏기 없는 도시에 질문을 던진다.


나와 다른 낯선 타자를 어디까지 용인하고 품어낼 수 있을까.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오늘날 전 세계를 떠도는 실제 난민들의 불안한 실존적 고뇌와 고스란히 겹친다.


간결한 문장 속에 숨겨진 철학적 무게감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리뷰어클럽리뷰



YES마니아 : 골드 b******2 2026.10.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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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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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쿳시의 소설 예수의 어린 시절은 제목만 보면 말 그대로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소설에는 예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고 예수와 같은 인물도 등장하지 않습니다.벨스타에서 온 5살 소년 다비드와 시몬은 노비야에 도착합니다. 노비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항구도시로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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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쿳시의 소설 예수의 어린 시절은 제목만 보면 말 그대로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소설에는 예수가 직접 등장하지 않고 예수와 같은 인물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벨스타에서 온 5살 소년 다비드와 시몬은 노비야에 도착합니다. 노비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항구도시로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노비야의 사람들은 단조롭고 평범해보이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지만 시몬은 거기서 만족하지 만족하지 못합니다.

시몬이 무미건조해보이는 도시 노비야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환대란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다비드와 시몬이 도착했을때 나는 그들을 어떻게 환대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지 저자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책 초반에는 제목을 왜이렇게 지었는지 궁금했는데 잘 지은 제목인 것 같습니다.

#리뷰어클럽리뷰

YES마니아 : 로얄 k*******6 2026.10.0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