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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개인의 의견을 담아 작성한 리뷰]
표지가 매우 인상적인 오늘의 도서 <아름다움이라는 우연> 퀴어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란 생각에 꽤 흥미로워 읽기 시작했지만 실상은 어떤 부류의 이야기가 이닌 우리 모두의 삶, 가족, 친구, 그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자메이카 이민자인 어머니는 어느날, 지구반대편 도쿄에 머물고 있는 아들의 조금은 어색하고 어찌보면 정막한 전화를 받고 곧바로 도쿄로 날아온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전혀 반기지 않고 두 사람의 고요하지만 위태한 동거가 시작된다. 살갑지 않은 가족의 방문, 아들에게는 외롭고 아픈 기억이 가득한 원가족과의 관계에서의 트라우마가 어머니의 등장으로 다시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머니 또한 문화가 전혀 다른 먼 타국에서 살아가는 아들을 보며 다시 휴스톤으로 데려가려하지만 아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장소에서의 인연들과 그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아들을 보며 지금은 없는 오빠와의 시간들을 떠올린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주인공을 아들과 어머니로 표현된다.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존재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처음 읽을 때는 살짝 적응이 어려웠지만 읽다보니 마치 우리 삶에서 매순간 만나는 존재들과 같다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작가의 의도(?)를 내가 잘 파악한건가 싶어서 뿌듯해지기 까지 했다. 내가 읽은 이 소설은 꽤 정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폭풍의 눈안의 고요함같은 안에 내포하는 많은 울분과 두려움, 좌절이 이렇게도 잔잔하게 느껴질까? 싶었다. 도쿄라는 공간은 서울과 같은 동양적 공간이지만 나에게도 꽤 낮설고 묘하게 느껴지는 장소이다. 아들이 처음 도쿄에 도착했을때 했던 생각들 내일 다시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있다는 허세를 품고 하루를 버텨가는 이방인의 삶. 어쩌면 아들에게는 자신의 존재자체가 이방인으로 느껴졌던 건 아닐까? 자신의 정체성으로 빚어진 아버지의 폭력, 노력하면 할 수록 어그러졌던 가족과의 관계, 더이상 돌아갈 곳 없던 휴스톤과는 달리 도쿄에서는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관계의 틀에서 벗어난 삶을 살 수 있었는 장소였는지도 모르겠다. 며칠간의 동거로 어머니는 아들에게 포커스 할 수 있었다. 가족안에서 자신이 아들을 어떻게 대했나? 지금 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자신 또한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삶에는 각자의 방식이 있고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냥 그것이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아들보다 어머니가 더 빨리 느꼈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아들을 두고 어머니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아무것도 바꾸려하지 않고 인정해줌에 아들도 안도하였다는 생각에 이른다.
대도시, 이방인의 삶, 색이 다른 각자의 삶의 방식이 뒤섞인 이곳에서 색을 모두 지운 도쿄 곳곳의 사진은 이 모든걸 나누고 다르게 볼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족이 있는 곳이 집일까? 아니면 나 자신이 나로서 인정받는 곳이 집일까?
"맞아. 그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오케이. 나도 미안해." "어쩌면 인생이 그런 건지도 몰라, 죽을 때까지 매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러게. 그래도 진심이기만 하다면 내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진심이라는 건 뭘까? 내가 너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함부로 판단하고 너를 나의 기준으로 정의하려고 했다면 한마디면 충분했다. 진심이 담긴 "미안해" 이 작품은 퀴어작품이라기보다 인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처럼 다가왔다. 모두 다 원가족에게 사랑을 느끼고 생각하면 포근하고 그립기만 할까? 가끔은 나를 정말 저 밖으로 내던져, 내가 원래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 해본적 있지 않나? 이 소설은 나에게 그런 기분을 선사했다. 틀에 갇힌 나에게서 벗어나 누군가에겐 이상한 삶일 지라도 나의 결정과 나의 의지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삶으로 살아도 된다는 신뢰와 안도였다.
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소설이지만 단숨에 읽어내릴 만큼 문장의 흡입력과 스며드는 감정이 좋았던 소설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나를 인정받고싶다면 누군가의 삶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함을 절감하게 해주는 내 생각의 틀을 바꿔주는 멋진 작품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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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네이버 카페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것입니다.
익숙한 장소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낯선 곳에서는 그리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와 마찬가지로 곁에 있을 때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의 마음이 멀어진 뒤에야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걱정한다는 명목으로 그 사람이 선택한 길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저자 브라이언 워싱턴은 이 작품을 통해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해와 화해를 거창한 사건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때로는 함께 걷는 몇 걸음, 무심하게 건넨 한마디,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마음이 오랜 시간 쌓인 벽에 작은 틈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갈등이 해결되려면 반드시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하고, 상처를 치유하려면 과거의 잘못을 낱낱이 꺼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관계는 그렇게 명료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오래되었고, 어떤 감정은 당사자조차 자신의 마음속에서 정확하게 찾지 못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방의 모든 시간을 알 수는 없으며, 뒤늦게 건네는 사과가 이미 지나간 세월을 되돌려 놓을 수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단번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함께 있다고 해서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라는 사실만으로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에 말 한마디가 더 깊은 상처가 되고, 상대방을 잘 안다고 믿기에 그 사람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불편함을 서둘러 해소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같은 공간에 머물고 상대방의 일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몰랐던 삶의 일부를 조금씩 발견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의 미덕을 느꼈습니다. 화해란 상대방의 입장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차이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견디며 함께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인물들에게 이름 대신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호칭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독특한 거리감을 만들어 냅니다. 구체적인 이름과 이력을 통해 한 사람을 특정하기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계의 본질에 집중하게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머니가, 누군가에게는 아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가족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독자는 인물의 사정을 관찰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관계들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됩니다. 한편 저자가 인물들을 선과 악으로 간단하게 나누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고, 상처받은 사람의 선택에도 타인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거나 잘못을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만 붙잡혀 자신의 남은 삶까지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선택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과거로부터 조금씩 풀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도쿄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습니다. 도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각자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처럼 느껴집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이곳에 왔고, 누군가는 이전의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 왔으며, 또 누군가는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을 잊기 위해 매일 헤맵니다. 서로 다른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같은 바에서 술을 마시고, 때로는 취한 채 자신의 외로움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공유하는 시간은 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떠나야 할 것이고, 오늘의 친밀함이 내일에도 같은 모습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젠가 끝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의 만남은 더욱 소중해집니다. 우리는 관계가 오래 지속되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만남은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아주 잠깐 머물렀던 도시가 평생 그리워지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사람이 오랫동안 잊지 못할 위로를 남기기도 합니다. 인연의 가치는 함께한 시간의 길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퀴어 서사라는 작품의 특징도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이 소설은 퀴어라는 정체성을 인물의 삶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편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들의 삶에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뿐 아니라 외로움과 욕망, 우정과 불안, 소속되고 싶은 마음과 떠나고 싶은 충동이 함께 존재합니다. 그는 단지 어떤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장소와 사람을 찾는 한 인간입니다. 이는 퀴어의 삶을 다루는 문학이 특정한 경험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과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관계와 자신이 직접 선택한 관계 사이에서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혈연은 우리가 선택하기 전에 주어지지만, 그 관계가 언제나 안전하고 따뜻한 것은 아닙니다. 반면 우연히 만난 친구나 낯선 이웃이 가족보다 더 큰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족은 무엇일까요. 같은 피를 나누었다는 사실일까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역사일까요, 아니면 서로의 불완전함을 알면서도 곁에 머물러 주는 태도일까요. 이 소설이 건네는 대답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가족과 선택한 가족은 서로를 대신하는 경쟁 관계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곳에서 받은 상처를 새로운 관계 속에서 돌볼 수도 있고, 멀어진 가족과의 관계를 조금씩 다시 배워 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관계만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믿지 않는 일입니다. 삶이 복잡한 만큼 사랑의 형태도 다양할 수 있으며, 누군가가 살아갈 자리를 정하는 권리는 결국 그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질문이 결국 집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집은 주소로 표시할 수 있는 장소이지만, 마음속에서 집이라고 부르는 곳은 반드시 지도 위의 좌표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 더 이상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고,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도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환영받고 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집은 과거에 속한 장소이면서 동시에 지금 만들어 가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확신해야만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지금의 선택이 옳았는지,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게 될지,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 함께할지 누구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관계를 맺어야 하며, 때로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어쩌면 집이란 영원히 머물겠다고 약속한 장소가 아니라, 불확실한 내일을 앞두고도 오늘의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연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낯선 장소에 도착한 순간에는 불안하고 뜻하지 않게 마주한 사람은 불편하며, 계획에서 벗어난 사건은 실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바로 그 우연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고통이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떤 상처는 끝내 아프고, 어떤 이별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다만 삶이 우리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안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날 가능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준비된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도중 뜻밖에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우리가 삶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미래를 계획하고 선택을 거듭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마음도 과거의 결과도 완전히 바꿀 수 없습니다. 어떤 관계는 노력해도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떤 만남은 준비하지 않았기에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만들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순간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대하는 일일 것입니다. 세상을 구하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없다는 작품 속 말이 유독 마음에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창한 구원보다 자신을 지키는 일, 타인의 곁을 지켜 주는 일, 누군가가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일. 그것은 작아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빠르게 읽고 명쾌한 결론을 얻는 종류의 소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인물들의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고, 관계의 변화 역시 빠르게 드러나지 않고 작은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바로 그 느린 호흡과 여백이 이 작품의 장점입니다. 독자에게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강요하지 않고 누가 옳은지 판결하지 않으며, 삶에 관한 질문을 하나의 정답으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오래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둡니다. 문장 사이에 놓인 침묵을 읽고 인물들이 끝내 하지 못한 말을 상상하며, 자신의 삶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관계를 조심스럽게 돌아보게 합니다. 특히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감정을 품고 있는 분들, 타지에서 생활하며 소속감과 외로움 사이를 오가는 분들,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보다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퀴어 문학을 통해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좋은 작품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용서해야 할지, 관계를 계속 이어 가야 할지, 자신이 선택한 삶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분들이라면 이 소설의 느린 걸음에 마음을 맡겨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이 책은 성급하게 답을 내놓기보다, 답을 찾는 동안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좋은 인생이란 어디에도 상처받지 않는 삶이 아니라, 상처를 입고도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 줄 수 있는 삶일 것입니다. 영원히 머물 장소를 찾는 것보다 잠시 머무는 곳에서 진심을 나누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모든 불확실성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서로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 주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이 그 소박하고도 어려운 진실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삶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뜻밖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우연한 순간에, 오래 찾아 헤매던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아름다움이라는우연 #브라이언워싱턴 #최현영 #더픽션 #북유럽 #서평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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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라는 우연』
가을바람이 차분하게 불어오는 요즈음, 마음을 먹먹하면서도 따스하게 채워줄 만한 깊이 있는 소설 한 권을 소개해요. 거대하고 번화한 도시 도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엄마와 아들의 어색한 동거, 퀴어로서의 삶, 그리고 관계 속에서 찾아오는 슬픔과 용서의 이야기랍니다.
소설의 출발점은 지구 반대편에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도쿄로 날아온 어머니의 발걸음에서 시작돼요. 하지만 오랜만에 공항에서 마주한 두 사람 사이에는 반가움보다 어색함과 미묘한 긴장감이 더 무겁게 감돌아요. 어머니와 아들은 무려 십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서로를 외면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도쿄의 좁은 생활 공간에서 열흘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어정쩡하고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답니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지만, 지구 반대편 타인보다 더 멀어진 두 사람... 과연 이 짧은 시간 동안 거대한 시간의 골을 메울 수 있을까요?
아들의 이야기 : 낯선 도시에서 찾아낸 나만의 진짜 ‘집’ 아들은 현재 도쿄에서 영어 과외를 하며 거대 도시의 한 귀퉁이에 근근이 정착해 살아가고 있어요. 그는 매주 밤마다 퀴어 바를 드나들며, 그곳에서 만난 에너지 넘치고 요란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눠요. 타지인이자 퀴어로서 이 사회에서 온전한 자기 모습으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치열하게 만들어가는 중이죠. 그러던 중 아들은 퀴어 바 ‘프렌들리’에서 깊은 인연들을 맺게 돼요. 혈연으로 묶인 진짜 가족에게서 받지 못했던 따뜻한 온기와 이해를, 그는 역설적이게도 낯선 도시의 밤거리 바에서 새로 만난 ‘선택한 가족’을 통해 비로소 느끼게 된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 : 아들의 세계를 관찰하며 되찾은 스스로의 기억 어머니는 열흘 남짓한 도쿄 체류 기간 동안 아들의 일상을 조용히, 때로는 묵직하게 지켜봐요. 아들이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어떤 눈빛으로 이 도시를 살아가는지 바라보며 서서히 아들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죠. 동시에 어머니 또한 도쿄라는 공간에서 뜻밖의 인연을 맺어요. 우연히 발길을 들인 작은 비스트로의 주인과 친분을 쌓게 된 것이죠. 그와 함께 도쿄의 골목길을 거닐고 담소를 나누면서, 어머니는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오빠 스테판에 대한 아픈 기억과 슬픔을 되짚어 보게 된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아요. 서먹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이 도쿄라는 도시가, 실은 아들이 진심으로 호흡하고 뿌리내린 진짜 ‘집’이었다는 사실을요.
신파극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관계의 복원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단번에 모든 오해가 풀리는 식의 극적인 반전은 없어요. 대신 도쿄라는 감각적인 공간 속에서 두 사람이 각자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도시의 풍경을 거닐며 스치듯 감정을 주고받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해요. 억지로 갈등을 해결하려 애쓰지 않아도, 서로의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천천히 마음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 사이로 온기가 스며드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답니다.
‘퀴어’라는 이름, 그리고 ‘선택한 가족’이 주는 다정한 위로 작품 속에서 퀴어 바 ‘프렌들리’는 단순한 유흥의 공간이 아닌, 외롭고 상처 입은 이방인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안식처로 그려져요.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이 반드시 완벽한 구원이 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때로는 낯선 길위에서 스스로 선택한 타인이 더 깊은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적으로 풀어내죠. 퀴어로서 도시의 경계선에서 살아가는 아들의 고독함, 그리고 그런 아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서성이는 어머니의 애틋함이 교차할 때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어요.
『아름다움이라는 우연』은 ‘사랑이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영역까지도 그 사람의 삶으로 인정하고 품어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요. 용서라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나 결심이 아니라, 살아가며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자연스럽게 마음을 물들이는 일이라는 것을요.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일독해 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려요.
😍 더픽션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