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X의 혼신 <별똥별>을 읽고 카렐 차페크의 철학소설 3부작 가운데 하나인 <별똥별>을 만난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먼저 책 제목이 품고 있을 의미를 내 나름대로 짐작해본다. ‘별똥(별)’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똥같은 별, 그러니까 동물이 음식을 섭취한 후 소화 과정에서 흡수되지 않아 몸 밖으로 배출되는 찌거기처럼 별이 생명력을 다하거나 일부가 떨어져 나온 것이다. 둘 다 그 쓸모를 다한 상태로 일종의 죽음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로부터 별은 인간에게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져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개인과 나라의 운세를 점치고, 땅으로 떨어지는 별을 대하며 죽음을 예감했다. 사실 날마다 우리 곁으로 죽은 별의 잔재가 떨어지고 있지만 너무 작아서 감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책장을 펼치니 별똥별이 떨어진다. 아니다. 돌풍이 휘몰아치는 날에 하늘에서 비행기 한대가 독자 앞으로 추락한 것이다. 생존자의 이름을 비롯한 기본정보(라 쓰고 '정체성'이라 읽어야 할 듯하다)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모두 불 타버린 탓에 병원 사람들ㅡ의사, 수녀, 천리안, 시인ㅡ의 입에서 나온 것들로 '환자 X'의 인생을 엿들을 수밖에 없다. 문득 X가 『나?(페터 플람 지음)』 에서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장교의 여권을 갖고 귀향한 제빵사와, 『타인의 얼굴(아베 코보 지음)』에서 실험 사고로 얼굴을 잃어버린 남자와 겹쳐보이기도 한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리 보인다고 했던가. 내·외과 의사들이 X를 그저 ‘불쌍한’ 환자로 규정한 반면, 간호를 맡은 수녀와 입원한 천리안 그리고 퇴원한 시인은 환자의 얼굴에 감긴 붕대를 조심스레 풀듯 혹은 흰 붕대 위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듯 어찌하여 X가 불쌍한 환자가 되었는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수녀가 종교적 시선으로, 천리안과 시인이 각각 특유의 관찰력으로 재구성한 X의 삶에는 단순히 세사람의 상상력뿐만 아니라 각자의 경험들도 녹아져 있음을 독자는 알게 된다.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납작하게 누워 아무런 말도 못하는 X와 다르게, 그를 지켜보는 이들은 책속의 찢어진 페이지를 복원하는 데 여념이 없다. X의 삶을 ‘닫힌 책’에 빗대며 천리안은 그것을 읽어내기가 어렵다 말하고, 시인은 아예 쓸모 없는 일이라며 다른 견해를 가진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이름도 가족도 직업도 모르는 것투성이라서 산 자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은 완전히 실재하지 않았고 삶의 대부분을 마치 꿈꾸듯 살았다(96쪽)”는 천리안의 말을 곱씹으면서, 개인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 하나가 이 있고 없음에 따라 한 사람의 실존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공포스럽다.
저자는 『평범한 인생』에 이어 다시 한 번 ‘기억’의 힘을 소환한다. 앞서 언급한 것들과 함께 기억은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이다.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잃어버리면 흡사 의식을 잃은 사람같이 현실도 비현실이 되고,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 없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X를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기를 반복하는 인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감당하지 못해 도피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삶에서 다른 저 삶으로 도망침으로써 일종의 해방을 꿈꿨던 건 아닐까. “이야기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그 이야기가 무너져야만 알 수 있습니다(142쪽).”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 문장처럼, 어쩌면 한 사람의 삶은 그 삶이 무너지거나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과연 X는 침대에서 다시 일어나 다른 세상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을까, 궁금한 독자라면 소설을 읽고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이제 그만 열어본 ‘닫힌 책’을 닫으며 본 리뷰의 제목을 이렇게 쓴다. 정체가 불명한 환자의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아 ‘환자 X의 혼신’이라고. |
|
카렐 차페크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 펀딩을 발견하고 이건 운명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보라 작가님의 번역으로 카렐 차페크 소설을 처음 겪어 볼 수 있다니 감격입니다. 같은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이 별똥별이야말로 저의 취향을 딱 저격하는 작품입니다. 세 사람의 상상력으로 이렇게 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