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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가 한국에서만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기원전 8세기 경에 창작된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아>가 어마어마한 시간을 거슬러 오늘에 닿은 것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피어오른다. 역사 속 수많은 국가와 권력이 스러져 갈 동안, 이토록 오래된 고대의 이야기는 어떻게 잊히지 않고 수천 년간 끊임없이 읽히며 재생산될 수 있었을까? 퍼디아 레넌의 소설 《영광 없는 영웅들》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대단히 기발하고 감동적인 답을 던진다. 소설의 배경은 기원전 412년,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이 비참한 패배로 끝난 직후의 시라쿠사. 채석장 감옥에서 짐승처럼 죽어가는 아테네 포로들 앞에 두 명의 시라쿠사 사람, 겔론과 람포가 등장해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을 미끼로 고대 비극의 대사를 외우게 시킨다. 소포클레스는 안되고, 아이스킬로스도 안되고, 다른 아테네 시인들 건 안쳐준다. 낭송하고 싶으면 해도 되지만 물과 치즈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만 준다. 자, 너 뭘 할 수 있지?” (p.19) 이 두 친구가 하고 싶은 일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와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채석장을 무대 삼고, 아테네 포로들을 배우 삼아. 시라쿠사 사람들이 아테네인들에게 품은 증오의 깊이를 생각하면, 겔론과 람포의 행동은 배덕한 행위에 가깝다. 전쟁에 승패는 있을지언정, 전쟁이 쓸고 간 자리에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와 상실감이 가득했기에. 그러나 겔론의 의지는 확고했다. 바로 그 점이 사무치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느꼈던게 기억나. 이 하늘 아래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사건의 와중에도 존엄이 있는 거라고. 그러자 덜 외로워졌어. (169p) 겔론은 연극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도무지 아테네를, 아테네인들을 미워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폐허가 된 사람들을 연극은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주인께서는 늘 불행에 귀를 기울이고, 망가진 세상은 오직 이야기로만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 분이었으므로. (p.397) 역사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그러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몰래 미술품을 지하 벙커에 숨기고, 감정을 통제당하는 영화 <이퀄리브리엄>의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단 한 권의 시집을 품에 숨겼다. 배고픈 포로에게 올리브 한 알을 쥐어주며 대사를 읽게 하던 겔론의 작은 발걸음 같은 것들이 겹겹이 쌓여 마침내 커다란 위업을 이뤄내는 법 일테다. 오늘날 우리가 크리스토퍼 놀란의《오디세이》에 열광하고, 수천 년 전 호메로스의 서사에 다시 감동할 수 있는 까닭 역시 다르지 않다. 잔혹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사라질 뻔했던 개인의 슬픔과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외우고, 기억하고, 다음 사람에게 전달했던 '이름 없는 영웅들'의 긴 이어달리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음악, 미술, 그리고 책. 문학과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라면 이 책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울림과 슬픔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아름다움 뒤에는 자신들의 삶으로 그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이어 건네준 위대하고 무용한 영웅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위대한 일들은 안 위대한 일들이 잔뜩 모여 만들어지는 법이다.” (p.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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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쳐들어왔다는 걸 아는데도, 나는 도무지 너희를 미워할 수가 없어. 그 연극을 창조한 도시라면 분명히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시라쿠사의 채석장엔 아테네의 포로들이 있다. 굶어서 삐쩍 마른 언제 죽음 앞에 설지 모를 포로들. 시라쿠사의 겔론과 람포는 도공이었지만 전쟁 이후 직업을 잃었다. 그들은 포로들에게 먹을 것을 주러 채석장에 간다. 어느 날 겔론은 아테네인들을 배우로 삼아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공연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내와 아들을 잃은 겔론은 어릴 때부터의 꿈을 잊지 않았다. 그런 겔론을 돕게 되는 람포는 술집에 노예로 있는 리라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채석장에서 벌어지는 아테네인들의 연극 누가 보러 올까?
채석장은 아테네인들이 포로로 수용되어 있는 곳이다. 죽음과 절망의 공간에서 죽어가는 아테네인들에게 연극 연습은 삶의 의지와 인간다운 모습을 살아나게 한다. 빌드업이 좋은 작가님이다. 작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니키아스의 생애>에서 영감을 받아, 7년에 걸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고대 배경의 글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의 글로 위트 넘치는 글이 재기 발랄하게 느껴진다. 전쟁으로 삭막해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연극이 들어온다. 비극의 피날레로 향해가는 동안 아무도 그 연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채석장에서의 연극 장면은 충격으로 남는다. 아테네 포로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의 마음을 잃지 않은 겔론과 람포 그리고 아이들의 천진함은 증오와 고통 속에서 그들을 벌하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비친다. 모든 것이 파괴된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웃음을 찾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연명해가는 거 아닐까.. 이 웃기면서 애잔한 이야기엔 킬포가 두 군데 있다. 반전과도 같은 두 포인트 때문에 이 소설이 정말 반전 소설처럼 느껴진다. 하찮아 보이는 인간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용기 있게 보여준 소설 <영광 없는 영웅들> 영광은 사라져도 인간다움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표지의 엉뚱함이 이 소설을 대변하는 거 같다. 우리의 세상이 저 눈동자 속에서 또르르 굴러다닐 거 같다.. 도서협찬 #영광없는영웅들 #퍼디아레넌 #다산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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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과 영웅, 모두 장대한 모험을 떠났다 귀환한 이들이나 최종적인 전쟁의 승리자에게나 흔히 따라붙는 단어다. 적국의 포로들을 데리고 어설프고 괴이한 연극 무대를 꾸렸다가 여러 사람이 맞아 죽게 되는, 더 나아가 채석장에서 그 포로들을 몰래 꺼내다 고국으로 탈출시켜주겠답시고 무모한 일을 벌이는 두 청년에게 쓰일 법하지는 않은 단어다. 그러나 작가 퍼디아 레넌은 바로 이들을 영웅으로 여긴다. 연극이 무라고. - '옮긴이의 말' 중에서 기원전 412년 시라쿠사. 이곳은 시칠리아 섬 외곽에 위치한 고대 항구도시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아테네 전쟁포로들은 이곳의 채석장이라는 감옥에 가둬졌다. 일거리 없는 도공陶工인 람포와 겔론은 6개 가죽 부대에 물과 포도주를 가득 채우고 쿰쿰한 치즈 덩이 2개도 함께 챙겨 포로들에게 이를 먹이려고 채석장으로 향했다. “물이랑 치즈다.” 겔론이 말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대사를 알고 있고 암송할 수 있는 자에게 준다! <메데이아>나 <텔레포스>의 대사를 아는 자에겐 올리브도 주겠다.” 이를 들은 한 포로는 소포클레스나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것도 괜찮은지 묻는다. 이에 겔론은 규칙을 읊었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다른 아테네 시인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낭송하는 건 자유지만 물과 치즈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만 해당된다는 말이다. 겔론은 에우리피데스에 미쳐 있었다. 그의 생각이 오히려 미친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연극을 올리겠다니 말이다. 과거의 영화롭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모든 건 전쟁 전의 일이다. 이제 배우俳優는 죽었고 공방工房도 모두 사라졌다. 그렇다. 지금 람포와 겔론은 이곳에서 포로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포로를 감시하는 비톤에게도 물질적 향응을 제공하고 있다. 음유시인이 되고 싶었던 겔론, 그의 가장 친한 친구 람포는 이를 지지한다. 겔론은 아테네의 패전으로 인해 위대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아테네 포로들이 그 대사를 조금이라도 읊을 수 있다면 복원을 통해 소멸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2천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에우리피데스를 비롯한 당대의 탁월한 이야기들은 살아남아 읽히고 있음을 우린 이미 안다. 최종적으로 아테네가 전쟁에서 승리했고 찬란한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되었으니 말이다. 소설 속 두 주인공 겔론과 람포는 아테네가 승리할 줄 몰랐기에 채석장을 원형극장 삼아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고 노력중인 셈이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굶주림이란 참 기묘한 것이다. 결핍이야말로 모든 사랑의 근원 아닐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바로 결핍이지 않을까? 뭔가 거기 있는 것 말고 뭔가 거기 없는 것 말이다. 나는(람포) 철학자는 아니지만 누마와 파케스(배우)의 눈이 커지고 반짝이는 것을 보며, 그들이 손톱까지 바짝 세워 치즈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든다.(166쪽) 겔론이 처음 연극을 본 것은 7~8살 쯤이었다.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소포클레스의 작품 '오이디푸스 왕'이었다. 아버지를 누가 죽였는지 알아내려는 불운한 왕을 보며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손을 잡고 난 절대로 아버지를 죽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었다. 어째서 신은 오이디푸스가 친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도록 내버려둔 것인지? 그날 밤, 그는 괴로워서 내내 울었다고 했다. 아무튼 이 둘은 아네테를 사랑했다. 그리고 이런 연극을 만든 이 도시를 영원히 사랑했다. 한류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서울로 부산으로 찾아오는 현재의 현상과도 같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가 만든 예술과 문화를 동경했던 사람이었다. 이 소설의 제목 '영광 없는 영웅들'은 바로 람포와 겔론을 가리킨다. 예술을 사랑한 어리석은 인물일지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영웅인 셈이다. #소설 #영광없는영웅들 #퍼디아레넌 #다산책방 #다산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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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포위된 도시인 사라예보에 향한 사람이 있었다.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이었다. 그가 위험을 무릎 쓰고 그 곳으로 간 이유는 하나였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기 위해. 내전 중인 도시에서 뚜렷한 스토리가 없이 고도만을 반복해서 찾는 부조리극을 올리겠다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 소식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렸을까? 소설 『영광 없는 영웅들』 속 주인공 람포와 겔론의 행적을 숨가쁘게 따라가는 내내 위의 에피소드가 계속 머릿속을 멤돌았다. 람포와 겔런 역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연극을 상연하고자 애쓰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열렬한 팬인 겔론은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침공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그의 작품인 『메데이아』와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시라쿠사의 채석장에서 상연할 계획을 세운다. 위대한 작가의 훌륭한 작품을 기억하기 위해. 문제는 그 당시 아테네인들을 향한 시라쿠사인들의 살의가 상상이상으로 거셌다는 점이다. 전쟁을 치르며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그들은 포로로 잡힌 아테네 병사들이 채석장에서 서서히 굶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잔인한 쾌감을 느낄 정도로 맹렬한 적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겔론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알고 있는 아테네인 포로들을 모아 공연을 준비한다. 이 소설의 화자이며 그와 절친한 사이인 람포는 겔론을 이해하지 못한다. 유년시절부터 가족처럼 붙어다닌 친구라 연극 준비를 돕기는 하지만 그가 뿜어대는 열의는 어리석은 광기처럼 보이기만 한다.
나 역시 초반에는 람포처럼 겔론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포로들을 데리고 그들이 갇혀있는 채석장에서 연극을 올릴 생각을 하는지. 왜 이미 몰락한 사람들이 겪는 불행을 집필한 에우리피데스를 좋아하는 건지. 더구나 결점이 많은 이들이 연극을 준비하며 겪는 시행착오들은 소설 제목이기도 한 '영웅'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어보였다. 하지만 연극 준비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며 람포에게 친구의 열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 순간들이 연속적으로 찾아온다. 그 물꼬를 튼 건 아테네 포로들과의 교류였다. 도시를 침략해온 적, 죽어 마땅할 포로였을 뿐이었던 모호한 집단이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음식을 나눠주고 연극 대사를 주고 받는 친밀한 개인이 된 것이다. 그저 포로로 대했을 뿐인 그들과 어느새 막역해진 람포의 호기심은 도시에 살고 있는 다른 노예들에게로 향한다. 그들의 과거를 물어보고, 이름을 불러주며 감정을 깊이 교류하던 람포는 그간 포기해왔던 미래를 상상해보기 시작한다. 허구인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향한 애정과 희망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의 미덕은 바로 이 순간에 빛을 발한다. 4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을 통해 작가는 왜 연극이어야만 하는지, 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이어야 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모두가 함께 머리를 모아 연극을 준비하고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생존을 도모하며 최선의 존엄을 치열하게 사수하려는 란포와 겔론, 그리고 아테네 포로들의 모습은 예술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역설한다.
앞서 언급했던 수전 손택의 연극 상연은 우려하던 목소리가 무색하게 큰 주목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 연극의 관객들에게 고도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불행 끝에 살아남은 이들의 삶에 주목했던 에우리피데스와 그의 작품으로 연극을 준비하던 '영광 없는 영웅들'인 람포와 겔론의 열정을 생각해볼 뿐이다. 비극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며 노래하던 이들을. #도서제공 #영광없는영웅들 #다산북스 #서평단 #퍼디아레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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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없는 영웅들』 퍼디아 레넌 저 @ferdialennon 최리외 역 다산책방 @dasanchaekbang 2026.08.24. ❝그 작품이 계속 살아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게 해야 한다.❞ 📚 한 줄의 역사에서 태어난 소설 📚 플루타르코스 Plutarch의 『니키아스전』 (The Life of Nauseous)에는 기묘한 후일담이 전해진다고 한다. (시칠리아 원정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기원전 413년, 시칠리아 원정에서 참패한 아테네 병사들이 시라쿠사의 채석장에 갇혔을 때, 그중 몇몇은 에우리피데스의 시구를 암송한 덕분에 음식과 자유를 얻었다는 이야기다. 에우리피데스는 고대 아테네의 비극 작가다. 전쟁에서는 패배한 아테네가 그들의 시와 연극으로는 여전히 시라쿠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제국의 영광이 무너진 자리에서 그들이 만든 이야기가 사람을 살린 것이다. 작가 페르디아 레넌 Ferdia Lennon 은 이 짧은 기록에 사로잡혀 『영광 없는 영웅들』 Glorious Exploits 이라는 장편을 써냈다. 창작이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에 몇 줄로 남은 이야기 앞에 멈춰 서서, 그때 그곳에는 누가 있었을지, 무엇을 보았고 어떤 목소리로 말했을지, 확장시키고 상상하는 것. 소설은 아테네의 패전 이후인 기원전 412년의 시라쿠사에서 시작된다. 실직한 도공 람포와 겔론은 채석장에 갇힌 아테네 포로들 가운데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아는 사람들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을 배우로 삼아 『메데이아』와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공연하겠다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운다. ❝우리가 만들려는 건 시詩야. 쉽다면 하나도 의미가 없지❞ -- p.80 두 사람이 의상과 가면을 만들고, 후원자(제작자)를 구하고, 관객을 모으는 일마다 문제가 생긴다. 그럼에도 이들이 점토를 빚듯 하나씩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즐겁다. 진지한 겔론과 농담이 끊이지 않는 람포, 술집과 시장을 오가는 시라쿠사의 거리는 작열하는 태양과 먼지, 술과 땀 냄새까지 느껴질 만큼 생생하다. 람포와 겔론은 시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구하려 하면서도 비겁하고, 허영에 흔들리고, 때로는 타인에게 잔인하다. 특히 람포는 노예인 리라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유민 남성인 자신의 권력을 당연하게 여긴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고 글을 읽으며 노래하는 리라가 람포보다 훨씬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둘의 관계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순수한 영웅 대신 평범한 사람들이 비겁한 행동을 하다가도 뜻밖의 용기를 내는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 책의 제목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들이 얻을 것은 역사책에 기록될 영광이 아닐 것이다. 그저 실패할지도 모르는 공연을 끝까지 올리고, 누군가의 고통을 함부로 빼앗지 않으려는 작은 선택들이다. 이 소설의 영웅들은 그런 선택의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1/3] 📚문학의 힘, 문학의 윤리, 감동하는 인간은 왜 잔혹해지는가📚 ❝남의 고통을 훔치면 안 돼. 그건 그분 거야.❞ -- p.107 이 문장은 예술의 힘만큼이나 예술의 윤리를 생각하게 한다. 타인의 고통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또 무엇을 훼손할 수 있을까. 비극은 고통을 이해하게 만들지만, 비극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선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 감동하면서도 아테네 포로들을 굶겨 죽인다. 시를 외워야만 음식을 받을 수 있는 것. 작가가 이 소설의 출발점에서 붙잡은 것도 바로 이 모순이었다고 한다. 예술은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하지만, 인간은 예술에 감동하면서도 잔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은 실제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소설 속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는 순간들이었다. 그렇다고 공연 하나가 전쟁의 기억을 지우거나 증오를 끝내지는 못한다. 무대 위의 비극과 현실의 폭력이 가까워질수록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는다. 어느 시점부터는 영화 『호프』의 첫 한 시간처럼 조마조마하고 박진감 넘쳤다. 이 공연이 어디로 갈지, 이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서 책장을 넘겼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슴이 저릿하였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예술이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움직이고, 그렇게 변한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반드시 선한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예술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소설에서 내가 울컥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세상이 한꺼번에 바뀌는 기적보다, 한 사람이 눈앞의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순간들.[2/3] 📚더블린의 생생한 목소리로 듣는 고대의 이야기📚 읽는 동안 이 소설을 아일랜드 작가가 썼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아테네와 시라쿠사의 관계에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겹쳐 보이기도 했다. 식민 지배를 경험한 나라의 사람에게 그 역사는 어떤 감각으로 남을까. 작가는 이 소설이 아일랜드에 관한 직접적인 우화는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해양 제국과 섬의 역사, 아일랜드 영어 같은 요소들이 먼 고대를 감각하게 만드는 단서가 되어주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더블린 말투를 택한 이유가 좋았다. 기원전 5세기 시칠리아의 평범한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남아 있는 기록도 주로 엘리트의 언어다. 그래서 그는 이 소설을 일종의 ‘상상에 의한 번역’으로 썼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현대 더블린의 말투로 고대의 보통 사람들을 말하게 한 것. 람포와 겔론이 납작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옆자리에서 술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그런 선택이 있었다. 욕설과 농담, 허세와 슬픔이 한 사람의 말 속에서 쉴 새 없이 자리를 바꾼다. 원문의 바이브를 느끼고 싶어서 유튜브에서 오디오북 프리뷰와, 작가가 직접 낭독하는 영상을 찾아 들었다. ❝그러나 아울로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에 비하면 몹시 연약할지라도, 바로 우리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게 우리가 한번 해보려는 것이다.❞ -- p.345 사람을 파괴하는 힘 앞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들이란? 『영광 없는 영웅들』은 한 편의 연극이 구할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외우고, 배역을 나누고, 가면을 만들고, 공연을 준비한다. 실패할 가능성이 그 일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상식이란 흔해빠진, 상상력이라곤 없고 오직 선례만을 따르는 생각일 뿐이다. 상식을 따르면 주머니 속이, 그리고 내면까지도 가난해진다. 상식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그 짧은 역사의 조각을 7년씩 붙잡고 있었던 작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 몇 구절을 기억한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 사이에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와 선택들. 이야기는 그렇게 다음 사람에게 건너간다. 이 책을 많이들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읽으신 뒤에는 작가의 인터뷰와 낭독도 함께 들어보셨으면...! [3/3] #영광없는영웅들 #페르디아레넌 #다산북스 #GloriousExploit #FerdiaLenn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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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이 먼저 눈길을 끌었습니다. 『영광 없는 영웅들』은 아일랜드 작가 퍼디아 레넌의 장편소설 『Glorious Exploits』를 최리외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라고 하면 흔히 영웅들의 시대, 혹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같은 철학자들의 시대로 어렴풋이 떠올리기 마련인데, 『영광 없는 영웅들』은 그 시대를 살아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게 해 주어서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퍼디아 레넌은 1988년 더블린에서 아일랜드인 어머니와 리비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더블린 대학교에서 역사와 고전학을 공부했고,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고대 그리스에 매료되었던 그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던 중, 시라쿠사 외곽의 채석장에 던져진 약 7천 명의 아테네 포로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플루타르코스의 『니키아스의 생애』에서, 귀향한 포로 몇몇이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기억하여 낭독한 덕분에 시라쿠사인들로부터 음식과 음료를 얻어 살아남았다는 짧은 기록을 발견했고, 이 한 줄의 역사적 사실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7년에 걸쳐 완성한 『영광 없는 영웅들』은 그의 데뷔작임에도 워터스톤스 데뷔소설상,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 볼린저 에브리맨 우드하우스 희극문학상, 작가클럽 최고 데뷔소설상 등 다섯 개의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기원전 412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시켈리아 원정에 실패한 아테네 병사 수천 명이 시라쿠사의 채석장에 갇혀 서서히 죽어 가던 시기입니다. 주인공 람포와 겔론은 영웅도 철학자도 장군도 아닌, 그저 시를 좋아하는 두 도공입니다. 이들은 굶주린 포로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대신 에우리피데스의 시구를 대가로 받으러 채석장을 드나들다가, 급기야는 포로가 된 아테네인들을 배우로 세워 『메데이아』를 무대에 올리자는 무모한 계획을 세웁니다. 전쟁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한복판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여전히 시를 읊고 연극을 꾸미고 술잔을 기울이며 살아갔다는 사실이 『영광 없는 영웅들』을 읽는 내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리스 로마 시대를 떠올릴 때면 늘 페리클레스나 소크라테스, 알키비아데스 같은 이름들을 먼저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영광 없는 영웅들』은 그 유명한 이름들 곁에서, 이름조차 남지 않았을 도공과 상인과 술집 주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시대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역사책은 전쟁의 승패와 지도자들의 결단을 기록하지만, 그 전쟁을 몸으로 살아 낸 것은 결국 이런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그 시대가 단순히 영웅담이나 철학의 계보로만 남아 있던 제 머릿속 지도에, 술 냄새와 채석장의 먼지와 시 구절이 오가는 생생한 골목 하나가 새로 그려진 느낌이었습니다.
람포와 겔론이 살아가는 방식도 그랬습니다. 이들은 전쟁의 결과를 바꿀 힘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야심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술 한 잔과 시 한 구절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는 포로들 앞에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하고 우스운 발상이었겠지만, 저는 그 장면에서 오히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 무력한 개인이 그럼에도 손에 쥘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예술과 이야기의 힘을 보았습니다. 시라쿠사의 채석장은 죽음의 냄새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서도 에우리피데스의 대사를 주고받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작가가 아일랜드 특유의 위트와 구어체 대화를 과감하게 고대 시라쿠사의 무대 위에 얹어 놓은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법한 현대적인 말투와 욕설이 오히려 이 인물들을 멀리 있는 고대인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의 누군가처럼 가깝게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균형감이 『영광 없는 영웅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채석장의 참상과 인물들의 유머 사이를 오가는 톤의 변주가 어느 순간에는 다소 급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켈리아 원정은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감행한 원정 가운데 가장 참혹한 패배로 꼽히는 사건입니다.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원정에 나선 아테네군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고, 살아남은 이들 중 다수가 채석장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 갔습니다. 소설은 이 냉정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에 그대로 세워 두면서도, 그 위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얹어 놓습니다. 그래서 『영광 없는 영웅들』을 읽고 나면, 역사 교과서 한 줄로 남았을 사건이 훨씬 구체적인 얼굴을 갖게 됩니다. 그럼에도 전쟁의 비극 한복판에서 시와 연극을 붙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가장 참혹한 순간에도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광 없는 영웅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 준, 뜻밖의 발견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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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 아직도 여전히 지구 한쪽에서는 전쟁이 진행중이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도 모를 전쟁을 치루고 있다. 전쟁과 점점 무섭게 변하는 지구,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삶이 무너진 피해자들. 그들은 무슨 죄인가. 그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의미 없는 죽음과 삶이 파괴된다. 이 책에서는 전쟁 포로들이 나온다. 그들과 함께 하는 연극 메데이아. 연극을 통해 적국이지만 그 나라를 사랑한다. 작품을 통해 하나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지만 상처입고 폭력을 행하는 그들 마음 또한 이해되기에 씁쓸 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전쟁 자체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ㅠㅠ 코믹이라해서 마냥 웃길 줄 알았는데 그 보다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고대그리스 #그리스신화 #포로수용소 #전쟁 #영웅이야기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 블라인드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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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없는 영웅들》 | 퍼디아 레넌 지음 고대 그리스에 매료된 작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며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다 시라쿠사에 붙잡힌 아테네 포로들이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들려주고 도움을 받았다는 일화를 발견한다. 이 짧은 기록이 《영광 없는 영웅들》의 출발점이 되었다. “죽으려고 환장했냐. 연극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 시라쿠사의 도공 겔론과 람포는 적국 아테네의 작가 에우리피데스를 사랑한다. 전쟁으로 아테네가 무너진다면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에우리피데스를 아는 포로들을 찾아 《메데이아》와 《트로이아의 여인들》을 무대에 올리기로 한다. 돈도, 제대로 된 무대와 소품도 없는 상황에서 적국의 포로들과 연극을 만들겠다는 발상이 터무니없어서 좋았다. “나는 아테네를 사랑해. 그 연극을 만든 도시를 언제나 사랑할 것 같아.” 재미있었던 것은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관계와 역할이 계속 달라진다는 점이다. 시라쿠사 사람과 아테네 포로는 에우리피데스의 글을 듣고 싶은 사람과 암송하는 사람이 되고, 연출가와 배우가 된다. 람포 역시 포로 파케스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면서 결국 그를 친구로 받아들인다. 마지막에 파케스가 건넨 아테네식 작별 인사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오른 연극에서 누마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시라쿠사 사람도 아테네 포로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 관객이 된다. 승자와 패자, 자유인과 포로라는 구분도 잠시 뒤로 물러난 채 한 편의 연극에 몰입한다. 《영광 없는 영웅들》에는 전쟁의 영광을 차지하는 영웅이 없다. 대신 직장을 잃은 도공과 패배한 포로, 노예들이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을 매개로 서로의 경계를 넘어선다. 적국의 작가를 사랑하는 시라쿠사의 야매 연출가들과 포로가 된 뒤에도 아테네의 문화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는 사람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한 편의 연극을 통해 친구가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무거운 이야기 속에서도 람포의 다소 해학적인 위트를 잃지 않는 점이 좋았다. 비극과 웃음이 함께 흐르고 무엇보다 흡입력이 좋아 마지막까지 빠르게 읽었다. “우리가 만들려는 건 시야.” 젤론이 속삭인다. “쉽다면 하나도 의미가 없지.” *다산책방의 블라인드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도서를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다산책방 #영광없는영웅들 #퍼디아레넌 #소설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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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없는 영웅들 - 퍼디아 레넌 (#서평단) p.107 "남의 고통을 훔치면 안 돼." 죽음만이 남은 곳에서 펼쳐지는 연극.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리스의 도시 시라쿠스의 채석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포로들을 데리고 연극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나오는데 열정적이기도 하면서 포로들에게 잘해주는 모습이 되게 신기했던 것 같다. 아테네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대사를 읊는 포로들에게 음식과 술을 주며 그렇게 몇 마디 듣다가 연극을 본격적으로 해보자 생각하며 사람을 모아간다. 포로들을 포로라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무대를 만들어줄 사람으로 대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연극을 위해, 에우리피데스를 포함해 아테네와 관련된 것들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연극으로 남기려는 노력이 참 대단했다. 전쟁이 펼쳐지고 있지만 무언가에 욕망을 가지고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그 모습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전쟁이 펼쳐지는 상황이라면 두렵고 그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같은 것들을 생각하기 마련일 텐데 작품들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연출가가 될 수 밖에 없다며 이것저것 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했다. 전쟁 속 예술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답답하면서도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여 끝까지 읽게 된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하루라도 살기 위해 노력하는 포로들과 그런 포로들에게 음식과 술을 나누어주고 역사적인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두 명의 연출가들은 정말 제목처럼 된 것 같다. 영광은 없지만 그럼에도 역사를 하나라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실행을 했다는 점에서 이 포로들에게는 그래도 영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화려하지도 않고, 오히려 이기적이고 답답한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힘든 세상 속에서도 자기들이 하고싶은 걸 문제들을 해결해 가며 결국 하고싶은 걸 시도를 했다는 점에 있어 대단했다고 느껴진다. _____ 전쟁 속에서 예술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뒤집어 준 것 같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겠지만 읽다보면 빠져들어 끝까지 읽게 되고 결말이 궁금하며 결국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전쟁 배경 속 예술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_____ p.326 "수레에는 몇 명 못 타." "몇 명이어도 충분해요. 몇 명이면 전부예요." #영광없는영웅들 #퍼디아레넌 #다산북스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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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북스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요즘 영화 <오디세이>의 여운이 길게 남아 있다. ‘그리스코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미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영웅의 모험과 전쟁의 승리만은 아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뤘던 것처럼,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 온전한 승리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흔적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전쟁은 흔히 승리와 패배라는 두 단어로 정리되지만, 그 이면에는 그렇게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참혹한 풍경이 숨어 있다. 『영광 없는 영웅들』은 바로 그 풍경 속에 남겨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 포로들은 시라쿠사의 채석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도공 겔론과 람포는 포로들에게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읊게 하고 그 대가로 먹을 것을 건넨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점차 하나의 연극으로 발전하고, 포로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먹을 것을 얻기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을 준비하고 함께 무대에 서는 동안, 포로들은 더 이상 이름 없는 적군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되고, 시라쿠사인들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관객이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연극은 단순한 극중극이 아니라 전쟁이 만들어놓은 '우리와 적'이라는 경계를 잠시 허무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겔론과 람포의 대비였다. 겔론은 누구보다 에우리피데스를 사랑하고 연극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다. 반면 람포는 처음부터 연극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면도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예술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과, 실제로 다른 사람을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 스포일러 포함 — 연극이 끝난 자리에서 엉성하게 시작했던 공연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어느새 수백 명의 관객이 모인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연극도 잠시,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전쟁이라는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포로들의 상당수가 죽임을 당하고, 남은 포로 중 파케스를 구하기 위해 람포는 겔론에게 함께 갈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겔론은 가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누마와 리나르와 알카르와 다른 모두가 죽은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중략) 겔론은 아무 말도 없다. 촉촉한 파란 눈이 깜빡이다가 감긴다. 그가 옆으로 돌아 눕는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왜 겔론은 가지 않았을까. 단순히 겔론이 냉정해서였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연극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포로들은 더 이상 단순한 적군이 아니었다. 함께 대사를 주고받고,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배우였다. 『메데이아』를 통해 서로의 고통을 바라볼 수 있었고, 잠시나마 전쟁이 만들어놓은 경계가 사라졌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배우와 관객이 아니라 포로와 시라쿠사인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니라 승자와 패자로. 겔론은 그 경계 앞에서 멈춰 선다. 반면 람포는 파케스를 구하러 간다. 처음부터 고결한 사람이었던 것도,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함께 연극을 만들었던 파케스를 더 이상 '적군 포로'라는 한 단어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알게 된 이상, 그가 죽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장면에서 람포가 더 '영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영웅이어서 파케스를 구한 것이 아니다. 영웅이 아닌 사람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이 이 소설의 제목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겔론이 배 위에서 '신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던 장면도 떠올랐다. 나중에 람포가 다시 묻자 그가 본 것은 신이 아니라 죽은 동료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제야 동료들이 정말 죽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책에서 신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과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이 있고, 아무리 애써도 누군가를 잃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람포와 리라의 이야기는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람포는 파케스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지만, 자신이 사랑한 리라의 비극까지는 막아내지 못한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바로 그 사람이,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결국 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무력함이 한 사람의 삶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영광 없는 영웅들』이 말하고 싶은 영웅은 거창한 승리를 거둔 사람이 아니라, 결과를 알 수 없더라도 눈앞의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은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지만, 그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삶까지 승리와 패배로 나눌 수는 없다. 그리고 누군가를 구한 행동 역시 반드시 영광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영광 없는 영웅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음식을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연극을 만들고, 위험을 무릅쓰고 한 사람을 구하려 했던 사람들. 어쩌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승리한 장군의 이름보다, 그 참혹한 순간에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