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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의 선장들'이라는 제목이 썩 마음에 들었다. '난파선의 선장'이 아니라 '선장들'이라는 것이 어쩐지 혼자가 아닌 거 같아서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선장들'이라는 제목에 맞게 이 책의 저자는 둘이다. 새섬과 그의 삶을 인터뷰하는 전직 저널리스트 출신 김진경이다. 우연희 장강명과 새섬의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딧세이>를 듣다가 새섬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후 쌓인 216일의 시간이 이 책의 결실이 되었다는 계기도 흥미로웠고, 그리고 이미 유투브와 책의 세계에서 유명세가 있는 새섬의 알려진 병의 상태로 미루어 대충이나마 짐작은 했으나 , 왜 제목이 크루즈도 아닌 '난파선'의 선장이어야 하는 건지. 또 알려진 새섬의 병중과 그에 관한 타 유투브의 여러 인터뷰 내용을 넘어서 책을 통해 독자와 더 깊이 넓게 공유될만한 것이 더 있는 건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삶의 가장 깊고 험한 파도를 건너고 있었을 새섬과, 현실적으로 결코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 한계에서 나오는 김진경 자신의 '구경꾼'으로서의 입장을 스스로 글을 통해 어떻게 극복해나갈지도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책의 내용은 내 예상을 뛰어넘는 부분이 있었다. 새섬은 누구보다 용기있고 명료한 자세로 삶과 죽음을 함께 살아가고 있었고, 김진경은 치열하지만 섬세하게 그것을 기록해내고 있다. 새섬이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으로 꼽은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실제 이 책 안에서도 많이 인용되고 있지만, 책의 내용에 깊이 들어가며 두책의 내용이 미묘하게 겹쳐읽히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예컨대, "사는 건 괴롭지만 선택은 그 고통을 이겨낼 힘을 준다(153쪽)"는 대목에서는 빅터프랭클박사가 생지옥인 수용소 삶을 견디며 스스로 터득한 삶의 지혜로 소개한 태도와 비슷하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선택을 할지는 오롯이 나의 것이며 누구도 뺏어갈 수 없다는 것. 두고두고 곱씹을 내용이었고, 새섬이 그녀가 좋아하는 책의 내용에서 삶의 태도를 건져올리고 그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공저자의 공통관심사는 '독서'인데 그래서 삶과 죽음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고 풍성하게 인용한다.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책부터, 고대 철학자들의 철학서, 청소년 도서, 그리고 영화 등등.. 인용된 책과 영화를 모두 보고싶을 만큼 시의적절하게 맛깔스럽게 책의 세계로 연결된다. 도저히 연결고리가 없을 거 같은 그들 둘은 이렇게 책과 공부로 연결된다. 새섬은 공부로 막연한 대상의 공포를 이겨내는 용감한 여자이고, 김진경은 '구경꾼'으로 함께 공부하며 치열하게 그 뒤를 따라가다가 기꺼이 '선장'이 되어 동행한다. 김진경은 영민하다. 글을 써내려가는 내내 다른 사람의 삶의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만 책속에서 활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새섬을 위해 그 자리에 서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심과 불안감을 계속 기억한다. 억지감정으로는 독자를 속일수도 없고 자신은 더더욱이 속일 수 없는 걸 잘 아는 작가는, 어쩌면 구경꾼으로밖에 읽힐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새섬과 함께 하는 수업을 통해서, 감정을 이성과 지식으로 겨우겨우 극복해내는 과정을 자신의 이야기로 함께 풀어낸다 그가 이 책에 새섬과 함께지만 서로 다른 자신만의 '난파선'을 운항하는 선장의 정체성을 획득해내고 마는 이유이다. 40살이 넘으면 (독자인 나도 사십이 넘어서 아는 거지만) 우리는 삶이 크루즈가 아니고 대개 다 '난파선'같은 거라는 걸 안팎으로 알아버린다. 남에게 일어나는 일이 영원히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또한 매일 망각하고 살아가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어리석음 같다. 이런 우리를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귀한 이야기를 공유해준 새섬에게 (그녀는 나를 모르지만 ) 어쩐지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다른 사람이 견디는 삶과 죽음의 무게를 옆에서 이렇게 샅샅이 관찰하며 내 삶의 모습을 정리하고 가다듬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또 귀한 일인가. "인생이 아주아주 길어진다는 건 아주아주 짧아진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143쪽)."라는 새섬의 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김진경의 일리있는 해설. 책을 덮고 난 후, 뭔가 숨겨져있던 걸 조금 더 알아버린 느낌이다. 또다른 난파선의 선장으로서, 지금도 망망대해의 나와 먼곳에서 항해하고 있을 새섬과 김진경을 깊이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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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번지점프를 꿈꿨다. 운동신경이 남보다 나은 것도 아니고 담력이 중뿔나게 센 것도 아닌데도 그랬다. 뛰어내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뛰어낼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게 딱 그렇다. 한동안 죽음을 담담히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든 “가자” 이러시면 “네” 그러면서 망설이지 않고 따라나설 수 있기를 꽤 오래 기도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그럴 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 모르겠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니 죽음을 담담히 맞게 해달라는 기도를 잊은 지 오래되었고, 이젠 아예 죽음이라는 생각 자체를 잊었다. 나는 지금까지 걸어온 삶이 만족스럽다. 매 순간 힘을 다해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제도 후회되는 일도 없기야 했을까. 하지만 후회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애쓸 뿐, 지나간 일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칠십 넘어서면서 삶이 편안해진 게 이 때문이었나보다.) 어느 날인가부터 ‘지식공동체 그믐’이라는 데서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신청한 기억이 없어 그러려니 하고 넘기다가 문득 지식공동체가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졌다. 온라인 북클럽이라고 했다. 동호인 모임이라고 하기엔 체계가 잘 잡혀 보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인가 했다. 사실 저게 어떻게 사업이 될까 하는 궁금증 이상으로 거기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김새섬 대표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남편인 장강명 작가가 아내의 발병을 페북에 올린 날을 기억한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먼저 간병 경험자의 도움을 구했다. 아내가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양해를 구하고, 회복을 빌어달라는 짧은 글이었다. 나도 거기에 뭔가 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병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교모세포종’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어느 유명인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고 한 달쯤 지나서인가,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했다. 동네 작은 공원에서 남편과 걸으며 자신의 병에 대해, 삶과 죽음과 두려움에 대해 십오 분 남짓 이야기 나눈 걸 날것 그대로 올렸다. 공원의 운동 소음 때문에 녹음하는 시간을 옮기고, 걷는 곳도 옮겼다. 한창 젊은 사람이 힘든 어려움을 참 의연하게 맞는구나 싶어 족히 사오십 편은 들었지 싶다. 새섬은 의연한 모습일 뿐 아니라 자기 고통을 유머로 풀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힘이 달리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고, 더 이상 방송을 들을 수 없었다. <오래된 유럽>의 저자로 만난 김진경의 글을 읽기 시작한 건 귀국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을 때이니, 오 년쯤 되었다. 그의 글은 매번 짜임새가 있었다. 주변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 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자로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가 김새섬과 인터뷰한 걸 책으로 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발병한 때부터 근황을 챙겨보고 있던 김새섬을, 짜임새 있는 글을 쓰는 그가 인터뷰집으로 출간한다니 나름 그려지는 책이 있었다. 인터뷰란 묻는 만큼 대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몇 년 전, 사우디 관련 책을 내고 나서 몇 차례 인터뷰에 불려 나갔는데, 인터뷰에 흡족했던 건 딱 한 번뿐이었다. 공중파 시사 방송을 진행하는 분이 인터뷰했을 때, 그때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인터뷰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김진경의 인터뷰는 짜임새 있는 자기 글대로였다. 이 인터뷰는 죽음에 대한 새섬의 생각과 지나간 새섬의 삶을 돌아보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나는 주로 앞에서 다룬 죽음에 관한 새섬의 생각을 깊이 들여다보려고 했다. 읽으면서 밑줄 치고 내 생각을 적어넣고, 책 모서리를 접어 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내 생각을 돌아보고 있었다. 앞서 이제는 죽음에 관한 생각 자체를 잊었다고 했다. 생각해 본들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죽음에 관한 두려움이 무뎌지고, 이젠 큰 동요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죽음에까지 이르는 길이 온갖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그건 다른 일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각오를 다진다고 한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고통과 실제 맞닥뜨린 고통은 절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긴 병에 효자 없고 매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오래 병약하게 사는 거보다는 짧게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짐이 되지 않게 살기를 기도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새섬은 죽는 순간도 두렵고 죽음 이후도 두렵다고 말한다. 죽음을 잘 모르고, 그래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시야에조차 없던 젊은 사람이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언제가 마지막 날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의 사람이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같을 수는 없다. 그렇기는 해도 죽음이 두렵다는 새섬의 말은 그의 고백 전반과 어울리지 않고 어딘가 겉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혹시 그가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고통 때문은 아니었을까? 젊은 나이에 뇌종양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새섬은 “왜 하필 나인가” 묻지 않고 “왜 나만 예외겠는가”라고 묻는다. 새섬은 자기 몸 상태를 이유로 정해진 인터뷰 약속을 미룬 적이 없다. 이에 대해 김진경은 몸이 아픈데도 이 정도로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면 아프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해한다. 그렇다면 새섬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운명을 원망하지 않는 걸까? 그 대답은 자기가 왜 이 병에 걸렸는지 알고 싶어 하는 이유를 설명한 대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새섬은 자기가 뭘 잘못해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이 병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면 어린 조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진경은 이를 두고 새섬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는 새섬이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매우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김진경은 새섬이 일상의 루틴을 잘 지키는 걸 책임감으로 이해했지만, 나는 그것 또한 편하고 효율적인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새섬의 현실 인식으로 이해한다. 나는 살아오면서 뭔가를 원망하느라고 시간을 보낸 일이 없다. 원망할 만한 일을 당해보지 않아서는 아닐 것이다. 그러기엔 칠십 년은 너무 긴 시간이거든. 원망한다고 뭔가 바뀐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원망하는 대신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그게 옳다거나 지혜로운 선택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내가 그랬다는 말이지. 새섬은 발병하기 오래전부터 남편과 함께 매년 유서를 써왔다. 그는 유서에서 장례도 하지 말고 추모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 역시 자식에게 장례 치를 거 없이 화장해 어딘가 뿌리고 난 후에 가까운 친지에게만 알리라고 일러두었다. 죽으면 잊히는 게 당연하고, 실제로도 그러니 말이다. 어쩌면 무덤은 기억을 강요하는 장치인지도 모른다. (무덤을 남기지 말라는 내 당부에도 나를 잊어달라는 뜻이 담긴 걸까?) 아무튼 나는 나이나 들었지, 어떻게 젊은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새섬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의사가 환자 본인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환자에게 자기 몫의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생각에 이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건 “사람에게는 진실을 감당할 만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통찰이다. 나는 “누구나 이런 사실을 감당해야 한다”고까지만 생각했을 뿐,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힘이 있을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메일함을 다시 여니 그믐 메일에 이 책이 나왔다는 새섬의 글이 보였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에 출연했다는 소식이 바로 그 아래 자리 잡고 있었다. 새섬의 사진과 목소리는 익숙하지만, 실제로 말하는 걸 본 건 처음이다. 여전히 씩씩했고, 생각보다는 잘 견뎠다. 오랜 꿈이었던 스탠드업 코미디 도전에도 성공했다니 그것도 한번 찾아봐야겠다. 책에서 인용한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모리 슈워츠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목록에만 올려놓고 아직 읽지 않았다. 내친김에 해 넘기지 않고 읽으려 한다. 이 책이 나오면 두 사람은 북토크도 하고 새섬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하기로 했다. 그러나 책이 나오기 전 항암치료 후 처음 한 추적검사에서 교모세포종 재발이 확인되었다. 새섬은 다시 수술과 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새섬의 근황을 확인하는 건 검색 몇 번이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도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만간 회복해 책을 내기 전 계획했던 북토크가 열리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내가 이것저것을 물어보리라. 책 이곳저곳에 남긴 질문이 하나둘이 아니니. 그때까지 두 분 모두 건강하시고, 노인네 질문에 대답할 궁리나 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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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글입니다. 오래전부터 저 또한 해오던 생각들을 책에서 만날 수 있어서 반갑기도했고 한편으로는 새섬님의 새롭고 신선한 시각에 좋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이성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틀렸었나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