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 사물은 저마다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라는 믿음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당연함이 하나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처럼 어렵게 느껴지는 물리학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책이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우리 삶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관계속의 존재 우리는 혼자서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사물조차 고정된 성질을 가지고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상태가 결정된다는 양자역학의 관점은 처음에는 꽤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오히려 익숙해집니다. 직장에서의 나는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친구 앞에서의 나와 가족 앞에서의 나는 조금씩 다릅니다. 어느 하나가 가짜인 것이 아니라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죠.
알고 있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우리는 흔히 객관적인 사실과 개인의 의견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벨리는 어떤 지식에도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한 주체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확신만 가진 사람보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을 남겨두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이 배웁니다. 일을 오래 해보니 실력의 차이도 이런 부분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정답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지금 무엇을 배우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관계망은 달라집니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물리학이 세계의 법칙을 설명한다면 우리의 선택 역시 이미 결정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러나 로벨리는 오히려 다른 방향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숙고하고 선택하는 과정 역시 현실을 구성하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선택은 허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관계’는 의존이라는 의미보다 가능성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한 문장을 읽고 잠시 멈춰 생각해야 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의미가 있는 책도 아닙니다. 오히려 익숙했던 세계를 조금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 자체가 이 책의 가치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서로를통해존재한다 #카를로로벨리 #과학책추천 #물리학책 #양자역학 #과학철학 #교양과학 #인문학책추천 #책리뷰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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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인간을 구체적인 존재, 물리적 세계의 일부, 생각과 욕망, 계획과 감정, 그리고 꿈으로 직조되어 있는 존재, 창조하고 해석하는 존재로 본다. 2026년에 나온 그의 최신작인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가진 책이다. 이 책은 출간 2년 전에 진행한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의 특별 강연을 주요 소스로 해서 만든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양자 현상 및 양자 물리학을 주요하게 다룬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양자 현상의 발견은 현대 과학에서 가장 놀라운 혁신이다. 실험실에서 관찰된 다양한 현상이 물질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양자 물리학은 아주 작은 영역부터 거대한 영역까지 세상의 사실들을 놀라울 만큼 효과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양자 물리학은 오랫동안 세상이 다른 모든 것과 독립적으로 항상 고유한 속성을 지닌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우리의 세계관 전체를 지탱해온 유서 깊은 사고의 틀을 버리도록 요구한다. 양자 물리학의 세 가지 특징은 기이한 맥락성, 확률성, 물리적 변수의 입자성(불연속성)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변수들은 특정한 값(양자화된 값)만 취할 수 있고 다른 값은 취할 수 없다. 입자성이란 우리가 어떤 시스템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유한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개념이다.(70 페이지) 확률성은 어떤 시스템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최대치에 도달해도 그에 관해 새로운 유용한 정보를 항상 더 얻을 수 있음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확신을 의심할 수 있을 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과학의 핵심 메시지다. 과학 문제의 어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보다 당연해 보였던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경우가 많다. 과학은 확실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틀렸음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현실 그 자체, 궁극적 존재론, 최선의 체계, 진리 같은 말들을 세계에 관한 확실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일이 별로 흥미롭지 않다고 말하며 이러한 말들은 심리적, 문화적 고뇌의 투영 즉 과도하게 발달한 뇌를 가진 포유류인 우리 인간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추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필요한 것은 확률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입자성과 확률성, 이 두 가지 원리는 맥락성과 함께 양자 물리학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강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현실의 양자적 구조에는 모든 것을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고정된 기준점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지식이 이루어지는 방식도 이와 똑같은 구조를 지닌다. 저자는 형이상학이든 인식론이든 근본 물리학이든 자신이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 토대를 세우는 것보다 현재 우리의 지식 수준을 고려해 세상에 관해 사고하는데 가장 적합한 개념적 틀이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모든 관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어떤 관점 안에 있다. 관점들은 서로 소통한다. 일단 우리는 관점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의 지식은 현실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담고 있다. 현실은 관점들의 반영이며 우리의 지식은 그 일부다.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현실, 최대한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은 바로 이 경이로운 거울 놀이 같은 관점들의 상호 반사(反射)다. 세상은 사건과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바로 이 변화가 세상의 존재 방식이다. 사건은 시간 속에서 특정한 위치를 가지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여러 과정을 시간이라는 순서로 배열해 조직한다. 계절의 변화, 낮과 밤의 교대, 시계의 뚝딱거림, 생각의 연속 등을 우리는 시간의 흐름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흐름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저자는 가장 흔한 오류는 우리가 시간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포착하는 단 하나의 실체, 단 하나의 구조, 단 하나의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본질 같은 것은 없다. 공통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고도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서로 다른 속도로 이동하는 두 친구는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까지 경과된 시간을 다르게 느낀다. 시간의 흐름은 전 우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현상이 아니다.
시간은 장소 또는 궤적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공통된 현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국소적 개념이다. ‘지금, 여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 없이 지금이라는 단독의 단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멀리 떨어진 별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는 것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멀리 떨어진 별에는 우리가 망원경으로 관측했을지도 모르는 과거의 사건들,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지금 우리를 관측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사건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우리의 과거도 미래도 아닌 중간 시간대가 존재하며 별이 멀어질수록 그 시간대는 더욱 길어진다.
우리들 기준으로 보면 그것은 확장된 현재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과거와 미래에 일어난 사건의 총체로 그들을 현재의 순간과 구분해 생각한다면 현대 물리학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우주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에 의하면 시간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우리의 생각이 흐르는 것도 사건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양자 중첩이란 사물 자체가 가진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라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되는 상대적인 정보의 상태를 말한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물체의 위치를 그 물체를 둘러싸고 있는 물체들 집합의 안쪽 경계라고 정의한 것을 인용하며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바로 인접성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간은 사물이나 사건 사이의 관계다. 이런 공간 개념에는 거리 개념이 포함되지 않는다. 두 손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전혀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이므로 두 손은 닿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간은 관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이며 거리를 통해 정의되고 비어 있을 수도 있다고 배운다. 사물이나 사건이 없어도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실체가 가능하다고 상상한 뉴턴은 특유의 겸손하지 않은 태도로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그리고 일반적 상식에서의 공간을 평범한 공간이라 부르고 자신이 창안한 공간을 진정한 공간이라고 불렀다.
중력장은 질량의 영향을 받으며 질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결정한다. 중력장이 출렁이면서 퍼져나가는 파동이 중력파다. 이것은 전자기장이 진동하며 퍼져나가는 전자기파와 비슷하다.(101 페이지) 저자가 설명하는 공간은 사물들이 서로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이루는 구조이며 사물들 사이의 인적 관계에 의해 정해진다. 공간이란 사물들 사이의 인적 관계이며 우리는 이 관계를 이용해 사물과 사건의 위치를 파악한다. 절대 운동은 존재하지 않고 상대 운동만 존재한다.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어떤 사물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절대적 장소는 없다. 오직 상대적 장소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공간의 구조가 어디에서나 똑같은 고정된 유클리트 기하학을 따르고 사물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뉴턴의 공간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착각이 생겼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현실을 확장된 실체인 장(場)들의 집합으로 묘사한다. 이 장들은 공간에 자리하지 않고 외부 시간 속에서 진화하지도 않는다. 데카르트의 연장(延長) 실체처럼 장들 자체가 공간적 확장을 규정하고 장들의 진화가 시간이다. 저자는 양자 물리학의 관계 구조와 시공간의 관계 구조가 일치한다고 말한다.
양자 물리학의 개념적 틀은 시스템 사유의 상호작용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양자 물리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 사이에 모순이나 긴장이 존재한다는 흔한 주장과 달리 두 이론은 연인처럼 서로를 감싸안는다고 말한다.(10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두 이론은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관계적 핵심을 공유한다. 두 이론 모두 과정들 사이의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다룬다.(123, 124 페이지)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두 이론이 서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성 이론이 깔아준 역동적 시공간이란 무대 위에 양자 물리학의 관계적 속성이 올라타면서 비로소 우주의 진짜 모습이 완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주의 진짜 모습이란 시공간이 없는 루프의 그물망을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전체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우주란 물질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을 이동하는 곳이 아니다. 시공간마저 모두 녹아내린 자리에서 많은 미시적 루프들이 쉼없이 얽히고 설키며 관계를 맺고 있는 역동적 그물망 자체가 우주의 진짜 얼굴이다. 사회 역학은 시스템들이 다른 시스템들에 대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관계들은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시공간적 관계를 정의한다.(110 페이지) 저자는 양자는 사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양자는 고정된 속성을 가진 사물이 아니라 대상들이 상호작용할 때만 나타나는 사건이자 관계다.
시간과 관련된 모든 현상은 소산적(消散的)이다. 에너지가 흩어져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뜻이다. 소산작용이 있을 때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엔트로피 기울기 즉 차이가 존재한다. 거시적 변수들에서 미시적 변수들로 넘어갈 때 소산이 일어난다. 이때 이 에너지는 거시적 변수들보다는 더 이상 포착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을 더 잘 이해하려면 자연을 우리의 기존 개념에 맞추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의 개념을 분석하고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은 생물권의 일부인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소산적이며 비가역적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다. 과거의 미래 사이의 차이는 통계적인 것이다. 열역학 제2 법칙은 보편적이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통계적이란 개별 입자의 움직임 수준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구분이 없지만 수많은 입자가 모인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확률적으로 한쪽 방향 즉 미래로만 현상이 일어난다는 의미다. 저자는 세상의 기본 물리 방정식을 알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산에 있는 모든 돌을 물리 방정식으로 설명하려면 그 방정식들의 수많은 해(解)를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해들을 다 알아내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어떤 대상에 관해 유용한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구체적 상황의 측면들을 포착하는 데 적합한 개념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는 것은 과학이 분열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과학의 불통일성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다양성은 과학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관점들이 일관되게 연결된다는 사실은 과학의 통일성을 보여준다.
물리학이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현상이 물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과정이 완전히 똑같아도 우리는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저자는 복잡한 현상은 단순한 구성 요소에서 생겨나지만 그 구성요소로는 원리적으로 절대 설명할 수 없다는 입장에 집착하는 것은 정신 질환이라 말한다.(171 페이지) 저자는 모든 사물이 평등하다는 증거는 엄청나게 많다고 말한다. 부제가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인 것이 이해된다.
불과 몇십년 전까지도 생명체가 물리학의 범주를 벗어난 불가사의한 생물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하는 생물학자가 많았다. 오늘날 생화학은 모든 생물학자에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다. 양자 물리학은 화학의 기본 원리가 물리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그 장벽을 허물었다. 저자는 물리학은 그 자체로 하나의 노래라고 말한다. 그 노래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말을 걸고, 세상도 우리에게 말을 건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부르는 다양한 노래들은 서로 공명하고 반영하며 서로에게 말을 건다.
저자는 상대적이란 말과 자의적이라는 말을 혼동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가령 달의 속도는 지구에 대한 상대적 속도로 정의되지만 그것이 달의 속도가 자의적이어서 달이 원하는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판단은 판단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것이 그 판단이 자의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덕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지 그 자신의 윤리를 어긴 자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모든 지식이 누군가의 지식이라는 사실이 지식을 자의적인 것으로 만들지는 않으며 다른 사람 또는 나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지도 않는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최종적 진리를 갈망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세상을 더 잘 이해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더 빨리 달리기 위해 훈련하지 빛의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 훈련하지는 않는다. 도덕적 판단이 중요한 것은 도덕이 우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누구인지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도덕성 붕괴보다 핵전쟁이 문명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더 높다며 절대적 진리의 소멸이 문명을 붕괴시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도덕성은 우리 존재의 복잡성을 구성하는 실질적 요소다. 그리고 그것은 생물학적, 문화적, 사회적 뿌리를 가지고 있어 우리가 숙고하는 모든 과정의 복잡성과 분리하기 어렵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평등하게 존재하며 그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관계는 신학에서도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고립적이지 않은 세 위격(位格)으로 존재한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의 근원이고, 성자와 성령은 하나의 신적 본질을 공유하며 서로 안에 거하는 관계다.(201, 202 페이지)
저자는 물리학이 먼저 명확하게 정의된 실체적 바탕을 제공하고 그 위에 관계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순진한 유물론과 결부된 헛된 희망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사물(실체)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계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로벨리에 의하면 상호작용하는 관계 속에서만 그 대상의 속성이 정의되고 존재하게 된다. 고정된 물질적 실체가 먼저 있고 그 위에 관계가 쌓인다는 생각은 고전적이고 단순한 물질 만능주의(순진한 유물론)가 만들어낸 착각이자 현대 양자물리학의 본질과 마주하지 않으려는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핵심 지적이다.(202 페이지)
전자(電子)에 관한 모든 설명은 전자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세상에 관한 물리적 기술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관점에 따른 것이라 설명한다. 세상의 상태에 관한 모든 설명은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근사치(近似値)다. 여러 과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은 세계의 각 부분이 서로에 관해 가지고 있는 정보다. 따라서 세계는 서로 다른 부분들 사이의 상호(相互) 정보(情報)다. 물리학은 시스템들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상호 정보를 다룬다. 세상에 관한 모든 설명은 상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상의 상태에 관한 진실은 언제나 주관적이다.((204, 20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주관성이란 진리가 본질적으로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주체가 없는 객관성은 추상적 개념이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점은 관점이 다르다고 해서 소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관점들은 물리적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다. 그들에게 숨겨진 것은 전혀 없다. 다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들에 관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수히 많을 뿐이다.(210 페이지) 저자는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개별적 자기 성찰조차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접근하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을 했디고 말한다. 저자가 이 말을 인용한 이유는 인간의 의식적 자기 성찰은 만능이 아니며, 우리 뇌와 신체가 자연의 거대한 인과법칙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을 온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주관성은 현실의 다른 어떤 특성보다 특별히 더 깊이 감춰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주관성이나 의식을 과학으로 영원히 풀 수 없는 신비로운 무언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는 주관성 역시 자연 현상의 일부이며 세상의 다른 물리적 특성들보다 특별히 더 깊이 감춰진 비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양자역학 해석(관계론적 양자역학)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다른 존재와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속성을 가진다. 주관성 역시 뇌라는 물리적 계가 외부 세계 및 자기 자신과 맺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주관적 경험이란 결국 계(뇌) 내부의 관점에서 바라본 정보의 처리 과정이다.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뉴런의 전기 신호와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 느낌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같은 현상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의식을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Hard Problem)로 분류하지만 저자는 이를 거부한다. 그는 과거에 인류가 생명(Life)을 물리화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생명의 기운(생기론)으로 보았다가 과학의 발전으로 극복했듯 주관성 역시 거대한 뇌의 메커니즘이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저자는 우리가 객관적 지식이라고 믿는 것 역시 결국 하나의 특정한 관점이자 주관성의 변형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지식의 주체인 인간이 결코 세상 밖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관찰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연의 한 파편이며 우리가 만든 객관적 이론과 과학적 지식 또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탐색하기 위해 신체와 뇌로 구현해 낸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자연의 한 파편이며 우리가 만든 객관적 이론과 과학적 지식 또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고 탐색하기 위해 신체와 뇌로 구현해 낸 도구일 뿐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신체와 뇌라는 말은 한계가 있고 제한적인 도구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인간의 과학과 지식은 우주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그보다 인류가 가진 제한된 감각 기관(신체)과 처리 능력(뇌)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생존하기 위해 최적화된 지도에 가깝다. 우리는 우주를 '밖'에서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없다. 우주라는 거대한 계(System)의 안에 속해 있는 작은 파편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세상은 언제나 우리 신체와 뇌라는 필터를 거쳐 들어온 제한되고 주관적인 정보일 뿐이다. 우리의 뇌는 우주의 모든 차원과 법칙을 완벽히 이해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 지구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간, 공간, 객체의 개념조차도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유용한 도구'일 뿐, 우주의 근본적인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과학이 말하는 객관성은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객관성이란 너와 내가 서로 소통하며 조율해 낸, 고도로 공유된 상호 주관적 경험이다. 즉, 수많은 주관적 관점들이 상호작용(실험과 검증)을 거쳐 서로 불일치를 줄이고 합의에 도달한 상태를 우리는 객관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상의 속성은 오직 다른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만 드러난다. 지식 역시 언제나 특정한 물리적 위치, 시간, 문화적 배경이라는 관계와 맥락 안에서만 성립하는 시각(Perspectival knowledge)이다. 절대적이고 탈맥락적인 객관성이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저자는 객관성을 절대화하는 태도 역시 또 하나의 거대한 착각이자 주관적 집착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는 과학이 위대한 이유는 완벽한 객관적 진리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우리의 지식이 언제나 제한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임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에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은 과학적 지식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식의 본질적인 한계를 겸허히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가 보는 세상 너머의 진짜 리얼리티(관계적 현실)를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다는 양자역학적·철학적 통찰을 담은 말이다. 마음 역시 만물의 평등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가 이원론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면 탁자가 원자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일상적 의미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듯 영혼과 감정에 관해서도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만물의 평등함이라는 것이다.
지식은 과정, 주체, 그리고 나머지 세계 사이의 관계다. 지식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개념적 틀 위에서 형성되는 집단적 현상이다.(223 페이지) 지식은 물리적 현실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관찰하고 연구하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는 다른 시스템들이 우리에게 투영된 모습이며 현실 자체를 구성하는 상관관계 그물망의 일부다. 우리는 이러한 순환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224 페이지)
우리의 지식은 다른 모든 정신적, 영적 삶의 측면과 마찬가지로 유한하고 불안전하며 그 무엇도 보장하지 않는다. 계몽주의와 특정한 분석 철학이 소중히 여겼던 순수이성, 궁극적 명료함이라는 이상은 비로소 무너진다. 모든 모형은 포착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놓친다. 우리가 가진 모든 이론은 불완전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는 다른 무언가가 간과되어 있다. 우리가 어떠한 질문에 우선순위를 두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228 페이지)
저자는 모든 지도는 오류를 포함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우리는 무지와 확실성 사이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덧붙인다. 현실의 관계적 본질과 그로 인한 관점주의를 인식하면 현대 과학과 일관되게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가 바로 주관적 관점이다. 진리는 주관적이다. 과학이 많은 질문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해답을 제공한다고 믿지만 이러한 해답들은 타당성과 신뢰성이 높을 뿐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는 과학 지식과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지식들의 차이는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세상에 관해 즉각적으로 설명할 때 쓰는 단어인 탁자와 과학적 차원에서 쓰는 단어인 전자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 다 세상을 특정한 수준에서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다. 그 단어들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실제를 지칭한다. 저자는 뉴턴의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통합되었을 뿐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도 잘못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물리학은 타당성의 범위 내에서 훌륭하고 강력하며 정확하다. 뉴턴 물리학과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사이의 관계는 뉴턴 물리학의 아인슈타인 물리학과 맺는 관계와 같다.
과학 이론은 세계를 이해하는 체계의 일부다. 기존 사고의 틀에 덧붙는 도구다. 그러한 틀이 없다면 이론은 표현조차 될 수 없다. 과학 이론은 결코 세계에 관한 완벽한 설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수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근본적 수정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존의 세계관을 벗어남으로써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시켜가며 새로운 이론을 발견한다.
이 말은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론과 뚜렷한 차이점과 공통점을 가진다. 카를로 로벨리의 관점은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존재론(우리가 어떤 틀에 갇혀 생각한다는 점)은 수용하지만 그 틀이 깨지고 바뀌는 과정에 있어서는 쿤의 과격한 단절(혁명) 대신 기존 패러다임 내부에서의 유기적인 확장과 변형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쿤의 패러다임론에 대한 세련된 비판이자 보완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신중한 진화 과정에서 과학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힌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과학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정의해 왔다. 과학은 우리가 사고를 조직하고 세상을 경험하는 데 사용하는 개념과 도구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가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기초과학의 급진적 도약은 반증된 이론을 버리고 다른 이론을 찾아 나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 속에서 이미 얻어진 과학적 성과를 신뢰하면서도 방법론적 개념적 틀을 수정하고 축적된 지식이 제기한 수수께끼의 해답이 되는 새로운 종합을 구축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은 개념의 변화를 감수한 끝에 얻어진 것이다.(251, 252 페이지) 결국 과학은 기존의 탑을 무너뜨리고 새로 쌓는 것이 아니라 기존 탑의 설계 오류(개념)를 고쳐 더 높고 견고한 탑으로 확장하는 개념적 재구성의 역사라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개념은 모호한 실체다. 개념의 사용은 항상 모호하고 가변적이다. 물리학에서 가장 풍부한 개념들은 끊임없이 재정의되어 왔음에도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진다. 엔트로피에 관해서는 새로운 정의가 꾸준히 등장하지만 오늘날까지 에너지에 관한 개념이 물리학에서 차지하는 수많은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정의는 없는 것 같다. 개념과 언어의 모호함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모호함에서 또 다른 모호함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언어는 적응하고 폭증하고 차별화하고 진화하는 무한한 능력을 지닌다. 바로 이러한 특성 덕분에 오늘은 더욱 미묘한 것들을 표현할 수 있고 그 무한한 과정이 풍요로운 문화의 바탕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추를 통해 개념을 구축한다. 유추란 개념의 한 측면을 가져와 다른 맥락에서 재사용하고 그 의미 중 어떤 것은 유지하고 다른 것은 버림으로써 새로운 조합이 참신하고 효과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입자 물리학에서의 입자, 시공간의 곡률 등이 모두 은유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너무 많은 것을 뒤에 남겨두면 앞으로 나아갈 도구가 부족해지고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면 이해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한다.(259 페이지) 이 역시 훌륭한 은유다. 너무 많은 것을 남겨둔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을 버린다는 것이고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진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의 지식을 무조건적인 진리로 숭배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허구라며 완전히 무시하지도 말며 새로운 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유용한 은유이자 도구로써 영리하게 쥐고 나아가야 한다는 중용의 태도를 강조한 것이다. 저자는 특수 상대성이론을 예로 든다. 이 이론은 그냥 보기에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와 맥스웰 방정식, 두 가지 모두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확신에서 탄생했다. 오늘날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는 포퍼와 쿤의 이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아인슈타인은 맥스웰 방정식을 수정하는데 몰두하거나 고속 체계에서의 속도 상대성 이론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두 이론을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갈릴레오의 생각과 맥스웰 방정식 사이에서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점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바로 개념적 틀 즉 동시성의 의미를 바꾸는 것이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 역시 같은 전략의 선물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특수 상대성이론 관련 영역에서의 뉴턴 중력, 그리고 뉴턴 힘의 동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형으로서의 맥스웰 이론에 관한 확실을 바탕으로 한다.
저자는 우리는 이 낯선 세상 속에서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채로 불안하고 조심스럽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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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렵고 난해한 책으로 느껴진다. 잠깐 한눈팔기라도 하면 페이지가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다가 길을 잃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고를 반복하였다. 그만큼 내용 이해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용이 보잘 것 없어서 그런 것은 단연코 아니다. 차라리 어떤 책보다도 더 깊이 있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노력과 번역가의 정성이 묻어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은 단순히 물리학자로서의 물리학 강의서나 현실만을 고집하는 그런 류의 단순한 책이 아닌 물리학과 철학 등이 혼합된 깊이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책이다. 오랫동안 철학과 물리학 분야를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 온 바 있지만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은 물론, 저자의 상상력까지 겸비한 학문의 비빔밥 같은 책이라는 평가를 추가하고 싶다. 어쩜 우리가 주변 현상을 볼 때 과학적으로 해석하기 힘든 분야는 곧, 형이상학적으로 사고 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봉착했을 때 드디어 나오는 분야가 형이상학적이면서 자연적인 분야일텐데 이 책은 그러한 분야도 두루 고려하여 저작된 작품으로 생각이 된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 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로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이다. 프랑스 대학 교수이며, 대학연구소 회원 및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의장이기도 하다. 저자가 쓴 수많은 책들이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로 올랐고, 4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층을 이루고 있다.
책은 강의 형식으로 6개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고 특별 강의로 ’과학에 관한 고백‘을 주제로 책을 마치고 있다. 보통의 물리학서는 주로 과학적인 접근법을 사용하나 이 강의의 특성은 과학과 종교, 철학까지를 아우르는 방식으로 한계 없이 주제를 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 중간 이 책이 ’형이상학‘을 다루는 철학서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기도 하였던 것은 그만큼 과학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는 저자의 강의 내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의 순서는 연약한 그물망, 내부의 관찰자, 흐르지도, 공정되지도 않는, 또다시 맞이하는 내일, 무엇이 존재하는가, 두려워할 필요 없이로 되어있다. 책 전반에 걸쳐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무척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등 다양한 과학자들의 이론이 근거로 거론되기도 하고 상호 비교되기도 하며, 자신의 주장도 가미된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개념 정립, 전자와 원자, 양자까지에 대한 개념과 작용, 물질과 정신의 상호작용,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현실을 통한 존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한계에 따른 우리의 자세(겸손)와 성찰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책 전반에 나타나 있고 특히, 책 중간에 나온 혜시와 장자, 물고기 이야기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는데, 무척 흥미롭고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물리학자가 한계를 벗어나면 철학자가 되는가? 아니면 철학자가 한계를 벗어나면 다시 과학자가 되는가? 그러나 믈리학자인 저자는 철학을 배척하기보다는 물리학 등 과학의 근원에 철학이 있음을 시인한다. 그래서 저자가 다루는 기초과학은 물론, 현대과학, 자연철학 등의 형이하학, 형이상학 제 분야를 비교, 분석하여 내 놓은 논지가 어떤 면에서는 두 분야를 두루 섭렵한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내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저자가 하고자 말하는 의도,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읽고 있는지 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을 만큼의 깊이와 다양한 분야의 탐구, 그리고 물리학과 철학을 비교하여 차이를 생각하고 두 분야를 오가며 때로는 가미한 내용이 다수여서 이 책은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 회 반복하여 정독해야 할 책으로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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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물리학과 양자역학에 대해 잘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도서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가 과연 그러하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중력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이론물리학자로 루프양자중력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연결하려는 그의 연구는 블랙홀과 시공간의 본질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왔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하려하고 설명하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 우주에서 가장 신기하고 기묘한 존재임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것을 일깨워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책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구와 우주 그리고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구는 우주의 수많은 행성들 중에서도 정말 작다. 태양의 빛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에는 약 0.1초면 충분하다고 한다. 인간이 눈을 깜빡였을 때 드는 시간이 평균 0.3초인 것을 감안해 볼 때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이미 빛은 지구를 한 바퀴 돈 셈이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작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조차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로벨리는 시간에 대해서도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가 우주 전체에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건들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가능한 미래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여러 가지 선택지를 검토하고 행동하는 일.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험을 순서대로 기억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한다. 그러나 로벨리는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방향 역시 세계 그 자체에 새겨진 단순한 흐름이라기보다 엔트로피와 기억, 그리고 미래를 예상하는 인간의 경험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지금 이 현실에서 미래를 생각하며 숙고하는 행위는 나아가는 것은 시간이 아닌 우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범위한 시간의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 꼭 필요한 감각이었다. 우리가 내면에 수많은 미래들을 그리며 때로는 불안해하고 걱정해하던 그 모든 감정적 신호는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을 평가해 보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시간이 아니라 결국 '관계'에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진 성질은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전자도, 인간도, 별도 혼자서 완성된 무엇이라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로벨리는 이 책에서 현실을 고정된 사물들의 집합이 아닌 사람이 생각한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들로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과정과 관련된 것은 '제한된 변수의 집합'에 대한 것이며 우리가 아는 세상은 나의 내부에서 바라본 하나의 관점 외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에서 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설명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진 성질은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전자도, 인간도, 별도 혼자서 완성된 무엇이라기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로벨리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제한된 변수들의 관계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알다가도 어려운 물리학과 양자역학의 세계이지만 누군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호기심을 갖는 것, 상대의 작은 표정 하나와 말투 하나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하나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최근 많은 인기를 얻으며 자리 잡은 관찰 예능 역시 어쩌면 그 본질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지켜보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지만 사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이미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하나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아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관심을 갖고, 무엇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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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제목이 참 좋다고 느꼈습니다. 존재에 대해... 관계에 대해... 양자중력 이론의 선구자이자 세계적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 그간 그는 어려운 용어와 수식을 벗어나 특유의 문학성으로 우리를 물리학 세계로 안내해 주었는데... 이번 책에서도 우리가 속한 익숙하지만 낯선 이 세계 속의 이야기를 건네준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떤 답을 찾아 나아가야 할까...... 연결로 이루어진 유연한 세계 이곳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다 카를로 로벨리의 과학과 세계관을 집대성한 결정적 저작 프린스턴대학교를 뜨겁게 달군 물리학자의 존재 수업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책은 여섯 개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강의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물리학의 몇 가지 측면을 간략히 살펴본 후, 양자 물리학의 이질적 핵심으로 깊이 파고듭니다(관계적 해석). 두 번째 강의에서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지식과 세상 사이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이을 수 있을지 논의합니다(정보의 물리적 본질, 상대성이론의 반복). 세 번째 강의에서는 공간과 시간(현재주의나 블록우주론이 아닌, 시간을 초월한 역학), 그리고 20세기의 두 가지 위대한 개념적 도약, 즉 양자와 아인슈타인의 공간, 시간, 그리고 중력에 관한 발견을 결합하는 데 필요한 개념 구조를 다룹니다(양자 중력의 개념 구조). 네 번째 강의에서는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시간의 흐름에 대한 물리적 기반, 그 흐름과 관련된 현상, 특히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우리의 명백한 자유에 관해 논의합니다(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인과관계, 시간의 흐름, 물리학과 자유의지의 양립 가능성). 다섯 번째 강의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자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봅니다(환원주의, 발생론, 과학의 통일성·분열성이 아닌 실재론). 여섯 번째 강의에서는 이처럼 풍부한데도 확실성과 궁극적 근거를 갖추기 어려운 지식을 종합해 이야기합니다 솔직히...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물리학이고 특히나 양자역학은 어떤 물체의 속성이 그 물체가 다른 무엇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일 뿐이라는 관점을 가지게 합니다. 물체가 어떤 속성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물체에 특정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결국 물체의 속성이란 물체들 사이의 관계로, 물리적 상호작용에 관련된 개념인 것입니다. 간략히 말하면, 양자역학은 '모든 물리 시스템의 변숫값은 오직 다른 시스템에 대한 상대적 값이며, 오직 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실현된다'라는 사실의 발견입니다. - page 35 양자 현상을 이해하려면 그 현상을 설명하는 변수들이 상호작용하는 때에만 값을 가진다고 생각해야 하고 변수들의 값은 상호작용하는 두 시스템의 속성으로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러한 해석을 '관계적 해석'이라 부르고 있었고... 또한 절대적 확실성은 우리 삶과 무관하고, 도달할 수 없으며,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폐기하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물리학을 무너뜨리지 않듯이 확신을 내려놓고 이미 아는 것을 고쳐가며 새로운 지식을 쌓아 나아갈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불확실한 현실에서 무엇을 믿고 살아갈 것인가?"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은 없다고 다른 존재와의 관계, 불확실성 속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며 나아가는 것임을... 우리는 이 낯선 세상 속에서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채로 불안하고 조심스럽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밀턴은 《실낙원》에서 불타는 칼을 든 천사에게 쫓겨 난 하와와 아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은 광활한 대지를 걸어갑니다. 길을 잃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어쩌면 미래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잠시 눈물을 흘렸지만 곧 눈물을 닦았습니다. 온 세상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고, 운명을 믿고 편히 쉴 곳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손을 잡고 느린 걸음으로 낙원을 떠나 고독한 여정을 향해 걸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걷고 있습니다. - page 266 그렇게 강의가 끝이 났습니다. 분명하고 명확해야만, 정의나 수식에 의미를 부여했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나의 사고를 한정적 가두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흐르는 시간 속 예측할 수 없는 미래... 아니 지금 이 순간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정답에 얽매였다는 점에서... 이 세계는 단순히 사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 동시에, 인과관계에 지배되지도 않습니다. 이 세계는 관계로 엮여 있고, 서로 교차되는 관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을 구체화할 때 익숙한 개념들을 수정하고, 확신을 버리며, 궁극적 근거를 포기해야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page 6 이 문장이 저에겐 오래도록 남았고 이제 저에게 주어진 과제는... 현재 과학적 지식을 포함한 우리의 지식 수준에서 세상에 관해 설명하고 탐색하는 데 효율적인 개념은 무엇인지 묻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소 광범위한 맥락에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세상에 관한 대략적이고 불완전한 설명에 포함되는 실체는 무엇인지 묻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개념은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평등하게 존재하며, 그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 page 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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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로 이루어진 유연한 세계 이곳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배운 가장 큰 지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였다.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고 내 생각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도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삶에서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를 알려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양자역학을 비롯한 물리학 이론을 통해서 우리가 절대적인 확실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쉬운 예를 들자면,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는 과연 멈춰 있을까, 움직이고 있을까? 당연히 멈춰 있다고 모두들 말하겠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자전하는 동시에 태양 주위를 돈다. 그렇다면 나도 의자도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그러나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하기보다는 무엇을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답은 달라진다. 카를로 로벨리 저자는 이런 쉽고 익숙한 장면을 통해서 우리의 상식을 뒤흔든다. 이 책은 양자역학에서 시작하지만, 시공간, 중력, 도덕, 그리고 철학까지 질문을 넓혀간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책의 중심에는 '관계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저자는 관계론적 양자역학 해석을 통해서 사물의 성질을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하자고 말한다. 우리는 이제 물체의 속도가 다른 물체를 기준으로 정해진다는 이야기에는 비교적 익숙하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어떤 속성을 가진다는 사실 자체도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설명하는 절대적인 관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서로 다른 관계와 관점 속에서 세계를 알아가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시간의 흐름에 관한 설명에서는 미래가 열려 있으며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체스를 두는 컴퓨터를 예로 든 부분도 재미있었다. 컴퓨터는 가능한 여러 수를 살펴보고, 각각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평가한 뒤 다음 수를 선택한다. 미래를 탐색하고 판단하는 과정 자체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영향을 준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철학을 다루는 부분에서 모든 존재의 관계성을 다시 짚어주는 대목도 좋았다. 다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책의 내용을 모두 다 쉽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특히 양자역학이나 철학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아주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남는 문장들이 있었다. "결국 물체의 속성이란 물체들 사이의 관계로, 물리적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절대적 확실성, 절대적 정확성, 궁극적 진리 같은 개념은 상상의 산물이며, 어떤 과학 분야에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등등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잘못 안 것은 고치고 몰랐던 것은 새로 배우면 된다. 그리고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미래는 우리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한 물리학자의 명저를 통해 배워간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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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물리학 책을 꽤 자주 접하게 된다. 학창 시절 포기했던 물리학을 지금 와서 다시 읽고 또 읽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읽고 또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전구가 켜지듯 이해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대놓고 물리학이라는 이름을 안 써서 낚이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다. 이미 구면인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신작이다. 전작이 물리학임에도, 에세이 같기도 하고 철학서 같기도 한 느낌을 물씬 풍겼기에, 왠지 이번 신작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전 작과 이어지는 느낌이 가득하다. 전작의 제목은 <무엇도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였는데, 이 책은 거기서 바통을 이어받아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다. 그러고 보니 존재라는 단어를 통해 물리학 책임에도 철학 느낌을 가득 채웠다. 근데 느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을 논하는데, 그 안에 다양한 주제가 내포되어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물리학 책에도 분명 물리학이고 양자역학이나 블랙홀이 등장함에도 마치 우주과학 책을 읽는 것 같아서 한참 헷갈렸는데, 이번에는 무려 철학이다.
책을 읽으면서 물리학의 범주가 이렇게나 넓은 것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생각했던 개념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분명 나는 지금 멈춰 있고, 의자 역시 멈춰 있는데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이 멈춤 자체가 틀리단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정지 상태는 없다. 왜냐하면 지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기차를 타고 있을 때 우리가 멈춰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개념 속에서 우리는 지금도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바로 이 개념에서 시작하는 물리학의 이야기는 그동안 알고 있던 시간의 관념, 위치의 관념, 존재의 관념 모두를 뒤흔들어 놓는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과거와 미래 이 둘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지만(미래의 개방성), 이 미래의 의미가 프로그램 안에서는 또 다르게 이야기된다. 컴퓨터와 체스를 두었던 예가 등장하는데, 보드와 메모리를 통해 컴퓨터는 도달할 결과를 미리 정해둔다. 이렇게 보면 미래는 이미 정해져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바로 이 시간의 개념과 미래에 대한 내용에서 엔트로피와 기울기가 등장한다. 사실 내용 자체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분위기는 알 듯하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절대적인 것은 없다. (나는 절대를 상당히 신봉하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움직이고 정지하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상대적인 것만 존재한다. 책에 나오는 모든 개념들이 다 그렇다. 시간도, 미래도, 정보와 지식도 모두 상대적이다. 그리고 이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이어져간다. 각자의 개념들이 하나씩 붕괴될 때 비로소 책의 제목의 의미가 명확히 다가온다. 아직도 물리학 이해의 길을 멀었지만, 적어도 하나는 배웠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상대적인 것만 있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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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 」 만물의 평등에 관하여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의 설명에 의해 물리학은 단순히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설명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작을 통해 이미 그의 독특한 사유 방식에 익숙해졌고 이번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결국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만물의 평등’이라니. 인간과 물고기, 돌과 원자, 별과 나,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물병까지 과연 이 모든 존재를 어떤 의미에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로벨리가 말하는 평등은 모든 것이 똑같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가 아닐까? 어떤 존재도 완전히 고립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하나의 사물을 규정하는 순간에도 그 사물은 다른 것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이 관점은 물리학의 설명이면서 동시에 꽤 철학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순간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사랑에 빠지고, 상처받고, 배우고, 잊고, 다시 선택하면서 계속 변화한다.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름과 기억, 육체의 연속성 때문일 뿐, 그 안의 나는 수없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인간을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바라보는 것보다 계속되어 가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설득력있다. 우리는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사람도 쉽게 규정하고 싶고, 관계도 이름 붙이고 싶고, 세상도 명확한 답으로 정리하고 싶다. 하지만 로벨리는 과학이 발전해 온 과정 자체가 우리의 확신을 끊임없이 수정해 온 역사였음을 보여준다. 뉴턴 다음에 아인슈타인이 왔다고 해서 뉴턴의 세계가 아무 의미도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과학은 이전의 지식을 폐기하는 방식만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더 넓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설명을 확장하고 수정한다. 이 대목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모른다는 것은 부족함이 아니라 아직 질문할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로벨리가 말하는 과학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답을 갖고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질문하고 관찰하고 수정해 나가는 데 있다. 이 책은 물리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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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카를로 로벨리의 과학과 세계관을 집대성한 결정적 저작입니다. 평소에는 물리학이라고 하면 시간, 양자역학, 블랙홀처럼 어렵고 추상적인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개별 주제를 하나의 존재론으로 종합하며, 우리가 세계와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묻습니다. 2024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된 강의를 엮은 것으로, 오늘날 이루어지는 과학혁명의 철학적 의미에 관한 심도 있는 토론입니다. 이 부분은 과학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는 메시지입니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사물의 성질은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해집니다. 펜을 펜으로 만드는 절대적 고유성이란 없다는 뜻입니다. 세계는 단순히 사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 동시에, 인과관계에 지배되지도 않습니다. 이 세계는 관계로 엮여 있고, 서로 교차되는 관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사물의 본질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특히 공감했던 부분은 흐르는 시간, 고정된 공간, 앞서는 원인과 뒤따르는 결과, 언제나 참이 되는 지식과 도덕까지 우리의 현실을 지탱하던 모든 기반이 무너진다는 설명입니다. 모든 것이 양자적으로 결정된다면 선택과 자유는 허상일까. 상대적 진리 앞에 지식과 도덕은 쓸모를 잃을까. 단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불확실하고 경이로운 여정만이 모두 앞에 열려 있습니다. 이 부분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우게 했습니다.
또한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저자가 사물과 인간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하면서 미래가 결정돼 있지 않기에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자신도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에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과정으로 존재합니다. 이 부분은 존재의 유동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편,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점은 '세계는 관계와 관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문장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을 독립된 개체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관계론적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이 부분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했습니다. 관계는 단순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입니다.
총평하자면,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우리 자신과 현실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읽고 나니 세계가 더 이상 고정된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와 관점의 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합니다. 이 메시지가 오래 남았습니다. 물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 존재의 의미를 찾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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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물에는 변하지 않는 성질이 있고, 세계는 객관적인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를 읽다 보면 이 익숙한 전제가 정말일까하는 사실을 만나게 됩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의자’의 사례가 흥미롭습니다. 방 안의 저에게 의자는 정지해 있지만, 자전하고 공전하는 지구와 우주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자는 정지해 있다’와 ‘의자는 움직인다’ 가운데 무엇이 진실일까요. 카를로 로벨리 작가님은 여기서 어느 하나를 고르는 대신 질문의 전제를 바꿉니다. 사물의 성질은 무엇과의 관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관계적 관점을 양자역학에서 출발해 시간과 공간, 지식, 자유의지와 존재의 문제까지 확장합니다.
카를로 로벨리 작가님은 루프양자중력을 연구해 온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등을 통해 현대물리학의 난해한 문제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온 과학자입니다. 이번 책은 2024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의를 바탕으로 하기에 전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수식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번역을 맡은 김현주 번역가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에서 언어 과정을 수료했으며, <모든 순간의 물리학>을 비롯해 과학·인문 분야의 다양한 책을 우리말로 옮겨왔습니다. 로벨리 작가님의 문장은 과학적 설명과 철학적 사유를 빈번하게 오가는데, 이번 책에서도 그 흐름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시스템 A와 B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물체의 속성이 물체 안에 처음부터 완성된 값으로 들어 있다고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특정한 값이 드러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여기서 저는 현대물리학이 우리의 일상적인 직관을 얼마나 과감하게 흔드는 학문인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위치나 운동 상태를 비교적 명료하게 기술할 수 있었지만,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직관을 흔들었고 양자역학은 관측과 물리적 상태를 둘러싼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로벨리 작가님이 “모든 것은 주관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와 상호작용 역시 물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세계에 절대적인 관점을 하나 세우는 대신, 서로 다른 관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살아오면서 어떤 사건에 대해 ‘분명히 이게 맞다’고 판단했다가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맥락을 알게 된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의 제 위치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이 상대의 상황이나 이전의 맥락을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인간관계의 상대성과 양자역학의 관계성을 동일한 원리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과학에서 출발한 ‘관계’라는 개념이 우리의 사고 습관을 점검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양자 현상과 맥락성에 관한 해석을 ‘관계적 해석’이라 부르는 대목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공식과 계산법을 배우려는 독자보다 현대물리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 시간·공간·양자역학 같은 주제에는 관심이 있지만 전문적인 물리학책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분에게도 좋은 선택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물리학 지식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역시 완결된 정답이 아니라 관찰과 검증, 수정이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과학의 태도입니다. 확실한 답을 하나 더 갖게 하는 책이라기보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믿었던 전제를 다시 질문하게 하는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