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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수정주의란 무엇인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역사는 무엇인가
먼저 역사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묻고 싶다. 역사는 비전문가의 언어로 말하자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기록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 역사를 누가 기록하는가 사실이라 했는데, 그 사실은 누가 판단하고 누가 판정하는가 그리고 또 있다, 한번 기록된 역사는 만고불변인가? 다시 바꿔 기록하면 안 되는가
역사, 하면 이런저런 것들이 떠오른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것이 있다. 과거 이승만 정권에 대한 역사가 또다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또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사안이 새로 국회의원이 된 모의원에 의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게 과거에 한번 판정이 (어떤 식으로든) 내려졌던 역사를 다시 평가해보자는 논의, 그런 논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거기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 <역사 수정주의란 무엇인가>이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안은 우리나라의 경우가 아니라, 외국의 사례들이다.
이 책은
역사수정주의란, 전면적인 부정을 시도하고,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고, 한 측면만을 과장하고,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고쳐쓰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4쪽)
그러한 역사수정주의는 시대나 정치상황에 따라 형태를 변화시키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나타난 역사수정주의의 사례를 여럿 살펴보고 있다.
형태를 바꿔가면 나타난 역사수정주의 사례들
이 책에서 살펴보고 있는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제1차 세계 대전 - 제1차 세계 대전의 기원론, 독일 범죄의 상대화 제2차 세계 대전 - 뉘른베르크 재판의 부정, 네로나치의 역사관 홀로코스트 - 홀로코스트 부정. (강제수용소 부정 등)
여기서 음모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음모론의 특징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명확한데도 일단 세상에 나오면 진위와 상관없이 생존하면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38쪽) 음모론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음모론에서는 증거가 없는 것 자체가 음모 집단에 의해 진실이 은폐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즉,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권력자나 음모 집단이 자신들의 악행을 교묘하게 잘 감추고 있어서 거짓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39쪽)
부정론자의 점진적 증가
여기서 특기할 만한 재판이 있다. 캐나다에서 열린 재판, 쥔델 재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를 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여기 흥미로운 결과가 제시되고 있다. 이 재판의 과정애 대하여는 143쪽 이하를 참고하시라. 여기는 그 재판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의 극단적인 주장이 사법 공간에서 다루어지면서 미디어에서 집중 보도가 되었고, 결국 부정론자의 잠재적안 지지자가 생겼다는 점이다. 재판에서는 주류의 역사 서술에 이단의 역사 서술이 덤비는 것을 도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보는 인상이 생겨났다. (160쪽)
이는 원래 거론할 가치도 없었던 주장이 재판과정을 통해 마치 어떤 근거가 있는 것처럼 호도될 우려가 있다는 것, 그래서 그후로도 그 재판과정에서 제출된 증거자료(물론 허위증거지만) 들이 마치 근거있고, 실재하는 증거처럼 여겨지게 되는 부정적인 효과가 생겼던 것이다.
생각해볼 것 – 역사는 누가 기록하는가
서두에 말한 역사, 역사는 분명 누군가의 기록으로 역사가 되는 것인데 그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도 찾아볼 수 있다.
역사 기록은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은 자료들을 토대로 기록하는 것인데 그 전해들은 자료, 즉 전문증거가 역사 기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사실 역사가의 업적중 다수가 제3자로부터의 정보에 의거하고 있다. 역사의 사료 자체가 (영국과 미국의 법 관점에서 말하면, 전해들은 정보로 분류될 것이다. 사건의 당사자가 반드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아니고, 사건의 발생으로부터 사료가 작성될 때까지의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경과하는 경우도 있다. (150쪽)
이런 관점을 토대로 한다면,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기록을 남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고, 그것을 본 사람의 증언, 즉 전언증거가 되는 것은 제한된 증거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해서 그런 사건이 재판에서 다루어진다면 오히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가 우위에 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처럼 역사수정주의의 행태는 시대를 불문하고 등장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례는 거론하고 있지 않다.
다행하게도 역자가 <역자 후기>에서 위안부 부정을 언급하고 있어, 역사수정주의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역자가 우리나라에서 대두된 518 민주화운동도 언급하고 있는데, 위에 언급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행태를 재판으로 다룬 경우를 참고해본다면, 그에 다른 부정적 효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증언자들의 증언을 재판으로 판단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서 우리는 역사수정주의의 실체와 그 폐해를 똑바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주의할 것, 경각심, 그것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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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책콩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이 책은 역사수정주의의 정의와 역사, 국가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현실적인 법적 규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양 역사서적이다. 책의 내용과 구성은 역사수정주의란 무엇이고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고, 각 국가별로 역사수정주의를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살펴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유대인 학살 사건을 부인하고 부정하려는 ‘홀로코스트 부정’ 운동의 출현 시기와 특징, 이것에 대처하는 국가별 법률 제도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역사학자 가쿠슈인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의 다케이 아야카 교수이다. --- 최근 10년 전부터 한국에도 1970년대말과 1980년대 초 사이에 발생했던 과거 역사적인 사건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행위나 언설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정부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조직을 구성하여 관련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고 대다수 역사학자들이 공통적인 의견으로 규명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허위사실이라거나 음모론에 의한 거짓 조작이라는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이런 행태들은 어느 한 나라에서만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역사적 사실을 고의적으로 교묘하게 은폐, 축소, 왜곡, 조작하려는 시도인 이른바 ‘역사수정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수정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인 홀로코스트 부정 사건을 예시로 역사수정주의의 특징적인 형태와 수법, 발생 동기, 시민사회와 국가의 대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발생했던 전쟁범죄이자 인종말살범죄인 유대인 집단 학살 사건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은 아이러니하게도 종전 직후인 1940년대 말부터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시작되어 미국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하여 1970~80년대까지도 이어지고 생존자의 증언과 기록, 시민사회의 무관심과 저항에 부딪혀 사그라들지만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고 있다. 여기에 역사수정주의가 가지는 특징이 나타난다: 과거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완전히 부정하거나 완전히 날조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애매모호한 표현을 섞어서 부정적인 의미의 사건으로 조작함으로써 일종의 그럴듯함을 획득한다는 점이다. 물론 근거의 합리성은 논파되지만, 논증의 차원에서 논박되지 않으며 입증 책임을 오히려 피해자측의 책임으로 덮어씌우고, 오히려 권력에 의해 탄압받는 사회적 윤리와 정의 차원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대중성을 획득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런 행태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처리하는가인데, 이것이 국가마다 대처방안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역사조작이 ‘허위 사실’이라도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법적 처벌 대상이 되지 못하지만, 유럽에서는 역사조작은 현저한 사실과 관련된 행위라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법적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유럽내에서도 유대인학살이 인종말살범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국가별로 달라지는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도 더 이상 역사왜곡에 대해 방관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 상태이므로, 사회적인 토론과 합의를 통해 법률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역사수정주의의 특성과 역사적 사례와 각 나라별 법률 제도의 대응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는 교양역사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역사수정주의 #역사왜곡 #역사수정 #역사부정 #역사조작 #홀로코스트부정 #역사부정금지 #표현의자유 ] |
피라미드는 노예가 아닌 정당한 임금을 받는 (징집??)노동자들에 의해 지어졌다. 이처럼 오래전 알려진 역사의 이야기들이 이후 새롭게 드러난 유적이나 기록... 또는 전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수정되는 경우에 이를 마주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이에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 등에 대한 (일부 세력의) 역사 비판과 의문을 제시하는 여러 세미나들이 개최되는 것에 대하여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매우 분노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과거 오랜 역사의 '지식의 수정'과 대한민국의 역사이자 이미 사회에 (사실의)정의가 마무리된 어떤 사건에 대한 '사실 수정의 움직임' 사이에는 분명 크게 명분은 같으나 이를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가치관 또한 녹아있다. 물론 이를 민족주의적 가치관으로 정의 할 것인가? 아니면 크게 역사왜곡으로 사회적 이익을 이끌어내려는 세력의 수단에 불과한가? 의 해석 역시도 이를 마주하는 개개인의 인식과 지식에 의하여 달라지기에, 이 책의 저자는 과거와 오늘날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수정주의'의 현상을 분석하고 또 이에 각각의 공동체(국가 또는 사회구성원)는 이를 어떻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풀어낸다.
물론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 대표적인 예는 이전 일본제국주의의 잔인함을 가리는 '전쟁 피해자들의 이야기'을 꼽고 싶은 마음이지만, 책의 첫 장의 예는 독일의 홀로코스트 부정론에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독일은 국가가 철저히 과거 나치 정권의 전쟁범죄를 투명하게 공개함은 물론 이루 나치즘의 가치와 역사의 평가를 수정하는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멸 수용로의 존재와 민간인의 집단 살해를 부정하는 주장과 책 등이 꾸준히 등장함은 물론 이후 네오나치와 같은 극우 단체까지 등장하게 됨으로서, 해당수정주의의 해악은 이미 오래전부터 증명되었다고 여겨진다. 다만 모든 국가와 공동체가 역사주정주의에 기댄 '왜곡'을 우려하지만 일괄적으로 이를 금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칫 통제가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인간존엄의 가치관의 가치관을 훼손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일부 세력들이 정립된 역사의 사실을 수정하며 이익을 추구하지만, 이전에는 국가 스스로가 대중에게 국가와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강요했기에... 결국 오롯이 정답에 맞는 해답은 발견하기 어렵고 대중과 개인 스스로가 어려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회적 합의를 강화하고 또 균형을 찾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나는 한국인이다' 라는 인식을 위해서 역사는 오랜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해석하는 가치관에서 공동체는 저마다의 공통점을 공유한다. 그러나 크게 해석이 훼손되고 의심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면, 이에 손상되어진 공동체의 가치관은 국가를 어떠한 방향성으로 이끌까? 그리고 위의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공동체의 권력은 어느정도로 국민을 통제하고 또 정보의 경직성을 강화해야 할까?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그 균형에 대하여 세상에 절대적인 황금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마땅히 경계하고 비난하며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역사와, 함께 마땅히 국민 모두가 가치관을 지켜야 한다는 역사의 경계가 분명하고 또 이를 만들어 낸 것이 꾸준한 교육과 정보의 학습이라는 것을 떠올릴때... 이에 역사수정의 악용은 어느 소수의 권력이 금지하는 것 이상으로 개개인의 보다 강한 학습과 결속이 필요해질 때가 다가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미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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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들을 기록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누구나 다 객관적인 사료로 역사를 기술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어떤 사관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 역사관에 따라 역사의 객관적인 사료를 풀어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 "역사수정주의란 무엇인가”에 관심이 간 것은, 그렇게 기록된 역사를 어떻게 수정하고 어떻게 왜곡시키는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이 책은 역사수정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양상을 보여왔는지를 알려준다. 이를 위해서 역사가 어떻게 서술되는지, 실증사학에 관해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근대국가에서 역사수정주의가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19세기 말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설명한다. 이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곧 2차 세계대전에서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대인들을 향한 독일의 만행을 예로 들어, 역사수정주의가 어떻게 발현되어 왔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독일의 예로 설명하고 있지만, 충분히 지금 우리의 상황에도 대입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근한 예로 5.18 관련된 일이 그렇다. 극과 극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이제는 피로하기까지 한데, 6장에서 홀로코스트나 제노사이드 등과 같은 법적 규제에 관한 내용도 다루고 있었는데 이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너무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크게 바뀔 것은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적어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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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수정주의란 무엇인가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최근에 메이드인 코리아라는 드라마를 아주 흥미롭게 시청하고 있다. 픽션이겠지만, 진짜인가 싶은 마음도 있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 인물들을 중심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얹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이즘 다케이 아야카란 일본역사학자가 쓴 역사수정주의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역사를 꼭 알아야 하는가?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가 생각하는 역사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반드시 몰라도 그만이지만, 알면 아는 만큼 여러므로 유익하고 도움이 될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세상 모든 공부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역사도 알면 알수록,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와 흥미를 느끼게 되는데, 잘 알다시피 역사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기록이며, 현재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공부해 보면 반드시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가 보고 있는 이 기록은 거짓, 왜곡, 수정, 조작이 없는 진실일까? 소위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역사가 아무리 있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하지만, 황제 혹은 왕, 최고 통치자의 치부와 행적을 사실대로 기록했을까? 그래서 역사에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가 공존하고 있다. 역사적 이슈가 있었던 사건 기록의 경우에는 정사와 야사를 모두 대입해 보면, 그 속에서 숨겨져 있는 진실과 거짓 사이의 그 어떤 미묘한 기록을 유추해서 보다 진실에 다가갈 수도 있다. 역사수정주의, 역사적 사실의 전면적인 부정을 시도하고,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고, 한 측면만을 과장하고,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고쳐 쓰려고 하는 것을 역사수정주의라고 부른다. 역사수정주의는 시대나 정치상황에 따라 형태를 변화시키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역사의 수정은 전쟁이나 정치체제의 전복 등 정치적인 변화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 서술의 재검토나 수정은 어디서부터 역사수정주의라고 간주되는 것일까?...역사가 논쟁의 또 하나의 중심적 논의는 역사의 정치적 이용 문제였다. 어느 국가에도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 서술이 있고, 많던 적든 각각의 국가에는 “역사가 논쟁”이 있다. 역사에 정치가 개입하고, 집권 세력의 치적만을 기록하며 부정적인 면은 기록하지 않으면서 이미 기록된 역사마저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수정하고 고쳐 쓰려는 행위, 정말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불안감, 과연 내가 본 기록, 보고 있는 기록은 진실일까 라는 의문, 역시나 내가 우려했던 부분을 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되었고 과연 우리 역사 기록은 어떨까 하는 의문을 자연스레 품게 되었다.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일본은 2차 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었지만 패전국이 되기 전까지 가해국이었다. 일본은 이후 가해국으로서 과거를 어떻게 서술할지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심해왔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에 대해서 팔레스타인 사람과 유대인의 서술은 완전히 다르다. 유대인은 오랜 유랑의 시대에서부터 서술을 시작하여 비극 이후에 마침내 실현된 유대인 국가를 지키는 역사로 묘사한다. 이에 반해 팔레스타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에 의해 돌연 고향에서 쫓겨난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향한 투쟁의 역사이다. 이 책은 구미에서 역사수정주의가 등장한 이후부터 그 발흥과 쇠퇴의 100년을 되돌아보는 자료이다. 역사수정주의의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고 사회는 항상 새로운 역사수정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사실을,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조작 날조한다고 해서 과연 그 행위들이 없던 일이 되고, 사람들이 모를까? 애초에 역사의 기록이 두려웠다면, 그런 행위들을 하지 않았으면 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찾은 방법이 바로 역사수정이었던 것이다. 역사 학도에게 다케이 아야카의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결코 만만하거나 또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다. 내공이 상당히 높은 텍스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여전히 역사 관련 왜곡, 수정, 조작, 거짓, 선동, 여론몰이 등이 더욱더 노골적으로 성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올바른 역사가들에 의해 진실, 사실 또한 꾸준히 맞서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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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닌 역사를 기어코 수정하고 합리화하는 것 그것을 보고 '역사적수정주의'라고 부른다. 그보다 더 나쁜것은 '부정론' 이다. 당연히 아닌 것을 말도 안되는 말로 날조해서 자기 말이 맞다고 말한다. 이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자 유일하게 '부정론' 이라고 많이 불리는 것이 '홀로코스트 부정론' 이다.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불법이 되어 있으며 이에 대해 거짓으로 말할 경우 서양에서는 대부분 처벌받는다. 역사적 감정에 첫째로 안좋은 것은 나쁘게 부정하여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고, 둘째론 이것을 정치파벌화 하여 실제적 피해를 정치적으로 가르고, 전쟁에 대한 감정과 피해자들의 역사들을 시발점 삼아 또 다른 전쟁의 소재로 삼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피해보고 사망하거나 희생당한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가 2차, 3차의 전쟁이 되거나, 증언이 날조되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조롱당하여 시위의 내용이 되는 등.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살아있는 희생생존자를 두고 거짓말을 해 니가 맞네 내가 맞네 하고 싸우다가 경우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하러 온 생존자에게 또 한번 거짓말을 하지 말라며 자기 입맛대로 짜집기하는 '부정론자' 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복수해주겠다" 혹은 "예전에 가해자였으니 이제는 예방차원" 이라며 제 2, 제 3의 전쟁 수단으로 역사와 생존자를 이용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일까. 홀로코스트 이후로 '정치화', '법제화' 되면서 '홀로코스트' 사태에 대한 전세계적인 올바른 대처를 했지만 이것이 '사법화' 되며, 더욱이 어느나라던 아픔의 역사를 국제정치의 싸움, 견제, 통합으로 이어지게 된 세상. 상대방 나라가 타국 나라를 분명 해친게 맞는데도 그 나라를 해친 것에 대해 인정하고 법제화하면 상대방 나라와 협력하지 못할까봐 최대한 쉬쉬해야한다. '정치적 이유' 만 봤을 땐 개인국가가 잘 돌아가기 위한 조치겠지만, '쉬쉬' 하는 이유는 그 국가가 결국 끝까지 인정하길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단 모든 국가가 자기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아갈 수 있다면, 그 다음 싸움은 조금 수그러들지 않을까. 계속해서 남의 아픔을 부추기고 덜어낼수록 더 나쁜 정치적 감정만 늘어날 것이다. 이제껏 보면 세계평화와 인간관계는 비슷한 논리인것같다. 국가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집단이기도 하기에. 서로의 평화를 헤칠까봐 틀린말도 맞다고 맞는말도 틀리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인간관계와 갈등과 닮았다. 하지만 국가란 '개개인' 이 아니다. '개개인이 묶인 공동체' 다. 그리고 상대방 국가도 그렇다. 그 '개개인' 안에는 내 국가가 만든 피해자가 있다. 그것을 '그 국가의 국민' , 'ㅇㅇ사건 피해자' 로 보지 않고 피해자 '개개인' 으로 조금 더 깊이 해석했으면 좋겠다. 그 사람 사연이 내 사연인것처럼. 더 인간적으로. - 법적 규제의 목적을 '역사의 진실' 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실제로 미디어에서는 그러한 말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서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역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실제로는 역사 인식이고, '역사적 진실' 은 아니다. 더구나 '역사적 진실' 은 법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는 법을 정비한다는 것이 더 불가능하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편협함을 범죄화하는 것 등도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부종 금지의 진정한 목적은 '역사의 진실' 보호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홀로코스트 부정론이나 역사수정주의는 그 사건을 경험했던 당사자에게 상처를 확실한 상처를 입힌다. 자신이 맛보았던 고통이나 절망을 날조했다고 말하고, 없던 것이라고 지적을 당하면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또한, 그 사람이 입었던 고통을 아주 가까이서 보고, 함께 고통을 느꼈던 가족도 부정으로 인해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게 된다. 사망자는 죽음 그 자체를 부정당한다. 그들은 다시 살해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역사의 부정은 우선 역사의 당사자에 대한 공격이다. _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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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역사 수정주의란 무엇인가』는 현재 기록되어 있는 역사에 대한 해석이 새로운 연구나 자료에 의해 조금씩 변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 정상적인 역사학에서 이루어지는 역사 수정과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나 목적을 위해 역사를 선택적으로 변경하고 왜곡하는 역사 수정주의의 차이를 설명하는 책이다. 역사란 과거에 남겨진 사료를 바탕으로 과거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이지만, 사료를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고 기록하는 과정에는 역사학자의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거나 기존 자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진다면, 역사에 대한 기존의 해석이 수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수정은 역사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특정한 이념이나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적 사실을 선택하거나 왜곡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 수정주의가 어떻게 등장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책에서는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러한 태도는 음모론이나 반유대주의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사고와 결합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를 통해 역사 수정주의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다시 해석하는 것을 넘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원래 ‘수정주의’라는 말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의 역사 해석을 새로운 자료와 연구를 통해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은 정상적인 역사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 목적이나 특정 이념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그 과정에서 ‘역사 수정주의’라는 말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주장, 히틀러의 책임을 축소하려는 주장, 그리고 홀로코스트 부정론 등을 이러한 사례로 제시한다. 특히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존의 역사적 통념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역사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단순히 기존의 역사와 다른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 주장이 어떤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자료를 어떻게 선택하고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정해진 역사적 사실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 그 주장이 어떤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는지, 그 자료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기존의 역사적 연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단순히 법으로 처벌하거나 특정한 역사적 해석을 법으로 정해 정답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책의 주장도 인상 깊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법으로 모든 역사적 해석을 정해버리는 것 역시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이 역사적 사고 능력을 기르고,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해 왜 다른 주장이 등장했는지를 살펴보며 그 주장을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역사 수정주의란 무엇인가』는 역사를 수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목적과 근거를 가지고 역사를 수정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역사를 바라볼 때 하나의 기록을 무조건적인 정답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양한 자료와 근거를 확인하고, 역사적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을 구분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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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역사수정주의란 무엇인가』 다케이 아야카 지음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역사에는 관심이 많고 독일사라니 또 훙미로웠다. 처음에는 제목이 조금 딱딱하게 느껴진 면도 없지 않았다. ‘역사수정주의’라는 말도 익숙한 듯하면서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는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거나 기존의 해석이 달라지면서 끊임없이 수정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역사를 수정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바로 이 질문이었다. 역사학에서 새로운 사료와 연구에 따라 기존의 역사 해석을 고쳐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역사수정주의는 그런 학문적 수정이 아니라고 한다.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정하거나 축소하고,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것. 그리고 그 뒤에 정치적·사회적 목적이 놓여 있는 경우다. 물론 이 책은 역사수정주의를 단순한 역사학 내부의 논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라는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정치와 사회에서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말한다. 그래서 책의 시작이 의외였다. 나는 역사수정주의라고 하면 당연히 히틀러와 홀로코스트부터 떠올렸는데, 책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드레퓌스 사건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음모론과 이데올로기화, 독일 외무부의 전쟁원인 연구, 그리고 역사가 H. E. 반스의 사례를 살펴본다. ‘역사수정주의’라는 현상이 어느 날 갑자기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부분 정말 흥미롭다. 역사수정주의가 역사에 관한 특별한 견해라기보다 역사를 이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증거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취사선택하고 재구성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된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하다. 제2장부터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즘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도 흔히 다른 책이 그렇듯이 ‘나치는 나빴다’는 결론으로 가지 않는다. 뉘른베르크 재판을 두고 제기된 불만, ‘독일만 나쁜가?’라는 주장, 히틀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있는가라는 논리, 그리고 프랑스에서 등장한 초기 홀로코스트 부정론까지 차근차근 따라간다. 이런 논리를 읽다 보면 묘한 불편함이 생긴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주장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질문의 형태를 하고, 때로는 다른 해석인 것처럼 등장하고, 때로는 기존 역사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처럼 포장된다. 바로 그 지점이 역사수정주의가 무서운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3장에서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다룬다. 반유대주의와 정치적 표현의 관계, 역사수정연구소, 머멜슈타인의 도전, 독일과 프랑스의 부정론자들, 그리고 쥔델 재판까지 이어진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미디어가 부정론을 확산시키는 과정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이 법정으로 들어가면서 역사학의 연구 방법과 사료 검증 자체가 재판의 중요한 쟁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립스타트가 무엇을 문제 삼았는지, 역사학자 리처드 에번스가 어떻게 어빙의 역사 서술을 검증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학이 단순히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창한 주장보다 사료를 어떻게 읽고, 인용하고, 생략하고, 배열하는가가 역사를 왜곡하는 하나의 기술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사를 다시 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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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몇 년 전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 이라는 말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사실이며 사실에 틀리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 사실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할때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사람들만 있었습니다. 인파의 규모가 과장되었다고 하자 대변인은 이를 해명하면서 이러한 표현을 하였고 이 표현은 급속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사과하면서 끝낼 수도 있었던 일을 억지로 끼워맞추려다보니 이런 신조어까지 탄생하였네요.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것입니다. 각각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견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있었던 일이 없애거나 없었던 일을 새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역사수정주의란 무엇인가' 에서는 이처럼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전 유럽이 휘말린 전쟁이었습니다.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총에 맞아 암살당하면서 전쟁이 촉발되었네요.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손을 잡고 같이 전쟁을 일으켰는데 몇 년에 걸친 치열한 전쟁 끝에 패배하였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을 맺으면서 끝이 났는데 독일은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배상의 규모가 무척 가혹하였기 때문에 독일 국민들은 큰 고통을 받았고, 독일 정부는 전쟁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전쟁원인연구본부' 를 설치하였네요. 전쟁의 책임은 독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연합국에도 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였고, 이런 자료들은 독일의 입맛에 맞게 선별하거나 왜곡하였습니다. 역사수정주의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역사수정주의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 같네요. 1차 세계대전에 이어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유럽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지만 더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독일이 유대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한 것입니다.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가스실을 만들었고 시체는 옆에 있는 소각장에서 소각을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런 가스실이나 홀로코스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이후 네오나치나 극우주의가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지금도 조금씩 세력을 넓혀가고 있어서 무척 우려스럽습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얽힌 사건들을 재판으로 끌고 가면서 이슈로 만들었습니다. 재판으로 가면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이었는지 증명도 해야하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인 사실은 증거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하면서 홀로코스트가 있었는지 자체를 놓고 법적 공방을 벌이는 일이 불필요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일부 사실을 전체인 것처럼 확대하거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외면하면서 계속 주장을 이어나가고 있어 강력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유럽의 사례 뿐만 아니라 일본 및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 사이에서도 역사수정주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나중에는 거짓이 사실을 덮을 수도 있어서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자세히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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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가짜 뉴스의 확산이 매우 우려스럽네요. 의도적으로 조작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잘못된 정보가 끼치는 악영향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여러 가지 위험을 초래하네요. 특히 역사 관련의 가짜 뉴스는 과거의 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독'이라고 여기는데, 바로 그 주제를 다룬 책이 나왔네요. "역사적 사실의 전면적인 부정을 시도하고,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고, 한 측면만을 과장하고,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고쳐 쓰려고 하는 것을 '역사수정주의 (revisionism)'이라고 부른다. 역사수정주의는 시대나 정치 상황에 따라 형태를 변화시키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막대한 사료, 목격자의 증언, 물리적인 흔적 등 산과 같이 쌓인 증거가 있어도 역사수정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 ··· 처음부터 사실과 다른 역사상을 확산시키려는 의도로 명확하게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주장을 구미에서는 '역사수정주의'가 아니라 '부정론(denial)'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부정론자(denier)'라고 불린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왜곡된 역사 서술을 가려낸다." (4-7p) 《역사수정주의란 무엇인가》는 독일 현대사와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일본의 역사학자 다케이 아야카 교수의 책이네요. 저자는 역사수정주의를 단순한 학문적 재해석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 과장하는 위험한 시도로 보고 있네요. 역사인식은 국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기초를 마련하는 것인데, 역사수정주의로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게 된다면 정신적인 지주를 잃게 된다는 거죠. 역사를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면 왜 안 되는지, 아직 명확한 답변이 제시되지 않아서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정치적, 법적인 관점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하네요. 이러한 인식에 입각하여 근대 이후 유럽사회에 등장한 역사수정주의의 역사를 서술하고 분석하고 있네요. 히틀러와 나치즘을 찬미하고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며 어떻게 음모론과 결합해 확산되었는지, 유럽사회는 이를 막기 위해 어떠한 법적 규제를 도입했는지를 자세히 다루고 있네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다루지 않는 것은 저자의 전공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서 제외한 게 아닌가 싶네요. 일본에서는 역사수정주의라는 개념의 폭이 상당히 넓어서 학술적인 재검증에서부터 근거가 결여된 황당무계한 주장의 부류까지 포함되어 유통되고 있다고 하네요. 1980년대 이후 확산된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극우적 역사인식으로 전개되는 과정과 법적 규제를 통해 대응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살펴볼 수 있네요.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알고 나니, 요근래 인터넷 커뮤니티와 극우 성향의 SNS 계정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현상에 대해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시간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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