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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民의 마음에 목인 매인다.--《맹자》를 본받아 《북학의》를 짓다.
"愛民의 마음에 목인 매인다.--《맹자》를 본받아 《북학의》를 짓다." 내용보기
박제가(1750∼1805)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율(栗)의 6대손이고 승지 평(坪)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자는 차수이고 호는 초정, 정유, 위항도인이다. 19세를 전후하여 박지원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북학파(이덕무, 유득공 등)들과 교유하였다. 1778년에는 사은 사 채제공을 따라가서 이조원등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고 돌아온 뒤, 청나라에서 보고들은 것을 정리하여 북학의(北學議)
"愛民의 마음에 목인 매인다.--《맹자》를 본받아 《북학의》를 짓다." 내용보기
박제가(1750∼1805)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율(栗)의 6대손이고 승지 평(坪)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으며, 자는 차수이고 호는 초정, 정유, 위항도인이다. 19세를 전후하여 박지원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북학파(이덕무, 유득공 등)들과 교유하였다. 1778년에는 사은 사 채제공을 따라가서 이조원등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고 돌아온 뒤, 청나라에서 보고들은 것을 정리하여 북학의(北學議) 내·외편을 저술하였는데, 내편에서는 생활도구의 개선을, 외편에서는 정치·사회제도의 모순점과 그 개혁방안을 다루었다. 애민과 우국으로 가득한 절절한 마음으로 쓴 초정 박제가의 글이지만 그의 주장은 조선이라는 사회에 끝내 받아들여지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을 읽으면 더욱 목이 매인다. 박제가의 《북학의》에는 무엇보다도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의 <서문> 中, 「《맹자》에 나오는 진량의 이야기를 본받아 《북학의》라 이름하였다. 비록 그 말들이 자질구레하여 소홀히 여기고 쉽고 번잡하여 행하기 어려움도 있으나, 옛 임금들도 백성을 가르칠 때에 집집마다 전하여서 깨우쳤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절구를 한번 만들자 온 천하가 곡식의 껍질을 벗길 수 있게 되었고, 신을 한번 만들자 온 천하에 맨발로 다니는 자가 없게 되었다.…(중략)…그 가르친 법이 얼마나 간편하였던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12∼13쪽)에 나타나듯 박제가는 시종(始終) 진정한 애민이란 무엇인지 토로한다. 그리고 <내편>에서는 「백성을 편하게 하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그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된 뒤에라야 정치하는 사람들이 베개를 높게 하고 누울 수 있을 것이다.」(80쪽) 라는 말처럼 마치 《맹자》의 목소리와 흡사하게 위정자를 꾸짖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곳곳에 중국을 배워야 한다 하며 그것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이것이 그의 방법론이다. 말이나, 소 등의 짐승들 하나하나라도 중국과 조선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짐승 다루는 방법이 궁색해지고 있으니 나라 또한 부강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은 다름이 아니고 중국을 배우지 않는 데서 나타나는 과오이다.」(83쪽) 라고 한다. 물론 첫장 '수레'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다. 지배층인 사대부의 각성을 요한다. 그는 <서문>에서, 「지금 민생이 날로 곤궁해지고 재용(財用:재물의 용도)이 날로 궁핍해지는데 사대부는 팔장만 낀 채 구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옛 것에만 의존하여 편안하게 지내다 보니 이를 모르는 것인가?」(13쪽) 라고 하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나아가 조선사회의 부조리를 그 구조적인 데서부터 분석하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사람을 임용하는 데에 오로지 문벌만을 따진다. 공경(公卿)의 아들이라야 공경이 되며, 서민의 자식은 서민으로서만 살 수 밖에 없다. 이런 법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되었다. 이런 법이 시행된 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그러니 자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귀하신 몸이 된데다가 또 부자여서 농사일을 직접 하지 않게 되었으며, 어떤 심한 자는 종종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140쪽) 이것은 박제가가 사대부가 아닌 여항인이기 때문에 더욱 뼈져리게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사실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주장을 조선이라는 사회에 받아들여 질 수 없었다. 그의 개혁은 근본에서부터 시정을 요하고 있고 그것은 조선이라는 사회를 통째로 뒤흔드는 것이었다. 박제가는 처음부터 목숨을 내놓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집필하였음이 분명하다. 뿐만아니라 긴장 속에서도 관계 일화를 통해 웃음으로 주장을 펼칠 줄 아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일찍이 어떤 손님에게서 털요의 나쁜 점에 대한 말을 들었다. "먼지 투성이고 그을음 냄새까지 나서 도무지 사용할 수가 없다. 어떤 신랑은 첫날밤에 새 털요에서 나는 냄새를 신부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여 평생토록 아내를 멀리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이와 같이 공인(工人)의 잘못이 한 가정을 화목하지 못하도록 만들기까지 하였다." 이야기를 듣던 좌중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였다.」(114쪽) 이 이야기는 조선에서는 '담요'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 많이 사용하는 '털요'의 불편함에서 벗어나 요긴한 '담요' 사용을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목에 삽입되어 있다. 어찌 웃음이 웃음으로 끝나겠는가. 역시 어리석음을 스스로 일깨우는데는 골계만한 것이 없다. 나는 대개 소설이나 어떤 허구적인 글을 읽고 눈물 흘린 분이 있다면 또 다른 경험으로써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고전 한문산문의 내면 풍경이랄 수 있는 사실을 보다 진실하게 말하면서 감동을 주는 글읽기를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저자(市井) 中에서 우리 나라 사람이 중국 시장의 융성함을 보고는 "이(利)만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하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이다. 장사치라고 하는 부류도 사민(四民 : 사·농·공·상의 보통민) 중의 하나이므로, 사·농·공에 통하는 것으로 이들 인구가 십분의 일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 쌀밥을 먹고 비단옷만 입으면 그 밖의 것은 필요 없는 줄로 알고 있다. 그러나 쓸모 없는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쓸모 있는 물건과 통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데,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쓸모 있는 물건도 장차는 모두 한 곳으로 치우치게 되어 제대로 유통(流通)되지 못한 채 한 쪽에서만 이용하게 됨으로써 모자라기 쉽게 된다. 검소하다는 것은 물건이 있어도 남용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에게 물건이 없다 하여 스스로 단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라 안에 구슬을 캐는 집이 없고 시장에 산호 따위 등의 보배가 없다. 또 금과 은을 가지고 가게에 들어가도 떡을 살 수 없는 형편이다. 이것이 참으로 검소한 풍속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이것은 물건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용할
YES마니아 : 골드 m**j 2001.08.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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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자체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으나
"이 책 자체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으나" 내용보기
국사 시간에 배운 바로는 박제가는 실학파입니다. 그 중에서도 북학파라고 합니다. 또는 이용후생학파라고도 합니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 재미가 없었던 건, 이런 '딱지 붙이기' 즉 '~파' '~주의'라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실학파의 3대 분파로,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
"이 책 자체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으나" 내용보기
국사 시간에 배운 바로는 박제가는 실학파입니다. 그 중에서도 북학파라고 합니다. 또는 이용후생학파라고도 합니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 재미가 없었던 건, 이런 '딱지 붙이기' 즉 '~파' '~주의'라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실학파의 3대 분파로, 이익으로 대표되는 경세치용학파,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으로 대표되는 이용후생학파, 추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실사구시 학파 등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학파에 관해서는 한자의 뜻만 제대로 풀이하고 그 배경을 조금만 이해해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고등학교 때에는 왜 그러하지 못했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조금씩 제대로 알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학이라고 하면, 실(實)하지 않는 학문이라는 뜻의 반대되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허학(虛學)이라고 합니다. 한자 뜻을 언뜻 살펴봐도 좋은 뜻은 아닌 것 같지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실학은 당시에 사용되던 뜻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실학이라는 의미는 조선후기에 대두된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실은 이미 그 전부터 널리 유학자들 사이에 통용되던 말이었습니다. 즉 '유학=실학', '허학=불교 또는 노장사상'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유학자들의 눈에는 현실 세계에 관심을 두지 않는 불교와 도교의 사상은 '헛된' 학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연암 박지원과 함께 북학파(=이용후생학파=중상학파)를 대표하는 박제가의 《북학의》를 읽었습니다. 북학파(北學派)의 북학은 북쪽의 학문을 가리키고, 이는 다름 아닌 당시 청나라의 학문을 말합니다.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는 '북쪽의 학문을 논의한다'는 의미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제가가 청에 다녀와서 당시 그곳에서 본 수레, 선박, 성, 궁실, 창호, 도로, 교량, 목축, 상업, 은, 돈, 철, 목재, 의복, 의약, 도장, 종이, 활, 문방구, 고동서화, 시장, 자, 벽돌, 유희, 소, 말 등 일상 생활에서 소용이 닿는 각종 물건, 도구 등의 제작법, 사용법, 개선안 및 그 이점을 두루 설명하고 있는데, 너무 디테일^^하여 큰 감흥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물론 연구하는 입장에서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참으로 흥미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저 또한 현재의 책을 읽는 목적이 실용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에 옛 청조의 생활백과사전같은 글을 꼼꼼히 읽고 가슴에 새길 까닭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옛 실학 책이 오늘날에도 실학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다행히도 옛글이라지만 번역이 매끄러워 글을 읽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글 중에는 오늘날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글들도 꽤 있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박지원이 쓴 서문과 〈내편〉에서는 수레, 〈외편〉에서는 과거 제도를 논한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크게 느낀 바가 없어 박제가에 대해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니 오히려 그런 자료들에서 더 큰 흥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태준이 《문장강화》에서 "기행문에서는 흥취로 교(驕)하되 지식으로 교할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비록 이 글이 기행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무슨 강의를 하듯 고증과 주장을 일삼아서는 리뷰가 아니라 학문이 되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박제가와 실학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옮겨 싣지 않겠습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아는 게 별로 없으니 공연히 책 탓만 한 것 같습니다. 이래 저래 알아나가는 것이니, 오늘은 어제보다 요만큼이라도 더 알았다는 사실에 만족해야겠습니다. 나중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요.
n******8 2005.09.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