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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지원 도서 청소년 문학 작품으로 익숙한 '황보나' 작가님. 이번에는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알갱이들>로 작가님의 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알갱이들>은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황보나 작가의 첫 소설이기도 하고, 동시에 박지리문학상의 마지막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작가님의 첫 소설이, 마지막 수상작이라니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책 소개를 읽어가면, 이전에 읽었던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가는 또 다른 색채를 가진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책에 대해 살펴볼수록 책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집니다.
"너 근데 아까 죽지 않았어?" 공을 완전히 건네주기 직전에 내가 물었다. "맞아요. 아까 죽었어요." 아이가 헤벌쭉 대답했다. "죽는 거 아프니?" 아이는 묽게 웃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81쪽 정말이지 정미가 보고 싶었다. 나는 진짜 정미를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이다. 정미가 죽어서가 아니라 정미는 내 안에 있으니까. 알갱이처럼 내 안에 있으므로, 내가 진짜 내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정미를 볼 수 없다. 알갱이인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158쪽
와, '황보나'라는 작가님의 이름을 여러 번 말하게 되는 책이다. 특이한 것은, 청소년 문학 작품으로 황보나 작가님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 소설은 청소년에게는 소개할 도서는 아니다. 그렇지만 죽음과 그 후 남겨진 이의 시선 그리고 주변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진행되는 흐름이 신선했다. 주제가 낯선 것이 아니지만, 자칫하면 지루하고 교훈적이거나 안타까운 시선에 마지못해 나아가는 아련한 모드로 마무리되기 쉽다. 그런데, 덤덤한 듯 위태롭게 평범한 듯 굉장히 낯설게 시선과 사유가 오가며 이어진다. 그리고 독자는 그 문장과 문장. 어쩌면 마침표와 다음 글자 사이의 공백에 멈추어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알맹이'와 '알갱이'에 대해 말하며 저자가 남기는 질문은 생각해보지 못한 표현이었다. 그러한 작은 듯 미묘한 차이가 글을 대하는 사고와 태도의 커다란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황보나 저자의 문체 때문일까. 박지리문학상의 작품은 다른 소설들 보다 조금은 시간을 두고 읽어가야 하고 주제나 흐름부터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번 도서 <알갱이들>은 한번 잡고 끝까지 읽어가게 되었다. 구태여 질문하거나 거창히 말하기를 선택하기보다는 걸어가듯 저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 끝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질문이다.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질문을 품고 있었다는 생각이 그 끝에 가서야 든다. 그렇지만 이 또한 구태여 온점이나 느낌표가 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에 의문을 가질 틈 없이 변해 있는 물음표의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박지리문학상, #협찬, #황보나, #황보나소설, #황보나장편소설, #박지리문학상마지막수상작, #제6회박지리문학상, #책, #서평, #책과콩나무, #책콩서평단, #서평단, #리뷰어, #독서아카이브, #죽음, #사유, #사계절출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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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서평단> 📚도서명 : 알갱이들 ✏️저자명 : 황보나 🏢출판사 : 사계절 📅출간일 : 2026년 09월 10일 주인공 현비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정미가 죽은 뒤 깊은 슬픔과 죄책감에 빠진다. 왜 정미는 죽었을까. 나는 왜 정미의 마음을 몰랐을까.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걸까. 현비는 계속해서 정미가 죽은 이유를 찾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정미의 죽음과 자신의 삶을 겹쳐 보기도 하고, 자신 역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책에서 현비가 ‘죽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일상의 여러 순간에 그런 마음이 불쑥 찾아온다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에는 조금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누구인지는 꽤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서는 A라고 해두려고 한다. A는 현비에게 자신의 ‘죽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처음 읽었을 때는 나도 현비처럼 ‘죽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준다는 거지?’ 싶었다. 그런데 A는 그런 마음들을 한번 모아보라고 한다. 그 말을 계기로 현비는 자기 안에 있었던 여러 순간의 마음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현비는 새로운 친구 소윤과 가까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던 소윤과도 결국 멀어지게 된다. 그 과정을 지나며 현비는 조금씩 알게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상대의 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다는 것을. 정미의 언니 유미 역시 현비에게 정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현비는 대답하지 못한다. 결국 정미의 죽음에 대해 명확한 하나의 답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단어는 ‘알갱이’였다. 처음에는 그저 작고 사소한 흠집 같은 것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읽을수록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쉽게 없어지지 않는 알갱이 하나쯤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일 수도 있고, 후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이나 미안함일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른다고 그런 감정들이 깨끗하게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억지로 없애려고 애쓰기보다는 조금씩 익숙해지고, 가끔 꺼내어 바라보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현비가 마지막에 모든 상처를 말끔하게 극복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정미를 완전히 잊은 것도 아니고, 정미의 죽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현비 안에는 정미가 있고, 여러 감정의 알갱이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정미의 죽음은 정미의 것이고,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다시 살아가려고 한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이나 마음에 깊게 남은 상처를 ‘극복했다’라는 한마디로 끝낼 수 있을까. 어쩌면 정말 괜찮아진다는 건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불편한 알갱이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계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알갱이들 #황보나 #사계절 #사계절출판사 #박지리문학상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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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죽음은 한 사람의 부재로 끝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충분히 슬퍼해야 할까, 눈물을 흘려야 할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할까.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종종 남겨진 사람들에게 애도의 모습을 요구한다. 얼마나 슬퍼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하는지, 그 사람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그런데 정말 슬픔에도 정해진 모양이 있을까. 《알갱이들》은 친구 정미의 죽음 이후 남겨진 현비의 일상을 따라가며, 죽음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정작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서 상실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정작 죽은 정미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는 정미의 목소리도, 표정도, 죽기 전의 마음도 직접 확인할 수 없다. 오직 현비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 정미라는 존재를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미는 부재할수록 더 선명해진다. 한 번도 직접 만날 수 없는 인물인데도 소설 곳곳에 정미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흔적은 현비의 하루와 생각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현비는 정미와 가장 친했던 친구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현비라면 정미가 왜 죽었는지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미의 친언니 유미 역시 동생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현비를 찾아온다. 하지만 현비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언제나 비슷하다. 모르겠다. 이 짧은 말에는 친구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혼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친구의 마음에 대한 당혹감, 혹시 자신이 무언가 놓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많은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정미와 가장 친했던 현비조차 정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현비의 잘못일까. 책 속에서 현비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정미를 몰랐다." 이 문장은 친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자책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한 사람의 삶과 마음을 타인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가까웠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어도 타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누군가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남겨진 사람은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그날 내가 다른 말을 했더라면,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무언가 알아차렸더라면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현비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상당히 불편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정미가 죽었는데 머리를 하고 미용실에 다녀왔다고 수군거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비난한다. 친구를 잃은 사람이 어떻게 평소처럼 머리를 하고, 밥을 먹고, 다른 사람과 웃고 지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잃었다고 해서 남겨진 사람의 일상이 완전히 멈추는 것은 아니다. 슬픔 속에서도 배가 고프고, 머리가 자라고, 계절은 바뀌며,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현비가 미용실에 다녀온 이유도 정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정미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슬픔이라는 감정이 반드시 눈물이나 침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엉뚱한 일에 몰두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애도의 방식과 다르면 쉽게 비난한다. 슬퍼해야 할 때 웃었다고, 충분히 울지 않았다고, 벌써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고 말이다. 이 부분에서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해석하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상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슬퍼해야 하는지까지 정해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슬픔은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현비가 보여주는 태도는 인상적이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믿어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참회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친다는 의미의 참회.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믿어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문장은 작품 전체에서 현비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처럼 느껴졌다. 현비는 정미의 죽음을 잊으려는 것도,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죽음에 명확한 원인과 책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정직한 태도일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현비의 주변에 등장하는 죽음의 이미지들이다. 죽은 정미뿐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고모부가 현비 앞에 나타나고, 아이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놀이를 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일상적인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특히 죽은 고모부가 부탁하는 장면은 기묘하면서도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혹시 현비 네가 나한테 죽고 싶은 마음을 줄 수 있겠어? 그럼 내가 잘 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죽은 사람이 잘 죽기 위해 죽고 싶은 마음을 달라고 한다는 설정은 역설적이다. 이 장면은 죽음이라는 사건이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특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그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도 저마다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품고 있다. 여기서 고모부의 부탁은 현비에게 또 다른 감정의 무게를 건넨다. 현비는 정미의 죽음으로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마음까지 떠안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대신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결해 주기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죽음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결국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고,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슬픔이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던 것은 제목인 '알갱이들'이었다. 알갱이는 작고 개별적인 존재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이고 쌓이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쉽게 흩어지고, 때로는 단단히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소설 속 현비의 마음도 그런 알갱이와 닮아 있다. 정미의 죽음에 대한 기억, 주변 사람들의 시선,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 할머니의 반복적인 참회 요구, 새롭게 맺은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까지. 어느 하나만으로 현비의 마음을 설명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감정들이 작은 조각처럼 쌓이고 흩어지며 현비라는 사람을 이루어간다. 책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나도 알맹이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알갱이." 알맹이라는 말이 어떤 것의 중심이나 핵심을 떠올리게 한다면, 알갱이는 그보다 작고 불완전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때로는 나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완성된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기억, 감정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은 제목이 가진 의미를 더욱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정미가 죽어서가 아니라 정미는 내 안에 있으니까. 알갱이처럼 내 안에 있으므로, 내가 진짜 내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정미를 볼 수 없다. 알갱이인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제목이 작은 입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남겨진 존재와 기억에 관한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없지만, 함께했던 시간과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미는 더 이상 현비의 곁에 없지만 현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정미가 있다. 그것은 잊지 못해서 괴로운 기억이기도 하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다. 애도란 떠난 그 사람이 내 안에 남긴 자리를 인정하고 그 자리를 품은 채 살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반복은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유미는 매일 현비를 찾아오고, 두 사람은 정미의 죽음에 관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는 소윤이와 김라희 사이의 폭력이 반복되고, 할머니는 현비에게 끊임없이 참회하라고 말한다. 비슷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조금씩 쌓여간다. 특히 소윤이가 현비에게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현비가 그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장면은 눈길이 갔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말이 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한마디를 필요로 할 때가 많다. 반복되는 말과 행동은 무의미해 보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누군가의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현비의 일상도 그렇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정미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비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간다. 이러한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거나 완벽하게 회복했다는 식의 결론도 아니다. 그저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도 살아가는 것. 오히려 그런 모습이 현실의 애도와 더 가까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갱이들》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쉽게 설명하려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이유를 묻고, 슬퍼하면 언제쯤 괜찮아질지 궁금해하며,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는 이제 그만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말들이 걱정과 위로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상대방의 마음이 충분히 준비되기도 전에 건네는 위로가 또 다른 부담이 되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품이 쉽게 원인을 규정하거나 누군가를 구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감정을 단순하게 바라보거나, 주변 어른들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해석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삶에는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복잡한 사정과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나 그럴듯한 해답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부분을 함부로 채워 넣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현비가 아이에게 건네는 질문도 오래 남는다. 🔖"죽는 거 아프니?"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설정 속에서 등장하는 조금 낯선 질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작품의 끝을 생각하고 나면 이 질문은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정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일 수도 있고,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비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죽음 이후에도 남겨지는 감정은 무엇인지 묻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기에 더욱 오래 마음에 남는다. 《알갱이들》은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쉽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상실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올바른 애도의 기준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그대로 남겨둔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어딘가 까끌까끌한 감정이 남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 질문들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하는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슬픔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알지 못하는 마음을 안다고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은 사람에게 섣불리 괜찮아지라고 말하지 않는 것.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알갱이를 품고 살아간다. 어떤 것은 오래전 기억이고, 어떤 것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이며, 어떤 것은 누군가가 남기고 간 작은 흔적일 것이다. 그 알갱이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누군가를 잃었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 그 사람은 여전히 내 안의 작은 알갱이로 남아 있다. 황보나 작가의 《알갱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지긍 필요한 것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께 품어낼 수 있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으니까. _ #알갱이들 #황보나 #사계절출판사 #박지리문학상 #소설 #한국소설 #소설추천 #신간 #책소개 #책추천 #도서리뷰 #책리뷰 #독서후기 #도서추천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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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알갱이들」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황보나 지음 | 사계절 문학상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박지리문학상의 당선작을 매년 찾아보곤 했다. 한 해의 수상작을 기다린다는 건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나는 일이기도 했지만, 박지리라는 이름이 남긴 문학적 질문이 어떤 모습으로 이어지는지 지켜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소식은 놀라웠고, 안타까웠다. 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작가와 문학의 가능성을 발굴해 온 문학상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져서 그래서 이 작품이 내겐 더 애틋하다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의 첫 소설이라는 점에서도 반가웠지만, 무엇보다 죽음과 애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점이 흥미로웠다. 죽음은 언제나 남겨진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떠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을 설명할 수 없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 부재를 받아들일 만한 이유를 찾으려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달라졌을지.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이 마음속을 맴돌고, 일상은 그 질문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소설의 인물들은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거나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내기보다, 정미의 죽음 이후 남겨진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부재를 통과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살아 있는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 사이로 정미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정작 정미는 살아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데도, 소설 속에서 정미의 자리는 좀처럼 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점이 이 작품의 중요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함께했던 시간과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 뒤늦게 떠오르는 사소한 장면들까지 더해져 한 사람의 부재는 오히려 더 복잡해진다. 누군가의 죽음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은 남는다.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마음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삶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때때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인상을 주지만, 문학은 꼭 그런 방식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한 작품이 남긴 질문은 독자의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한 문학상이 발견한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다른 독서의 시작이 된다. 박지리문학상이 문을 닫는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동안 이 상이 세상에 건넨 작품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타인이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까. 작가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서둘러 덮지 않아서 좋았다. 여운을 길게 남기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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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소설 『알갱이들』은 도입부터 강렬하다. 고등학생 현비에게 자꾸 찾아오는 여자 어른이 있다. 현비의 친구였던 정미의 언니다. 정미는 이 세상에 없다. 정미의 언니는 현비에게 죽음의 원인을 자꾸 묻는다. 현비는 알 수 없다. 정미는 죽고 싶어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기에 정미의 언니는 자꾸 현비를 찾아 단서를 얻으려 한다. 소설 『알갱이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친하다고 해서 누군가의 마음 속 깊은 무언가도 알 수 있는가? 어디까지 알아야 친하다고 할 수 있는가. 과연 그들은 친했던 것이 맞나. 현비도 의문에 빠진다. 정미의 죽음으로 현비는 학교도 바꾸고 이사도 갔다. 하지만 계속 찾아오는 정미 언니 때문에 일상이 괴롭다. 새로운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지만 소윤이는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다. 현비는 소윤이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소설 『알갱이들』은 뜬금없이 현비 고모부의 존재를 보여준다. 맨홀에 빠져 죽은 고모부. 현비는 우연히 어느 집에 갔다가 쇼파 밑에서 고모부를 만난다. 고모부의 영혼이 현비에게만 보인다. 남의 쇼파 밑에서 떠돌고 있는 불쌍한 고모부를 만나기 위해 현비는 수치스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비에게 고모부는 어떤 존재일까? 소설 『알갱이들』은 현비를 둘러싼 서사를 여기저기 풀어 흩뿌린다. 껍데기가 벗겨진 알갱이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기분이다. 아무런 이유를 알 수 없는 정미의 죽음, 유부남을 만나는 정미 언니의 서사, 학교폭력을 당하던 소윤이의 행태 변화, 정처 없이 떠도는 고모와의 대화를 통해 알갱이들은 저마다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버려진 껍데기는 영원히 썩지 않고 알갱이들은 언젠가 썩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소설 『알갱이들』에서는 죽음이라는 두 글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현비는 정미 죽음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껴야만 하는지, 정미 언니는 그 이유를 친한 친구였던 현비에게 왜그리 찾으려고만 하는건지, 소윤이는 집요하게 현비를 물고 뜯으며 알갱이가 터질 때를 기다린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토록 무섭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섬뜩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정미가 죽은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자들의 몫은 무엇일까?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알갱이들』은 책장을 넘기는 동안 독자로 하여금 고뇌에 빠지게 만든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뭔데?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다. 서로 잘 살아보자고 독려하거나 슬픔을 다독여주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개개인이 모래 알갱이들처럼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뭉치게 해 주는 무언가를 찾고 싶은 책, 소설 『알갱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알갱이들 #황보나 #소설 #박지리문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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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알갱이보다 오래 간다 여기 잘 싸여진 사탕 하나가 있다 5분 후에는 사탕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살아남는다 그 이후부터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 사탕은 알맹이는 사라진 채 쓸데없는 껍데기만 존재할 뿐이다 정작 중요한 알갱이 대신 부차적인 껍데기로만 인지된다 이 우스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책은 너무 빨리 너무 쉽게 사라지고 마는 알맹이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오래 너무 안 없어지는 껍데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장 큰 장점은 이 세상의 알갱이에 대해 생각케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것이기도 하고,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작 이 세계는 그 알갱이들의 특성에 의해 그 성질이 결정되고 그로 인해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알갱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떠나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썩지 않는 껍데기만 이 세상에 가득하게 된다 주인공에게 사라진 친구는 그렇게 자신이 보지 못한 알갱이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주위에 수백년이 가도 쉽게 썩지 않을 껍데기를 볼 수 있게 한다 그 미묘한 감지와 감성을 담백하고 장황하지 않게 서술한다 다음으로 청소년 소설의 성공적 경험을 지닌 작가답게 인상적 에피소드와 폐쇄된 관계 안에서의 심리를 과감히 묘사하는 것도 장점이다 단편이지만 여러 전환과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독자의 주의를 붙잡는다 #알갱이들 #사계절 #황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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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에서 무료로 협찬을 받아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 『알맹이들』 주인공과 비슷하다면 비슷할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잊기를 선택했고, 이들은 반복적으로 비참해지기를 선택했다. 진행 과정과 결과를 미리 아는 반복적 비참이 불가역적인 최종의 사건으로서 죽음에 비할 바 없이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비와 유미는 폭력과 모멸을 경유하지 않고 죽음에 대응하는 법을 창안했다. 하루하루 똑같은 삶을 살기. 가까운 이의 죽음에는 저마다의 대응법이 있다. 근데 ‘잊기’가 죽음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나? 누군가는 ’잊기‘를 두 줄의 문자처럼 매정한 행위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잊기‘가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가만히.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그렇게 서서히. 부작위도 행위라면….‘잊기’도 행위인 거겠지. 놀랍게도 나의 대응 방법은 잘 통한 듯 하다. 이 책을 읽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아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치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그저 연락을 하지 않지만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관계를 유지 중인 것처럼. 책의 마지막에 적힌 작품 해설을 읽다가 떠올랐다.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나에게도 더 이상 볼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친구가 친구를 죽인 일이 있었다는 것을. 그 친구는 나와 아주 가까웠다는 것, 아니 가깝다는 것을. 나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 속 인물들도 잘 모르는 거 같다. 나보다 어린아이들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럽고 대단해 보인다. 이들이 결국 선택한 방식은 하나의 ‘기억하기’인데 나는 ’잊기‘를 선택한 거 같아서. 이 책 덕분에 친구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은 반드시 소중한 걸 잃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존재의 잃음인 죽음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듯하다. 『알갱이들』은 죽음을 삶의 일부로 가지는 태도를 보여준다. 친구의 언니가 이유를 묻고, ‘내’가 모르겠다는 답을 하고, 그 일련의 과정의 반복이 이상하게 나에게도 위로가 됐다. 그렇지만 너 자신의 알맹이를 망가뜨리진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불가역적인 죽음을 겪었다고 해도 너네가 받아야 할 건 폭력과 모멸이 아닌 위로와 공감이라고. 이 말이 꼭 전달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처럼 ‘잊기’를 택한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회피해도 된다고. 아마도 스스로에게 해주고픈 말이겠지. 나는 이 책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적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여러분들이 살았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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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는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책을 덮고 난 뒤에야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다. [알갱이들]은 죽음과 애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을 이야기 하는 소설이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픈데, 그 이유조차 온전히 알 수 없다면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책은 그 질문에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소설은 정미의 죽음 이후를 따라간다 정미의 친언니 유미는 동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 하고, 정미의 친구 현비는 그 죽음과 관련된 질문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의 죽음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모든 답이 들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일은 이유를 찾으려 해도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남기도 하니까 나는 이 지점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슬픈 일을 겪으면 이유를 찾으려고 하고, 이유를 알아야 조금이라도 마음이 정리될 것 같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 분명한 답이 있는건 아니다. 이 책은 누군가의 죽음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대신, 그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일상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도. 읽는 사람에 따라 조금 어렵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내가 그렇게 느꼈고, 사람마다 슬픔을 감당하는 슬픔의 모양도 다르다는 생각을 해보고 싶다면 천천히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까지도 각자의 방식으로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작성한 리뷰입니다. #장편소설 #죽음의사유 #박지리문학상수상작 #애도 #죽음 #알갱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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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나의 『알갱이들』을 읽으며 평소에는 쉽게 지나쳤던 일상과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하나의 모습을 이루듯, 우리의 삶도 사소한 경험과 감정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평범해 보이는 순간에도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는 주변의 작은 변화와 일상 속 소중한 순간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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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갈 때가 있다. 후회하며 살아가거나, 상처를 느끼며 살아가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죽음에 대한 인식,죄책감, 후회를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삶 속에 우리는 항상 죽음의 공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실제 죽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죽을 상황에 내몰릴 때가 있다. 적당하게 뻔뻔하게 살아가거나, 아니면, 부끄러움과 미안함, 절망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경우,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소설 『알갱이들』은 제6회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가 박지리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으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있다. 이 소설을 보면,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2016년 고인이 된 소설가 박지리의 인생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소설 『알갱이들』의 주인공 현비는 정미라는 아이의 가장 가까운 절친이었다. 하지만, 정미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비와 만난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투신했기 때문이다. 정미에게는 네살 많은 언니 유미가 있으며,유미는 어느날 현비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왔다.현비는 정미의 죽음 이후, 부모의 강요로 인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상태였다.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가까운 절친이라 하더라도, 전부 알진 못한다. 가족 관계라 하더라도,다 아는 것은 아니다. 정미도 그렇고, 현비도 마찬가지다.그런데, 공교록게도 정미의 주변 사람들은 항상 정미의 죽음에 대해서, 두 사람에게 물어보곤 한다. 가까워서 그렇고, 언니라서 그런 것이다. 유언을 남기지 않는 정미가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있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죽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를 돕고 있다. 그 누구도 정미의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유미 언니가 생각하는 정미, 현비가 생각하는 정미의 특징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미안하게 되고, 죄책감에 빠져들게 된다. 이 소설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상상하게 된다.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가족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서로 상처만 남기고, 상흔만 남길 뿐이다. 그 누구도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가장 가까울 수록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현비가 정미가 죽은 이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