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호전되었던 백혈병이 다시 악화되고, 결국 증세가 악화되어 혼절하게 된 브장송 페스티발 당일. 각성제를 맞고 겨우 깨어난 그가 죽음을 예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각성제를 한계까지 투여한 뒤 공연을 강행하기로 한 것은, 사실 무슨 놀라운 드라마가 아니라 언제나 성실하게 연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던 리파티의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그는 최후까지 연주했고, 모든 힘을 소진해 결국 마지막 왈츠 한 곡을 남겨두기까지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모노 녹음이며, 실황의 특징상 초반에 바흐의 파르티타를 연주하면서 약간 덜 풀린 근육으로 인해 엇박자를 약간 짚고, 모짜르트 소나타 중의 1-2초, 그 외에 원본 테잎의 손상이 느껴지는 부분이 서너 군데 있습니다만, 리파티의 선물은 이런 문제들이 소소한 것으로 느껴지거나 혹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될 만큼 위대한 것입니다. 투명하고 밝아 꼭 빛줄기를 연상케 하는 그의 터치는, 살짝 돌아서면 그 투명함으로는 보여주지 못할 것 같은 인생의 그림자를 그려냅니다. 담백하고 맑은 바흐의 파르티타를 지나 모짜르트의 소나타에 다다르면 마치 피레스와 에센바흐의 장점을 끌어모은 듯, 리파티는 곡이 시작하고부터 내내 삶의 영롱한 빛과 담담한 그림자의 양면을 자유로이 오갑니다. 이어지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역시 화려하면서도 서글픈 트릴에 다다라 그 양면을 동시에 뽑아내는 그의 연주에 감탄하게 되지요. 그리고 (드디어) 시작되는 쇼팽의 왈츠는, 비로소 리파티에 다다라 제 모습을 찾은 듯, 인생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곡으로 변모해 있습니다. 리파티 자신만의 독특한 쇼팽 왈츠 연주 순서에 따라 밝은 분위기의 곡과 센티멘털한 분위기의 곡이 새롭게 교차 -상승, 하강, 상승- 하며 서로의 시작과 끝에 섞여들면, 마치 바흐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듯 개개의 곡들의 이미지가 연결되어 인생을 비추는 하나의 흐름, 하나의 출렁이는 커다란 파도를 그려내게 됩니다. 쇼팽 왈츠의 이 놀라운 연주에서 가장 빛나는 점은 바로 멜랑콜리한 구절을 소화하면서도 전체의 흐름에 있어 빛과 희망을 잃지 않는 아폴론적인 긍정성으로 (이것은 디누 리파티의 음색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지요), 이 순수한 긍정의 에너지는 연주가 진행될수록 점점 최고조에 달해갑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상태에서 대신 점점 강력해지는 어떤 초인적인 (이또한 아폴론적인!) 의지로 연주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인 그가 보여주는 손놀림 하나하나가 순수한 의지를,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음악에 대한 대책 없는 사랑을 점점 더 크게 뿜어내고 있습니다. 말기 백혈병조차, 그리고 그 병이 가져온 부어오른 두 팔 조차 막지 못한 리파티의 영혼, 악흥에의 세계로 빠져든 그의 영혼을 우리는 쇼팽 왈츠를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음악이 인간을 한 단계 도약시켜 저 커다란 우주로 날려 보내는 순간을, 우리는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1번 왈츠를 시작하는 강렬한 타건은 멋드러진 피날레의 예고입니다. 진짜 마지막 곡인 왈츠 2번을 결국 연주할 수 없었기에, 리파티는 마지막으로 힘을 폭발시킨 건지도 모르지요. 특히 그의 몸 상태를 감안할 때 놀랍도록 정교한 스타카토가 인상적인 1번 왈츠가 끝나면 이어 박수가 울려 퍼집니다. 사람들은 마지막 곡인 왈츠 2번을 기다렸지만, 갑자기 리파티가 일어선 것입니다. 공연을 끝내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곤 사태를 파악하고 울먹이는 관객들의 박수에 겨우 화답합니다. 표정조차 짓지 못할 정도로 굳은 온 몸. 이제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보여 졌습니다. 박수가 잦아들고 음반 작업을 위한 녹음기도 껐을 무렵, 리파티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앙코르 곡으로 (혹은 왈츠 2번의 대신인지) 평소에 기도 대신 즐겨 연주했다는 바흐의 "예수, 인간의 소망 되시니" 를 연주합니다.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에서의 짧은 기도, 끝간데 없는 질주 끝에 찾아온 안식. 리파티는 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것인지도, 아니면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예감을 확신한 건지도 모르지요. 음반이 끝난 뒤 (이 앙코르는 녹음되지 않았습니다) 듣는 이의 상상 속에서만 연주되는 바흐의 짧은 멜로디. 그는 우주 어디까지 다다랐을까, 신을 보았을까. 음악은 멈추고 리파티는 두 달 뒤 죽었으나, 왠지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가 보여준 것이 희망이어서인지도 모르지요. 혹은 어떤 시작을, 혹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전진을... 저 차가운 깨달음의 한쪽 끝에 굴드의 골드베르크가 있다면, 이 뜨거운 깨달음의 끝에는 리파티의 브장송 실황 녹음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내일의 죠 2 (도전자 허리케인)] 의 마지막 대사처럼 모든 것을 새하얗게 불태워버린 '뜨거운 예술' 의 기억될만한 역사. 이 음반은 연주의 멋드러짐을 떠나 순수한 의미에서의 드라마이며, 인간의 미래와 의지, 가능성에 대한 긍정의 증거입니다. 물론 음악을 음악 그 자체로만 평가할 수도 있겠고, 그걸로도 이 음반은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음악과 예술을 통해 느끼게 되는 혼의 울림을 중요시한다면, 이 브장송 실황 연주가 보여주는 초인적인 열정을 공감함으로서 인간의 위대함 - 그 뜨거움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가슴이 뜨거운 팬들께는 필청을, 그렇지 않은 분들이시라도 리파티의 (특히 모짜르트와 쇼팽의) 날아갈 듯한 연주를 한번 접해 보시기를 강권해 봅니다. 진정, 뜨거운 경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