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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남은 빛의 온도 — 이승원, 『사라져서 아름다운』 소리부터 말해야겠다. 이 책에는 세우(細雨)가 내린다. 가랑비도 보슬비도 이슬비도 아닌, 그 모든 이름 사이의 가장 가느다란 비. 세상을 떠난 시인이 마지막 통화에서 그 비가 온다고, 술 한잔해야지 하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책장을 넘기던 손을 오래 멈추었다. 저자는 '세우'의 시옷과 '술'의 시옷이 부딪는 작은 리듬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쓴다. 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이 얼굴이나 목소리 전체가 아니라 자음 하나의 울림이라는 것. 그 아득하고 정확한 사실 앞에서 애도는 거창한 문장이 아닌, 작고 가느다란 빗소리가 된다. 빛은 이 책의 가장 은밀한 주인공이다. 가로등 불빛 아래 아이들이 있다. 해가 지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은 부모를 기다리는 몇몇만 남아 불빛 아래 서성인다. 그 가운데 한 아이가 유리구슬을 가로등에 비춰 보았을 때 구슬 속에서 은하계가 펼쳐졌다는 장면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오래 쓰다듬어 본 대목이다. 가난한 아이의 손바닥 위에서 우주가 열린다. 언젠가는 나도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언젠가는 포근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아이가 혼자 속삭였을 법한 다짐이 불빛에 실려 온다. 같은 가로등 아래에 딸의 귀가를 기다리는 어머니가 서 있고, 연필에 침을 묻혀 초코파이 상자를 찢어 만든 스케치북에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던 이름 모를 사내가 앉아 있다. 그가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외치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날라 베겼어"가 사실은 '나를 그렸어'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한 사람의 실종이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리고 그 장의 제목이 '나를 잊지 말아요', 물망초의 꽃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독자의 목구멍으로 무언가 뜨겁게 올라온다. 맛도 있다. 이 책은 허기와 온기로 쓰인 책이다. 막냇동생의 손을 잡고 대중목욕탕에서 한 시간을 채우고 돌아온 소년을 기다리던 밥상, 생애 첫 참치김치찌개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저녁은 어떤가. 빈 참치캔 안에 바다가 있었고, 목욕탕의 수증기가 있었고, 엄마의 간난신고가 있었다는 문장은 한 끼의 밥을 한 세대의 역사로 바꾸어 놓는다. 시간강사 첫해 연봉이 칠백만 원이던 사람이 일곱 배쯤 되는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기어코 술값을 내겠다고 우기던 밤, 그 뒤에 식도를 타고 내려가던 위스키의 열기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오래 알지 못했다는 고백은 이 책에서 가장 정직한 맛이다. 달콤함과 쓴맛이 한 모금 안에 섞여 있다. 이승원의 문장은 그렇게 혀끝으로 읽힌다. 그리고 촉감. 이 책의 가장 깊은 곳에는 손이 있다. 이모가 그를 '미싱 타는 삼촌'으로 오인한 채 수도가 얼어붙은 겨울에 그의 겨울옷을 대신 빨아 주던 손. 그는 굳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고, 봄이 오자 작별 인사도 못 한 채 그 동네를 떠났다. 훗날 그는 삶이 지치고 힘들 때면 그때 충전해 둔 환대와 친절의 기억을 곶감 빼 먹듯 꺼내 먹는다고 적는다. 사라진 사람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 정말로 이런 것이다. 엄마와 함께 이불 홑청을 밟아 헹구던 그 서늘한 발바닥의 감각, 우물 옆 홑동백에 거름을 주던 여자의 거친 손등, 한밤중 마당을 가로질러 돌배 두 개를 따서 이불 속으로 숨던 입덧하는 며느리의 떨리는 손. 다음 날 시아버지가 배가 몇 개 없다고 하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들고양이가 먹었나 보다고 대답한다. 한 여자의 평생이 그 열두 글자 안에서 허기와 죄책감과 순발력과 생존으로 압축된다. 훗날 폭설 속에서 눈을 맞는 붉은 동백을 보았을 때, 아들은 그 모든 것이 재가 되어 꽃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것 같다고 느낀다. 붉은 꽃 위의 흰 눈이 재로 읽히는 순간, 사진은 더 이상 사진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 보지 못한 삶의 체온이 된다. 이 책이 서정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히로시마의 위령비 앞에서 저자는 문장에 주어가 없다는 사실에 걸려 오래 멈춰 선다.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 과오의 주어는 누구인가. 그라운드 제로라는 말이 원래 가해의 현장을 가리키던 군사 은어였고, 훗날 가해자의 언어가 피해자의 언어로 둔갑했다는 대목은 이 책의 가장 서늘한 문장이다. 그러나 그 서늘함은 곧 이렇게 이어진다. 폼페이에도, 히로시마에도, 오슈비엥침에도 꽃이 핀다. 비판과 애도가 서로를 지우지 않고 한 문단 안에서 나란히 숨 쉰다. 그리움이 날카로울 수 있다는 것, 날카로운 시선이 그리움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알고 있다. 이 책의 제목, '사라져서 아름다운'. 사라짐이 아름다움의 대가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원인이라는 것. 그래서 이 책에는 서둘러 붙잡으려는 조급함이 없고, 떠나가는 것들의 등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의 느린 호흡만 있다. 사라진다는 사실이 삶을 달콤하게 만들 뿐 아니라, 우리를 배고프게 만든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읽는 내내 나는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다. 덮고 나서 오래도록 손바닥이 따뜻했다. 모래사장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주워 든 사람처럼, 누군가가 오래 쥐고 있던 온기를 건네받은 사람처럼.이 책이 증언하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손끝에 아직 남아 있는 빛의 온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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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가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뙤약볕을 피한 그늘에서 맞는 실바람 같기도 한 것이, 문득 그가 시인이었던가 헤아려본다. 가져보지 못한 것을 상실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희미한 기분을 양껏 누릴 수 있을 테지. 사진과 글 하나하나에 쏟아진 지극한 손길을 함께 맛보았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