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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흔히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보니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담은 우리말은 어떤 것이 좋을까 하는 생각은 별로 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인 듯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패러다임(paradigm)을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식의 체계’ 우리말이 더 좋다면 ‘인식의 틀’ 정도로 옮겨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사적으로 혁명이라 할만한 이론들이 제시되어 자리잡는 과정을 설명하는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우리나라에 번역소개하는 과정에서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패러다임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παράδειγμα(파라데이그마)를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에 앞서 설명한 인식의 틀이라는 의미가 더해진 것은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이 1962년에 발표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적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한 것이 효시로 되어 있습니다. 다음백과에서는 패러다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형식이론과 전통적 실험 및 신뢰받는 방법론으로 이루어진 '패러다임'이 과학 연구와 과학 사조를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이론을 치밀하게 다듬고, 기존의 이론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실험결과들을 설명하고, 표준과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계측하는 척도를 확립하기 위해 패러다임이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그러나 패러다임에 대한 신뢰는 해결할 수 없는 이론적 문제나 실험상의 예외로 말미암아 서서히 무너질 수 있고, 그런 난점이 누적되면 결국 위기가 발생한다. 이 위기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낡은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혁명이 일어나야만 해결할 수 있다.”
처음에는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도입된 개념이 점차 확대되면서 사회과학 등을 비롯하여 과학 이외의 영역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워낙이 유명한 저술이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될 무렵만 해도 인문학 서적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던 탓에 읽지 못하였습니다. 최근 들어서여 인문학과 관련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게 된 것입니다. 마침 집에 있는 판본이 1980년 이화여대의 조형교수가 번역소개했던 판을 1994년에 다시 번역한 고풍이 찬란한 번역본을 읽게 되었습니다.
과학사학을 전공한 쿤은 과학이 발전한 과정을 정리하다보니 새로운 개발된 방법에 따라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들이 확인되면서 추론에 의하여 세워졌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까지 통용되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지금까지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론이 제기되어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앞선 경우를 정상과학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정상과학이란 동일한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과학자들의 과학적 탐구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상과학의 탐구활동은 중요한 사실의 결정, 사실과 이론의 조화, 이론의 명료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실들이 누적되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회현상에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을 과학혁명이라고 규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패러다임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사례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산소가 개입한다는 연소설, 분자설 등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에서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 지구를 태양을 비롯한 행성이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담은 프롤레마이우스의 우주모형이 오랫동안 정설로 받들어왔던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담은 모형을 제시하여 지구 밖을 도는 외행성이 특정기간 동안 공전방향에 역행하는 현상을 깔끔하게 설명함으로써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으니 가히 경천동지할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고를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부를 만도 합니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인식의 틀이 가히 혁명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들이 굳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쿤은 오히려 패러다임의 전환이 칼로 무를 자르듯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승복하지 않는 완고한 생각을 가진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잘 설명되어온 부분이 있기 때문에 두 개의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시기가 존재한다는 점을 미리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은 흔히 과거의 삶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지나간 물이 수차를 다시 돌릴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는 과거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쿤은 연구 활동 자체에 관한 역사적 기록에 근거하여 전혀 새로운 과학의 개념을 찾는데 <과학혁명의 구조>의 목적이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패러다임의 변화와 관련하여 ‘서론; 역사학의 역할’에서 논하고 있는 교과서의 역할에 대한 쿤의 설명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는 점을 적으려 합니다. 년전에 교과서의 역할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인용될 부분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응용사례들은 증거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는 일이 현재 학문연구의 기반이 되는 패러다임을 학습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이다. 만약 응용사례가 증거로 쓰여진다면, 교과서가 다른 해석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패러다임 해답에 실패한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 그 저자들의 극단적인 편견 때문이라고 해석될 것이다.(86쪽)” |
| 여기서 아깝다고 하는 책은 원래 쿤이 저술한 컨텐츠로서의 책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별을 두 개 이상은 도저히 줄 수 없게 했던 것은 번역서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조잡하게 날조된 이 책에 대해서이다. 평소에 번역이 맘에 들지 않는 책이 있으면 영문판(원서)과 한글 번역판을 대조하며 종종 읽곤 하는데, 이 책은 그러기조차 짜증이 날 정도이니 이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이 책은 대학생 정도 되었다면 수업 시간 어디서든 한 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할 정도로 널리 회자되고, 또 그 만큼 지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전 중에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명 작가가 쓴 에세이도 아니고 이런 중요한 책을 이런 급조된 듯한 조악한 번역서를 통해서 읽어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출판계의 현실, 아니 우리 나라 지성계의 실정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한심할 따름이다. 이 책의 원래 내용과 그 의의만으로도 별 다섯 개는 너끈히 받을 만한 것이지만,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이라면 부디 이 책 말고 다른(원서밖에는 없겠지만) 책을 통해 쿤의 메세지를 접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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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나온 책이니깐 벌써 39년이나 지난 책이다. 그럼에도 이작까지 꾸준하게 읽히고 있고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것을 보면..그만큼 유명하고 중요한 책임이 분명하다. 여러 번역판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이 가장 읽기 쉬운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펼쳐놓고 비교해봤는데 사용된 단어나 문핵의 흐름같은것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토마스 새무얼 쿤은 과학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이다. -그 뒤로 요즘은 어디서나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패러다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책을 읽기가 힘들 것이다. 나도 몇 일 전에 다 읽었는데 생각했던것보다 쉬긴했지만 (난 엄청 어려울꺼라 생각했었다^^;;) 막상 읽어보니 그렇게 만만한 책도 아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음........ [인상깊은구절] 과학적 발견에 사실의 새로움과 이론의 새로움이 얼마나 밀접히 상호 관련되어 있는가를 보기 위해 유명한 산소의 발견을 예로 들어보자. 그 발견에 대해서는 적어도 세 사람이 산소의 발견자라고 자칭할 권리가 있다. 1770년대 초기에는 또 다른 몇 사람의 화학자들이 시험관에 산소인듯한 공기를 채운 적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