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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사이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표지에서 화산이 터지고 있다. 검정과 청록 사이로 붉은 용암이 솟구치고, 그 위에 'DIVERGENT BOUNDARY'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이번 호의 주제는 '발산 경계'다. 지질학에서 두 판이 서로 멀어지며 그 틈으로 새 지각이 만들어지는 자리를 이르는 말이다. 표지 작품 <빨강 인내>가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 속 한 문장에서 출발했다는 인터뷰를 읽고 조금 놀랐다. 디지털 마케팅 매거진을 펼쳤는데 시인의 문장부터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번 호가 말하는 '경계'가 기술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디지털 인사이트》는 AX, UI·UX, 마케팅 세 파트로 구성된다. 이번 호를 다 읽고 나니 세 파트가 각자 다른 자리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AX 파트에서는 세일즈포스가 '사스 종말론'에 어떻게 선을 그었는지, AI 에이전트 경쟁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짚는다. 마케팅 파트는 옴니콤과 WPP 같은 글로벌 광고 그룹의 생존 전략을 따라간다. 역할, 인재상, 정산 방식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숫자와 함께 정리했다. UI·UX 파트는 가장 구체적이다. AI 법률 서비스를 만든 디자이너가 어디를 막고 어디를 열었는지 실제 화면으로 보여주고, 음성 인터페이스의 한계도 따로 다룬다. 그 사이에 숨 돌릴 틈처럼 놓인 '케이스 파일' 코너도 좋았다. 햅틱으로 왁뿌를 구현한 앱, 출퇴근길 풍경을 스티커처럼 채집하는 앱,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앱까지. 거창한 기술 담론 옆에서 화면과 현실의 경계를 작고 재치 있게 허무는 서비스들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뉴스를 요약해 나열하는 매거진이 아니었다. 실무자가 직접 쓴 경험담과 업계 흐름 분석이 한 권에 묶여 있어서, 넓게 훑고 싶을 때도 깊이 파고 싶을 때도 쓸모가 있다.
판례 기반 AI 법률 분석 서비스 '로윈'을 만든 디자이너의 글이다. 이번 호에서 가장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이 서비스는 '승소'라는 단어를 금지하지 않는다. 대신 쓰는 방법을 제한한다. "승소 확률 80%"처럼 결과를 약속하는 문장에는 쓰지 않고, '승소 전략 정리표'처럼 사용자가 준비해야 할 것을 가리킬 때만 쓴다. 절박한 사람은 AI의 문장을 분석이 아니라 판결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 대목이 오래 남았다. 같은 단어라도 어떤 자리에 놓이느냐에 따라 정보가 되기도 하고 약속이 된다. 나도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전망을 단정하는 문장을 쓰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선명한 언어로 정리한 글을 만나 좋았다. "신뢰는 AI가 잘하는 것을 보여줄 때보다,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는 것을 보여줄 때 생긴다." AI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사람도 그렇다. 광고대행사 AE 최지은 님의 글은 제목부터 나를 붙잡았다. 「우리는 지금 AI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일을 누군가의 말을 다른 누군가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라고 소개한다. 블로그 이름을 '생각번역소'라고 지은 나로서는 첫 문단부터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AI에게 카피를 맡기자 수십 개의 그럴듯한 문장이 쏟아졌지만, 그중 좋은 한 줄을 골라내는 데는 처음부터 쓰는 것만큼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무엇을 원하는지뿐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까지 언어로 건네야 한다는 것. "잘 좀 써줘"와 "비전공 임원 대상으로, 결론부터, 두 페이지로 써줘"가 전혀 다른 답을 끌어낸다는 예시는 AI를 매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대목이다. 이 글이 좋았던 건 결론이 기술이 아니라 감각에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암묵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지만, 그 감을 내 안에만 두면 AI는 끝내 따라오지 못한다. 감을 언어로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 앞으로 더 귀해질 거라는 그의 말에, 내가 매일 하는 일의 이름을 다시 붙여받은 기분이었다. 그린컴퍼니 오명석 님의 글 「AI 시대에도 여전히 답은 현장에」도 오래 남았다. AI로 보고서와 고객 목록이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시대에 오히려 위험해지는 건, 결과물이 너무 그럴듯해서 그 안의 전제를 의심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라고 한다. "답을 빨리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해서, 그 답을 빨리 믿어야 할 이유까지 생긴 것은 아니다." 책상에서 완벽해 보였던 기획이 현실에서 힘을 잃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사소하다고 넘겼던 불편이 결정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는 현장이 데이터의 반대편이 아니라 숫자에 이유를 붙이는 곳이라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다시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먼저 AI 도구를 매일 쓰면서도 마음 한편이 불안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이 매거진은 AI를 무조건 찬양하지도, 막연히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서 멈출지를 실무자의 언어로 보여준다. 글과 말로 일하는 사람에게도 권한다. 카피라이터, 에디터, 블로거처럼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최지은 님의 글 하나로 AI와 일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1인 창작자나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도 좋다. 글로벌 광고 그룹의 전략이 먼 이야기처럼 보여도 결국 같은 고민이다. 편집장의 글 마지막 문단이 이번 호를 가장 잘 요약한다고 생각한다. 내 일과 남의 일을 나누던 선을, 서로의 경험이 만나는 경계로 바라보면 다음 일을 시작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화산이 터지는 자리에서 새 땅이 생긴다는 표지의 은유가 그제야 제대로 읽혔다. #디지털인사이트 #디지털매거진 #매거진 #AX #UIUX #AI #마케팅 #서평단 #서평 #좋은책추천 #매거진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