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의 입시 비리 문제는 모든 이들을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는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나 역시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지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하나 달성하고 났을 때 나에게 기쁨보다는 허망함의 감정이 앞섰었다. ‘이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루하루가 ‘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그 목표를 상실(?)했으니,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시간들은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어딘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속할 수 있는 어딘가가 나에게 주어진다는 사실만이 작은 위안으로 다가왔던 시간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대학 입학은 나에게 또 하나의 덫이었다. 내가 소속된 공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 이상의 것을 나에게 요구했고, 나 역시 그러한 시선에 길들여졌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이름을 잃고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렸고 적지 않게 상처를 입었다. 유치 찬란한 대학 서열 매기기 논쟁에 화가 울컥 치밀었고, 내가 왜 이 공간을 선택했던가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던 지난 4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광범위한 시각이 필요했었다. 중요했던 것은 내가 특정 공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에선 어떤 공간에 속해 있을지라도 결국 비슷한 결과에 직면한다는 사실이었다. 집단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일,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경험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취업을 함에 있어서 실패하는 요인으로 학벌을 꼽곤 한다. 학벌이 무엇일까? 혹자는 이를 두고 열심히 노력한 자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인센티브라고 말한다. 성적이 좋은 이는 그렇지 못한 이에 비해 더 많이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말 하나로 모든 것은 정당화된다. 하지만 많은 부분, 공부를 잘 하는 것은 경제적인 능력의 뒷받침을 필요로 한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그 순간부터, 물론 ‘사랑’이라고 하는 변수가 전제되긴 하지만, 그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공부를 잘 할 것인가 못할 것인가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과목별 개인 과외를 받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이들 사이에는 처음부터 커다란 갭이 존재한다. 시중에 나와있는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이라는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교육비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조촐한(?) 우리네로서는 아무리 절약에 절약을 거듭해도 절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다. 즉, 교육의 많은 부분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는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입시철이 되면 입시학원에서는 몇 점이면 어느 학교를 갈 수 있느니 하며 배치표 작성에 열을 올리고, 텔레비전에서는 서울대 수석 합격자가 몇 점을 받았느니 등을 보도하는데 열을 올린다. 그리고 각 학교 교문에는 명문대에 몇 명 진학했느니 하는 현수막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레 좋다고 여겨지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달성(?)치 못했을 때는 과감히(!) 재수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도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정신의 황폐화를 경험한다.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점수와 석차로 표현되는 획일적인 숫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강요한다. 보다 깊이 있는 지식의 체득을 위함이 아니라, 단지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스스로를 시험에 단련시키는 것이 지금의 교육이기에 우리 사회에선 창의력을 찾기 힘들다. 이런 체제 속에서 보다 높은 학위를 소유한 이들은 넘쳐날 수 있지만, 학문의 진정한 발전은 있을 수 없다 하겠다. 학벌 문제를 시정하는 것은 너무도 많은 이익 세력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모든 대학을 평준화하려는 시도는, 다분히 미국적인 정서에 익숙한 우리에겐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다. 또한 많은 이들은 경쟁이 없을 시에는 전반적인 학력 저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은 한 개인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전체 사회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초, 중등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자본의 논리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단순히 문제 때려맞추기(-_-)에 입각한 학생 선발 방식 역시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의 교육열이 너무도 뜨거워, 어떻게 교육제도가 바뀔지라도 결국에는 사교육을 통해 그 변화에 적응하려 드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지난 고등학교 3년 동안 나에게 독서는 사치였다. 보다 넓은 세상을 접하고 보다 풍부한 감수성을 키워나갔어야 했던 그 시기를 나는 시험 자체를 위한 암기에 투자해버렸다. 그리고 지금, 나에겐 성공했다는 자부심보다는 막무가내로 살았다는 안타까움만이 가득하다.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어야 했고, 보다 많은 책을 읽었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내 안에 보다 다양한 세상을 구축했어야 했었는데’ 라는 생각들…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나는 대학 생활을 했다는 것에 대한 정의하기 힘든 환상(?) 같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것이 내가 성취한 것이라는 생각 속에는 허리 휘어지게 일했을 나의 부모님에 대한 배려는 저 멀리 사라지고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학벌’ 사회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인 것이다. |
| "학벌은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의 배후에서 한국 사회를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우리 사회를 학벌 사회라고 명명할 때, 사회적 측면은 변형된 신분사회, 정치학적 측면은 붕당적 사회, 경제학적 측면에스는 독과점 사회, 문화적측면에서는 문학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낸느 갈등사회를 의미한다." 김동훈이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에서 학벌 사회를 단언한 표현이다.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 사회를 '신분사회' 말한다면 누가 동의할 것인가? 내가 왜 상놈인가? 나는 종이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김동훈은 서울대, 비서울대, 일류대, 이류대, 삼류대, 전문대, 고졸, 중졸, 국졸, 무졸로 우리를 구분을 넘어 차별화시킨 우리 시대를 변형되 신분 사회라 할 때 우리는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서울대 나오면 모든 것이 보장되는 사회는 분명 잘못된 사회이다. 우리나라 장관급 가운데 거의가 다 서울대 출신이다. 다른 대학과 지방대학 출신이 아니면 인재가 없는가? 인재가 없다고, 거짓말 하지 말라. 찾지 않고 그른 말하면 안됩니다. 김동훈은 학벌 사회를 조장하는 옹호론을 예로 들고 있다. 경쟁동기론, 기회 균등론, 능력지표론. 하지만 이들 모두가 그들의 입장에서 기득권 입장에서 제기된 반론일뿐 진정한 교육 목적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학벌사회의 수혜자, 수능시험날, 서울대 입시요강이 발표되는 날. 그 날은 각 방송사의 첫 꼭지, 둘째 꼭찌, 셋째 꼭찌, 중앙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고, 사회면까지 장식한다. 그럼 지방지는 자기 지방에 있는 대학이 아니라 서울대학, 일류대학 입시요강과 점수에 더 열을 올린다. 언론은 학벌사회의 주범이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 자기가 나온 대학을 소개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학원은 돈장사하기 바쁘다. 명문대는 이미 권문대이다. 서열화, 수능시험, 커트라인 정말 답답할 지경이다. 학생도 인간이다. 누가 부정할까? 그렇지만 학벌사회, 신분사회인 현 한국 사회에서 학생은 공부 기계가 되어야 한다. 서울대, 명문 사립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제서야 '인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서울대를 아예 없애버리자,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를 누가 할까? 없다. 그럼 여기서 포기해야 할까? 그럼 망하는 것이다. 차선은 무엇일까? 장관은 무조건 서울대 출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 서울대를 국가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는 방법, 교수임용을 제한하는 방법, 국립대학통합, 기업체 원서 학력난 없애기,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는 지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김동훈이 2001년 4월15일 내 놓았지만 서울대는 갈수록 그들만의 신분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영원히 서울대만 참 인간이 될 수있다는 망령된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
| 19세가 되어 그간 집안의 경제적 영향력, 또는 힘없고 세상모르는 미성년기의 이러저러한 변수, 그리고 개인의 학습성취도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불러 일으킨 결과에 따라 주민등록증과 함께 받는 수능성적표(현 대한민국 호패-여기보면 지 기준에 따라 맘대로 상대평가해서 급수가 적혀있다. 시험과목엔 내가 잘하는 철학이나 논리학 같은 과목도 없다. 호패에 적힌 숫자에 따라 그에 걸맞는 서열의, 말하자면 사람들이 일컫기를 고귀하거나 천한 대학엘 가고 이 대학졸업장은 무덤 까지 갖고 가는 한 사람의 신분증서가 된다.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의 신분이 있는데 첫째, 돈에 의한 신분, 둘째 이 학벌에 의한 신분이다.). 이것 때문에 그 이후에 성인이 되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실력을 쌓고 노력을 해도 이 신분(멍애, 원죄)에 걸려 전부 인정되지 않고 경쟁다운 경쟁을 할 수도 없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기회의 평등이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신분은 다시 이 체제에서 이득보는 기득권(명문대출신관련자, 사교육귀족, 부유층)에 의해 확대재생산되고 그들이 장악한 교육제도, 언론의 상징조작에 의해 세뇌되고 공고화되어 오늘도 무수한 사람들을 정신병으로 몰아넣고 능력을 사장시켜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고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신분제 학벌과 그 이데올로기는 없어져야 한다. 이 이데올로기 속에서는 상대방의 출신학교만 알아내면 그 이후 사람은 사라져버린다. 서로의 머리에서 학교만 뱅뱅 돌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평등은 고사하고 사람과 사람간의 자연적인 인격적 평등도 기대할 수 없다. 어딜가나 서열이 높은 대학을 나온 사람은 경쟁에서 항상 유리하고 상대적으로 서열이 낮은 대학에 나온 사람은 항상 불리하다. 그뿐인가 입시지옥이 생기고 수능끝나면 비정상적인 암기학습으로 뇌수가 파괴된 승리자들과 시험잘못봐서 인생틀렸다고 자결하는 아이들이 한 트럭 쏳아진다. 또한 이 전쟁에 들어가는 연간 수십조의 사교육비 때문에 죄많은 대한민국 부모들은 허리 한번 마음놓고 펼날이 없다. 우리는 이런 사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안티학벌운동을 전국민적인 차원에서 실천해야하며 그에 앞서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읽을만한 김동훈 교수의 새책이 나왔다. 이 책이야말로 벼랑끝에 있는 봉건신분제를 아예 아래로 밀어 버리고 우리에게 밝은 근대를 열어줄 것이다. "서울대가 없어야 나라가 산다(더북,2002), 가격 9,500원" 이 책 역시 학벌문제에 대한 여러 경제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그리고 참여네티즌, 시민의 의견들이 골고루 반영되고 종합적으로 법학교수 김동훈의 사유와 손을 거처 만들어진 노작으로 말만 들어도 괴로운 학벌주의와 학벌주의의 정점에 위치한 서울대 비판, 안티학벌운동이 나아가야할 방향 등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다음 세가지 중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돈,빽,학벌... 필자는 학벌에 대한 박학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학벌은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어떠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그런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필자는 그 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주장도 매우 논리적이다.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알아가는 데 매우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사희의 부당한 현실을 고쳐가는 것에 우리는 일조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여 좀더 바람직한 한국의 모습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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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책세상문고 우리시대-037]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 김동훈(2017.07.16.) 학벌... 서울대... 지식권력... 우리가 거의 매일 듣는 말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연구를 하거나,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매우 밀접한 개념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의 위력이나 문제점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개념들을 어떻게 분류하고 어떤 관점을 취하는지 각기 다른 해석과 관점들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김동훈 교수는 법학과 교수로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셨다. 책의 내용은 ‘서울대’와 ‘명문대 이야기’이다. 먼저 저자는 서울대와 관련이 있을까 있다. 추측할 수 있다시피 대한민국의 영향력 있는, 또는 제법 성과 있는 교수들의 절대 다수는 서울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김동훈 교수는 경희대를 나와 서울대에서 석사를 하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지난 월요일 서울대학교를 다녀왔다. 그 유명한 정문 사진도 찍고... 꿈에 그리던 규장각연구소도 찍었다. 초청 강연하는 교수도... 자료의 풍부함도.. 거의 지식의 보고이다. 한국에서 서울대는 그런 곳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서울대에 대해 매우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서울대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가 주는 힘과 헤게모니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학벌로 인한 한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매우 합당하고 공감가는 내용들이다. 사회적 비용이나, 기업과 정부기관에서의 영향력까지도.. 그러나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어디까지나 독자의 견해일뿐..이 책의 논리전개 내용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학벌사회의 본질에서 학벌사회를 옹호하는 입장을 비판한다. 이 부분에서 학벌사회를 옹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이 처음 쓰여진 2000년과 지금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쟁동기론이나 능력지표론 같은 학벌사회 옹호론에 대한 비판은 많은 부분 동감하였다. 그리고 학벌사회의 수혜자인 지식층과 상층계층에 대한 부분도 많은 부분 공감이 갔다. 나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우리(교사)들이 가끔 모여 푸념하는 이야기가 있다. “영재나 과학고 교사들과 무엇인가를 경쟁하기는에는 너무 힘들어... 그들은 무엇인가 던져 주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달라들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놀라운 성과들을 보여줘서 교사들에게도 발전이 되는거야. 즉 교학상장(敎學相長)인거지.. 근데 이건 뭐야...하기 싫은 아이 어찌로 잡아놓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그러나 나도 힘빠지고.. 물론 잘되어 보람도 있지만 성과의 측면에서는 힘든 건 사실이야...” 다소 과장되거나 각색되었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어떤 조직이나 계층의 성질은 구성원의 개별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인가 평가를 하고 가질 수 있는 자리가 한정적이라면 결국 능력(학력이든 아니든 어떤 부분에서든 우월한..)에 의한 서열화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고착화 되면 결국 세력이 되고 권력이 되는 학벌사회와 대학서열화인 것이다. 딱 여기까지 동의하였다. 그러나.. 대학서열화 극복을 위한 사립대학을 국립대학과 같이 지원하고 평준화를 유도하자고 한다. 그렇다면 국립대학 교수 채용과 사립대학 교수 채용이 같은 방식으로 할 것인가 일례로 사립고교는 학교 자체로 교사를 채용하지만 학교에 대한 지원은 국공립 만큼은 아니어도 꽤 많은 부분 국가 보조를 받는다. 그렇다고 국공립과 사립의 문제가 해결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또한 서울대를 민영화나 법인화하여 힘을 빼자고 한다. 그렇다고 없어질까 그렇게 긍정적인 미래는 아닌 듯하다. 차라리 포항공대나 카이스트와 같이 한 분야의 특성화가 성공하는 것이 대학 서열화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의 대학이라도 의대는 어디든 명문대접 받는다. 왜? 졸업이후 의사가 주는 장점이나 사회적 대우가 학벌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같은 의사 내에서의 문제는 남겨두겠다. 내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물론 내가 잘못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저자의 민영화나 법인화가 해결책 아닐 가능성은 높다. 비공개로 선발하자, 커트라인을 없애자... 현재 학생종합부로 학생을 선발하니 입시가 공정해졌는가 더욱 금수저 논란을 일으킨다. 부모의 정보나 경제력이 더 많이 작용하게 된다. 과연 해답은 없을까 저자는 대안없는 비판말고 대안을 생각해보자고 한다. 동의한다. 나의 지도교수님, 연구회 교수님, 그외 주변의 많은 교수님들... 다 서울대 출신이시고 존경하고 훌륭한 분들이다. 배움의 깊이나 가르침의 깊이에 늘 감사하다. 나는 이분들이 서울대라서 존경하지 않는다. 학문의 깊이와 인간적 품위에서 존경하는 것이다. 학벌사회에 대한 의식과 무리짓기가 학벌사회를 만든다. 각기 서로 다름에서 자신의 영역에서 우수함을 가진다면 그리고 사회문화적 인식이 바뀐다면 학벌사회는 변할 것이다. 과거 이력서에 본적을 써 출신지로 차별하였다. 지금도 그런 것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많이 약해졌다. 본적을 없애서 그런가 아니다. 그것이 주는 영향력이나 그것이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에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들 학력난을 중요하게 본다. 하지만 학력난이 아닌 개인의 실력이나 능력이 더 중요하게 쓰여진다면 결국 본적란이 없어진 듯 학력란도 없어질 것이다. 억지로 이력서에 학력란을 지워도 학력에 따른 차이가 나버리면 아무 소용없다. 사회가...국가가... 학력과 무관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존경받고 대접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학벌사회가 없어질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이 학력란을 지우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학을 평준화 시키고, 법인화 시키고...통합시키고.. 이런 물리적인 방법은 좋은 해답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뱀의 다리.. 모든 저서에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번처럼 격렬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뒤집어 보기도 한다. 내가 틀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와 저자의 생각의 다른 리뷰도 있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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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민주통합당이 우리사회의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인 교육개혁을 위해 '국공립대 연합체제 개편'을 검토한다는 언론 기사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달 21일 국회에서 ‘대학서열화·학벌 타파를 위한 국립대학 체제 개편 토론회’를 개최해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수렴했다. 국립대학 체제 개편의 요지는 “기존의 서울대, 경북대, 전남대 등 국립대학을 하나의 연합체제로 묶어 강의와 학점, 교수의 교류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졸업장도 공동으로 주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공립대 연합체제가 대학 서열화 완화와 입시 문제 해소, 고교 교육 정상화, 지역균형 발전, 대학경쟁력 강화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 대선주자 가운데 손학규 상임고문이 ‘서울대와 거점 지방국립대의 공동학위제 실시’를, 조경태 의원이 ‘서울대 학부과정 폐지 및 대학원 중심대학화’를 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요며칠 인터넷이나 SNS에는 찬반 양론이 거세다. 대부분 찬반 의견의 경우를 보면 대학서열화나 학벌 타파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근거하여 말하는 듯이 보인다. 또 다른 일부는 정파적인 의견을 보이기도 한다. 서울대 김 모 교수의 경우 국공립대 연합체제(안)은 '좌익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하면서 자신의 더 실현불가능한 대안을 '원칙적'이라는 이유로 제시하기도 한다.
만약 민주당이 자세한 내부 연구와 검토 없이 섣부르게 '국공립대 연합체제 개편' 공약을 추진한다고 해서 이를 폄하하거나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그 공약을 추진하는 취지가 '대학서열화와 학벌의 타파'라면 그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국공립대 연합체제 개편(안)'이 본래 취지에서 부족하거나 위험한 부분이 있으면 광범위한 논의를 통해서 보완하고 더 적절한 방안으로 진화시키면 될 일이다. 강준만 교수가 제안한 '서울대 학부의 단계적 축소'도 검토하고 김경근 교수가 제시한 서울대와 국공립대의 역할별, 기능별 분화도 검토해야 한다.
12월 대선을 맞이하여 아주 오랜 만에 학벌 타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박근혜나 새누리당의 정책이나 공약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들이야 워낙 겉으로는 어떤 사탕발림을 하더라도 결국 기존 불평등과 착취 구조를 강화시키는데 혈안이 된 작자들이라...ㅋ 하지만 민주당이나 소위 '진보진영' 내부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정책대안과 제안들을 전국민적, 전사회적 논의로 확대하고 그 과정에서 학벌주의사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면서 현재 수준에서 서로 가능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낼 생각을 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과 의견을 폄하하고 깔아 뭉개려는 자세나 태도는 다양한 논의를 가로막고 감정적인 논쟁으로 치닫을 우려가 있다.
내 생각에 대학서열화와 학벌 타파는 단순히 '교육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학벌주의사회'는 교육부분 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차별을 일으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서열화와 학벌 타파는 단순히 교육부분과 관련한 정책을 고민해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에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을 통해 인사정책에서 학벌 차별 완화를 추진해야 하고 대기업 등에서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와 비슷한 인사정책을 추진해야 한다.(일본 전경련은 이미 그와 비슷한 정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법부와 입법부도 행정부의 정책 취지에 발맞추어야 하며 언론과 대학 등도 이에 발맞춰야 한다. 대학의 경우에는 모대학 출신의 교수 임용을 의식적으로 줄여야하며 특히 서울대와 국공립대는 제도적으로 이를 추진해야 한다. 교육부분에서도 자체적으로 대학서열화와 학벌 타파를 위해 점수로 서열을 매기는 수능이 아니라 자격고사 같은 대학입시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우수한 성적의 학생'을 선발하여 '우수한 대학(명문대)'이 되려는 쉽고 편안한 길이 아니라 대학 내부의 교수와 연구 경쟁력을 키우고 신입생 선발능력을 제고하여 대학간 선의의 경쟁으로 '명문대'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1999년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를 발간하면서 대학서열화와 학벌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펼친 소수의 지식인 중 한 명이다. 그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지식 권력의 핵심인 대학교수로서, 사회가 제공하는 이익을 묵묵히 향유하며 침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두 발을 담고 있는 교육 현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 학자. 2000년 10월 이 책의 저자 김동훈과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을 발족시키고 인터넷 홈페이지(www.antihakbul.org)를 개설, 학벌사회의 질곡과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생산적인 토론을 진행했다.
저자는 우리의 학벌이 우리 사회의 교육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방위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 사회를 '학벌사회'라고 명명할 때, 그것은 사회학적으로는 변형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임을, 정치학적으로는 사회적 권력의 배분이 학벌이라는 네트워크에 의해 파당적으로 분배되는 붕당적 사회임을, 경제학적으로는 한 사회가 생산해내는 부와 권력을 소수의 학벌집단이 독점으로 차지하는 독과점사회임을, 문화적으로는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개인의 인간관계의 형성, 결혼, 취업, 자긍심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문화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임을 뜻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가장 급박하고 시급한 핵심적 의제가 '학벌'이라고 판단한 저자의 이 책은 학벌체제하에서 자유롭지 못한, 조금씩이라도 그 질곡의 고통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피부에 와닿는 매우 구체적인 현안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우선 학벌사회를 옹호하는 견해들을 크게 경쟁동기론, 기회균등론, 능력지표론 등으로 분류하여 그 주장의 부당함을 논박한다. 흔히 학벌사회 옹호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로 경쟁에 의한 사회 활력, 공개시험을 통해 공정하고도 균일하게 제공되는 기회(예를 들면 현 입시제도), 근대사회에서 학벌은 가장 신뢰할 만한 능력 판단 기준이라는 것 등이 있는데, 저자는 다음과 같은 입장으로 이 세 가지 논리들을 비판한다. 첫째, 경쟁을 유발하는 현행 대학 입시제도는 입시 후의 전 생애에 걸쳐 '출신대학'이라는 종신형 간판에 의해 경쟁의 모티프를 앗아감으로써 우리 사회를 정체시킨다는 것(결국 진정한 경쟁체제가 아니라는 것). 둘째, 사실상 공평한 기회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는 것. 오히려 계층 이동을 고착화시키고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대물림시킴으로써 실제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경우를 협소화시킨다는 것. 셋째, 현행의 입시제도가 개인의 능력 계발이나 판별과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 꼭 수능성적 고득점자가 우수한 인재이거나 창조적 소수자는 아니라는 것. 명문대생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지닌 능력의 우월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 기회의 선점에서 온다는 것. 따라서 입시경쟁과 학벌에 기초한 현재의 학벌독점 현상은 어떠한 자기 정당화 근거도 갖고 있지 않은 기득권 세력의 수탈구조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렇듯 학벌사회 옹호론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하여 학벌사회의 수혜자와 방조자,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 이해갈등 상황에 대한 차분한 분석이 이루어진다. 뒤이어 언론의 행태, 사교육업자의 이권, 명문대생의 탐욕, 중고등학교와 교육 관청의 방조 등도 면밀히 파헤친다.
서울대나 연고대를 졸업하지 않았다고 하여 '학벌주의자'와 '학벌주의 옹호론자'들의 편협하고 악의적인 주장에 주눅늘거나 눈치볼 필요는 없다. 악덕재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꼬우면 너도 돈 벌지 그랬냐?"고 말할 수 없듯이 부당하게 기득권에 편입된 '학벌독점자'들에게 구체적인 근거와 주장을 합리적으로 펼치게 되면 그들이 그렇게 날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방식으로 극소수가 절대 다수를 차별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우리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만 할 '숙제'일 뿐이다.
그렇다면 학벌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현재 한국 사회의 모든 권력의 요직을 서울대학 출신의 '학벌의식에 찌든' 동문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보았을 때, 학벌사회 극복을 위한 가장 이상적 방안으로 서울대 폐교론이 제시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의 실현불가능성을 염두에 둔 저자는 먼저 대학서열을 완화, 철폐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시급한 제도적 과제라고 말한다. 학벌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현재 고착된 대학서열 체제의 몫이 크기 때문이다. 약간 유보적이기는 하지만 대학평준화론, 국립대의 민영화를 통한 사립대와의 차별해소, 인제지역할당제 시행을 통한 비수도권 지역의 대학들에 대한 획기적 배려 등이 그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또한 학벌체제의 하나의 기둥인 대학입시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현재의 전국 단위 국가관리 입시제도를 즉각 철폐할 것, 대학 스스로가 다양하고 총체적인 접근에 의한 교육적 선발을 해나갈 것, 입학절차를 비공개로 하여 대학과 학생 간의 관계를 사적인 계약관계로 머물게 할 것 등이 그 제안들이다. 아울러 대학의 다원화, 개방화를 통해 학벌의식의 심리적 기반이 되는 폐쇄성을 깨뜨릴 것, 대학평가체제를 정착할 것도 덧붙인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개혁과 더불어 학벌차별과 편견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다양한 형태로 구체적인 의식개혁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저자가 검토하고 제시하는 대안은 분명하지 않다. 대학평준화도 개론적 성격이고 국립대 민영화 역시 원론적인 수준이다. 인재지역할당제 정도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저자가 제시하는 '국립대 민영화 또는 독립법인화'는 본말이 전도되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꺼꾸로 풀어가는 모양새 같다. 현재 국립대학이 사립대학보다 국가재정이 많이 투입되는 문제는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하면서 국가재정을 국립대 수준으로 투입해야 하는 방향성을 추구해야 하는 문제이지 꺼꾸로 국립대학을 사립대학 수준으로 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 스스로 책의 앞 부분에서 분석했듯이 서울대는 이미 대학서열체제와 학벌독점의 정점에 군림하기 때문에 민영화나 독립법인화처럼 운영의 주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저자가 헷갈리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정책대안이 '공기업 민영화'처럼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처리해 버리는 꼴이다. 그건 아니다. 다수 피해자들의 한 목소리가 소수 수혜자들로 하여금 각성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말미에 실린 '의식개혁을 위한 일곱 가지 요구사항'은 우리 개개인도 스스로 실천할 만하다.
하나, 학벌을 묻지 않고 밝히지도 않는 관행을 정착시키자.
둘, 학벌 관념을 조장하는 언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해나가자.
셋, 학벌을 차별하는 기업들을 고발하자.
넷, 대학 특히 명문대의 학벌조장 행위를 집중 고발하자.
다섯, 고등학교의 반교육적 입시지도를 지속적으로 고발하자.
여섯, 고등학교 학생들의 목소리를 끌어내자.
일곱, 사교육 시장의 학벌 관념 조장행위에 제동을 걸자.
아무튼 내가 최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분야가 교육부분이었는데 마침 사회적으로 논의가 활성화되어 의미도 있고 반갑기도 하다...^^
[ 2012년 7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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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를 유지, 작동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문화, 경제, 가정, 사회적 가치관...등등의 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는 아마도 학벌로 이루어진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학벌이란 것은 우리사회에서는 특정대학교를 중심으로 뭉치는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다. 선배는 후배를 끌어주고 후배는 선배를 모시는 풍토 자체에는 그리 큰 문제점이 없지만 이것으로 인해서 공적인 관계를 사적인 관계로 전락시키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서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학원, 과외로 내몰리고 있으며 좋은 학벌을 지니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은 취업, 결혼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도대체 학벌이란 것이 무엇이길래?..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학벌의 커다란 벽 앞에서 쓰러지는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학벌 숭배 사상은 단지 근대에 이르러서 생긴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확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제도를 통해서 관리를 선발했는데 과거시험의 통과는 곧 신분상승을 위미하였다. 이것이 근대, 현대로 이어지면서 과거제도는 대입시험으로 변화하였고 명문대의 입학은 곧 사회적 성공이라는 등식의 성립을 믿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는 능력을 우선하는 현대의 추세에 어쩌면 역행하기에 더욱 많은 문제를 유발시티는 것 같다. 학벌이 인생을 좌우할만큼 중요한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인생에서 학벌로 인한 차별보다는 이점을 많이 얻을 수 있기때문에 이런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학벌의 숭상은 고대시대에 널리 행해졌던 왕실내부의 혼인 풍습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벌을 가진 자는 학벌사회를 더욱 굳건히 해서 그들의 권리를 최재한 지키려하고 이를 얻지 못한 자는 인생의 실패자가 되고...아무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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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사회의 본질과 그 문제점....그리고 그 해결책을 통쾌하게 제시한 책입니다....학벌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책 세상 문고의 다른 책들을 읽다가 접하게 되었죠....특히 이런 문제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개인적으로 명확하게 그 근거를 따져 구분 짓고, 이론화시키기가 어려운데...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우리사회의 학벌을 신분, 붕당, 독점, 편견이 고착화된 문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학벌에 대한 옹호론, 반대론을 번갈아 검토하며 그 문제점과 논리의 허점을 공격합니다(특히 이런 부분이 개인적으로 정리하기가 어렵죠...).....그리고 나서는 학벌 고착화에 따른 피해자와 수혜자...그리고 그 문제점을 다루고....그 극복방안을 대학평준화론, 국립대&사립대의 차별해소, 수도권 대와 지방대 차별해소 등을 들어 제시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에는 저자자신의 의견을 정리하여 놓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잘 따라가다 보면....일반인들의 의식변화와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학벌 철폐운동이 그 힘을 더해가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합니다.....학벌사회의 철폐는 우리사회가 좀 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꼭 한번 읽어보길 권합니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급박하고 핵심적인 의제가 '학벌'이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200여 명씩 죽어나가는 죄없는 아이들, 이들과 함께 무한 경쟁의 불구덩이에 같이 뛰어들어야 하는 힘겨운 중년들, 학벌체제하에서 주눅이 들도록 강요받는 비명문대생들, 또 그들과 교감해야 하는 교수와 대학들의 무력감, 각종 편견과 차별에 노출되어 속으로만 한을 새기며 이 공동체를 저주하는 많은 사회인들. 이들의 분노와 좌절과 절망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면서 원동력이다. 우리는 정말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주체적 역량이 부족한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가. 이제는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저항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는가. |
| 이 책은 한마디로 학벌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지탱하고 있는 지식인과 사회 체제에 대한 반론이다. 일단 책의 구성은 아주 좋다. 학벌사회가 무엇인지를 그것의 본질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서술해 놓았으며, 이러한 학벌사회가 옹호되는 이유로 '경쟁동기론', '기회균등론', '능력지표론'을 설명하고 또 이에 대해서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다음으로 학벌사회를 구성해온 수혜자와 피해자, 그리고 주변자를 되짚어 보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매스컴, 기업, 사회, 교육기관, 명문대 동창회, 권력자 등등이 열거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대안이 제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전부터 학벌사회에 대한 비판과 인식은 많았으나, 현실적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입시제도, 대학의 다원화, 개방화, 평가체제의 확립과 같은 제도적 개혁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대학 서열화의 극복 방법으로 대학평준화론, 국립대/사립대 차별 해소, 수도권대/지방대의 차별 해소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대개 다 있어왔던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기득권자들을 넘어서 학벌사회를 폐지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대안은 현실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같이 읽어보고 고민해보셔야 할 것 같다. 언제나 변혁은 관념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어렵게 성취되는 것이었으니까. |
| 어느날 서점에 가서 이 책을 보았다. 물로 책을 사기 위해서 들쳐본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다 학사모와 학사만 양쪽의 견해를 어떻게 펼치는지 알고 싶었다. 김동훈은 여러 가지 의견을 나열하고 조금스럽게 신자유주의적 방법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같다. 아무튼 김동훈 교수가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우리나라의 현행 입시제도를 아이들을 어려움에 봉착하게 하고 가치관을 틀리게 한다. 재수생들이 갖는 사회적 압박감은 둘째라고 하고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때부터 입시는 삶의 목표가 되었다. 무슨일을 하든 어디서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가 결혼명함에 오르게 되었다. 서울대에 대한 독점적 집중현상 그리고 지방에 대한 편협함이 지금의 우리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탈출구는 없을까? 정부에 기대기 전에 먼저 국민들에게 바래야한다. 달라져야 한다고 대학을 나와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아들 우리 아들 하지말고 그들의 삶을 즐기게 해주라고 그렇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