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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머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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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집은 여러 세대에 걸친 삶의 흔적과 기억이 축적된 장소로 등장한다. 그곳에는 한때 집을 채웠던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갈등과 화해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비록 세월이 흐르면서 거주하는 사람과 공간의 모습은 달라질지라도, 그 안에 깃든 정서와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집이란 지나간 삶을 보관하는 장소인 동시에, 그곳을 떠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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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집은 여러 세대에 걸친 삶의 흔적과 기억이 축적된 장소로 등장한다. 그곳에는 한때 집을 채웠던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갈등과 화해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비록 세월이 흐르면서 거주하는 사람과 공간의 모습은 달라질지라도, 그 안에 깃든 정서와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집이란 지나간 삶을 보관하는 장소인 동시에, 그곳을 떠난 이후에도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내면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방에서>는 이처럼 일상의 공간과 사물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지나간 시절과 부재한 존재를 다시 마주하는 책이다.

 <어두운 방에서>는 문학과 시각 예술을 넘나들며 독창적인 비평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이자 자전적 에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청년기에 아버지를 잃은 저자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신에게 남겨진 기억의 흔적을 더듬으며 과거를 복원하려 한다. 책은 집, 사물, 사진, 신체, 장소라는 다섯 가지 소재를 중심으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경험을 되짚으며, 개인적인 상실의 경험을 문학과 철학, 예술에 관한 사유로 확장한다. 특히 저자는 과거를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대신 일상에 남겨진 물질적 흔적들을 매개로 기억의 작동 방식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한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인간이 과거를 기억하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전한다.


P.81 어린 시절의 집은, 이를테면 기억을 만드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집은 한 사람의 유년기를 구성하는 수많은 서사를 지탱하는 뼈대와도 같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구체적인 사건보다 당시의 분위기나 감각이 몽롱하게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희미한 몽상의 형태로 남겨진 기억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의 정서와 감수성을 형성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유년기의 집을 되짚는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 역시 공간이 단순히 기억을 담아 두는 그릇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 내고 한 사람의 내면을 형성하는 적극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집을 떠난다는 것은 익숙한 공간과 물리적으로 결별하는 일일 뿐, 그곳에서 축적된 시간과 감각까지 완전히 떠나보내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머물렀던 집은 비록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을지라도, 그곳을 둘러싸고 있던 고유한 분위기와 정서만큼은 현재의 삶에 스며들어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는다. 결국 유년기의 집은 지나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이루는 일부로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P.122 유리 재떨이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사물들의 우주에서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집과 서재, 잡동사니와 사진 등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공간을 거슬러 자신과 타인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아버지가 사용하던 유리 재떨이에 관한 일화다. 저자에게 재떨이는 단순한 유품이 아니라 아버지가 존재했던 하나의 세계, 나아가 아버지라는 우주 자체를 상징하는 사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재떨이를 새삼 낯설게 바라보는 순간, 저자는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했던 세계를 떠나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음을 실감한다. 

 결국 재떨이는 아버지가 존재하던 과거와 그의 부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 서로 다른 두 세계의 경계에 놓인 사물인 셈이다. 이처럼 사물의 가치는 물질적인 속성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물건일지라도, 그 사물에 얽힌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한 사람의 삶과 존재를 응축한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물은 부재한 존재를 환기하는 기억의 매개체인 동시에, 그가 속했던 세계의 한 단면을 현재에 남겨 두는 역할을 한다.

 한편 사물은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공허함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한다. 예컨대 저자는 부모님의 사진을 바라보다 돌연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사진 속 부모님은 자신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나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고, 그 안에는 자식으로서 결코 다 알지 못할 삶의 일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외할머니 댁을 방문하면 늘 펼쳐 보는 사진첩에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다. 사진 속에 박제된 찰나의 순간들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 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감정과 사연은 물론, 사진 바깥에 존재했던 무수한 시간까지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그들이 살아낸 과거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속해 있다. 그렇기에 사진을 볼 때마다 시간은 헤엄쳐 다가갈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광활한 우주와도 같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한다.


P.233 이런 요소들, 사진 속 인물들이 촉각적으로 경험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요소들이 그 사진과 나 사이의 시대적 거리감을 형성한다.


 해당 도서는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이야기가 아닌, 되찾을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기록이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남겨진 흔적을 통해 지나간 시절과 소통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거를 얼마나 선명하게 보존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억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를 탐구하는 태도일 것이다. 어두운 방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들을 하나씩 더듬어 가는 저자의 여정 역시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을 이해하려는 끈질긴 시도에 가깝다. 이처럼 <어두운 방에서>는 다양한 사물에 깃든 기억을 매개로 부재한 이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침묵 속에서도 기억은 끊임없이 흐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P.467 우리가 줄곧 찾아다녔던 이 소리, 이 노래는 지금껏 누구도 용기를 내지 못해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을 처음으로 전하고 있다. 소중한 무언가가 이제 우리 삶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고. 이제 그건 영원히 없는 거라고.

YES마니아 : 골드 h*********6 2026.10.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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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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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작가는 주관적인 시선으로 시간이 자신에게 남긴 시침질을 낱낱이 뜯어낸다.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자신을 마치 얼기설기 얽어만든 인형이라 생각하고 실밥을 하나하나 뜯어내 그 반지르르하게 닳은 천과, 얼룩이 묻은 실의 가느다락 가닥까지 놓치지 않고 수집한다.그 과정은 매정하거나 차갑지 않다. 작가는 어린 시절 기억을 돌아봄이 힘에 부치는 것 같기는 하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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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작가는 주관적인 시선으로 시간이 자신에게 남긴 시침질을 낱낱이 뜯어낸다.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자신을 마치 얼기설기 얽어만든 인형이라 생각하고 실밥을 하나하나 뜯어내 그 반지르르하게 닳은 천과, 얼룩이 묻은 실의 가느다락 가닥까지 놓치지 않고 수집한다.


그 과정은 매정하거나 차갑지 않다. 작가는 어린 시절 기억을 돌아봄이 힘에 부치는 것 같기는 하나 그것을 들쳐보는 손길이 조심스럽고 다정하다.

우리는 매 페이지마다, 작가의 기억 한 조각마다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자아가 다 성장하지 못했을 때 부모의 죽음이라는 영원한 상실을 경험했고 그 슬픔에 대한 애도를 기억과 묘사를 통해 표현한다.


'집'에서부터 '사물'에 이르기까지, 그는 상실을 느꼈던 물리적 대상을 아주 얇은 '사진(한 장으로도 당시의 상황과 과거, 미래가 우연히 얽힌 것)'까지 점차 좁혀 묘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는 아주 세밀한 문장을 통해 그에게 몰입하게 된다.


이 좁아짐은 '몸' 파트에 이르러 고조화 되는데 슬픔은 두려움으로 극대화되고 작가가 겪었던 신체화 증상을 통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와 함께 작가가 앞서 선택한 '사진'과 물리적 공간들은 무작위로 선택하여 보여준 것이 아니라 이 파트를 위해 설치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런 서술은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구성단계(발단에서 절정으로 치닫는)와 유사해 독자는 작가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독자는 작가의 수집욕에 가까운 묘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밖에 없다.


📖


✏️ 친밀한 광대함

88p_바슐라르는 이렇게 쓴다. “공간은 무수한 폐포 속에 압축된 시간을 담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공간의 본질이다.” 기억은 시간의 얼어붙은 숨결이다. 기억은 빙벽에 갇힌 탐험가의 마지막 숨결처럼 과거의 비밀스러운 공간들 속에 봉인되어 있다. 뒤늦게 도착한 역사라는 구조대가 그 순간을 기록해 보지만, 결국 그것은 전설과 추측 속으로 흩어지고 만다.


✏️ 시간 이전의 시간

258p_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두 순간이 가져다주는 공포는, ‘나’라는 존재가 부재하던 시간이 한때 존재했으며, 또다시 존재하게 되리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 건강염려증

338p_나는 내 삶 위를 침울하게 부유하며 보냈던 그 하루하루와 몇 주의 시간들을 후회한다. 내 삶이 나에게서 충분히 멀리 떠내려가, 결국 지극히 사적이고 거의 신화적이기까지 한 또 다른 세계에 다다르게 될 순간을 바보처럼 기다리던 날들을 후회한다. 그때마다 나는 곧 죽을 거라고 굳게 확신했지만, 사실 그때 내가 중독되어 있었던 건 마음이나 몸의 질병이 깊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부활의 순간이었다.


k*****1 2026.10.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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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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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방송에서 한 배우가 오래된 물건들은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고 실물은 정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참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브라이언딜런 에세이 #어두운방에서 를 읽으며 물성이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담은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아카이빙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물건들과 공기, 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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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방송에서 한 배우가 오래된 물건들은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고 실물은 정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참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브라이언딜런 에세이 #어두운방에서 를 읽으며 물성이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담은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아카이빙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물건들과 공기, 무드는 섬세하게 묘사하는 글 속에서 읽는 이를 빨아들이고 있었는데요. 군더더기 없는 필력에 하나하나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_...이 수첩의 역사가 최소한 192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확실하다고 전해왔다. .... 만질 때의 촉감은 20세기 중반에 주로 사용하던 베이클라이트 소재나, 초창기 레코드판 특유의 느낌을 어렴풋이 안겨 준다. 깨지기 쉽고 묵직한 그 물질들의 질감, 연황색 속지들은 몇 주만 사용해도 테두리의 짙은 파란색이 보기 좋게 바래고, 제본된 등 부분이 금세 갈라지려는 경향은 여전하지만, 40년 전과 다름없이 튼튼한 바느질 제본 덕분에 속지들은 제자리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_p182

 

이런 사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읽다보면 힐링되는 기분이 드는 게 저도 비슷한 류의 인간인가 싶었습니다. 역시나 결이 비슷할 것 같은 ‘사물들’의 저자 조르주 페렉의 글을 인용한 페이지도 반가웠고- 우리는 책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이어서 더 반가웠어요-, 좋아하는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속 문장으로 ‘장소들’ 챕터를 시작한 면에서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사물과 기억, 오감에 대한 사유는 그곳에 함께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로도 이어집니다. 이들의 오래된 사진들로 익숙했던 존재의 낯섦, 그리고 약간의 친숙함을 발견하며 스스로와의 연결점을 찾아가는 지점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어렸을 때 사진들을 보며 느끼는 것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실은 날카로운 비평가로 사는 저자는, 이 책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회고하며, 자기 삶이 예술과 비평에 절박하게 연결돼 있음를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자신의 기반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브라이언 딜런의 사적인 스토리를 만났지만, 누구나 대입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시절에 따라 두고두고 다르게 읽힐 것 같아요.

 

 

_... 사물로서의 책, 책이라는 물성 자체에 주목하게 되자, 비로소 이 책에 깃든 역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이런 생각까지 든다. 어쩌면 어머니가 이 성경책에서 얻은 위로는 사실상 어머니가 필사한 그 구절들이 아니라, 오히려 글을 쓰는 행위 자체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이다._p139

 

_원본 사진에서는 60년 전 카메라를 응시하던,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린 소년의 얼굴이었지만, 복사본에서 본 그 얼굴은 반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반쯤은 자부심에 찬, 내가 익히 아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_p243

 

_어머니에게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었고, 그 안에는 분명 몇 년 안에 이곳을 벗어나리라는 소박한 야심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그 야심이 없었다면 내 존재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_p247

 

_내가 후회하는 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허비해 버린 시간들, 잔뜩 겁에 질린 채,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대충 검사만 해 봐도 금세 사라지고 말 증상들에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보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다. 나는 내 삶 위를 침울하게 부유하며 보냈던 그 하루하루와 몇 주의 시간들을 후회한다._p338

 

y******k 202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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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보관된 어두운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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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방에서/ 브라이언 딜런기억이 보관된 어두운 방『어두운 방에서』라는 제목이 불러내는 정서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느껴보고 싶어, 나도 어두운 방에 독서등 하나만 켜 둔 채 책을 읽었다. 환한 낮에 읽을 때와는 정서적 몰입의 결이 달랐다. 제목 속 어두운 방은 실제의 방이라기보다 기억이 쌓이고 보관되는 마음속 장소를 뜻할 테지만, 빛을 좁혀 책에만 시선을 두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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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방에서/ 브라이언 딜런


기억이 보관된 어두운 방

『어두운 방에서』라는 제목이 불러내는 정서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느껴보고 싶어, 나도 어두운 방에 독서등 하나만 켜 둔 채 책을 읽었다. 환한 낮에 읽을 때와는 정서적 몰입의 결이 달랐다. 제목 속 어두운 방은 실제의 방이라기보다 기억이 쌓이고 보관되는 마음속 장소를 뜻할 테지만, 빛을 좁혀 책에만 시선을 두자 작가가 들여다보는 기억의 방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듯했다.


책은 ‘집’, ‘사물들’, ‘사진’, ‘몸들’, ‘장소들’, 그리고 음악에서 곡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코다’로 구성되어 있다. 딜런은 각 주제 아래 짧은 장면과 생각의 조각들을 놓아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불러낸다. 그러나 기억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펼쳐지지 않는다. 시간의 축은 이리저리 오가고, 사물 하나가 오래전의 한순간을 불러내면 그 기억은 다시 다른 생각과 이미지로 이어진다. 그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삶이 하나의 단단한 이야기로 정리되기보다, 겹겹이 포개진 기억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집을 떠나려 한다. 그 집에는 부모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방과 사물은 이미 떠난 사람들을 거듭 불러내고, 기억은 그리운 만큼 고통스럽다. 그는 과거의 흔적을 정리하고 없애는 데 마음을 쏟는다. 그러나 그 말에서조차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느껴져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그 마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았던 공간에 남은 흔적은 단순한 물건이나 풍경이 아니다. 그곳에 들어서면 잊고 지냈던 기억이 불쑥 되살아나고, 지금의 나는 그 기억 앞에서 다시 그때의 감정을 겪는다. 떠나고 싶으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마음, 기억을 지우려 하면서도 끝내 거기에 붙들리는 마음이 딜런의 글을 따라오며 오래 남았다.


작가는 바느질 상자처럼 일상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사물에도 오래 머문다. 사물을 보는 찰나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감각을 놓치지 않고 붙잡는다.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처럼 작고 미세한 심상을 언어로 드러내는 솜씨가 놀랍다. 생각하는 일과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인데, 작가는 그 미세한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빚어내는 데 탁월한 작가다.


그는 슬픔을 곧장 토로하기보다 집과 사물, 사진을 바라보고 그 기억을 문학과 예술의 이야기 곁에 놓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자신의 삶과 경험을 다시 들여다본다. 독자는 그의 마음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걸음 물러나 그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감정 위에 기름종이를 한 겹 덧대고, 그 너머로 글씨를 읽는 듯한 글쓰기다. 그 거리는 감정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까워 아픈 마음을 관찰하고 기록하기 위해 마련한 거리처럼 느껴진다.


흩어져 있던 기억과 감정은 책을 따라 읽을수록 조금씩 선명해진다. 부모의 부재에서 비롯된 고통과 슬픔, 상실감과 그리움이 연필로 그린 밑그림에서 시작해 마침내 색을 입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마지막 장에 ‘코다’라는 이름을 붙인 점도 인상적이었다. 음악에서 곡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이 말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긴 회고를 맺는 표지가 된다. 짧디 짧은 그 장에 이르러 그는 부모의 부재를 마침내 인정한다. 그것은 슬픔이 사라졌다는 뜻이라기보다, 상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신기한 것은 내가 작가의 삶을 알지 못하고, 그가 겪은 일을 직접 경험한 적도 없는데 그의 기억이 낯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내 마음속 비슷한 장소에서 함께 꺼내지는 듯했다. 그가 인용한 브레이너드의 편지처럼 ‘이 글이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에 관한 것’이 되고, ‘내가 모든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기억이 타인의 기억을 불러내는 순간, 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오랜만에 에세이다운 에세이를 읽은 만족감도 컸다.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와는 결이 다르지만, 사유와 경험이 문장 안에서 단단하게 맞물리는 글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되살아났다. 폭넓고 다층적인 감정의 결을 이토록 정제된 언어로 빚어내는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책을 덮은 뒤에도 어두운 방과 그 안에 남겨진 기억은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 출판사 #을유문화사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도서협찬


#어두운방에서 #브라이언딜런 #을유문화사_서평단 #서평 #독서기록

YES마니아 : 로얄 j*******d 202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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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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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에세이스트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 『어두운 방에서』문학과 예술을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기억을 떠올린다. 지나간 기억들과 겪은 상처들을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집을 통해 떠올리는 기억들이 인상적이었다. 현관문부터 소품들까지. 그에 담긴 추억, 기억, 상처는.. 대부분 간직하고 부모님의 죽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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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에세이스트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 『어두운 방에서』



문학과 예술을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기억을 떠올린다. 지나간 기억들과 겪은 상처들을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집을 통해 떠올리는 기억들이 인상적이었다. 현관문부터 소품들까지. 그에 담긴 추억, 기억, 상처는.. 대부분 간직하고 부모님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이 집이 지긋지긋해졌다. 나는 집안 구석구석 처박혀 있거나 온 바닥 위를 정처 없이 떠도는 기억들에 진절머리가 나서, 이 집이 썩어 문드러지도록 기꺼이 내버려 두고 떠나려 한다. (p.80)


가끔 나도 문득 불쑥 그런 생각을 하곤하는데.. 이 집이 지긋지긋할 거까진 아닌 것 같지만.. 언젠가 마주할 이별에 나는 이 집에서의 기억과 추억에 지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미련도 많을거고 이 집에서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가지고 싶어서 놓고 어디로 가지 못하지 싶다. 사진처럼 장면 장면으로 떠오를 듯. 무엇을 보아도. 함께 있던 모든 것들의 지난 날이 떠오를 듯하다.. 


재떨이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네가 기억한다고 믿는 그 세계는 보이는 것과 다른 모습이라고. 기억의 앞면은, 유리 재떨이 자체가 그러하듯, 무한히 더 복잡한 뒷면이 만들어 낸 그림자에 잠겨있다고. 그것의 한쪽 면은 매끄럽게 사물을 반사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거친 촉감이 느껴진다. 이 두 면이 합해지면서 무한히 세밀한 무늬들이 직조되고, 거기서 사물에 대한 기억 속 이미지들의 연결망이 형성된다. 평범한 기억들로 압축된 표면 아래에, 여전히 날카롭고 선명한 물리적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p.124~125)


아버지의 재떨이, 어머니의 기도서, 어머니의 파란색 펜.. 온통 슬픔이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읽는 시점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읽히려나..)



저자가 십 대 중반일 때 돌아가신 어머니와 대학 입학 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쓸쓸하다. 부모님이 사용하시던 물건..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서 떠오른 부모님의 모습들.. 기억들을 모아모아 추억하게 되는 시선들에 어울리는 격한 공감이었던 이 문장. 


나는 미래의 내가 떠올리게 될 장면에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p.295) 


어쩜 내 마음이 여기있지... 




나는 이 책이 왜이렇게 슬펐을까.... 따라가게 되는 문장 끝에 머무는 시선.. 전환되는 시선들이 생각에 잠기게 했다.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예술과 비평이 담긴 특별한 에세이가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어두운 방에서』 .. 좋습니다!  :) 


처음 알게된 작가의 데뷔작 『어두운 방에서』를 읽어보았는데.. 기대이상으로 좋았고 다른 작품도 찾아보아야겠다.  :D 






#어두운방에서 #브라이언딜런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YES마니아 : 로얄 t*****j 202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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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연히 태어나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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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애의 개인을 꼿꼿한 시선으로 가감 없이 회고한다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당장 짧디짧은 내 인생에 대한 복기부터도 엄두가 나지 않는데,브라이언 딜런은 여섯 챕터를 통해 정교하고도 세밀한 레이어로 직조된 자신의 삶으로 독자를 초대한다.‘집’을 시작으로 작가를 둘러싼 공간과 사물들, 사진, 육신을 거쳐 사후 추모까지.가족을 중심으로 그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를 나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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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애의 개인을 꼿꼿한 시선으로 가감 없이 회고한다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당장 짧디짧은 내 인생에 대한 복기부터도 엄두가 나지 않는데,브라이언 딜런은 여섯 챕터를 통해 정교하고도 세밀한 레이어로 직조된 자신의 삶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집’을 시작으로 작가를 둘러싼 공간과 사물들, 사진, 육신을 거쳐 사후 추모까지.
가족을 중심으로 그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를 나열하여 거대한 인생사를 이토록 지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써 내릴 수 있는 개인이 몇 명이나 될까? 라는 경탄에 가까운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챕터인 ‘집’이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다(그 점이 이 책이 좋은 이유 중 하나이지만!).
공간에 대한 구상과 시각적인 여러 면을 계속해서 머리속으로 그리며 따라가야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챕터를 읽는 내내 ‘이방인’의 뫼르소가 감옥에서 자신의 방을 계속해서 온 신경을 집중해 감각해보려던 대목이 생각났었다.

추후 챕터들을 통해 풀어내는 요소들도 어쩌면 집 안,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밖에서 전개되는 것들이니.
개념을 잡기 어려웠던 ‘집‘이 첫 챕터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책을 핀지 얼마 안 되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연히 태어나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본 도서에 함유된 모든 작가의 이야기는 챕터 주제에 따라 유한한 삶과 죽음 또는 망각을 끝없이 복기하고 사유한다.

소중히 여겼던 소장품의 가치의 퇴색, 조실부모 후 남은 자들의 애도와 비통, 상실의 유예.
단순한 회복과 추모를 논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감각하고 현실을 정립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담담히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아일랜드 작가 글이 어려웠던 적이 많아 책을 펴기가 주저되었는데, 본 도서를 읽고 많은 부분에서 해갈이 되었다.
덕분에 도서를 고르는 저변이 넓어지는 소중한 경험이 되어 #을유문화사 에 감사를 표한다.
#을유문화사_서평단 #어두운방에서

YES마니아 : 로얄 g*******9 202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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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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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딜런의 《어두운 방에서》는 문학과 예술 비평을 자신의 삶과 엮어낸 에세이자 회고록이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읽은 책과 접한 예술을 통해 그 기억들을 풀어낸다.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집과 기억에 대한 고백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집이 저주받았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저주가 사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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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딜런의 《어두운 방에서》는 문학과 예술 비평을 자신의 삶과 엮어낸 에세이자 회고록이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읽은 책과 접한 예술을 통해 그 기억들을 풀어낸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집과 기억에 대한 고백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집이 저주받았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저주가 사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집을 떠나던 날 아침에야 자신이 그 집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알았다는 고백은, 우리가 자신의 마음과 지나간 시간을 얼마나 잘 알지 못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과거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수집해 의미 있는 기억으로 깔끔하게 포장하려는 시도가 허황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남아있는 물건들의 진정한 가치는 과거에 대해 거창한 설명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연히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복잡하고 무질서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담담한 시선을 보여준다.


《어두운 방에서》는 마음속 어두운 구석을 무작정 덮어두기보다 가만히 바라보게 돕는다. 감상에만 젖지 않고 예리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며, 지나간 기억과 상처를 새로운 눈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 밑줄


P. 50 집은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을 익숙한 자세 속으로 얼어 붙게 만드는 습성이 있는 듯하다. 마치 지루하게 이어지는 가족사진 촬영을 위해 억지로 의자에 붙들려 앉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몸은 그 자세에 저항하지만, 그 자세를 오래 유지할수록 앉아 있는 이들은 그 자세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힘을 점점 잃어 간다.


P. 80 어머니는 늘 이 집이 저주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그 저주를 품고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저주는 내가 과거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나는 내가 이 집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집을 버리고 떠나던 그날 아침까지는.


P. 99 부모의 죽음이라는 이중의 장벽은 철저히 밀봉된 방을 만들어냈다. 저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을, 애도라는 두터운 관문 너머로 언뜻 비칠 뿐이기에 더욱 매혹적이어 보이는 그 모든 것을 꿈꾸도록 만드는 밀실. 그곳이 내 기억의 저장소다. 


P. 151 그 어떤 목록도, 아무리 철저한 것일지라도, 결국 훨씬 무질서하고 광범위한 현실 가운데 일부의 기록일 뿐이다. 나 자신의 과거를 의미 있는 물건들로 이루어진 포괄적인 아카이브 안에 몰아넣을 수 있으리라는 상상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앞에 놓인 이 몇 안 되는 연약한 물건들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들이 과거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느냐가 아니라, 그것들이 단순히 그리고 대체로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P. 329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시간의 흐름 안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언제나 내 과거가 하나의 행동으로 결실을 맺으며 완결되는 바로 그 지점에 위치 한다.


P. 45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그러나 침묵이 요구하 는 것은 내가 계속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 존 케이지, 《침묵》


YES마니아 : 플래티넘 c*******3 2026.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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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딜런의 아름다운 데뷔작이자 내밀한 가정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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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을 정교하게 회상하여 하나의 긴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들을 늘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이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과거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  『어두운 방에서』을 읽으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작가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몇 개 안되는 희미하고 파편적인 기억조차도 제대로 해석하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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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을 정교하게 회상하여 하나의 긴 이야기로 엮어내는 작가들을 늘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이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과거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  『어두운 방에서』을 읽으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작가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몇 개 안되는 희미하고 파편적인 기억조차도 제대로 해석하려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신경과학이나 정신분석에 대한 책도 여럿 접했고, 믿을만한 지은이들은 기억이란 불완전하고 정확하지 않으며, 그 기억을 호출할 때마다 달라진다고 알려주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의 감정조차 기억에 영향을 주고 기억은 또 뒤틀린다. 이런 것을 알고 나니 더더욱 나는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거나 추억하거나 회상하지 않는다. 브라이언 딜런도 본인의 기억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동물적인 나와 다르게 지성적인 존재로 자기의 기억에 거듭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집, 집에 있던 사물들, 집에서 함께 거주하던 몸들, 집에서 함께 살았던 존재들의 사진, 이 모든 것들이 얽힌 장소라는 공간을 탐구하며 독특한 회고록을 써 내려간다.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문학 미술 비평가인 브라이언 딜런은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한 책 『에세이즘』의 저자이다. 나 역시 이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에세이라는 글쓰기 형식과 사유의 방식을 탐구한 이 책은 문학을 삶과 연결시킨다. 책 내용을 따지지 않고 이름만 확인하고 구입하는 작가들 목록에 브라이언 딜런도 추가되었다.  올해 5월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가 출간되었을 때 환호하며 그의 책을 구입한 독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작가로서 펴낸 그의 첫 번째 책이자 자전적인 요소가 가장 강하다는 책  『어두운 방에서』를 읽게 되었다.



브라이언 딜런은  『에세이즘』에서 자살 충동을 동반했던 그의 심각한 우울증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회고록 『어두운 방에서』를 읽으니 좋아하는 작가인 그에게 조금은 더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문장 몇 백 개로 인간 브라이언 딜런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독자이자 팬으로서 그가 문학을 읽어 내려가는 방식, 그가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해 나름의 어설픈 추리를 시도한다.


『어두운 방에서』는 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1993년 가을 그는 가구가 텅 비어버린 그의 집 거실에 서 있다. 열여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바로 5년 뒤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지 2년 뒤 그는 집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한때는 가족의 보금자리였으나 이제는 그가 잃어버린 것들을 끈질기게 상기시키는 그 집에서 살아햐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그 집은 세 형제들 간의 언어폭력과 때로는 신체 폭력이 가득한 곳이 되었다. 그 지긋지긋한 일상을 정리하기 위해 그는 집을 팔아버린다. 나는 그가 가족을 언급한 문장 중에 마치 내가 썼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그는 세 형제 중 맏이였고 그는 집을 팔아 돈을 챙기는 탐욕스러운 형의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상실이 가득한 집을 떠나면서 '일종의 가정 고고학'을 탐구해 나간다. 그의 가정 고고학 탐구 대상은 기억의 저장소인 집, 그 집 속에 있는 사물들, 가족사진들, 피부 경화증이라는 절망적인 병에 걸려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져가던 어머니의 몸, 대학교 첫 시험 기간 중 둔중한 통증이 엄습했던 본인의 몸, 타고난 우아함을 가졌지만 공공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아버지의 몸 등이다. 그의 문장을 홀린 듯이 읽어나가며, 나는 나의 몇 안 되는 기억들을 꺼낸 뒤 그의 기억과 엮었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나는 나의 기억을 탐구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나는 브라이언 딜런과 같은 지성도 감수성도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진과 사물과 장소에 남은 불완전한 흔적을 더듬으며 인간동물의 불완전한 기억과 우리 삶을 가득 채우는 상실의 의미를 묻는다. 나르시시즘적이고 자기 연민 가득한 상실을 다룬 책들을 읽을 때 나는 이제 튕겨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 책은 갑자기 어느 대목에서 눈물이 차오르게 만든다. 



누구의 슬픔은 다른 이의 슬픔보다 더 크다. 누구의 상실은 다른 이의 상실보다 훨씬 잔혹하다. 너의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는 감정 자본주의는 나르시시즘적인 인간동물들이 가득하게 만들었지만, 어떤 이의 슬픔과 상실은 분명히 더 기억할만하다. 나는 어중간한 슬픔과 상실을 가졌지만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삶이라는 불가해한 것을 문학적으로 소화하기보다는 과학의 언어로 해석하는 방법부터 택했다. 그런 읽기를 해오다가 최근 들어 나는 그 어중간한 슬픔과 상실 덕분에 문학이라는 세상에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 세상의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갔더니 의외로 나를 너무 반겨주었다. 브라이언 딜런과 같은 작가들은 내가 바로 그 어중간한 슬픔들과 상실을 가지고 있기에 내가 글을 읽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어두운방에서 #브라이언딜런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리뷰 총점 종이책
《어두운 방에서》 삶과 비평이 하나로 교차되는 아름다운 작품!
"《어두운 방에서》 삶과 비평이 하나로 교차되는 아름다운 작품!"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어린 시절의 사물들과 이후 그것들이 불러 낸 분신들 사이의 은밀한 친연성을 알아차리기 위해, 우리 삶이 그런 멜로드라마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삶은 사물들 사이의 숨겨진 상응 관계, 또한 어느 시기와 다른 시기 사이의 은밀한 공모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런 연결들은 오직 우리가 하나의 대상에 집중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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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의 사물들과 이후 그것들이 불러 낸 분신들 사이의 은밀한 친연성을 알아차리기 위해, 우리 삶이 그런 멜로드라마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다. 모든 삶은 사물들 사이의 숨겨진 상응 관계, 또한 어느 시기와 다른 시기 사이의 은밀한 공모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런 연결들은 오직 우리가 하나의 대상에 집중했을 때에만, 즉 그것을 '이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상상 속에서 떠올려 볼 수 있는 다른 대상과 견주어 보는 순간'에만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p.108~109


하나의 문장이 감정 그 자체가 될 수 있을까. 문장은 단어들을 배열해 내용을 서술하는 것인데, 감정 그 자체가 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브라이언 딜런의 글을 읽다 보면 종종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을 읽다 종종 멈추곤 한다. 단순한 문장조차 수차례 다시 보게 만들고, 마구 펼쳐지는 생각의 향연을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에세이즘>, <한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를 통해서 만났던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이 암실문고로 나왔다. 전통적인 비평과 자전적 글쓰기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글쓰기를 선보여왔던 그의 전작들을 인상깊게 읽어왔기에, 그의 데뷔작인 이번 작품도 매우 기대하며 읽어 보았다. 


이 책은 브라이언 딜런이 처음으로 쓴 것으로 부모의 죽음을 계기로 기억과 상실에 대해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억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루는 인문학처럼 읽힌다. '애도라는 두터운 관문 너머에 숨겨져 있는 밀실이 그의 기억 저장소이다. 그는 부모의 죽음이라는 이중의 장벽이 철저히 밀봉된 방을 만들어 냈다고, 고 썼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집을 떠올리고, 그 속에 있던 사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탐구한다. 집이란 우리가 매일 같이 만들어 내고 다시 만들어 가는 무엇이다. 집에 산다는 것은 어떤 장소를 부단히 개조하고 재구성하고 잊었다가는, 다시 떠올리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주는 것이다. 집을 기억의 저장소로 여기는 관념은 오래된 것인 만큼 익숙하면서도, 일종의 가정 고고학으로서 풀어 나가는 브라이언 딜런의 문장들은 그것을 낯설고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가 고집스레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증거일 뿐이다. 그 움직임이 남긴 흔적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새겨져, 우리에게 유익하게 쓰이거나 강렬한 깨달음을 준다. 시곗바늘의 움직임, 계절들이 내보이는 생동감이나 나른함, 얼굴이나 몸에 나타나는(아주 점진적일 수도, 반대로 아주 빠를 수도 있는) 노화의 흔적 같은 것들.                 p.375


이 책은 브라이언 딜런이 십 대 중반일 때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대학 입학 직후에 갑작스러운 심장 문제로 작고한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서재와 거실 한구석에 있는 키 큰 장식장, 유품상자와 사진 더미들, 어머니의 성경책과 그 속에 끼워둔 내용물들...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물려받은 물건들은 과거로 이어지는 끊기지 않는 통로가 되어 준다. 공간이나 사물이 매개체가 되어 과거의 마음들을 불러내고, 이해와 수수께끼 사이를 오가며 지적인 사유가 펼쳐진다. 사진에 관련된 사유들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그는 우연히 사들인 관광지 사진첩 속에 있는 한 여성의 뒷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마치 어머니가 그곳에 마치 기적처럼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부모님의 사진들 중 대부분은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뒤에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대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존재하게 된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에 대한 에피소드도 매우 흥미로웠다. 아버지가 소장했던 대략 천 권 가량의 장서들은 어린 시절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지녔던 대상이었다. 그 서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모종의 형태를 부여하려 애써 온 방식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동시에, 그것을 견고하게 구현한 장소'이기도 했다. 백 권도 넘는 책을 손에 닿는 곳에 위태롭게 쌓아 두려는 아버지의 행동은 어머니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충동이었지만, 그에게는 끊이지 않는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원천이었다. 서재의 책과 오래된 기록 뭉치들이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관한 아카이브가 되어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자신의 책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아버지의 책을 보면서, 자신이 뒤늦게 아버지의 정리 원칙을 물려받았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무질서한 서재를 자신이 정확히 똑같이 재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그 동안 읽어왔던 '회고록'과는 차원이 다르다. 매 페이지마다 밑줄 긋고, 여러 번 읽어 곱씹어 보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했다. 자, 폄하되거나 오독되어 왔던 에세이라는 장르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브라이언 딜런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놓치지 말자!


r*******n 2026.10.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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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의 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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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떠나온 집의 방 하나를 떠올려 보라. 기억은 언제나 불완전한 형태로 살아남는다. 오래된 집의 벽지와 가구의 마모된 표면, 빛이 바랜 사진과 서랍 깊숙이 방치된 물건들은 지나간 시간의 일부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사소한 흔적들이 증언하는 과거는 온전한 생애의 극히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어떤 것은 소중해서 보관되었고, 어떤 것은 버릴 기회를 놓쳤으며, 또 어떤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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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떠나온 집의 방 하나를 떠올려 보라. 기억은 언제나 불완전한 형태로 살아남는다. 오래된 집의 벽지와 가구의 마모된 표면, 빛이 바랜 사진과 서랍 깊숙이 방치된 물건들은 지나간 시간의 일부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사소한 흔적들이 증언하는 과거는 온전한 생애의 극히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어떤 것은 소중해서 보관되었고, 어떤 것은 버릴 기회를 놓쳤으며, 또 어떤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살아남았다.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것에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 현재의 의식이 선택한 장면들이 뒤얽혀 있다.


브라이언 딜런의 『어두운 방에서』는 부모의 죽음 이후 남겨진 세계를 탐색하는 기록이다. 열여섯 살에 어머니를, 성인이 된 무렵 아버지를 잃은 그는 가족이 살았던 집과 유품, 사진을 통해 유년기의 시간을 다시 더듬는다. 그러나 이 책은 상실의 경위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회고록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집, 사물들, 사진, 몸들, 장소들이라는 다섯 가지 매개를 따라 흩어진 기억을 배열하고, 그 사이에 문학과 철학, 시각예술에 관한 비평을 교차시킨다. 이러한 구성은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인간의 기억은 시간의 순서를 건너뛰며 예기치 않은 순간과 감각을 따라 움직인다. 오래전에 맡았던 냄새 하나가 잊었던 계절을 불러내고, 낯익은 물건의 질감이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감정을 되살린다. 기억은 현재의 감각을 통과하면서 과거의 서로 다른 시간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시간과 의식의 문제를 탐구한 앙리 베르그손에게 과거는 완전히 소멸한 시간이 아니다. 지나간 경험은 현재의 지각과 행위 속에서 선택적으로 현실화되며, 기억은 그때마다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의 겨울은 지금도 공기의 온도와 냄새로 되살아난다. 유난히 추운 지역이었지만, 방 안을 후끈하게 데워 놓고 창문을 손가락 세 개가 들어갈 만큼 열어 두곤 했다. 틈으로 흘러든 겨울 공기를 마시며 잠들기 위해. 밤새 냉기의 향을 맡기 위해. 창문으로 들어오는 겨울 공기는 따뜻한 방 안에서도 특유의 냄새와 차가움을 잃지 않는다. 아침이면 창문을 활짝 열어 밤사이 쌓인 눈을 바라보고, 찬 공기가 방 안을 채우는 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 시절의 겨울은 달력 속에서 오래전에 지나갔지만, 몸은 아직 그 공기의 온도를 알고 있다.


딜런이 어린 시절의 집을 떠올리는 방식에서도 이러한 시간의 중첩이 드러난다. 가족이 함께 살았던 집은 어머니의 질병과 죽음, 아버지의 부재, 남겨진 형제들이 유품과 재산의 처분을 두고 겪었던 갈등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그에게 집은 한때의 안식처이면서 고통의 지속을 목격한 장소였다. 집을 버리고 떠나던 아침에야 자신이 그곳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깨달았다는 고백(80쪽)은 공간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복잡한 시간의 층위로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 어떤 장소를 떠난 뒤에야 그곳에서 자신이 견뎌 온 시간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을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이 응축되는 친밀한 공간으로 사유했다. 그러나 딜런의 집에는 친밀함과 적의가 함께 축적되어 있다. 유년기의 공간을 그리움으로만 회상하는 관습은 이곳에서 충분한 설명력을 갖지 못한다. 가족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행복한 기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며, 오래 거주했다는 이유로 한 장소를 무조건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집의 벽과 방들은 말해지지 못한 감정들을 오랫동안 수용한다. 과거의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일에는 그곳에서 경험한 애정만큼이나 그 안에서 겪었던 고통과 불화를 인정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딜런이 집을 떠나는 행위는 물리적인 이주인 동시에, 오랫동안 자신을 규정해 온 가족의 역사와 거리를 확보하는 사건으로 읽힌다.


집에 남겨진 사물들 역시 복잡한 문제를 품고 있다. 딜런은 과거를 의미 있는 물건들의 아카이브 안에 온전히 수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경계한다. 남겨진 물건들의 의미는 그것들이 과거에 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지보다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아버지의 책과 어머니의 기도서, 오래된 사진은 부모가 실재했다는 물질적 증거이지만 그들의 생애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독서인이라면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에서 구입 당시의 장소와 날씨, 그날의 감정까지 떠올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책에는 구매한 날짜나 당시의 기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도, 그 책을 발견했던 서점의 풍경과 책을 고르던 순간의 감각이 뒤따라오곤 한다. 사물이 간직한 시간의 상당 부분은 사물의 표면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몇 점의 유품으로 한 사람의 생애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에는 그 물건이 전하지 못하는 시간을 상상으로 메워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사진은 사물과 다른 방식으로 과거를 증언한다. 사진은 특정한 순간에 한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증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감정으로 그 시간을 통과했는지까지 증명하지는 못한다. 딜런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는 이러한 간극이 응축되어 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아직 누군가의 부모로만 규정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아들이 알지 못하는 과거가 있었고, 아들의 기억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관계와 욕망이 존재했다. 가족사진은 친밀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그 친밀함이 얼마나 제한된 이해 위에 성립하는지를 드러낸다. 가까운 사람을 오래 바라보았다는 사실과 그 사람의 삶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확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사진과 죽음의 관계를 탐구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에서 사진이 증명하는 과거의 실재성과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사유했다. 딜런의 『어두운 방에서』는 이러한 사진의 시간성을 가족의 역사 안으로 끌어들인다. 사진 속 부모의 모습이 아무리 또렷하게 보존되어 있더라도 그들이 살아낸 시간의 깊이까지 헤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머니의 질병으로 변형된 몸에 관한 기억은 이 문제를 더욱 첨예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고통의 흔적과 그 고통을 실제로 살아낸 사람의 경험 사이에는 타인이 쉽게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일에는 그 사람을 자신의 기억으로만 이해하려는 욕망을 경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딜런에게 어머니는 병을 앓던 사람이자 자신을 돌보았던 사람이고,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뒤 세 아들과 살아가야 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들이 알지 못하는 고통과 욕망, 부모라는 역할로 설명되지 않는 독립적인 생애가 있었다. 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관계의 역사와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낸 삶 사이의 거리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거리를 성급하게 해소하려는 순간 타인의 삶은 기억하는 사람의 서사 속으로 흡수되기 쉽다. 딜런이 훗날 자신의 책을 돌아보며 부모가 실제로 무엇을 겪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을 것이라고 회고한 사실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깊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실의 의미도 변화한다. 어린 시절의 상실을 성인이 된 후 다시 바라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슬픔으로 가득했던 기억 속에 부모의 고통을 위한 자리가 생겨날 수도 있다. 애도는 한 번의 이해로 완결되는 경험이 아니다. 떠난 사람에 대한 해석은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간과 함께 변화하며, 그 변화는 때로 자신이 간직해 온 기억을 의심하도록 만든다.


딜런의 글쓰기가 특별한 이유는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문학과 예술에 관한 비평으로 확장하는 방식에 있다. 그는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의 매끄러운 가족사로 정리하는 대신, 다른 작가와 예술가들이 시간과 상실을 다루어 온 방식을 자신의 경험과 교차시킨다. 비평은 개인적인 고통을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그 고통을 이해할 새로운 언어를 마련한다.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행위는 이미 지나간 사건에 구조를 부여하고, 서로 무관해 보였던 경험들 사이에 관계를 형성한다. 리쾨르가 말한 서사적 정체성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이야기로 구성하면서 스스로를 이해한다. 딜런에게 글쓰기는 사라진 가족의 역사를 탐색하는 작업이자 그 역사 속에서 형성된 자신의 존재를 다시 읽는 과정이 된다.


암실에서는 빛에 노출된 흔적이 현상 과정을 거쳐 하나의 이미지로 모습을 드러낸다. 기억의 암실에서도 과거의 장면들은 현재의 시선과 만나 새로운 형태를 만든다. 『어두운 방에서』의 글쓰기는 지나간 삶의 흔적들을 현상하는 작업과 닮아 있다. 사물은 우연히 살아남고, 사진은 한순간의 존재를 보존하며, 장소는 그곳을 떠난 사람의 감각 속에서 다시 구성된다. 잃어버린 사람과 시간은 남겨진 흔적을 통해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되며, 기억하는 사람의 삶 속에서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어두운 방은 그렇게 사라진 것들의 흔적과 아직 해석되지 않은 자신의 역사가 함께 현상되는 장소가 된다.


✏️도서출판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26.10.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