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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센티멘탈 밸류>에서 집은 여러 세대에 걸친 삶의 흔적과 기억이 축적된 장소로 등장한다. 그곳에는 한때 집을 채웠던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갈등과 화해의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비록 세월이 흐르면서 거주하는 사람과 공간의 모습은 달라질지라도, 그 안에 깃든 정서와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집이란 지나간 삶을 보관하는 장소인 동시에, 그곳을 떠난 이후에도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내면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방에서>는 이처럼 일상의 공간과 사물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지나간 시절과 부재한 존재를 다시 마주하는 책이다. <어두운 방에서>는 문학과 시각 예술을 넘나들며 독창적인 비평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이자 자전적 에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청년기에 아버지를 잃은 저자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신에게 남겨진 기억의 흔적을 더듬으며 과거를 복원하려 한다. 책은 집, 사물, 사진, 신체, 장소라는 다섯 가지 소재를 중심으로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경험을 되짚으며, 개인적인 상실의 경험을 문학과 철학, 예술에 관한 사유로 확장한다. 특히 저자는 과거를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대신 일상에 남겨진 물질적 흔적들을 매개로 기억의 작동 방식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한 개인의 회고록을 넘어 인간이 과거를 기억하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전한다. P.81 어린 시절의 집은, 이를테면 기억을 만드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집은 한 사람의 유년기를 구성하는 수많은 서사를 지탱하는 뼈대와도 같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구체적인 사건보다 당시의 분위기나 감각이 몽롱하게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희미한 몽상의 형태로 남겨진 기억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의 정서와 감수성을 형성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유년기의 집을 되짚는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 역시 공간이 단순히 기억을 담아 두는 그릇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 내고 한 사람의 내면을 형성하는 적극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집을 떠난다는 것은 익숙한 공간과 물리적으로 결별하는 일일 뿐, 그곳에서 축적된 시간과 감각까지 완전히 떠나보내는 일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머물렀던 집은 비록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장소가 되었을지라도, 그곳을 둘러싸고 있던 고유한 분위기와 정서만큼은 현재의 삶에 스며들어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는다. 결국 유년기의 집은 지나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이루는 일부로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P.122 유리 재떨이는 아버지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사물들의 우주에서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집과 서재, 잡동사니와 사진 등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공간을 거슬러 자신과 타인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아버지가 사용하던 유리 재떨이에 관한 일화다. 저자에게 재떨이는 단순한 유품이 아니라 아버지가 존재했던 하나의 세계, 나아가 아버지라는 우주 자체를 상징하는 사물이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재떨이를 새삼 낯설게 바라보는 순간, 저자는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했던 세계를 떠나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음을 실감한다. 결국 재떨이는 아버지가 존재하던 과거와 그의 부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 서로 다른 두 세계의 경계에 놓인 사물인 셈이다. 이처럼 사물의 가치는 물질적인 속성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물건일지라도, 그 사물에 얽힌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에게는 한 사람의 삶과 존재를 응축한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물은 부재한 존재를 환기하는 기억의 매개체인 동시에, 그가 속했던 세계의 한 단면을 현재에 남겨 두는 역할을 한다. 한편 사물은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공유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공허함을 동시에 안겨주기도 한다. 예컨대 저자는 부모님의 사진을 바라보다 돌연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사진 속 부모님은 자신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나이의 모습으로 남아 있고, 그 안에는 자식으로서 결코 다 알지 못할 삶의 일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외할머니 댁을 방문하면 늘 펼쳐 보는 사진첩에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다. 사진 속에 박제된 찰나의 순간들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 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감정과 사연은 물론, 사진 바깥에 존재했던 무수한 시간까지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그들이 살아낸 과거는 내가 아무리 애써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에 속해 있다. 그렇기에 사진을 볼 때마다 시간은 헤엄쳐 다가갈수록 오히려 멀어지는 광활한 우주와도 같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한다. P.233 이런 요소들, 사진 속 인물들이 촉각적으로 경험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요소들이 그 사진과 나 사이의 시대적 거리감을 형성한다. 해당 도서는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이야기가 아닌, 되찾을 수 없는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기록이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남겨진 흔적을 통해 지나간 시절과 소통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거를 얼마나 선명하게 보존하느냐가 아니라, 그 기억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를 탐구하는 태도일 것이다. 어두운 방에 남겨진 희미한 흔적들을 하나씩 더듬어 가는 저자의 여정 역시 상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을 이해하려는 끈질긴 시도에 가깝다. 이처럼 <어두운 방에서>는 다양한 사물에 깃든 기억을 매개로 부재한 이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침묵 속에서도 기억은 끊임없이 흐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P.467 우리가 줄곧 찾아다녔던 이 소리, 이 노래는 지금껏 누구도 용기를 내지 못해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을 처음으로 전하고 있다. 소중한 무언가가 이제 우리 삶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고. 이제 그건 영원히 없는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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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에서 @eulyoo
브라이언 딜런의 『어두운 방에서』는 어린 시절 살았던 아일랜드의 집과 그곳에 놓여 있던 물건들, 어머니의 병과 죽음, 아버지와 나눈 대화와 함께 들었던 음악 등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가는 책이다. 하나의 기억은 다른 기억으로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 철학자나 작가들의 문장이 놓인다. 어머니가 필사한 성경 구절과 아버지가 쓰던 크리스털 재떨이처럼 사소한 사물들 사이에서 한때의 삶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하던 아버지와의 대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날 자신이 했던 행동,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아야 했던 일. 집을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남은 물건을 확인하려는 듯 홀로 빈집 곳곳을 둘러보았던 순간까지. 기억은 그렇게 구체적인 장면과 사물들을 거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가 무리를 해서라도 루르드에 가려 했던 이유가 병자들에게 기적을 안겨준다는 루르드의 성모님께 기도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헤아려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기억은 그 자체로 일종의 공간이다. 그 안에는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뿐 아니라 차라리 잊고 싶은 기억까지, 꼭 필요하기도 쓸모없기도 한 온갖 사무들이 무더기로 쌓이거나 감추어져 있다.23쪽 자신의 이야기를 곧장 꺼내기보다 다른 이들의 문장을 빌려 돌아가기도 하고, 기억의 한 귀퉁이를 더듬다가 문득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옮겨 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뿐 아니라, 무엇을 미처 알지 못했는지, 지금에 와서야 무엇을 이해하게 되었는지가 드러난다. 기억을 다루는 글의 형식이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더욱 깊게 만든다. ▌마침내 이 성경책은 나에게 익숙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떠오릴게 해 준다. 저녁에 차분히 앉아, 전보다 느린 속도로, 자신의 구원이 되었을지 모를 구절들을 옮겨 적던 모습을.139쪽
사라져버린 기억들, 그것은 결국 장소와 사물을 너머 ‘사람’,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서도 그 시절을 뒤늦은 후회로만 채우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는 사람의 시선과 그 기억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지나간 시간은 쉽게 하나의 의미로 정리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필사한 성경 구절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자연스럽게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전에 묵상했던 말씀들이 생각났고, 어쩌면 자신의 고통에서 비롯되었을 나의 어머니의 성경 필사도 함께 떠올랐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성경 구절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견디기 위한 간절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같은 말씀을 읽더라도 그것을 적어 내려간 사람의 시간과 마음까지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아직 건강하게 곁에 있는데도 본가에 갈 때마다 한 권 한 권 가져왔던 엄마의 성경필사 노트, 다이어리를 꺼내보았다. 엄마는 내가 가져가려 할 때마다 여러가지 감정을 보이곤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보다 이렇게 펼쳐 볼 수 있는 물성을 가졌다는 것에 안도했다. ▌우리가 고집스레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증거일 뿐이다.375쪽 읽는 동안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조용히 일었다. 오래전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기보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기억의 먼지가 빛 속에서 잠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것들을 붙잡으려 몇 번이고 손을 뻗게 되지만, 막상 손안에 남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기억 속에 남은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서,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뒤늦게나마 머물러 보고 싶어서. #어두운방에서 #브라이언딜런 #기억 #서민아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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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간 자리를 기억한다. 수거한다. 『어두운 방에서』는 더블린 출생의 아일랜드 작가이자 비평가, 에세이스트인 브라이언 딜런 Brian Dillon의 첫 책이다. 『어두운 방에서』는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꺼내는가❜가 흥미로운 책이다. 처음 책을 소개받았을 때 특이했던 것은, ‘집, 사물, 사진, 몸, 장소’라는 다섯 개의 구성. 나는 이것을 처음에는 작가의 기억을 정리해 둔 다섯 개의 폴더처럼 예상했는데, 이 책의 구성은 기억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가 과거를 이런 파편들을 통해서밖에는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을 책의 구조 자체로 보여준다. 그래서 첫 장이 ‘집’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는 ❝기억은 그 자체로 일종의 공간이다.(23쪽)❞ 라고 쓴다. 기억을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공간으로 바라보는 순간, 이 책을 읽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런데 그 공간이 돌연 가득 차 버린다. 수많은 몸과 사물로 득시글거리고, 온갖 물건과 몸짓과 얼굴로 뒤덮이며, 수년간 쌓인 세월로 혼란스러워져,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다.(28쪽)❞ 집의 면적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차지하던 목소리와 움직임이 사라지자 같은 방이 너무 넓어지는 것. 슬픔을 설명하는 대신, 비워진 집이 오히려 사람, 사물, 몸짓, 얼굴과 세월로 가득 차는 역설. ‘사물’로 넘어가면 부모는 사라졌는데 성경책이나 재떨이 같은 물건들은 남아 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물이 정작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아 과거로 가는 길을 열어 준다는 사실이 묘하게 잔인하다. 기억은 잘 정리된 아카이브가 아니라, 우연히 살아남은 몇 개의 물건을 붙들고 다시 조립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어 ‘사진’ 챕터도 좋았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 부모의 사진을 작가는 집요하게 뜯어본다. ❝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이 담긴 이 사진들이야 말로 내게 가장 많은 것을 말해 주는 기억들을 담고 있는 듯 보였다(200쪽)❞ ❝이처럼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찍힌 사진들을, 내가 아는 세계를 찍은 사진처럼 집요하게 뜯어 보려 했다.(216쪽)❞ 사진은 과거를 정확히 보존하는 증거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시간이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물건이기도 하다. 더 선명한 원본보다 어둡게 훼손된 복사본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아버지를 발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기억은 정확하고 선명해야 진짜에 가까운 것이 아니다. 이런 구조의 에세이를 읽은 경험은 내게 거의 처음이라 읽는 동안 정말 ‘깽~’ 하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집에서 미술로, 사물에서 문학과 철학으로, 사진에서 죽음과 시간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부모의 아주 사적인 기억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렇게 멀리 기억의 행로를 돌아갈수록 오히려 부재한 가족이 더 가까워진다. 결국 『어두운 방에서』를 덮고 나면 내 기억은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머릿속뿐 아니라 한때 살았던 방에, 오래된 물건에, 사진 속 표정에, 어느새 누군가를 닮아 가는 몸에까지. 기억을 ‘지난 일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흩어진 흔적과 사물과 공간 속에서 낯설게 낯설게 나의 시간을 다시 발견하는 일로 바라보게 해 준 책이다. 👻 책 속에서 ❝나에게는 이 집이 너무도 급작스러운 내 탈출극에 반발하는 듯 느껴질 것이다. 집은 최근 며칠 사이에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맞서 이미 은밀한 복수를 시작했다. 텅 비어 버린 자신의 내부에 유령 같은 기억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던 것이다.❞ -- 13쪽 ❝기억의 집에서, 우리는 늘 그곳에 존재해 우리 자신의 몸만큼이나 익숙한 물리적 실체를 더듬으며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 집이 비어 버린 모습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그 안을 배회하게 될 때는 실체를 갖지 못한 이미지, 곧 우리 자신의 유령을 목격하게 된다.❞ -- 26쪽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그 저주를 품고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저주는 내가 과거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나는 내가 이 집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집을 버리고 떠나던 그날 아침까지는.❞ -- 80쪽 ❝사진은, 그리고 임박한 죽음은, 누군가의 얼굴을 그 본래의 안식처와 기억으로부터 뗴어 내 시간 속으로 표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얼굴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 228쪽 ❝우리가 고집스레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의 증거일 뿐이다.❞ -- 37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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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다 내가고 텅 빈 공간을 돌아보면 전해오는 선득함. 공간의 무표정, 그 무심함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마치 그 집에서 일어났던 모든 한심한 일을 알고 있다는 듯 공간이 보내는 조소어린 침묵, 홀로 남겨진 이의 냉소어린 시선. 이 장소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었다는 돌연한 깨달음. 이 책은 얼마간 그 선득함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장소와 사물을 관觀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사물이 우리를 관하고 있다는 낯선 사실을 일깨우는 이야기. 다섯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조금은 진저리치며 이 책에 빠져들 것을 알았다. 집. 사라지지 않을 집과 방들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느 방에 들어서면, 나 또한 나만이 기억하는 방문을 열거라는 예감. 어떤 문장 위에 눈이 멈추면, 딸깍하고 어떤 방의 자물쇠가 열린다. 놀랍도록 그대로인 방의 조도와 공기의 수런거림. 작가가 자세히 묘사한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집House>이 장소가 품고 있는 기억을 물질로 조형했다면 작가는 기억의 장소성을 언어라는 도구로 정교하게 조형해낸다. 기하학적 구조물이 되어버린 기억. 언어의 건축가인 작가는 견고하면서도 부서지기 쉬운 기억들이 상호 투과되는 모순적인 장소를 구현한다. 작가가 구축한 기억의 조형물 안에서 독자는 배회하며 기억의 구조와 질감을 더듬는다. 현실과 환영, 실재와 부재, 집착과 회피, 억압과 강박. 그 경계의 넘나듦을 체험한다. 작가가 방문하는 장소 중 하나는 몸이다. 이른 나이에 질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자신도 진단이 어려운 이상 증상으로 고통 받았던 작가는 일찍부터 질병과 고통의 장소로서 몸을 감각한다. 몸은 자극을 수용하고 저장하는 동시에, 타자의 고통이 반영되는 장소(“나는 갈라지고 벗겨진 내 두피 위에 새겨진, 어머니의 고통이라는 유물을 간직하고 있었다.”)이자 나를 조형하는 장소(“피부가 나를 만들었지, 그 반대가 아니다.”)이다. 작가는 몸을 둘러싼 감각과 정동의 미세한 스펙트럼을 극세밀화로 기록한다. 고통 받는 몸처럼 낯선 장소가 있을까. 그러니 어두운 방은 해독 불가한 몸의 낯섦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이 책은 사랑하는 이의 상실이 어떻게 장소의 상실로 이어지는지, 어떻게 삶이라는 장소의 가장 먼 가장자리까지 남겨진 이를 데려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시간이 흐른 후 남겨진 이는 그 가장자리에서 되돌아서서 자신을 이룬 감각의 연원을 찾아 잠가 뒀던 어두운 방들을 순례한다. 작가와 동행한 독자는 그 순례길에서 어느 방 앞에서는 망설이고, 어떤 방 안에서는 오래도록 머물고, 어느 방 초입에서는 책을 잠시 덮어야만 했다. 작가는 이 순례길에서 W.G. 제발트와 버지니아 울프, E.M. 시오랑과 리베카 솔닛 등 수많은 작가들과 동행한다. 문지기처럼 방을 지키는 작가들은 물리적 장소가 어떻게 마음의 장소로 이어지는지 너무도 잘 이해했던 이들이다. 작가가 이 동행인들과 나누는 대화는 자주 독자를 멈춰 세운다. 이를테면 토마스 드퀸시의 이런 말, “인간의 정신에서 망각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참이라면 재앙인가, 축복인가. 그리고 돈 밴 블리트의 이런 말, “내가 세상과의 접촉을 유지하는 방식은 아주아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세상이 날 너무 거칠게 건드리거든.” 무슨 말을 보태겠는가. 순례의 종착지에서 작가는 듣는다. 집의 노래를 듣는다.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리워해서 누군가를 애달프게 기다려온 집. 그 집이 온 몸을 진동하며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기억으로 짓눌린 집이 탈출을 감행하며 울부짖는다. “소중한 무언가가 이제 우리 삶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고. 이제 그건 영원히 없는 거라고.” 이 책은 거대한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집을 버리고 떠났던 작가는 집이 되어 울고 있다. 한 순간도 작가를 떠난 적 없던 집은 어린 소년이 되어 울고 있다. 울음이 어두운 방을 가득 채운다. PS 책의 만듦새가 아름답다.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을 품어왔던 집이 기억하는 몸짓, 목소리, 표정, 소음, 냄새, 그리고 이야기들. 기억의 입자들이 명멸하며 흐릿하게 반짝이는 장소. 고요한 소란이 책 표지에 가득하다. 활자마저 기억의 파편처럼 보이게 하는 디자인. 작가가 방문하는 수많은 장소들을 품는, 깊은 방이 되어버린 책. 방의 숨결을 구현한 책의 물성이 책의 이야기와 환하게 공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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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작가는 주관적인 시선으로 시간이 자신에게 남긴 시침질을 낱낱이 뜯어낸다. 어린 시절로부터 비롯된 현재의 자신을 마치 얼기설기 얽어만든 인형이라 생각하고 실밥을 하나하나 뜯어내 그 반지르르하게 닳은 천과, 얼룩이 묻은 실의 가느다락 가닥까지 놓치지 않고 수집한다. 그 과정은 매정하거나 차갑지 않다. 작가는 어린 시절 기억을 돌아봄이 힘에 부치는 것 같기는 하나 그것을 들쳐보는 손길이 조심스럽고 다정하다. 우리는 매 페이지마다, 작가의 기억 한 조각마다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자아가 다 성장하지 못했을 때 부모의 죽음이라는 영원한 상실을 경험했고 그 슬픔에 대한 애도를 기억과 묘사를 통해 표현한다. '집'에서부터 '사물'에 이르기까지, 그는 상실을 느꼈던 물리적 대상을 아주 얇은 '사진(한 장으로도 당시의 상황과 과거, 미래가 우연히 얽힌 것)'까지 점차 좁혀 묘사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는 아주 세밀한 문장을 통해 그에게 몰입하게 된다. 이 좁아짐은 '몸' 파트에 이르러 고조화 되는데 슬픔은 두려움으로 극대화되고 작가가 겪었던 신체화 증상을 통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와 함께 작가가 앞서 선택한 '사진'과 물리적 공간들은 무작위로 선택하여 보여준 것이 아니라 이 파트를 위해 설치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런 서술은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구성단계(발단에서 절정으로 치닫는)와 유사해 독자는 작가에게 완전히 동화되어 독자는 작가의 수집욕에 가까운 묘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밖에 없다. 📖 ✏️ 친밀한 광대함 88p_바슐라르는 이렇게 쓴다. “공간은 무수한 폐포 속에 압축된 시간을 담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공간의 본질이다.” 기억은 시간의 얼어붙은 숨결이다. 기억은 빙벽에 갇힌 탐험가의 마지막 숨결처럼 과거의 비밀스러운 공간들 속에 봉인되어 있다. 뒤늦게 도착한 역사라는 구조대가 그 순간을 기록해 보지만, 결국 그것은 전설과 추측 속으로 흩어지고 만다. ✏️ 시간 이전의 시간 258p_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두 순간이 가져다주는 공포는, ‘나’라는 존재가 부재하던 시간이 한때 존재했으며, 또다시 존재하게 되리라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 건강염려증 338p_나는 내 삶 위를 침울하게 부유하며 보냈던 그 하루하루와 몇 주의 시간들을 후회한다. 내 삶이 나에게서 충분히 멀리 떠내려가, 결국 지극히 사적이고 거의 신화적이기까지 한 또 다른 세계에 다다르게 될 순간을 바보처럼 기다리던 날들을 후회한다. 그때마다 나는 곧 죽을 거라고 굳게 확신했지만, 사실 그때 내가 중독되어 있었던 건 마음이나 몸의 질병이 깊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부활의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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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방송에서 한 배우가 오래된 물건들은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고 실물은 정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참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브라이언딜런 에세이 #어두운방에서 를 읽으며 물성이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담은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하나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아카이빙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물건들과 공기, 무드는 섬세하게 묘사하는 글 속에서 읽는 이를 빨아들이고 있었는데요. 군더더기 없는 필력에 하나하나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_...이 수첩의 역사가 최소한 192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확실하다고 전해왔다. .... 만질 때의 촉감은 20세기 중반에 주로 사용하던 베이클라이트 소재나, 초창기 레코드판 특유의 느낌을 어렴풋이 안겨 준다. 깨지기 쉽고 묵직한 그 물질들의 질감, 연황색 속지들은 몇 주만 사용해도 테두리의 짙은 파란색이 보기 좋게 바래고, 제본된 등 부분이 금세 갈라지려는 경향은 여전하지만, 40년 전과 다름없이 튼튼한 바느질 제본 덕분에 속지들은 제자리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_p182
이런 사물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읽다보면 힐링되는 기분이 드는 게 저도 비슷한 류의 인간인가 싶었습니다. 역시나 결이 비슷할 것 같은 ‘사물들’의 저자 조르주 페렉의 글을 인용한 페이지도 반가웠고- 우리는 책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이어서 더 반가웠어요-, 좋아하는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속 문장으로 ‘장소들’ 챕터를 시작한 면에서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사물과 기억, 오감에 대한 사유는 그곳에 함께 있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로도 이어집니다. 이들의 오래된 사진들로 익숙했던 존재의 낯섦, 그리고 약간의 친숙함을 발견하며 스스로와의 연결점을 찾아가는 지점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어렸을 때 사진들을 보며 느끼는 것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실은 날카로운 비평가로 사는 저자는, 이 책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회고하며, 자기 삶이 예술과 비평에 절박하게 연결돼 있음를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자신의 기반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브라이언 딜런의 사적인 스토리를 만났지만, 누구나 대입될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시절에 따라 두고두고 다르게 읽힐 것 같아요.
_... 사물로서의 책, 책이라는 물성 자체에 주목하게 되자, 비로소 이 책에 깃든 역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이런 생각까지 든다. 어쩌면 어머니가 이 성경책에서 얻은 위로는 사실상 어머니가 필사한 그 구절들이 아니라, 오히려 글을 쓰는 행위 자체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이다._p139
_원본 사진에서는 60년 전 카메라를 응시하던,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린 소년의 얼굴이었지만, 복사본에서 본 그 얼굴은 반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반쯤은 자부심에 찬, 내가 익히 아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_p243
_어머니에게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었고, 그 안에는 분명 몇 년 안에 이곳을 벗어나리라는 소박한 야심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그 야심이 없었다면 내 존재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_p247
_내가 후회하는 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허비해 버린 시간들, 잔뜩 겁에 질린 채, 반쯤 정신을 놓은 채, 대충 검사만 해 봐도 금세 사라지고 말 증상들에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보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이다. 나는 내 삶 위를 침울하게 부유하며 보냈던 그 하루하루와 몇 주의 시간들을 후회한다._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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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방에서/ 브라이언 딜런 기억이 보관된 어두운 방『어두운 방에서』라는 제목이 불러내는 정서를 조금이라도 가까이 느껴보고 싶어, 나도 어두운 방에 독서등 하나만 켜 둔 채 책을 읽었다. 환한 낮에 읽을 때와는 정서적 몰입의 결이 달랐다. 제목 속 어두운 방은 실제의 방이라기보다 기억이 쌓이고 보관되는 마음속 장소를 뜻할 테지만, 빛을 좁혀 책에만 시선을 두자 작가가 들여다보는 기억의 방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듯했다. 책은 ‘집’, ‘사물들’, ‘사진’, ‘몸들’, ‘장소들’, 그리고 음악에서 곡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코다’로 구성되어 있다. 딜런은 각 주제 아래 짧은 장면과 생각의 조각들을 놓아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불러낸다. 그러나 기억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펼쳐지지 않는다. 시간의 축은 이리저리 오가고, 사물 하나가 오래전의 한순간을 불러내면 그 기억은 다시 다른 생각과 이미지로 이어진다. 그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의 삶이 하나의 단단한 이야기로 정리되기보다, 겹겹이 포개진 기억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집을 떠나려 한다. 그 집에는 부모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방과 사물은 이미 떠난 사람들을 거듭 불러내고, 기억은 그리운 만큼 고통스럽다. 그는 과거의 흔적을 정리하고 없애는 데 마음을 쏟는다. 그러나 그 말에서조차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느껴져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그 마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았던 공간에 남은 흔적은 단순한 물건이나 풍경이 아니다. 그곳에 들어서면 잊고 지냈던 기억이 불쑥 되살아나고, 지금의 나는 그 기억 앞에서 다시 그때의 감정을 겪는다. 떠나고 싶으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마음, 기억을 지우려 하면서도 끝내 거기에 붙들리는 마음이 딜런의 글을 따라오며 오래 남았다. 작가는 바느질 상자처럼 일상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기 쉬운 사물에도 오래 머문다. 사물을 보는 찰나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감각을 놓치지 않고 붙잡는다.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처럼 작고 미세한 심상을 언어로 드러내는 솜씨가 놀랍다. 생각하는 일과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인데, 작가는 그 미세한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빚어내는 데 탁월한 작가다. 그는 슬픔을 곧장 토로하기보다 집과 사물, 사진을 바라보고 그 기억을 문학과 예술의 이야기 곁에 놓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자신의 삶과 경험을 다시 들여다본다. 독자는 그의 마음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걸음 물러나 그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감정 위에 기름종이를 한 겹 덧대고, 그 너머로 글씨를 읽는 듯한 글쓰기다. 그 거리는 감정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너무 가까워 아픈 마음을 관찰하고 기록하기 위해 마련한 거리처럼 느껴진다. 흩어져 있던 기억과 감정은 책을 따라 읽을수록 조금씩 선명해진다. 부모의 부재에서 비롯된 고통과 슬픔, 상실감과 그리움이 연필로 그린 밑그림에서 시작해 마침내 색을 입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듯하다. 마지막 장에 ‘코다’라는 이름을 붙인 점도 인상적이었다. 음악에서 곡의 끝부분을 가리키는 이 말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긴 회고를 맺는 표지가 된다. 짧디 짧은 그 장에 이르러 그는 부모의 부재를 마침내 인정한다. 그것은 슬픔이 사라졌다는 뜻이라기보다, 상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에 가까워 보인다. 신기한 것은 내가 작가의 삶을 알지 못하고, 그가 겪은 일을 직접 경험한 적도 없는데 그의 기억이 낯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내 마음속 비슷한 장소에서 함께 꺼내지는 듯했다. 그가 인용한 브레이너드의 편지처럼 ‘이 글이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에 관한 것’이 되고, ‘내가 모든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한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기억이 타인의 기억을 불러내는 순간, 그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오랜만에 에세이다운 에세이를 읽은 만족감도 컸다.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와는 결이 다르지만, 사유와 경험이 문장 안에서 단단하게 맞물리는 글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되살아났다. 폭넓고 다층적인 감정의 결을 이토록 정제된 언어로 빚어내는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보고 싶어졌다. 책을 덮은 뒤에도 어두운 방과 그 안에 남겨진 기억은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 📌 출판사 #을유문화사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도서협찬 #어두운방에서 #브라이언딜런 #을유문화사_서평단 #서평 #독서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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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에세이스트 브라이언 딜런의 데뷔작 『어두운 방에서』 문학과 예술을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기억을 떠올린다. 지나간 기억들과 겪은 상처들을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집을 통해 떠올리는 기억들이 인상적이었다. 현관문부터 소품들까지. 그에 담긴 추억, 기억, 상처는.. 대부분 간직하고 부모님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가끔 나도 문득 불쑥 그런 생각을 하곤하는데.. 이 집이 지긋지긋할 거까진 아닌 것 같지만.. 언젠가 마주할 이별에 나는 이 집에서의 기억과 추억에 지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미련도 많을거고 이 집에서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가지고 싶어서 놓고 어디로 가지 못하지 싶다. 사진처럼 장면 장면으로 떠오를 듯. 무엇을 보아도. 함께 있던 모든 것들의 지난 날이 떠오를 듯하다..
아버지의 재떨이, 어머니의 기도서, 어머니의 파란색 펜.. 온통 슬픔이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읽는 시점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읽히려나..) 저자가 십 대 중반일 때 돌아가신 어머니와 대학 입학 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쓸쓸하다. 부모님이 사용하시던 물건..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서 떠오른 부모님의 모습들.. 기억들을 모아모아 추억하게 되는 시선들에 어울리는 격한 공감이었던 이 문장. 나는 미래의 내가 떠올리게 될 장면에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p.295) 어쩜 내 마음이 여기있지... 나는 이 책이 왜이렇게 슬펐을까.... 따라가게 되는 문장 끝에 머무는 시선.. 전환되는 시선들이 생각에 잠기게 했다.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예술과 비평이 담긴 특별한 에세이가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어두운 방에서』 .. 좋습니다! :) 처음 알게된 작가의 데뷔작 『어두운 방에서』를 읽어보았는데.. 기대이상으로 좋았고 다른 작품도 찾아보아야겠다. :D #어두운방에서 #브라이언딜런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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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시작으로 작가를 둘러싼 공간과 사물들, 사진, 육신을 거쳐 사후 추모까지. 첫 번째 챕터인 ‘집’이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다(그 점이 이 책이 좋은 이유 중 하나이지만!). 추후 챕터들을 통해 풀어내는 요소들도 어쩌면 집 안,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밖에서 전개되는 것들이니. 우연히 태어나 필연적으로 사라진다 본 도서에 함유된 모든 작가의 이야기는 챕터 주제에 따라 유한한 삶과 죽음 또는 망각을 끝없이 복기하고 사유한다. 소중히 여겼던 소장품의 가치의 퇴색, 조실부모 후 남은 자들의 애도와 비통, 상실의 유예. 개인적으로 아일랜드 작가 글이 어려웠던 적이 많아 책을 펴기가 주저되었는데, 본 도서를 읽고 많은 부분에서 해갈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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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딜런의 《어두운 방에서》는 문학과 예술 비평을 자신의 삶과 엮어낸 에세이자 회고록이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자신이 읽은 책과 접한 예술을 통해 그 기억들을 풀어낸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집과 기억에 대한 고백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집이 저주받았다고 말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그 저주가 사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집을 떠나던 날 아침에야 자신이 그 집을 얼마나 미워했는지 알았다는 고백은, 우리가 자신의 마음과 지나간 시간을 얼마나 잘 알지 못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과거를 상징하는 물건들을 수집해 의미 있는 기억으로 깔끔하게 포장하려는 시도가 허황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남아있는 물건들의 진정한 가치는 과거에 대해 거창한 설명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단지 우연히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복잡하고 무질서한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담담한 시선을 보여준다. 《어두운 방에서》는 마음속 어두운 구석을 무작정 덮어두기보다 가만히 바라보게 돕는다. 감상에만 젖지 않고 예리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며, 지나간 기억과 상처를 새로운 눈으로 마주하게 하는 책이다. || 밑줄 P. 50 집은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을 익숙한 자세 속으로 얼어 붙게 만드는 습성이 있는 듯하다. 마치 지루하게 이어지는 가족사진 촬영을 위해 억지로 의자에 붙들려 앉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몸은 그 자세에 저항하지만, 그 자세를 오래 유지할수록 앉아 있는 이들은 그 자세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힘을 점점 잃어 간다. P. 80 어머니는 늘 이 집이 저주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그 저주를 품고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저주는 내가 과거를 되돌아보며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나는 내가 이 집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집을 버리고 떠나던 그날 아침까지는. P. 99 부모의 죽음이라는 이중의 장벽은 철저히 밀봉된 방을 만들어냈다. 저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을, 애도라는 두터운 관문 너머로 언뜻 비칠 뿐이기에 더욱 매혹적이어 보이는 그 모든 것을 꿈꾸도록 만드는 밀실. 그곳이 내 기억의 저장소다. P. 151 그 어떤 목록도, 아무리 철저한 것일지라도, 결국 훨씬 무질서하고 광범위한 현실 가운데 일부의 기록일 뿐이다. 나 자신의 과거를 의미 있는 물건들로 이루어진 포괄적인 아카이브 안에 몰아넣을 수 있으리라는 상상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앞에 놓인 이 몇 안 되는 연약한 물건들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들이 과거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느냐가 아니라, 그것들이 단순히 그리고 대체로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P. 329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시간의 흐름 안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언제나 내 과거가 하나의 행동으로 결실을 맺으며 완결되는 바로 그 지점에 위치 한다. P. 45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그러나 침묵이 요구하 는 것은 내가 계속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 존 케이지, 《침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