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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쟁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지만,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은 전쟁이 남긴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의 침묵일지도 모른다. 폭격으로 무너진 집과 학교,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절규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참혹한 현실은 뉴스의 첫 화면에서 밀려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은 익숙한 숫자와 통계로 축소되곤 한다. 『가자의 목소리』는 바로 이러한 망각에 맞서 쓰인 책이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비극을 외부인의 시선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땅에서 살아가며 고통을 겪고, 기억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말할 자리를 내어 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단순히 전쟁의 피해자로만 바라보지 않는 데 있다. 우리는 흔히 전쟁을 접할 때 사망자와 부상자의 수, 파괴된 건물의 규모, 국제사회의 외교적 대응에 주목한다. 물론 이러한 정보는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전히 알기 어렵다. 『가자의 목소리』는 정치·역사 논설부터 시, 르포르타주, 생존자의 에세이까지 다양한 형식을 통해 통계 뒤에 가려진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드러낸다. 폭격과 피난, 굶주림과 구금, 의료 체계와 교육의 붕괴는 추상적인 사회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오늘이며,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견뎌야 하는 현실이다. 특히 가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이만 바셰르의 글은 교육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전쟁 속에서도 아이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시를 쓰며, 언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교실에서 함께 미래를 꿈꾸던 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교사는 제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 교육이 희망의 공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희망을 지키려는 노력만으로 폭력의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이 글이 특별히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이들에게서 빼앗긴 것이 단지 안전한 학교생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장하며 경험했어야 할 시간과 관계, 배움의 기회, 미래를 선택할 권리까지 함께 사라지고 있다. 전쟁의 피해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살아 있는 생명뿐 아니라 그 생명이 앞으로 펼쳐 갈 가능성이기도 하다. 누르 알야쿠비가 어린 딸과 함께 피난하며 겪은 굶주림의 기록 역시 마음에 남는다. 아이가 토마토와 바나나, 딸기 같은 평범한 음식을 맛보는 날을 꿈꾸는 어머니의 마음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보다 더 직접적으로 전쟁의 잔혹함을 보여 준다. 어떤 부모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다른 부모에게는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미래가 된다. 이처럼 책은 전쟁을 거대한 역사적 사건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가족이 머물 집을 마련하고, 다시 책을 읽고 가르치는 일처럼 인간다운 삶을 구성하는 작고 구체적인 바람들을 보여 준다. 그 소박한 소망들이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은 오히려 전쟁의 폭력이 얼마나 깊숙이 인간의 삶을 침범하는지 증언한다. 『가자의 목소리』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파괴의 범위를 인간의 생명에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병원과 학교뿐 아니라 주거 공간과 문화예술의 터전, 토양과 물, 동물과 생태계에 가해지는 폭력까지 살핀다. 특히 예술가 샤리프 사르한이 이야기하는 예술 공간 샤바비크의 파괴는 문화가 공동체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예술은 전쟁이 끝난 뒤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부차적인 활동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공동체의 기억을 이어 가는 중요한 기반이다. 집과 병원이 파괴되는 것만큼이나 자신을 표현할 공간과 문화를 지탱하는 기반이 무너지는 일도 심각하다. 전쟁은 사람들의 현재를 빼앗을 뿐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조건마저 훼손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와 기자, 시인들의 기록 행위는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선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희생된 이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기억하며, 왜 이러한 비극이 일어났는지 묻는 일은 망각에 대한 저항이다. 진실을 전하던 젊은 기자와 작가들을 추모하는 글은 그들의 죽음이 한 개인의 상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들은 자신이 목격한 현실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보이지 않게 만들려는 고통을 다시 공적인 기억의 자리로 불러냈다. 기록은 무너진 건물을 곧바로 복구할 수 없고 희생된 생명을 되살릴 수도 없다. 하지만 폭력이 없었던 일처럼 취급되는 것을 막고, 책임을 묻고,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것은 저자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희망은 모든 일이 결국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이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위로의 말에 머물지 않는다. 모사브 아부 토하가 전하는 희망은 누군가가 대신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 키우고 돌봐야 하는 것이다. 그가 전쟁이 끝난 뒤 집을 다시 짓고 책으로 가득 채우기를 바라는 장면에서 희망은 구체적인 삶의 형태를 갖는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거주할 공간을 되찾는 일인 동시에 다시 살아갈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다. 책을 채운다는 것은 지식과 언어, 배움이 이어지는 세상을 꿈꾸는 일이다. 절망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너머의 삶을 구상하는 태도야말로 이 책이 말하는 희망의 본질에 가깝다. 다만 희망과 회복력을 강조하는 일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책에 실린 감옥 연구와 생존자들의 기록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언제나 강인하고 굴하지 않는 존재일 수만은 없음을 보여 준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트라우마와 정신적 고통은 단순한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고통 속에서도 저항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존중하는 것과 그들에게 끊임없이 강인함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회복력만을 강조하면 폭력을 행사한 이들의 책임은 흐려지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부당한 기대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이 보여 주는 희망은 고통을 견디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찬사로만 읽혀서는 안 된다.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폭력을 중단시키고, 책임을 묻고, 삶을 재건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가자의 목소리』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특정한 정치 세력이나 종교적 정체성만으로 설명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 책에는 학자와 활동가, 의사와 교사, 시인과 언론인, 디아스포라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 이들의 관점과 글쓰기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경험하고 분석한 현실을 세상에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자는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이 단일한 이미지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이며, 그 안에 다양한 삶과 생각, 기억과 미래에 대한 열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사와 현실을 해석하고 서술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는 것과 당사자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귀 기울이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익숙한 설명을 반복하기보다, 그동안 충분히 듣지 못했던 목소리 앞에서 자신의 시선과 판단을 돌아보도록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국 역시 식민 지배와 전쟁, 민간인의 희생과 국가 폭력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렇다고 두 사회의 역사적 조건과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다만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는 일이 오늘날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묻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우리가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는 이유가 단지 우리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 침해되고 자유와 생존의 권리가 부정되는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그 기억 안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을 바라볼 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폭력을 비판하는 기준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되며, 민간인의 생명과 존엄은 어떠한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우선해야 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연대 역시 단순한 동정과는 거리가 멀다. 연대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지만,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지 살피고, 책임 있는 정부와 기업의 행동을 감시하며, 왜곡된 정보와 무관심에 맞서고,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을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BDS 운동과 대학 캠퍼스의 연대 활동은 이러한 고민의 여러 형태를 보여 준다. 독자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접하는 뉴스와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피해 당사자들의 증언을 직접 읽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익명의 숫자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부터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연대가 일시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고 책임 있는 실천으로 이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가자의 목소리』는 차마 외면하고 싶은 장면과 감당하기 버거운 슬픔이 있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책을 덮고 현실에서 눈을 돌린다면, 우리가 잃는 것은 단순히 몇 편의 글을 읽을 기회만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경험을 전하기 위해 감수한 위험과 노력, 세상이 잊지 않기를 바라며 남긴 기억을 외면하게 된다. 물론 타인의 고통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 오랜 점령의 역사와 전쟁의 상처를 완전히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듣기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오래 듣고 배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결국 『가자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것인가만이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죽음은 기억하면서 다른 죽음은 잊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정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실제 현실에서도 일관되게 지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 책에 담긴 23개의 목소리는 서로 다른 경험과 언어로 고통을 증언하지만, 그 목소리들이 향하는 곳에는 인간다운 삶을 되찾으려는 공통된 열망이 있다. 그 열망은 안전한 집에서 살아가는 일,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일,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일,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남기는 일처럼 소박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자의 이야기는 먼 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에 관한 기록인 동시에, 우리가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은지 묻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희망은 폭력이 저절로 끝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기억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난다. 『가자의 목소리』를 읽는다는 것은 그 희망을 대신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희망이 꺾이지 않도록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잠시 바라보고 지나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침묵하지 않으며, 존엄과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세상을 위해 함께 책임지라고 요청한다. 가자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야 하는 이유는 그곳의 사람들이 아직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가 그 이야기에 응답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삶과 우리의 세계가 결코 정의의 문제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