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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환자를 만나는 요양병원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호경과 작가님의 대화, 기억속 과거 이야기 등으로 이어진 내용속에서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치매환자의 난감함, 두려움 등의 여러 감정들이 느껴지네요. 치매환자를 대하는 모든분들이 이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치매를 이해하는 부분의 폭이 늘어날꺼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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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군가를 온전히 기억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다큐멘터리를 찍고 소설을 써온 이인현 작가의 호경이라는 책을 집어 들며 표지 아래쪽에 또박또박 적힌 주인공의 서툰 손글씨에 눈길이 갔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접하던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어 읽는 내내 무척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진과 편지 그리고 대화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고 장마다 시점과 서술 형태를 다채롭게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족도 돌봄자도 의학 전문가도 아닌 타인이 어째서 기억을 잃어가는 한 사람에 대해 쓰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끌어안은 채 약한 고리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다시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기억의 상실과 취약해짐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았다.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어제의 사건을 깜빡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 자신을 통째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일상이 무너져 가족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다가온다. 20년 동안 타국에서 살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호경이 낯선 모국어의 세계 속에서 홀로 겪어야 했을 막막함을 따라가며 기억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존엄과 얼마나 깊이 맞물려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예전에 우리 친할머니께서 치매를 앓으셨던 시절을 직접 곁에서 지켜보고 경험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책 속의 호경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할머니의 총기 있던 눈빛이 조금씩 흐려지고 익숙했던 가족들의 이름과 지난 세월의 조각들이 하나둘 지워지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작가가 호경의 비어 있는 기억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그 망각의 공백 속에서도 함께 노래를 듣고 대화를 나누며 묵묵히 곁을 지키는 모습에서 깊은 위로를 얻었다. 이름을 잊어버리더라도 함께 마주했던 존재의 온기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문장이 할머니를 그리워하던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호경은 기억이 사라진 빈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조용히 생각하게 만든다. 사진이나 편지 같은 기록으로도 온전히 붙잡을 수 없지만 서로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며 만들어낸 것은 기억도 마음도 아닌 영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이제는 완벽한 기억이나 뚜렷한 결론에 집착하기보다 약한 고리로 연결된 내 주변의 존재들에게 먼저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호경 #이인현작가 #히스테리안 #김경수디자인 #서평단 @hysterian.publ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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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 - 이인현] 행복을 아지랑이처럼 떠올리며
"요즘은 행복하세요?" 내가 묻자 호경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행복이 뭔데요?" 나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요. 행복이 뭘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호경 21쪽) ... 사람들에겐 누구나 선명하거나 희미한 기억들이 있다. 기억은 밀물처럼 다가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기억 없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종종 독서 토론 수업을 할 때 인간의 정체성의 기준으로 '기억'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묻곤 했다. 기억이 몽땅 빠져 버린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예전 그 사람으로 동일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지만 기억들은 많은 경우 왜곡된다.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씩 따져보다 내 기억이 잘못된 상태로 저장되어 있다는 걸 깨달을 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내 기억은 이제 완전히 믿을 게 못 된다는 게 오래 살아본 경험이다. 물론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정체성의 변화가 있을 순 없다. 존재 그 자체로 본연의 정체성은 그대로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가족이 누구인지, 어린 시절을 어떻게 살아왔고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는 누구인가. 그런 면에서 <호경>이란 책은 무척 색다르게 다가왔다. 우선 에세이 같은 장르인데, 인터뷰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다. 이인현 작가가 초기 치매 환자인 '호경 씨'를 가까이하며 5개월 가량 만난 기록 아카이브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간 중간 '호경 씨' 입장에서 보는 글들이 배치되어 있고, 또 액자 소설 같은 형태도 뜬금 없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호경 씨가 쓴 일본어 시라든지 장르를 구체화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글과 이미지가 혼합된 작품이다. 이인현의 <호경>은 이러한 '기억 문학'의 계보 위에서 읽히는 작품이다. 저자가 초기 치매 당사자인 '호경'을 만나 나는 대화를 바탕으로 한 이 텍스트는 크게 사진과 그림, 자필 메모, 문자 메시지 등 주변적 자료를 병치하며 입체감을 만드는 아상블라주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또 한 명의 대표적인 기억의 문학가 W.G.제발트를 연상시킨다. 기억과 공백과 그 공백을 현재 위치에서 다시 쓰는 <호경>은 자신의 글쓰기가 기억 문학의 두터운 계보와 맞닿아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의식하며 읽을 때에도 <호경>은 분명 우리에게 생경한 감각을 선사한다. 그것은 기억이라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 텍스트만의 특정한 태도가 책의 형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73쪽) 제발트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었다. 소설집 <이민자들>이었다. 담담하게 평범한 이민자 가정을 뒤쫓아가는 글인데, 그걸 소설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지 걱정이 들 만큼 담백하고 건조했다. 하지만 이름없는 이들에게 생명을 부여해준 것만으로도 그 책은 가치가 있었다. <호경>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쓸쓸히 밀려 나간 뒤 햇살에 몸을 보여주는 바닷가 작은 조개와도 같은 '호경 씨'에게 이 책은 특별한 의미로 그에게 다른 미래를 보여줄지 모르겠다. 책 마지막에 가선 실제 호경 씨의 모습이 담긴 가족사진, 친구와 찍은 사진 등이 나타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궁금해 했던 호경 씨의 실물을 만날 수 있다. 평범한 사람.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사람, 호경 씨는 그렇게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작가는 말한다. 당신만의 '호경'을 찾으면 좋겠다고. 어딘가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그 존재를, 그리고 관계를 끊지 않고 관계 속에 머물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기억은 섬광이다. 섬광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모두가 지금의 섬광만을 겪는다. (294쪽) 이 글은 저자의 말이다. 기억이 과거의 축적된 정보가 아니라,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섬광이라는 인식이 놀랍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도 어쩌면 스러지는 잔상과 같은 것일까. 호경은 학창 시절 내내 별다른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건물도, 기억나는 과목도, 선생님도, 좋아했던 간식도, 날씨도 기억하지 못했다. 소풍을 가거나 무언가를 하며 놀았던 기억도 없다. 호경의 기억은 원래부터 비어 있었던 것 같다. 딱딱한 껍질에 둘러싸인 과육을 나쁜 벌레가 먹어 치운 것 같다. (27쪽) 경도 인지 치매를 앓았던 한 목사님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코로나 이후 경도 인지 치매가 후유증으로 남아서 몇 년간 고생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기억 속에서 사람들의 데이터베이스가 사라져 버려 자신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오는 사람들을 하나도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고 했다. 호경은 일본에서 생활했다. 일본에서 직장을 구하고 일본 말을 하고 일본 영화를 보고 일본 노래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뒤 깨어났을 땐 한국 병원이었고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쨍그랑이란 소리는 유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창발하는 소리다. 깨어질 순간을 예지하는 소리다. 깨어지기 전과 깨어지는 순간, 깨어지고 난 이후의 미래를 함께 가진 소리다. (220쪽) 그랬을까. 쨍그랑 그의 뇌가 산산조각 나 버렸는지 모른다.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짐작도 하기 전에 이미 유리컵은 탁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과거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가진 소리, 쨍그랑으로 창발했다. 그리고 남는 건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들. 그것으로 이전에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었는지 꿰어 맞춰야 한다. 그러다 포기한다. 수만 개 이상으로 잘게 부서져 흩어진 조각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크게 남은 몇 개의 조각들은 이어 붙일 순 있겠지만 나머지는 그냥 쓰레받기에 담아서 휴지통에 버려야만 한다. 그래야 남은 길이라도 편하게 유리조각을 밟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으니까. 책을 읽고 책을 덮으며 든 생각, 감정은 우선 '연민'이었다. 한 순간에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살아왔는지를 모두 잃어 버린 한 사내에 대한 울음이었다. 주변 시선은 그랬지만 정작 그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어쩌면 걱정은 과거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그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저자에게 어떤 걱정이 있느냐고 묻기까지 한다. "저는 걱정이 없어요. 어떤 걱정이 있어요?" (호경 21쪽) 하지만 연민으로 이 책을 끝내 버리기엔 너무 아쉬움이 크다. 이 책은 사실 연민에 대한 책이 아니니까. 책 속에 잠깐 보여준 특별한 액자소설 같은 이야기. 생텍쥐페리가 마지막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게 되는 그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가 어쩌면 호경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우회로가 아닐까 생각했다. 어제까지 분명히 존재했던 한 사람이 어느 날 사라지는 것. 육체가 사라지는 것만이 사라짐은 아니다. 기억이 사라지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관계가 사라진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텍쥐페리가 하늘 어딘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듯, 호경도 어느 날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만 그는 죽지 않았고, 이전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나타났을 뿐이다. "나와 함께 수영하지 않을래요? 내일이 되면 난 여기에 없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저는 그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 남자는 자신의 삶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일이 되면 난 여기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입으로 내뱉고도 실감이 나지 않는 문장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서든 나이니까. 여기는 또 다른 여기가 되는 것뿐 아닐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나라는 가정하에서 한 생각이었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고 나서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206쪽)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나라는 가정하에서 한 생각이었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내일도 내가 나일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알고 있는 사람을 내일도 알아보고, 내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좋아했던 것과 싫어했던 것을 구별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호경에게는 그 당연한 전제가 무너졌다. 그렇다고 호경이라는 사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웃고, 질문하고, 시를 쓰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 기억이 한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조각이라면, 그 조각이 빠져나간 자리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자기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잃어버린 과거보다 그렇게 남아 있는 ‘지금의 호경’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의학 보고서도, 보호자의 수기도 아니다. 가족도, 돌봄자도,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어째서 한 사람에 대해 쓰는가. 그 쓰기가 당사자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가. 물음을 해결하지 않은 채로, 작가는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뒷표지)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과거에서 오는가? 그렇다면 호경은 불행한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다시 호경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어쩌면 호경 자신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전 사진을 돌아보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왜 우느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 알 수는 없지만 내 안의 무엇을 건드리는 무엇. 그것이 유리잔이 깨지면서 몸속에 박힌 하나의 작은 조각은 아닐까. 과거를 애써 기억해내려고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작은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다시 새로운 유리잔을 빚어 나가는 삶. 어쩌면 그것이 호경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새로운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도 내 안의 호경을 다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나, 오래전에 잊어버린 사람들,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 버린 수많은 관계들. 어쩌면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나를 떠나버렸다고 슬퍼하지 말고 그들을 응원하자. 잃어버린 나의 '호경'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어디에선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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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을 읽고 이인현 작가님의 장편소설 『호경』은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잔잔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건네는 묵직한 첫인상을 주었습니다. 붉은빛의 정갈한 표지와 책장에 조용히 꽂혀 있는 책의 물성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기억 속 깊은 심연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묘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평소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인연과 관계의 흔적, 그리고 시간이 남기는 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차에 서평단이라는 좋은 기회를 통해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의 소개글과 프롤로그를 접하면서, 치매라는 무겁고 두려운 주제를 단순히 의학적 비극이나 보호자의 일방적인 수기로 다루지 않고 담담하게 시선을 맞추어간다는 점이 크게 와닿아 주저 없이 이 도서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화려한 미사여구나 작위적인 감정의 과장 없이, 인물과 마주하는 작가의 태도가 지닌 정직함에 있습니다. 저자는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실존 인물 호경과의 만남을 기록하며, 가족도 전문가도 아닌 자신이 어째서 타인의 기억에 대해 쓸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사진, 자필 메모, 문자메시지 등 파편화된 자료들을 입체적으로 엮어내는 아상블라주 형식을 차용하여 기억의 공백을 메우려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그 망각의 역사와 미끄러지는 순간들을 고스란히 텍스트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 역시 완벽하게 정리된 해답을 강요받지 않고, 불완전한 기억의 조각들을 마주하며 각자의 삶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존재의 자리를 차분히 되짚어보게 됩니다. 책장을 덮으며, 저자가 이 글을 통해 건네고자 했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을지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잊어버릴지라도 그의 존재 자체는 온전히 남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기억이라는 정확한 좌표로 온전히 붙잡을 수 없기에 오히려 영혼의 깊은 울림으로 남게 되는 관계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임시적이고 허전한 것인지, 그리고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에게 건네는 시간과 진심이 얼마나 커다란 무게를 지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삶의 벼랑 끝이나 불완전한 기억의 틈새에서도 서로를 향한 존중과 환대를 거두지 않는 태도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hysterian.public #호경 #히스테리안 #기억과상실 #치매와문학 #이인현 #서평단 #도서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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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히스테리안#이인현작가#호경#치매#기억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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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 #이인현 #히스테리안 #호경구조단 #서평단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한달동안 같이 산 적이 있다. 그 당시 할머니는 후천적으로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였고, 알콜성 치매셨다. 그때를 떠올리면 나는 '너무 힘들었고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할머니는 "손녀보다 손자"라며 큰아버지댁 사촌 오빠와 우리 자매를 조금 차별해오셨기에, 나는 할머니에게 딱히 애정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렇기에 할머니와 같이 산다는 사실은 솔직히 반갑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일 때문에, 언니는 고등학생이라 귀가가 늦었고 그렇게 할머니와 제일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중학생이라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있던 내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여유는 지옥으로 바뀌었다. 앞이 안보여 낮과 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다 치매가 더해지니 밥을 드시고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왜 밥 안주냐, 하루종일 사람 굶겨 죽일 생각이냐!"며 역정을 내는 날이 많았다. 또 알콜성 치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술 조금만 줘~ 먹었다고 안할게~ 비밀로 할테니까~ 한잔만!"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술을 찾았다. 그 중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일 하나는 부모님과 언니는 일찍이 출근하고 등교하다보니 항상 내가 제일 늦게 문단속을 하고 나섰는데, 그 날은 할머니가 "혼자 두지마! 왜 날 여기로 데려와서 자꾸 혼자 둬! 가지마! 못 가!"라며 나를 있는 힘껏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그날 난 꽤나 긴 실랑이 끝에 할머니에게서 도망쳐 창문을 통해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부모님에게 "나 할머니랑 같이 있기 싫어. 할머니 싫어!"라고 외치며 엉엉 울었다. 이러한 기억으로 인해 내게 있어 할머니를 향한 마음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치달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솔직히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또한 치매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병', '본인은 아무 걱정없이 마음대로 하고 살면서 남에게는 끝없이 민폐를 끼치는 병'이 되었고, '내가 치매에 걸려서 할머니처럼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 그렇게 마주한 [호경]은 할머니를 향한 나의 마음과 그때의 기억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나는 할머니를 할머니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매걸린 환자'로 바라보았고 '돌봄'과 '감시'가 필요한 존재였다. '사고나진 않을까?', '사고치진 않을까?' 내가 할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가지 뿐이었고, 아마도 할머니는 눈으로 보지 못해도 느꼈으리라. 그에 관해 알아갈 수 있는 질문과 주제를 미리 준비했다가 결국 서로의 삶을 나누는 방향을 택한(p.290) 이인현 작가와 그런 그와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와 다시 만나는 날만 기다리는 호경처럼 나도 할머니와 같이 살아가는 삶을 바라봤다면 할머니는 "손자보다 손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또한 등교하려던 날 꽉 붙잡던 할머니의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힘과 외침은 갑작스레 바뀐 환경 아래에서 오는 감정이 순간 터져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 늘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고, 때로는 그게 너무 긴 시간이었기에 빨리 도착하는 지하철보다 걷는게 좋았던 호경처럼(p.140) 할머니도 낯선 환경 아래 혼자 보내던 긴 시간이 그날따라 싫었던 건 아닐까. ----- 훗날 내가 치매에 걸리게 된다면, 나 역시도 사람들이 나를 치매 환자로만 대하면 꽤나 슬플 것 같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잊었고, 잊어갈 뿐이라고.
그땐, 치매가 아니라 <인지증>이라 여겨지길. 그들이 할머니(치매)를 향했던 나의 시선처럼 두려워하고 꺼려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 여겨지길. ----- +) p. 146 센터 프로그램에서 호경이 만난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에 대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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