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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 안재홍은 우리 역사에서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독립운동하면 인물별로 김구, 이승만 등의 행보는 우리 역사에서 비중있게 다루지만 그 이외의 인물은 교과서 등에서 할당을 별로 하지 않는 느낌이 강하다. 그만큼 그가 걸어온 길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어떤 명확한 노선을 가지기는 힘들정도의 오해도 많고 힘든 길은 아니었는지란 생각을 하게 된다. 불경시하고 거부시하는 풍토에서 아까운 인물이 조명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1950년 5월에 있었던 총선에서 서울 성북구의 조소앙,부산에서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이끌었던 장건상 등과 함께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당시에 이승만으로 대변되는 세력에 민심이 이탈하여 대안세력으로서 국민들의 마음에 자리매김 한 것을 볼 수 있다. 나름대로 새조국 새건설에 한몸 바쳐 그가 그리고자 했던 꿈을 꿔 보고자하는 찰나에 우리민족 최대의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가 발발하여 같은 해 9.26일에 납북된 사실이 더욱더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찍이 이승만의 독재,독선에 대해서 알고있던 그였기에 입법부에 진출해 다양한 식견과 역사적인 안목을 갖춘 인물인 안재홍 및 조소앙 등이 이승만정권을 견제하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평소에 공산주의 체제는 결단코 조선사회에 적합한 사회체제가 아니다란 신념을 가진채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인정했던 그였기에 그가 납북된 사실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에 크나큰 손실이었다는 생각이다.
안재홍의 생애를 읽어보면서 느낀 점은 철저히 현실에 바탕을 둔 사고를 통해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최선이 못 되면 차선을 하여도 좋은 때가 있다는 생각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제에 저항하고자 한 것이 눈에 뜨인다. 나라 잃은 슬픔에다 배고픔 등등 망명정부의 하루하루 삶은 고단했을 것이다. 안재홍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총 9차례에 걸쳐서 7년 3개월동안 옥고를 치르는 사이 평생 허리를 쓰지 못하는 고통도 당하고 사랑하던 아내마저도 여의게 된다.
국내에 있으면서 '실력양성'의 필요성을 깨닫고 일본유학까지 다녀오면서 물산장려운동, 신간회운동, 조선학운동, 다양한 역사서 저술 등을 통해서 우리민족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해온다. 식민사학에 맞서기 위해 신민족주의사학을 펼쳐 타율성론의 허구를 주장한다. 안재홍의 이력중에 조선일보 사장을 역임한 것이 눈에 띄는데 지금도 언론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고 특히, 권력은 언론과 친하게 지내려 권언유착을 시도하는데 일제치하때도 지금 상황과 대동소이하였을 것이다. 모양새가 아닌 사주와 권력실세만을 위한 글을 쓰는듯한 모습이 강한데 안재홍이 조선일보 사장으로 있던 시절에는 일제의 미움을 받아 감옥도 다녀온 것으로 보아 기개있게 할 말은 하고 권력의 시녀가 아닌 참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조선일보가 탄생하였고 그 이후에는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넌 것처럼 조금은 처량하게 느껴진다. 인식하면서 통일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걸음씩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렇지만 양편으로 나뉜 구도하에서 중도의 길은 움직임의 폭이 상당히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중도의 삶은 나름 고결해 보이지만 이도저도 아닌 것 처럼 보일때도 있다. 균형있게 이끌고 통일된 조국에서 일할 민주역량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겠냐는 생각이든다. 이승만으로 대변되는 독재도 거부하고 김일성식의 공산체제도 아닌체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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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 서로를 미워한 지도 어언 반 세기가 훌쩍 지나가버렸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가 너무 시려서일까 아니면 실제로 전쟁의 발발 위험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일까? 여전히 우리에게 통일의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이기만 한다. 강대국의 이권 다툼 속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결과가 분단이었다곤 하지만, 새로운 나라를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인물이 그 시대에 존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종종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나의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현 체제는 역사를 평가하는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중도의 길을 걸었던 여운형 선생이 저평가되고 있으며, 영웅은 탄생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다. 하나의 나라가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 시기에 태어난 사람에게 선택 가능한 항목은 몇 되지 않는다. 새로이 생성되는 질서에 재빨리 순응하거나 아니면 이에 저항하는 것. 조선일보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그에게 가장 큰 힘은 다른 아닌 글이 아니었을까 한다. 일제에 의해 잠식된 조국의 현 상황이 부당함을 그리고 이 부당함은 우리 스스로의 움직임에 의해서만이 깨뜨릴 수 있음을 민중에게 알리기 위해 그는 수많은 글을 써내려 갔다. 물론, 격렬한 탄압으로 인해 글 쓰는 것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행동하되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을 뒷받침할 줄 아는 인물. 그런 그에게 분열을 책동하는 모든 움직임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으며, 민중이 진정 원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독립을 위한 것이라면 사회주의조차도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체제가 아닌 민중에 기반한 독립이었던 것이다. 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고, 비교적 부유한 집안 태생이었다는 배경은 어쩌면 그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아직 민중이 충분히 계몽하지 못했다는 판단을 했고, 민중의 계몽을 위한 실력양성을 중히 여겼다. 하지만 일제와의 타협이라는 변질된 방향으로 운동을 이끌어간 5.10 총선거에 민족주의 세력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외세 의존적인 극좌, 극우 세력의 집권을 막을 수 있으며, 분단이라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선 5.10 총선거가 최선은 아니나 차선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적으로 보인다. 또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선 미국의 원조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우파로 구분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는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고 있는 국제 정세상 이들 세력을 완벽히 배제한 대한민국의 독립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그의 현실 인식은 정확했고, 그가 원했던 것처럼 5.10 총선거에 좌와 우를 가르는 기준은 끊임없이 변한다. 실제로 그가 살았던 시대에 좌는 일제에 타협하지 않는 민족주의 세력까지도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었다. 그런 점에서 책의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는 ‘중도’라는 단어는 그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