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에서 만난 세상,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부분도 있지만 현실감있게 느껴보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게 했다. 나는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고 지금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학생이었던 때, 박노해 시인의 ''이불을 꿰매며''라는 시를 읽고 뭔가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을 가졌었다. 노동자로 살아가며 온갖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고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싸웠지만 결국 집안에서는 자신 역시 가부장으로서 아내의 노동을 당연시 여기고 있었음을 반성하며 한땀 한땀 각성의 바늘을 찌르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내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리고 몇년 전, 한때 논란이 심했던 빈민체험에서 한 체험자가 밥값도 없는 상황에서의 사치품 구입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을때. 나 역시 순간적으로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왠 사치품을? 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생계만을 유지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은 사치품이 되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구분되어지는 것이었단 말인가? 대한민국인권의 현주소라는 부제가 붙은 ''길에서 만난 세상''은 나를 다시 한번 더 부끄럽게 하였다. 나는 정말 먹먹하고 서글픈 세상에 놀랬지만, 그 이상으로 나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했다. 어떤 어려움과 슬픔, 괴로움과 고달픔이 있어도,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라고 여겨왔었는데 그것은 내가 배부르고 사치를 누리고 있으면서, ''힘들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거야''라는 입발린 소리만 하고 있던 것임을 깨달으며 반성한다. 내가 사는 세상, 이 아닌 ''그들''의 세상을 향해 진정한 이해와 사랑은 없이 그저 잘될꺼야, 만 되내이고 있는 바보로봇이었음을 반성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뭔가 바뀌는 것이 있을까. 나는 정말 싫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름다운가''라고 자조하게 되는 이런 책을 읽는 것이 힘들다. 거짓이어도 한가닥 희망을 잡고 살아갈 수 있는 감상적인 내가 훨씬 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 역시 배부른 녀석의 헛소리, 가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이지 이런 책은 이제 더이상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것이 아니다.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외면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있다. 다행스럽게도 말이지. 그래서 나는 간절히 바란다. 내가 이런 책을 읽고 싶지 않다, 는 마음보다 더 간절히 이런 아픈 세상이 빨리 사라지기를.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수 있기를. 그래서 희망을 버리고 절망스럽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일이 없기를. 그럼에도 세상은 아름답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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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삼스럽게 인권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학생들에 대한 체벌문제를 비롯한 학생인권조례가 시끄럽더니, 권력에 의해 무섭게 이루어지고 있던 비공식 사찰등이 이슈화 되면서 공공연한 비밀들이 하나,둘 씩 밝혀지고 있다. 정말 운도 복도 지지리 없는 사람들이다. 그 전부터 행해졌던 일인데. 하필이면 이제서여 들통이나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으니, 시쳇말로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요....'라는 한탄이 나올 만 하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인권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왜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주 많이 유린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권 현황이다. 이 책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인권]의 '길에서 만난 세상'꼭지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글로 전해 주기 위해서 전성태,오수연 ,박영희 세사람이 매달 길을 떠나며 써온 글들을 단행본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이웃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이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지만 큰 파동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공화국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보호를 받아 마땅하며,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인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책의 사람들은 인권이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법과 관심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그 사람들은 아주 먼 곳에 있지않은 ,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이웃들이다.
노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 단순히 해고라는 이름앞에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받아야 하는 차별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과의 차이 만큼이나 크다. 눈치가 보여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현실과, 간식으로 제공되는 제과점 빵과 구멍가게의 빵 만큼이나 그 들이 느끼는 현실적 박탈감은 크기만 하다. 정규직이 아니어도 좋으니 퇴사 당하지 않고 계속 일할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외치는 사람. 더 이상은 쓰다 버린 소모품 정도로 다뤄지는 인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외침은 절박하기까지 하다.
미등록 노동자(불법체류자)의 문제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 나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존재 여부는 필수가 되어가고있다. 그에 따른 다문화 가정의 문제는 새로운 문화의 출현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학대하는 민족, 무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민족. 우리들에게 잠재한 차별의식은 우리가 당해온 차별 그 이상의 혹독함을 가지고 있다.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었던 우리의 아픈 과거가 ,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화인처럼 남아있기에 ,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에게 행해지는 고통에 우리는 무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 남성과 아시아인 여성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가리켜 코시안이라고 한다. 코리아드림을 위해 이 땅을 밟은 여성들중에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정신적인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현실에서 태어난 코시안들이 미래는 어떠할까? 그들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부색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주홍글씨가 너무나 크기만 하다. 그런 현실에서 일본인 여성이 가장 인기가 많다는 것 또한 잘못된 민족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막장 노동자들의 막장과 같은 삶. 진폐증에 걸려 막장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탄광 노동자의 삶은 눈물겹기만 하다. 탄광속에서 30년이 넘는 생활을 하다보면, 부부생활이 더이상 불가능해지며, 자연스럽게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늙은 광부의 이야기. 경제 개발의 선두에 섰던 탄광은 이미 카지노 불빛아래 사그라든지 오래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거동조차 하기 힘들정도의 호흡장애. 진폐증 진단을 받아야만 정부 보조금을 받을수 있지만, 진폐증 진단을 받기위해서는 그 에 따른 합병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진페증에 걸린 사람은 많지만, 그로 인해 진폐증 확진을 받은 사람의 수는 극히 미미하다고 한다. 노동부 추산 발표 진폐 환자와, 실재로 진페증에 걸린 사람들 사이에서 발표한 진폐 환자의 수치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마다 발표되는 경찰추산 인원과 집회 당사자 추산 인원의 차이 만큼이나 크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십대의 나이에 임신을 한 비혼모들의 이야기.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인해 이 사회에서 성적 약자는 여성일수 밖에 없다. 어린 나이에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생긴 아이는 오로지 여성 혼자 만의 몫이다. 그에 연류된 남자도 , 부모도, 학교도 친구도 모두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줄수는 없다. 임신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주위에서 쏟아지는 온갖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현실. 열여섯 어린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철없는 나이에 엄마가 사고를 쳐서 너를 갖게 되었고.... 언젠가는 네가 버려진 아이라는 생각에 힘들어할 날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한테 큰 실망을 하겠지. 하지만 우리 아기는 엄마하고를 다를 거라고 생각해." 이런 울부짓음이 과연 어린엄마만의 잘못일까? 성교육을 터부시화하는 공교육의 잘못과,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책임 회피론. 임신은 오로지 여성만의 부주의이며 여성만이 책임져야 한다는 그릇된 가부장적 생각. 이 모든 부조리의 합병증인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없다. 남자가 수반되지 않는 임신은 존재할 수 없다. 고로, 이에 따른 책임은 여성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반드시 그에 따른 남성또한 강하게 책임져야할 문제다. 인간으로서 책임질수 없다면 법적으로도 강하게 책임질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 밖에도 무수히 많은 약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록도에서 죽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한센병 환자들. 매일같이 탑골공원과 고궁에서 살아야 하는 노인들 . 고충수업과 타율학습에 병들어가는 아이들. 새벽마다 목숨을 걸고 바다로 출어하는 선원들의 비참한 삶.보안관찰법이라는 평생의 감옥에서 살아가야 하는 무기 출옥수들의 이야기. 민족주의의 또다른 얼굴 '일본인 처'의 기구한 삶. 우리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이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이다. 선진국의 대열에 떳떳하게 이름을 올리기 위해 우리가 숨기고 피해야 하는 것은 이들의 비참한 현실이 아닌, 그것을 숨기고자 하는 우리들의 비열함 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약자의 편을 들지 않으려 한다. 약자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선듯 그들에게 동조하고 그들의 편에 서지 않으려 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인 그들을 외면하기만 할 때, 그들은 언제나 약자로서의 불이익만을 당해야 한다.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는 것, 그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 것 .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가해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인권을 외면하는 순간, 어느덧 나 자신도 그들과 같은 소수의 약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약자들이 뭉쳤을 때 그들은 더이상 소수의 약자가 아닌 절대 다수의 약자집단이 되어갈수 있다.그 집단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인권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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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전에서 그리 유복하지는 않지만 결식할 정도는 아닌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까지 대전에서 다니고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집단 따돌림이나 폭력 서클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방문교사 일을 7개월간 하다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우리 나라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현재 딸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다. 아주 일반적인 코스를 따라, 커다란 실패나 좌절을 겪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에, 사실 인권이 열악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몸소 느끼지 못했다. 대학 다닐 때에는 전태일 열사에 대해 공부하면서 ‘시다’로 대표되는 이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임금에 분개했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정규직으로 회사에 다니다 보니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직접 겪지 않으면, 또는 가족이나 친지가 비정규직이나 장애, 진폐증 등의 직업병, 외국인과 결혼, 비혼모인 상황이 아니면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인권에까지 마음을 넓힐 여력이 없을 것이다. 비혼모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공감이 가지 않았으나,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쩌다가 서울에 가면 지나가면서 보는 공원이나 역 근처의 노인분들이 떠올라서 가장 마음이 아팠다. 장애나 비정규직은 극복하거나 상황을 전환할 수 있어도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상황을 돌이킬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도 있다. 그렇지만 곳간이 채워지지 않았더라도 이웃과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줄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한다. 책 초반에도 밝혔듯이 다음 시리즈에서는 장애인과 탈북자, 비전향 장기수,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 등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으면, 아니 이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도록 인권이 신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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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내 밝혀주는 〈길에서 만난 세상〉이 나왔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여 펴내고 있는 《인권》에 나오는 글들을 다시금 엮은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러니까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 밝히기 힘든 곳, 중심부보다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이거나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낙후된 곳, 보통 사람들보다 천대받고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과 그 삶터가 드러나 있다.
이를테면 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천대받고 모멸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제 3세계를 떠나 한국에 들어 온 이주노동자들의 애달픈 삶, 가판대·톨게이트·지하주차장·지하상가·전동차 기관실·구두수선 박스 등과 같은 0.3평의 세상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가 2004년 12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임금 노동자 가운데 정규직은 645만 5000명이고, 비정규직은 813만 명에 달한다. 임금 노동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임시직이거나 기간제 고용, 임시 파트, 특수 고용, 호출 근로, 그리고 용역 근로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셈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만만치 않다. 정규직은 작업복이 세 벌 나오는데, 비정규직은 두 벌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정규직이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 작업복을 빨아서 입었던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봉급도 하늘과 땅 차이다. 정규직이 350만원에서 400만원을 받는데 반해 비정규직은 150만원에서 200만원을 받는다. 간식을 받아먹는 것도 그렇다. 정규직은 제과점 빵이 나오는데 반해 비정규직은 구멍가게 빵이 나온다.
어디 그 뿐이랴. 노동현장에서 작업 도중 다치면 산업재해 처리가 되어야 하는데 그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르다. 정규직은 작업 도중 다치면 산재 처리가 되어 병원혜택을 받는데, 비정규직은 산재처리가 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파업도 그렇다. 정규직은 파업을 해도 일당이 나오지만, 비정규직은 그런 것은 아예 꿈도 못 꾼다.
현대자동차 ''에쿠우스''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강쾌환 씨만 봐도 그렇다. 그는 작업 도중 범퍼 모서리에 복부를 찍으며 넘어졌다. 사고 이틀 후 병원을 찾아갔더니 장파열이라고 했다. 거동조차 힘들던 그는 미용 학원에 다니고 있는 큰 딸을 시켜 회사에 그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수술을 마치고 회복할 때까지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한다. 비정규직이 받아야 했던 대표적인 멸시와 모멸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듯 비정규직으로 일한다는 것은 언제 회사에서 잘릴지 모르는 것이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은 쓰다 버린 소모품 정도로 다뤄지는 인생에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현장이 이러하니, 기를 쓰고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그들의 안타까운 시위를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먼 산 불 보듯 할 수만 있으랴.
"무엇을 해 볼 수 있는 만큼 돈은 모았지요. 그러나 사람을 믿는 마음은 많이 잃었어요."(39쪽)
이는 1995년 스물 세 살의 나이로 경북 왜관의 섬유 회사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베트남 출신 ''투안''의 이야기이다. 그때부터 그는 지금까지 일곱 군데가 넘는 작업장을 옮기며 일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미등록 노동자의 신분으로 살았던 것이다.
투안은 그 동안 이주노동자들이 겪을 만한 온갖 풍상을 다 겪었다. 감금 상태로 지내다가 탈출하기도 했고,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고, 장시간 노동과 임금 체불을 당했고, 산업재해로 손가락 마디를 잃기까지 했다. 그래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 일을 벌일 만큼의 돈을 모으긴 했지만, 그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신뢰하는 마음만큼은 저 아래 밑바닥까지 내려가 가 있었던 것이다.
또 있다. 우리나라 서울의 창신동에는 2600개의 봉제공장이 있다. 집들과 섞여, 집들 속에, 집이 곧 공장이기도 한 이 동네에서 국내산 의류 제품의 85퍼센트가 만들어진다. 그만큼 옛날에는 잘 나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의류상들이 임금 수준이 낮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생산해 갖고 오기 때문에 일감이 없는 실정이다.
그만큼 작업 단가도 낮아졌다. 1980년대 말 점퍼 한 장 박음질하는 공임이 5천 원이었지만 지금은 4천 원을 밑돈다. 그러나 디자인은 그만큼 복잡해져 한 장 박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더 늘어난 지경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일감이 없어 고민이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봉제 일에 종사 해 온 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대책을 제시하는 이도 없다.
"창신동의 봉제 노동자들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니다.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라도 보장받지만, 이들은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만이다. 노동자 자신이 일감을 따다 집에서 일하거나, 공장에 나간다 해도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객공'' 방식이다. 피고용인과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은 영세 사업주는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이고, 보너스나 휴가, 수당 개념도 없고, 보험과 연금 혜택도 일절 없다."(279쪽)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내 낱낱이 밝혀주고 있는 이 책은 그렇듯 우리 사회 곳곳의 소외된 사람들과 어두운 부분을 담아내고 있다. 사진작가 김윤섭 님을 합하여 오늘도 네 분의 작가는 그들을 찾아 우리나라 곳곳의 길을 돌고 돈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세상 끝까지 갈 것이다.
길에서 만나는 세상 사람들을 보며, 그들은 한결같이 ''이웃하며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이 덜 아팠으면'' 하는 바람을 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무엇을 해 볼 수 있는 만큼 돈은 모았지요. 그러나 사람을 믿는 마음은 많이 잃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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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르포 문학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왜 내게는 그러한 세상들이 보이지 않았을까?" 라
는 물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분명 내가 살아가는 가까운 곳에 다 있는, 있었던 사람들인데 난 왜
그들의 삶을 보지 못했을까?
이제라도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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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소회된 약자들의 이야기를 짤막하고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각 사연들에 대한 깊이는 아쉽지만,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따뜻한 문장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한순간에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아닐까? 돈을 벌지 못하면, 우리사회엔 설자리가 없다. 오랫동안 '발전'에만 치중하여 달려온 길 뒤에 남겨진 '복지'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2004년부터 다루어진 17개의 이야기들은 이제는 낯선 이야기들이 아니다. 노동자의 인권, 어린 엄마,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우리나라 농촌에 팔려온 아시아 여성들의 비애 등이 사회적 이슈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다. 20년 전에 마지못해 들어갔던 공무원이 지금에 와서는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된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시대에 휩쓸려 사회의 외곽으로 밀려나버린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참 잔인한 사회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주장하고 내세워야 하는데,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 목소리를 내는 길이 너무도 좁고 험하다. 이 책처럼 지식인들이 사회의 소외됨을 논하고,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같이 토론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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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인권>의 '길에서 만난 세상' 꼭지를 한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최소한의 인권보장에서도 소외받는 여러사람을 만나 그들의 사연을 인터뷰한 책이다. 계약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미혼모, 탈학교 청소년, 코시안, 도시의 노인들, 탄광촌 광부, 무슬림, 농촌 청소년, 일본인 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동안 인권에서 소외받는 계층이라는 것을 접해왔지만 참으로 다양한 곳에서 사람답지 못한 대접을 당연하게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주변에 많다. 인권은 다만 머리카락을 잘리기 싫어하는 데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인권에서 소외된 계층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함께 읽어볼만한 책이다. 너무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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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우리나라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권 사각지대를 직접 발로 돌아다니면서 취재해 써낸 글을 엮은 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 미혼모와 소록도 주민들처럼 익숙한 대상들만이 아니라 노인들, 선원들과 농촌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들 등 다양한 계층의 아픔들을 생생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2. 감상평 。。。。。。。
경제 성장, 좋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데 싫다고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근데 방법이 틀렸다. 철저하게 기득권자들의 이익에 맞춰진 정책들과 경제논리들로는 결코 그런 사회는 이뤄지지 않는다. NEVER. 하지만 누가 뭐라고 떠들어대건 간에,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돈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어느덧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측정하는 데 익숙해져버렸고, 자연히 값싼 인간들은 소외되고 말았다. 이 책에 실린 약자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기득권층으로부터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이들의 삶이다.
물론 책에 실린 내용이나 논조에 100% 동감하는 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예를 들어 보호관찰법이 전과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으나, 재범률이 결코 낮지 않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그들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 물론 그 대상을 정하는 방식이나 방법상의 개선은 꼭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술 먹고 미성년자를 성폭행해도 고작 2, 3년 살고 나오는 너그러운 판결을 내리는 한심한 법관들의 인식이 더 큰 문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비춰주고 있는 부분들은 더 이상 음지에만 두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동료 인간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기득권자들의 입장에서는 딱히 보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부분이겠지만. G20 의장국이네, (사전에도 없어 한글 문서에 빨간 줄이 죽 그어지는) ‘국격’이 상승했네 하는 헛소리들만 남발하면서 복지에 대해 얘기할라치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겁을 주는 이 땅의 자칭 지도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여기에 실려 있는 사람들의 처지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우울한 예감이 저절로 든다.
시와 소설들을 쓰고 있는 현직 작가들이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써서 그런지 생생하다. 인권을 다룬 딱딱한 이론서들이나 보고문과는 다른 맛이 있다. 무거운 내용이지만 이렇게 읽을 만하게 쓰니 좋다.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은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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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고스란히 옮겨놓은 책.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로서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을 보며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복지에 대해서... 인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고 있는가 자문해보았다.
이 책은 우리의 시야와 생각의 폭을 트여주게 하며
또한,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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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이 붉은 함성으로 뒤덮였다. 4년에 한 번씩 우리를 찾아오는 월드컵의 열기는 ‘광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대한민국’을 외치는 인파 중에서 외국인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실을 잊어버린 듯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나는 축구가 지닌 어마어마한 힘을 느낀다. 경기가 승리로 끝날 때면 으레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선수들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인양 받아들이는 사람들. 축구는 그들에게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월드컵 기간 중에는 말이다. 하지만 몇몇 외국인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4년 전 대한민국팀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인 것마냥 기뻐했지만 그들의 삶은 전혀 변하지 않았기에… 많은 이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지만, 핑크빛 꿈은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나기 일쑤다. 최저임금도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한국말이 서툴고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도 때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론 신체의 일부를 잃는 불상사를 겪어도 침묵해야만 한다.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 사람들의 일을 빼앗는다, 불법체류자는 추방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들끓는다. 하지만 그들의 한국 경제에의 기여는 정당한 보상을 기대하기 힘들며, 한국의 법은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곳곳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종교가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김선일 씨의 안타까운 희생 앞에서 그들 역시 분노를 금치 못했지만, 성난 군중들은 그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의 외로운 삶을 지탱해주었을 종교생활도 잠시 멈추어야만 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로부터 조금만 벗어나면 그 때부터 날카로운 칼날이 그들을 위협했다. 청소년 아닌 학생이어야만 하는 아이들, 그들의 고달픈 삶은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이라는 한 마디와 함께 모두 정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효율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의 모든 이들이 비몽사몽 상태로 앉아 있기만 한 0교시 수업조차도 학생들의 건강권보다 우선시되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6시 반이면 이미 학교 교실에 앉아있었고, 12시나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지만 새벽 2시까진 밀린 숙제들을 처리하기에 바빴던 내 지난 날. 그 시절 나는 교과 이외의 독서마저도 사치처럼 여겨져 자제했던, 말 그대로 공부하는 기계였었다. 정규 교육의 틀 안에 있는 ‘학생들’의 괴로움은 사소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난 이들을 향한 비난은 더욱 컸다. 성인이 되기 전 한 생명을 품은 아이들. 학교로부터 배제되고 사회로부터 매장당했지만, 마치 모든 잘못이 그녀의 방탕한 생활로부터 기인한 것 마냥 함께 고통을 나눠야 할 남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대책 없이 낳아 입양을 보낸다며 질타하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아이를 키우고자 노력하는 그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부재했기에, 준비되지 않은 어린 엄마들에게는 아이를 포기하는 것만이 가능했다. 한류 물결이 휩쓸고 간 길에 남은 것은 동남 아시아 여성들의 애환이었다. 나아질 기미가 없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배를 타는 사람들이 있었고, 70-80년대 경제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을 광부들은 진폐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희망이 없어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과 떠날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 아, 잘 살기 위해 버둥거리기만 했지 외로움을 호소하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는 늘 외면했던 거 같다. ‘인권’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인간이고 생명이기에 고귀한 것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