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았던 허황옥 신화와 사소 신화는 처음 접하는 내용이었는데 여성신화주인공들을 다룬 내용이다. 단군, 주몽, 수로, 혁거세에 관한 신화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룬 신화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허황옥은 가락국에 도착해 제일 먼저 망산도에 발을 디뎌 망제를 올려 토착신에게 예를 갖추고 산천제를 올림으로써 통과의례인 이주이례, 입사의례를 행한다. 이러한 행위는 후에 지모신인 허황옥의 내림을 기념한 모의제의로 계승된다. 허황옥은 특히 수로왕이 자신을 직접 맞이할 것을 요구하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관념에서 본다면 굉장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남녀차별 혹은 남성우위가 강한 사회 속에서 옛날 가락국 시대에 어디서 온 지도 불분명한 허황옥의 이러한 요구는 신선하다. 이런 허황옥의 힘은 열 명중 두 아들이 허씨성을 받은 점에서도 드러난다. 구지봉에서 강림한 수로와 망산도에 내림한 허황옥은 대등한 위상을 가지고 혼인생활을 했음을 보여준다. 허황옥은 비난 바지인 능고를 벗어 산령에게 페백으로 바친다. 이렇게 제를 올림으로써 또 한번 정식 이주이례를 치룬다. 또한 수로왕을 만나기 앞서 성인,혼인의례를 치룬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바치는 제물이 비단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비단은 신성성을 드러내는 징표인 것이다.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여신들은 모두 비단을 통해 신성성을 확보한다는 허황옥은 누구도 지니지 않았던 선진문물과 기술을 지님으로써 신화주인공의 배필이자 지모신이 된다. 직라술은 당시 선진 문물로서 그 자체로 신성성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중국 황제의 딸인 사소는 배를 타고 진한에 도착하여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기록이 있다. 즉 사소는 신모이자 지모신인 것이다. 사소가 배를 타고 진한에 도착했다는 점에서도 배를 타고 수평으로 내림한 허황옥과 세오녀와 동일하다. 역시 붉은 비단을 통해 그 신성함을 인정받았다는 점 또한 같다. 배를 타고 내림해 비단으로써 신성삼을 입증하는 신화구조는 내림하는 여성신화주인공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사소 외에 운제신모, 지리산신모, 치술 신모등이 성모 내지 신모라 불리는 신격이다. 그러나 이들은 신화시대에서 멀어질수록 신모나 성모의 성격은 차츰 약화되거나 보편화 되는 경향을 보인다. 후대로 갈수록 여성신화주인공들의 의미가 점차 약화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마도 시대가 흐르면서 점차 그 설 곳을 잃어버려갔기 때문일까. 수많은 전쟁을 통해 기존 국가가 멸망하고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고 하는 과정을 반복해 오면서 남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여성은 자연스레 내조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면서 소극적인 이미지로 전락하고 기존의 당당하고 능력을 인정받던 여성신화주인공들의 의미는 잊혀져간 것이 아닐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 자체로 신성성을 인정받던 비단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약화되고 변질되었는데 여성신화주인공이 자체로서 신성성을 부여받던 신체로서가 아닌 일종의 성공하기 위한 매개물로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여성의 역할이 약화되어 가는 모습을 또 한 번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위치를 개척해 나가는 모습과 꿈을 사 남성과의 혼인을 통해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모습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안타깝다. 계속 신화를 읽어나가면서 사실 놀라움의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여러 신화주인공들 속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차이점들을 보면서 그것들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분석하며 읽다보니 쉽게 읽히리라 생각했던 이 한권의 책은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타고난 신성성과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무적시련을 통해 입증하고 더욱 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인 나는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타고난 무언가도 없으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세상 한탄만 하면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이 적어도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 지금 자리에 만족하지 말고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 발전을 거듭하는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유형의 문화유산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사라져가는 무형유산은 관심이 없다. 이중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전승되어온 구비문학의 중심에 신화가 있다. 신화는 민족공동체 의식의 핵이며 오늘 삶속에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다. 신화는 우리 민족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르이자 단서이다. 분단 현실 속에서 남북을 이어줄 유일한 연결체는 민족이다. 고리타분하고 국수적인 민족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국가로서 다시 도약해 나갈 수 있는 기회의 발판으로서의 개념이다. 신화는 그냥 흘러간 옛이야기들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뿌리를 찾고 우리는 그것을 보존하여 계승해 나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물론 이 한권의 책을 읽고 아 잘읽었다. 재밌었다 하는 단순한 감상이라도 소중한 것이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무언가 깨달음 바가 있고 그것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분명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옛 역사를 통해 잘못된 점은 비판하고 그것을 교훈 삼아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적용하여 발전해 나가는-역사를 배우는 이유처럼 신화 역시 이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신화 또한 우리의 역사의 한 부분이며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지켜 나가야 할 문화유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