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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는 것은 저자의 사관(史觀)을 읽는 것이다. 그간 한국사 기술에 대한 기억를 더듬어 보면 일제 시대의 왜곡에 대한 수정이 가장 큰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거기에 이념 대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형국이었다. 즉, 민족주의적 사관이라는 안경을 쓰고 역사를 보면서, 그것도 모자라 그 위에 이념이라는 셀로판지를 붙여서 보는 식이었다. 셀로판지 색깔이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자기 취향대로 보기도 하면서. 이는 역사가 정치 투쟁의 도구로서 기능하는 사회적 풍토의 반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면 역사는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실제 역사학계의 흐름은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부흥하여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유물과 사료 등의 탐구에 근거한 역사 연구를 반영하고 있다. 역사가 과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도구로서 그 기능을 제대로 기능하려면 최대한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돗수의 안경을 쓰고 색깔을 빼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유리하리라.
김준길 교수의 저서 "매크로 한국사"는 그러한 면에서 최신의 역사학적인 관점과 보편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반영하고 있는 간결한 한국사 개론서 또는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특히, 본서에는 사회학자로서, 국제외교 전문가로서의 저자의 역량이 농축되어 있으며, 한국사의 대표적인 급변기에 대한 각종 사료를 동원한 현미경적인 관찰은 독자가 실제 상황을 재구성하는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각 시대를 주도하는 패러다임 분석은 한국사 변동의 큰 틀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전범을 제시한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유용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다.
'변화는 우리 사회를 쥐고 흔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두려워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두 팔 벌려 그것을 환영한다네. 항상 새로운 사고에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사람, 항상 자신의 잔을 비워두는 사람은 언제나 보다 높은 성취의 문에 도달할 수 있네.'
- 로빈 S. 샤르마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 -
여전히 열강이 각축하는 장이자, 이념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한 패러다임의 변동을 설정하고, 그 흐름에 대한 주체들의 반응이 역사를 결정지었다는 관점은 급변하는 현 시대에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하겠다. 특히, 석가탑과 다보탑으로 비견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코드는 저자의 한국사 이해의 또 다른 주요한 코드이다.
또한, 7장 "일제강점시대의 한국"과 8장 "분단시대의 한국"에서는 그동안 "피해자"를 위한 고소/고발인 입장에서 기술된 역사에 익숙한 나에게 새로운 시각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대한 구체적인 진실을 아는 것이 현실을 이해하는데 큰 힘이 될진데, 이제는 과거의 아픔을 딪고 세계를 향하여 더 큰 걸음을 걸어나가야 할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균형잡힌 정보를 전해준다.
전문 사학자가 아닌 핸디캡을 저자는 문화 공보 전문 외교관으로써 수십년간 갈고 닦은 안목에서 나오는 보편적 시각와 다양한 사료의 사용으로 보완하고 있다. "매크로 한국사"라는 제목에서 처럼 주로 거시담론에 치중하면서도, 저자의 개인적인 일화들, 일제시대의 다양한 사료들, 한국전쟁의 반발에 관련된 논쟁들, 김일성이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뒷 이야기들,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집권 과정까지도 다양한 사료로 제공하여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 책의 원본이 저자가 작년에 외국인 고교/대학생을 위한 한국사 교양 입문서로서 해외에서 출간한 책 "The History of Korea"였기 때문에 분량도 교양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그 무렵 한국의 대학생들은 분단시대의 정치적 제약으로 칼 마르크스와 같은 좌파 사회학을 정면으로 공부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이 일본과 서유럽은 물론 미국에세도 풍미하고 있던 1960년대 말, 한국에서는 공개된 강단을 피해 지하 서클로 잠입해 들어갔다. 지하 서클에서는 냉정한 교사의 머리를 빌리지 않고 뜨거운 가슴으로부터 사회과학 사상을 교육받게 된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객관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그렇게 정치적 운동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아 왔다. |
| 외교관이 쓴 매크로 한국사가 전체적인 제목이다. 역사책을 많이 읽은 나로서도 굳이 외교관이 쓴 매크로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외교관이 썼으니 약간 실용적인 것이 아닐까, 매크로라고 하니 좀 넓은 관점에서 무엇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여 년간 정부의 해외홍보 업무에 종사했던 저자가 2005년 초, 미국 그린우드 출판사의 세계 각국 역사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한 그린우드 영문 한국사를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쓴 한국사이다. 200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의 책에서 어떻게 긴 한국의 역사를 담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브리검 영 대학의 마크 피터슨 교수는 한국역사 교실에서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문제를 준다고 한다(21쪽). 한국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느냐고 물으면서 10,000년 전부터, 5,000년 전부터, 기원전 2,333년부터, 2,000년 전부터, 기원 414년부터, 기원 668년부터, 약 350년 전부터, 1948년부터, 이상 모두 맞다는 항목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기원 414년은 압록강변에 세워진 광개토대왕 비문을 쓴 시기를 말한다. 다른 항목은 대강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른 것에 있다. 우리는 역사를 너무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 운운하는 말이 이것을 나타낸다. 저자의 말처럼 민족사에 대한 실망과 좌절은 극단적인 국수수의로 내딛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타미라 교수의 스페인사에 따르면 1장 페니키아 식민시대, 2장 그리스 식민시대, 3장 로마제국 속주시대, 4장 아랍 점령시대……. 16세기 세계를 지배한 대제국으로 발전한 스페인의 5천년 역사는 식민지 역사부터 시작한다. 알타미라 교수는 스페인이 대제국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수천 년 동안 다양한 지중해 문명의 지배를 받으면서 형성된 세계주의의 힘이라고 한다(29쪽). 외래문명의 지배를 받아온 오랜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 스페인 세계주의는 또 그만큼 광범하게 문화의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스페인의 위대한 역사에 감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도 국수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자기 나라의 역사만 최고로 아는 사람들이 쓴 역사가 제대로 된 역사일 수는 없다. 물론 지금까지 일본에 대한 상대적인 관점의 문제점으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새로운 세대에서는 무엇인가가 달라질 것으로 믿는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구석기 유물인가를 땅에 묻었다가 다시 파내는 해괴한 일을 벌였을 때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일본 동경박물관에 가보면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저자가 말하듯 어떻게 문명발달의 후진단계에 있는 야마도 왜왕정이 거꾸로 바다를 건너 한반도의 선진 가야왕국을 점령하고 200년간이나 경영할 수 있었겠는가?(43쪽) 게다가 한반도에서 도입된 일본열도의 구식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 보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가야왕국을 제압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이 가진 전선의 크기로 보아 낙동강 유역을 지배할 규모의 많은 병력을 일본열도에서 수송할 능력이 없었다. 이상 여러 가지 의문점을 전제로 할 때 도저히 일본의 한반도 남부 경영설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44쪽). 그런데도 현재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세계사 교과서들은 바로 이 임나일본부설을 마치 동아시아 역사의 정설처럼 삼고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출판한 그린우드 영문 한국사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실용적인 관점에서 타당한 사관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관을 반박하기 위한 협소한 사관보다 새롭고 중립적인 사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크로 한국사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