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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고구려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광개토대왕' 이나 '고주몽' 정도 였다. 그 외에는 역사적 사료가 부족하단 이유로 많이 무시되었고, 무슨이유에서인지 '신라 중심'의 역사관이 지배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선 주로 신라의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기에 그러했을텐데, 요즘은 전혀 이야기가 다르다. 오히려 삼국의 중심은 '고구려'이다. 삼국을 통일한 나라는 신라인데 왜 고구려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잃어버린 대륙에 대한 향수가 아닐지, 혹은 강대국에 끼어 제 할말 못하는 우리의 위치가 그 옛날 중국과 대등하게 맞섰던 고구려의 모습에 비해 너무 초라해서 그런게 아닐까.
이런 모습에 발맞춰 근래에 고구려와 관련된 사극이 TV에 많이 방영되었다. 얼마전 끝난 대조영 이야기도 그러하고, 작년까지 난리도 아니었던 주몽이야기, 그리고 얼마전 끝난 광개토대왕 이야기까지.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새롭게 재조명된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연개소문'이다. 우리에겐 '고구려말의 정치가, 철권통치를 단행하였고, 당의 침입을 막았다.'고만 알려진 그 인물에 대해 요즘은 정말 이상하리만치 자세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듯 하다. 아무튼 과거 훌륭한 선조의 업적을 재조명 해본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니 환영할 만 하다. 그가 충신이었는지, 역신이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고구려를 단결시켜 당태종의 침입을 저지시켰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후 신라의 삼국통일에도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우리힘'에 의한 삼국통일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 된게 아닐까란 생각도 해본다.
백제와 신라의 끊임없는 무력충돌을 야기시켰던 무왕 부여장은 이제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하게 되고, 신라는 새로운 여왕 등극 이후 나라의 면모를 일신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던 차에 부여장은 숨을 거두게 되고, 이후 해동증자라 칭하던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이 등극한다. 의자왕은 즉위 초 그 총명함을 바탕으로 나라의 힘을 더욱 굳게 만드나, 스스로에 대한 과신으로 조금은 불안한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그의 치세는 두고 볼 일이고..
한편 고구려는 남진파인 '건무'왕의 치세에 있었는데, 당제국이 중국 전역을 장악하자 유화책을 쓰곤 있었지만, 위협을 느껴 요동에 천리장성을 쌓게 명한다. 장성 축조는 엄청난 공역으로 이로 인한 요동의 민심은 철저하게 나라에서 멀어진다. 이때 한 인물이 등장하니 바로 서부욕살 연태조의 아들인 연개소문이다. 그는 아비가 죽자 그 직위를 승계하는데, 그를 두려워한 왕이 장성 감독을 지시하자, 내심 반기를 들 기회를 노리게 된다. 요동순행을 통해 민심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드디어 군대 사열을 빙자하여 조정 관료들을 모두 소집, 그 자리에서 자신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척결한다. 그리고 곧바로 왕성에 난입하여 건무왕을 살해하고, 그 조카인 보장을 옹립한다. 드디어 연개소문의 철권 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한편 신라는 백제의 공격에 동맹을 고민하게 되는데, 그 대상을 놓고 고구려와 당나라를 저울질한다. 고구려와 동맹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당나라와도 동맹이 필요한 상황. 그 상황에 혈혈단신 김춘추가 고구려에 사절로 가게 된다. 이제 삼국은 새로운 세대들에 의한 새로운 시기에 접어들었는데.. 삼국을 오가는 외교전이 시작되고, 그 치열한 역사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다.
결과론이지만, 신라는 당과 동맹을 맺게 된다. 고구려와 동맹이 되었다면 역사는 정말 달라졌을 것이고, 통일의 주역은 어쩌면 고구려가 되었을런지 모른다. 아니면 백제던가.. 그런데, 당시 고구려의 실권자였던 연개소문의 눈에 신라는 정말 하찮게 보였을지 모른다. 중국과 상대하려는 마당에 신라의 동맹 제의는 별 이득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에 직접 견제가 가능한 백제쪽이 나았을지도.. 아쉬움이 남지만, 역사는 역사.. 그렇게 흘러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