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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고구려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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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경상도와 전라도는 소백산맥을 경계로 서로 지리적인 격리를 통해 나름의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삼국시대 이래로 치고박는 전란의 와중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고, 이후 신라에 의해 통일을 이루었지만, 고려가 성립되기 전 다시금 후 삼국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약간은 다른 의미이긴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는 조금 다른 정치적 성향을 띄고 있는
"백제, 고구려의 멸망." 내용보기

일찌기 경상도와 전라도는 소백산맥을 경계로 서로 지리적인 격리를 통해 나름의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삼국시대 이래로 치고박는 전란의 와중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고, 이후 신라에 의해 통일을 이루었지만, 고려가 성립되기 전 다시금 후 삼국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약간은 다른 의미이긴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는 조금 다른 정치적 성향을 띄고 있는데, 모두 다 옛 시절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그래도 요즘은 어딜 가나 말도 통하고, 매체의 발달로 문화적 차이도 줄었으며, 지역간 인적 교류 역시 적지않아 과거처럼 배척하는 사이는 아니라 생각된다. 하지만,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과연 수백년간 남의 나라라고 생각하던 사이를 하나로 묶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시엔 모든게 '느릿느릿' 했을터인데.. 이런 의미에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법민)의 역할은 심히 크다 할 수 있겠다. 김유신, 김춘추, 김법민 이 3인이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 삼한 통일을 이룬 것이니, 그 시기가 아주 절묘하다.

 

아무튼, 백제를 향해 군사를 동원한 당나라와 이에 호응한 신라. 드디어 백제는 백척간두에 서게 되고.. 나당 연합군에 대응하는 이는 우리가 잘 알다 시피 황산벌의 5천 결사대뿐이다. 계백이 이끄는 이 군대는 신라의 침입을 일시 저지하기는 하지만, 군사적 열세(5만 vs 5천)를 극복하지 못하고 관창과 반굴의 고사만 남긴채 백제군의 전멸로 끝나고 만다. 그 이후는 연합군의 탄탄 대로.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의 관리들은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고, 백제땅에는 당나라의 감독기관인 도독부가 설치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고구려에서도 일이 벌어지는데, 바로 연개소문의 죽음이었다. 천수를 다해 죽었으니 변고는 아니지만, 그가 죽은 이후 고구려는 분열의 상황을 맞이한다. 연개소문의 철권통치아래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고 권력공백이 발생하여 저마다 자신의 권력추구에 몰입한 것이다. 결국 연개소문의 장자 남생은 당나라로 도망가고, 동생들인 남건,남산을 향해 칼을 들게 되고, 당군을 앞장 선 남생은 고구려 멸망의 일등 공신이 된다.

 

고구려, 백제 두 나라의 멸망은 일순간이었다. 솥발처럼 버티고 서 있던 구조가 한쪽이 무너지자 급속히 쏠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의 힘을 빌어 이룬 두 나라의 멸망은 곧 신라의 영토확장을 의미하진 않았다. 오히려 신라를 노리는 당의 야심을 괴멸해야 했다. 진정한 통일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의 고토에서 시작된 부흥운동. 백제의 흑치상지, 부여융, 고구려의 안승과 검모잠. 이들은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이제 삼한지 마지막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s******4 2008.01.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