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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313 이정록 지음 문학과지성사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穴居時代>가 당선되어 등단한 시인이라고 한다.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문학동네, 1994)>, <풋사과의 주름살(문학과 지성사, 1996)>,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문학과 지성사, 1999)>, <제비꽃 여인숙(민음사, 2001)>에 이은 다섯 번째의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1부 : 쥐눈이별, 2부 : 머리맡에 대하여, 3부 : 더딘 사랑, 4부 : 햇살의 손목으로 나누어, 각각 1부에는 「어린 나무의 발등」을 비롯한 15편의 시를, 2부에서는 「촛불들」, 3부에는「」, 4부에는 「콩나물」 외의 열다섯 편의 시를 수록하였다. 그 중에서 1부 쥐눈이별에는「어린 나무의 발등」에 이어 시집의 제목과 같은「의자」라는 시를 싣고 있는데, 표제작인 이 시를 통하여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과 함께 현재 2015년의 상황을 연결해 보고 사물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집 이외에도 시우화집 <발바닥 가운데가 오목한 이유(청년정신, 1998)>이 있다고 한다. 일단 '의자'라는 제목의 그의 시를 살펴보면,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실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 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
1. 2000년~2015년 까지 한국 사회에는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자 대통령이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전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한 세월호 사건이 떠오른다. 2. 위의 시를 읽고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의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는 어린 부모와 아픈 아들이 등장하고, 이 시에서는 늙은 어머니와 아들을 포함한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2015.3.1.(일) 이은우(중2) |
|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어머니의 목소리를 빌어 의자에 대해 얘기하는 시인에게 세상은 별 게 아닙니다. ‘싸우지 말고 살아라 /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가 곧 세상살이가 아니냐고 노래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발 아프면 쉬어가라고 ‘의자 몇 개’ 무심코 대접하는 것.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금 지구라는 별을 잠시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겠는지요.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의자에 앉는 대상은 사람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에서 알 수 있듯이 참외며 호박 같은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모두 한식구입니다. 아울러 ‘꽃도 열매도, 그게 다 /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라는 발언 속에는 세상살이의 기쁨과 슬픔, 나와 너, 사랑과 이별, 탄생과 죽음, 낮과 밤 등이 모두 서로에게 의자라는 인식입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것이 없습니다. 삶은 서로에게 의자가 되어주는 것이라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시집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시인의 따뜻한 시선은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아직도 농사를 짓는 칠순 노인들에겐 공짜 술과 안주를 올리고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들에겐 막걸리 한 주전자쯤 서비스하는 것이다 밤 열 시나 열두 시쯤에는 발동기를 한 번씩 돌려서 식어버린 가슴들을 쿵쾅거리게도 하고, 조금은 슬프기도 하라고 봉지 쌀을 나눠주는 것이다 마당엔 소도 두어 마리 매어놓고 달구지 위엔 볏가마니며 쌀가마니를 실어놓는 것, 몰래 가져가기 좋도록 쌀가마니나 잡곡 가마니에 왕겨나 쌀겨라고 거짓 표찰도 붙여놓는 것이’(「좋은 술집」)라고 직접 드러내기도 하고, ‘불씨를 살리고 있는 추운 별들 / 점검해야 할 것이 하늘뿐일까’(「쥐눈이별」)라며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의 이러한 따뜻한 시선 속에는 남다른 유머도 있어 시를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개도 브래지어를 찬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은 아이들을 쏙 빨아들인다 심심해진 운동장 한가운데로 어미 개가 강아지 여섯 마리를 데리고 간다 이렇게 넓은 세상도 있단다 이렇게 넓은 세상도 작은 모래알들이 주인이란다 젖통을 출렁거리며 제 새끼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새끼들은 자꾸 급식실 식단표 고등어조림에다 코를 들이밀 뿐이다 참고 젖이나 먹자고, 서둘러 운동장을 벗어나 문방구 안마당으로 들어간다 어미 개가 밥그릇에 주둥이를 들이밀자 콩꼬투리처럼 젖통에 매달리는 새끼들 젖을 가리기엔 우리들의 입이 젤 좋지요 뒷발에 힘 모으고 쪽쪽 쪽쪽 젖을 빤다 강낭콩 같은 젖꼭지들이 제 브래지어의 솜털을 흠씬 적셔놓는다, 어미 개만이 브래지어를 찰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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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환기를 시키고, 메일을 확인하고, 다시 밥을 먹으려고 밥솥에 취사 버튼을 눌렀다. 읽고 있던 책이 있었지만, 그 책을 덮고 이정록의 시집 『의자』를 든 건 소란스러운 내 마음 때문이다. 수록된 시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세어보니 <어린 나무의 발등>부터 <풀뿌리의 힘>까지 모두 61편의 시였다. 알고 있었던 <의자>처럼 한결같이 따뜻한 시들이었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사물들이 시의 소재였다. 곧 우리의 삶을 시라는 이름으로 마주한 것이다.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 먹기가 참 쉽지 않다. 이런 시는 나를 웃겼다가 끝내 울리고 말았다. 어느 집 수저통에 한 벌쯤 있을 젓가락을 소개로 한 시다. 처음엔 똑같았을 젓가락들이 어느새 한 쪽만 닳아버렸다. 어머니와 주고 받는 농 비슷한 말들이 우스워서 웃다가 마지막 연에서 그 웃음이 울음으로 변해버렸다. 한 쪽만 닳아버린 젓가락이 집집마다 남겨진 수많은 어머니 같아서, 연인을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그 누군가 같아서 말이다.
옻나무 젓가락
십 년도 더 된 옻나무 젓가락 짝짝이다.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한쪽만 몰래 자랐 나? 아니면 한쪽만 허기의 어금니에 물어뜯겼나
어머니. 이 젓가락 본래부터 짝짝이였어요? 그럴 리가. 전 그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간데요. 저런 싸 가지를 봐. 같은 미루나무라도 짧은 쪽은 네 놈 혓바 닥처럼 물 질질 흐르는 데서 버르장머리 없이 크다가 물컹물컹 제 살 아무 데나 쓸어 박은 것이고, 안 닳은 쪽은 산 중턱 어디쯤에서 나마냥 조신하게 자란 게지. 출신이 모다 이 어미라도 동생들 봐라. 물컹거리는 녀 석 있나? 장남이라고 고깃국 먹여 키웠더니, 뭐? 그 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가라고? 배운 놈이 그걸 농 이라고 치냐? 젖은 혓바닥이라고.
저녁밥 먹고 어머니와 나란히 바깥마당으로 나오며 짝짝이 젓가락처럼 발끝 머리끝을 맞춰보는데 솥바닥을 뚫고 나가 불길이 되고 싶었나? 서러워라, 어머니 쪽에서 불내가 솟구친다. 숟가락 내동댕이치고 서둘러 떠난 식구들 저 밤하늘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먹고 있나? 녹슨 양철 지붕 위로 옻칠 부스러져 내린다. (p. 40~41)
사는 건 참 별 게 아니라고 하는데, 누구나 같은 생을 산다고 알고 있는데, 사는 건 왜 이리 힘들까. 철물점에서 마주한 톱날에게서 투명한 물결을 본 시인은 이런 시로 삶을 위로한다.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는, 고난한 일상이 힘겨운 누군가에게 ‘누구나 톱날 하나쯤은 악다물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내가 가진 톱날은 과연 하나뿐일까. 그 톱날로 자르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내 마음 속 톱날이 무뎌지기를 바라야 할까, 더 강해지기를 바라야 할까.
결
철물점에 갔다가 톱날 묶음을 보았다 톱니들이 물결처럼 보였다. 손을 대면 물방울이 튀어 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톱날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누군들 자르는 일에 몸담고 싶으랴 톱날을 어루만지며, 나는 얼음집에 가면 톱으로 엉킨 물을 푼다고 말했다 믹서의 톱날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빨을 번뜩이며, 자기는 정말 파도를 닮아서 크게 한 번 출렁이면 천 년 묵은 고목도 순간이라고 으스댔다 누구나 톱날 하나쯤은 악다물고 살아간다고 내가 아는 실패한 친구에 대해 말해주었다 너는 토막 난 쇳조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녹슬 줄밖에 모르는 불쌍한 말년이 될 뿐이라고 타일러 주었다. 일생 억눌려 사는 바위도 결만 좋으면 구들장이 될 수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러자 톱날에 껴 있던 파도 한 줄기가 내 마음의 얼음장을 톱질하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물결 소리가 들려왔다 시린 철새의 발가락도 보았다 깃털 속으로 햇살 들이쳤다 (p. 56~57)
겨울이니 <겨울밤>이란 시에 눈이 간다. 옥탑방에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 옥상에 보일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가족, 살 부비며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식구들이 모여 앉은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양각색 빨래집게처럼 저마다 색을 지닌 가족들. ‘내가 저 보석 지붕을 받들고 선 주춧돌이다’란 구절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든든한 남편, 좋은 아빠이고 싶은 사내의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겨울밤
보일러를 녹이려고 옥상에 오른다.
하루 내내 이가 시리도록 일한 빨래집게들. 서걱거 리는 옷가지들을 다 건네주고 빨랫줄 한가운데에 모여 있다. 빨랫줄에도 아랫목이 있나? 오목하게 모두 모 여 찬바람을 비끼고 있다. 언 뼈를 부닥뜨리며 겨울밤 을 건너가고 있다.
손전등을 밤하늘에 비춘다. 어리둥절 비틀거리던 기둥 하나가 허공에 선다. 그 불기둥을 따라 추운 별 들이 내려온다. 내가 저 보석 지붕을 받들고 선 주춧 돌이다.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던 약속이 있었지, 한 사내가 쓴웃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아이 방 한가운데 작은 이불 속에도 빨래집게 같은 다리들이 아랫목을 만들고 있다. 차갑지? 내 시린 무릎을 디민다. 별꼴이야. 별꼴이라고? 그렇지. 가족이 무릎을 맞대면 별꼴이 되지.
그 누가 빨래집게들의 가슴마다 목걸이 하나씩을 채 워줬나? 깊은 밤 한 사내가 누군가의 목덜미를 쓰다 듬는다. 빨래집게는 그 팽팽한 철사 목걸이의 힘으로 이 악물고 일만 하나? 끄응, 별꼴이 돌아눕는다. 기름 떨어진 보일러처럼, 거칠게 바람이 빠진다. (p. 92~93)
이 시집에는 유쾌하고 정겨운 시들이 많다. 그 유쾌함은 절대 가볍지 않고, 그 정겨움엔 많은 것들이 박혀 있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마음, 자연과 사물에 대한 애틋한 마음, 앞으로 살아갈 우리 생에 필요한 위로와 격려가 함께 있었다. 그래서 더 좋았고 그래서 더 따뜻했다.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p. 10~11)
우리는 서로에게 고단한 삶은 쉴 수 있는 의자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의자가 된 풍경을 함께 바라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지금 나를 받히고 있는 의자에게 고맙다. 흔들리는 나를, 넘어지지 않게 잘 잡아준, 앉을 수 있는 ‘의자’란 이름의 당신에게 고맙다. 나도 당신에게 의자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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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이다 내 고향 양지편 방앗간을 1호점으로 해서 ‘참새와 방앗간’을 백 개 천 개쯤 여는 것이다 그 많은 주점을 하루에 한 곳씩 어질어질 돌고 돌며 술맛을 보는 것, 같은 술인데 왜 맛이 다르냐? 호통도 섞으며 주인장 어깨도 툭 쳐보는 것이다 아직도 농사를 짓는 칠순 노인들에겐 공짜 술과 안주를 올리고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들에겐 막걸리 한 주전자쯤 서비스 하는 것이다 밤 열 시나 열두 시쯤에는 발동기를 한 번씩 돌려서 식어버린 가슴들을 쿵쾅거리게도 하고, 조금은 슬프기라도 하라고 봉지 쌀을 나눠주는 것이다 마당엔 소도 두어 마리 매어놓고 달구지 위엔 볏가마니며 쌀가마니를 실어놓는 것, 몰래 가져가기 좋도록 쌀가마니나 잡곡 가마니에 왕겨나 쌀겨라고 거짓 표찰도 붙여놓는 것이다 하고많은 꿈 중에 내 꿈 하나는, 오도독오도독 생쌀을 씹으며 돌아가는 서늘한 밤을 건네주고 싶은 것이다 이미 멈춰버린 가슴속 발동기에 시동을 걸어주고, 어깨 처진 사람들의 등줄기나 사타구니에 왕겨 한 줌 집어넣는 것이다 웃통을 벗어 달빛을 털기도 하고 서로의 옷에서 검불도 떼어주는 어깨동무의 밤길을 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논두렁이나 자갈길에 멈춰 서서 짐승처럼 울부짖게 하는 것이다. (『의자』 이정록 시집. 문학과지성사) 전방(廛房) 술집 고교 시절, 여름. 우리는 주일 중에는 도시에서 학교에 다녔고, 주말이 되면 시골집으로 모여 들었다. 밤이 되면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동네에 오직 하나 있는 전방(廛房) 술집으로 모였다. 전방 주인은 어른들이 꼽새로 부르던 동네 형님이었다. 막걸리를 마실 때는 마당에 멍석을 펴고 앉아, 양동이에다 닷 되들이 한 말 술을 부어놓고 된장에 풋고추를 안주로 해서 마셨다. 마시다 취하면 오바이트를 했고, 노래를 부르다 지치면 멍석 위에서 그대로 잤다. 어른들은 우리를 꾸지람하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공부 대신에 논에 나가 어른들과 같이 논매기를 하거나, 소를 몰고 나가 꼴을 베야 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해가 뉘엿거리면 쌀과 김치를 들고 우르르 몰려 도시로 나가야 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청년들은 군대에 갔고, 제대를 한 형님들은 돈을 버려 먼 도시로 갔다. 우리가 떠난 전방 술집에서 어른들은 주일 내내 왕소금을 안주로 해서 소주를 많이 마셨다.
하고 많은 꿈 중에 내 꿈 하나는, 전방 술집을 찾아 단골이 되고 싶은 것이다. 열두 시가 되면 전기를 끄고, 촛불을 켜 주는 주인장의 큰 얼굴을 보는 것이다. 등에는 거인 그림자를 달고 마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