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모더니즘의 열풍은 ‘절대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의 성벽을 분쇄해왔다. 그렇기에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이는 영역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학문하는 이의 자세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도 사회의 많은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단 한 가지의 이론에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결론은 같을지라도 과정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이 용납(?)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지구본을 하나 선물로 받았다. 여전히 책상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지구본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표기되어 있다. 약간의 오차는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둥근 지구의 모양을 그대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지구본을 지구의 축소판으로 볼 수 있다. 각각 다른 색으로 표기되어 있는 수많은 나라들, 지구본을 돌려보는 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 마냥 현실에서는 인식하기 힘들었던 것들이 지구본을 통해 새로이 떠오른다. 가장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작은지, 지구본에 그려진 타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작다’라는 관념적인 느낌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렇기에 지구본은 세계를 인식하고, 나아가 세계 안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이다. 하나의 기준으로서 지구본이 지니는 의미는 절대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내가 가진 지구본은 고정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결코 진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이미 1991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련도 나의 지구본에서는 버젓이 살아있으며, 1993년 분리된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지구본 속 세계에서는 현존하고 있다. 구 소련의 붕괴 이후 탄생한 수많은 국가들 역시 지구본만 가지고 세계를 파악한다면 ‘없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렇듯, 객관적으로 보이는 지도 역시 사회성을 지닌다. 지도는 객관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지만 현실에 변화가 가해지면 지도 역시 변화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지도는 현실 자체 혹은 그 복사물과는 또 다르다. 2차원적인 평면에 표현되는 3차원적인 세계는 제작하는 이의 선택에 의해 부단한 생략의 과정을 경험한다. 존재하는 모든 길이 지도에 표기되진 않는다. 때로는 지하철 노선표와도 같이 거리나 위치마저도 무시된 체 역과 역 간의 상관관계가 중시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삶을 통해 우리가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국소적 공간 그리고 지도 등의 형식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전역적 공간이 그것이다. 전역적 공간이라 하여 꼭 전체일 필요는 없으며, 이는 과거 인류가 그려온 수많은 지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앎의 영역이 고정되어 있던 과거,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들을 비워두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고안해낸 것들로 가득 채워왔다.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아보리지니의 그림지도나 가쥬 다아크족의 세계도 등은 인간의 인식이 지도의 모양을 어떻게 결정짓는지 잘 보여준다. 심지어 원리적으로는 과학적이고도 보편적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도 달의 산맥, 미지의 대륙 등 관념적인 대상들이 존재한다. 물론 측량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이러한 상상력이 발휘될 가능성은 현대로 올수록 급격히 줄어들게 되지만 말이다. 콜럼버스는 당대 유통되던 지도를 통하여 획득한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그에게 푸에르토리코가 서인도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인간의 상상력이 발휘된 지도에 의해 인간이 구속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부자연적으로만 보이는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들도 민족, 여타 다른 요소들을 모두 뛰어넘어 지도에 표기된 국경에 의해 인위적으로 한 국가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관념보다는 이성이, 부정확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이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오늘날, 어쩌면 우리는 확실하게 보이는 지도를 통해 우리 자신의 현실을 재창조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이 미지의 땅이 아닌 대한민국, 서울 XX동이라는 사실을 확인 받아야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는 것 마냥,… 지도는 불확실성을 경계하는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왔던 게 아닐까? 그리고 지도에 가미된 적지 않은 상상력이 우리 자신을 재창조하고 있는 게 아닐지… |
| 누구를 위한 책인가? ''지도의 상상력''... 대충 어떤 책일 거다..하는 짐작을 갖고 이 책을 열었지만, 그런 내 짐작과는 상당히 벗어났다. 지리적, 역사적 감각이 무딘 편인 나이기에 ''상상력''이라는 비질서의 단어가 안도감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학자인 저자는 대학에서의 강의, 논문 작업에 익숙한 탓인지 대중서적으로 발간했음에도 책의 한 글자 한글자를 곱씹으면서 찬찬히 생각하며 읽어도 도통 알 수 없는 전문 용어들을 남발해놓았다. 우리나라 서적이 아닌 일본 서적을 번역해 놓은 것이라 번역 과정에서 이런 혼란을 빚게 했을지도 모르나 이런 분야에 생경한 나에게는 적지 않은 두께를 다 읽어가는 게 그다지 쉽지 않았던 것을 고백한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지도는, 지도 그 자체와 우리 인간의 힘을 통해 다시금 우리 인간을 지배한다. 그것이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종이 낱장에 감춰진 지도의 위력이다. |
| 고래로 인간이 그려온 지도란 나와 타자와의 관계, 나를 둘러싼 환경, 즉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어떤 정의이며,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관계를 설정하고 나의 위치를 설정하기 위한 자기 발견의 과정이었다. 지도 한 장을 그려놓고서야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얼핏 지도란 가장 객관화된 자연의 모방으로 보편성의 정점에 서 있다고 여기기 쉬우나 인간의 상상력이 가장 극대화된 산물일 수 있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개인과 사회, 국가의 개념에 대한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 자, 여기까지가 내가 이 책을 이해한 전부이다. 이 책의 표지에 씌어 있는 ‘지도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모방한다.’고 한 말을 이해하는 데만 한참 걸렸다. 한마디로 너무 어렵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그 표현이 어렵다. 내가 이 책을 힘들게 읽은 이유가 순전히 책에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몸이 안 좋은 상태였으니 그럴 수 있고, 집중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고, 원래 내가 책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의 원저자나 번역자에게 일말의 책임을 돌릴 수밖에 없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을 상상력을 발휘해 가며 신나게 읽어보려 했으나, 난해한 어휘의 회오리바람에 쉴 새 없이 막혔다. 무작정 책을 펼쳐 한 구절을 읽어 본다. “지도적 표현의 여러 형태들과 구조들은 이념형적으로는 그것을 낳는 사회의 여러 형태들과 구조들에 대응한다.”-132쪽. “중층화한 전역적 현실성 수준들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정합적이었던 것은 아니다.”-133쪽. 이런 식이다. 내용이 원래 그러려니... 그러나 정말로 다르게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일까? 레포트를 쓰기 위한 필독서라 사전까지 들춰 가며 이를 악물고 읽어야 하는 그런 책처럼 전개될 수밖에 없는 걸까? 일부 관심 있는 책벌레들의 도전을 즐기는 그런 식의? 이처럼 재미있는 발상과 깊고 넓은 재료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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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도의 객관성, 정확성에 대해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지도는, 세계의 모습을 동일한 비율로 줄여 평면으로 나타낸 것이다. 정확한 계측을 하여 제작하였기 때문에, 실제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어진다. 반면에, 과학적 측량이 이루어지기 전의 고지도들은 부정확한 것으로 여겨진다. 거리나 비율 등이 왜곡되어 있고, 정확한 지리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고지도를 두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무시당하고, 그저 회화 정도로 격하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지도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가져오는 제한적인 생각이다. 물론, 현대 지도의 정확성에 의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현대 지도는 가장 정확한 거리와 면적, 방향 등을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현대 지도이건 고지도이건 간에, 지도는 그것이 제작되어진 사회의 '의미로서의 세계'를 기재하고 보존, 전달하기 위한 매체(p.80)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보편적인 인류 문명사에서 보면, 세계를 단일한 보편적 우주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난다. 이때, 인간의 국지적 존재방식으로는 접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 인간이 지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범위는 제한되어 있고, 생활공간 역시 국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의 구성,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이를 지도로 표상하여 전체를 바라보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들은 제한적이지만 최대한 많고 이용가능한 정보를 수집하여 미지의 세계를 표상하려 한다. 이러한 과정으로 문명사회에서는 경험과 상상의 세계가 어우러진, 그들이 인식하는 관점으로의 세계지도가 완성된다. 그리고 이때 여러 지도기호, 지리정보의 가시화 방법 등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그 사회에서 합의된 규약이다. 이러한 지식은 지도라는 매체로 제작되어지고, 이 지도가 보급되면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세계상이 공유될 수 있다. 결국 지도는 사회적 맥락에 의해 제작되어지고, 이러한 지도를 읽는 독자들은 그것을 통해 그 사회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선사시대 및 고대, 중세를 거쳐 오면서 여러 인류문명이 남겨놓은 '조잡한' 지도들은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비과학적이고 의미없어 보이는 고지도들도, 각각의 문명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경험 및 비경험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틀을 도시화한 것이다. 외부 세계의 존재를 믿고 있으면서,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를 상상력으로 채워 놓음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그만큼 확장한다(p.113). 고대 중국에서는 4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사해사상, 중국인과 주변부 오랑캐를 구분하는 화이사상이 있었고, 이는 여러 고지도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서양에서는 기독교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을 시절에 T-O지도가 제작되었다. 이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가 도시되어 있는 서구의 세계관이 반영된 지도이다. 이렇게 각 고지도들은 그 문명에 따라 맥락적으로 구성되어진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세계도의 성립을 "좁은 세계에서 넓은 세계로" 라는 식의 단순한 진화론적 도식으로 포착해서는 안된다(p.132). 과학 패러다임이 진화론적으로 발달해온 것이 아니라, 나름의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스케일의 세계 인식을 보여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조의 교체나 사회의 내,외적 조건이 바뀐다면 사회의 공간인식 스케일도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지도 역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현대의 과학적 측량에 의한 지도는 과학 패러다임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합의가 현대 지도로 제작되어진 것일 뿐이다. 현대 지도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이것 또한 근대의 고유한 사회적 두께를 띠고 있다는(p.238)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현대 지도에 영향을 받아, 세계를 볼 때 현대 지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세계는 수많은 국경선에 의해 분절되어 있고, 그 국경선으로 둘러싸인 범위를 하나의 국가로 인식한다.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나라의 위치를 인식하고, 다른 나라의 위치와 우리나라와의 거리를 보면서 관계를 구성한다. 이를 통해 국토에 대한 사랑, 세계시민적 인식 등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들이 펼치는 세계지도에 그려진 무수한 국경선은, 근대적 세계에서 세계의 객체화와 그 평면상의 특정 영역을 스스로의 동일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주체화라는 역사적인 과정의 현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p.262). 한편, 이러한 인식 역시 국민국가 시대의 유산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경제의 세계화 및 통합화로 인해 국민국가의 권력이 약소화되고 분권화되고 있다. 지구촌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를 반영한 지도는 어떠한 모습일까? 이는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지도의 사회사를 주제로 동서양의 수많은 문명에서 탄생한 지도를 읽어냈다. 단순히 지도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도와 사회의 관계를 읽어내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지도는 흔히 자연과학적 분야로 인식되어지는데, 이 책에서처럼 당대의 사회적 맥락을 통해 읽어내야 하는 매체로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저자가 일본인이어서 우리나라에 대한 사례는 없다. 우리나라의 고지도도 그간 근대 과학의 기준에 따라 재단되어져 왔다. 하지만 우리의 고지도들도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고,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의 관점은 우리 고지도를 새롭게 보는 데도 중요하겠다. 이 책의 큰 단점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충분히 의미있고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지만, 내용이 생소한 이들에게는 읽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학문적이고 생소한 용어가 많고, 번역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많은 듯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리뷰들을 보면, '지도의 상상력'이라는 소프트한 제목을 보고 교양서적으로 가볍게 이 책을 접했다가 실망한 이들이 제법 있는 듯 했다. 학부에서 내용을 접한 적이 있는 나로서도 내용을 다 소화했는지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지도의 사회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
| 지도라는 것은 흔히 실제적인 공간이나 정보들을 추상적으로 나타내어 사람들이 알기 쉽게 나타낸 것을 말한다. 아마 이 지도라는 단어에 대하여 다른 정의나 무언가 더 깊은 생각을 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런 지도를 우리 사회와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인터랙티브한 미디어로서 바라보고 그런 시점으로 과거의 지도화 사회 그리고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사실 언뜻 이 책을 보면 무언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쫙~~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인 ''제국의 지도''에서 저자는 이 책이 가지는 의미와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책은 지리학이나 도판학에 대한 책이 아니며 지도와 사회에 관한 책이라는 점 말이다. 처음 지은이의 말과 프롤로그를 접하고 심히 당혹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며 작가는 첫 머리부터 보드리야르의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을 들먹이지 않는가? 도대체 지도에 관한 책에서 존재철학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저서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하는 의무이 마음속에 생겨났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자 지도라는 것이 실제적인이고 실용적인 의미로서의 구체적인 사물뿐만이 아니라 그 지도에 담겨져 있는 여러가지 의미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 자체가 지도의 의미들을 다시 변용하고 반영하게 된다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의해 삶의 영역이 점점 더 넓어 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시공간이 넓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고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더 큰 영역은 무언인가? 바로 시대에 따라 발전하는 미디어에 의한 추상적인 확장이다. 우리는 활자시대에 신문과 그림들에 의한 간접적인 경험으로 그리고 현재에는 TV와 같은 영상물의 발전으로 인해여 우리가 직접경험하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낀다. 그리하여 그런 정보들은 우리에게 ''사실''로서 각인되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정보들 보다 지도라는 것은 사회적인 약속이다. 지도를 발간하는 목적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도를 보고 같은 정보를 서로 공유하려는 이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의 공유적인 잠재의식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지도는 구성원들의 잠재의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으므로 수동적인 형태의 미디어도 아니다. 저자는 고대의 여러 문명에 나타나 있느 지도의 예를 들어 그것이 주는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 가면서 지도라는 것이 어떻게 국가라는 무형의 상징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내는지 지도를 통하여 구성원들이 가지는 일체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었인지에 대한 생각을 상세히 풀어 가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흥미로 읽는 인문과학서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인식의 장을 넓히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충분한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읽은 후 세계전도를 펴고 다시 우리나라를 확인해 보았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이 지도에 나타나 있는 것이 맞을까? 지금까지 의문의 여지 없이 나는 세계전도를 진실로서 현존하는 구체적인 진실로서 믿어 왔다. 하지만 그 믿음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기진것 같다. |
| 우선 엊그제 거의 다쓴 리뷰를 홀랑 날려먹고 나니 어찌 허무하던지.. 이 책 왜이리 사연이 많아지나 모르겠다. 책을 받고 나서 그 두께감에 적잖이 기분이 좋았는데.. 첫 단락에서부터 적잖은 난관에 봉착. 어렵사리 절반쯤 읽었을 때, 남편의 건망증과 더불어 이 책은 쓰레기 분리수거장 어디선가 헤매이다가 워낙 철저한 분리수거 정신을 가지신 우리 경비아저씨께서 폐지함에 넣어버리셨다는 비보를 들어야했다. 절망ㅜㅜ. 꼬이꼬이 줄치면서 간신히 읽었는데..엉엉엉... 리뷰기한이 지난주 일요일인줄만 알았다가 천만다행으로 한주 연기된 것을 알고 헐레벌떡 서점으로 달려가 거금을 주고 구입.(리뷰어 된자는 정녕 운영진에 감사할진저..고가의 책을 고작 리뷰한편에 받아내는 횡재를 입으니...). 다시 읽으려니 제법 시간이 걸린다.,.. 이책의 가장 큰 특징은 너무나 ''현학적''이라는 것. 그러니 한문장 한문장 읽어내려가기가 좀 벅찰 지경이었으나, 그나마 일본식 한자어에 익숙한 탓에 그럭저럭 버텨내며 한줄한줄... 곱씹어야했다. 처음 이 책을 신청할 때 나름대로 ''지도적 이거나 혹은 지리학적인'' 책이길 바랬다. 오호~ 나의 기대는 저자의 서문에서 보기좋게 빗나간다. 그러니까 이책은 지도에 관한 지리학적 접근과는 애초에 무관한 바. 일단 원하던 주제가 아니라는 점에 실망할까하다가, 지도가 ''사회적인 두께와 기능을 가진 기호의 시스템''이라는 작자의 표현에 새삼 호기심과 흥미가 생겼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은 ''지도라는 기호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쯤 되겠다. 프롤로그에서 작자는 ''사회가 어떻게 하여 스스로를 ''공간''으로서 사고해왔는가,그러한 사고를 통하여 사회가 자기와 자기의 공간에 어떠한 실정성을 부여하여 사회적 사실로서 창안해왔는가를 지도라는 제재를 사용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쓴 나름의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작자의 의도대로 모두 이해 간파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도''라는 소재에서 ''사회학적 의미'' 내지는 일정부분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지닌 기호성을 간파해낸 시도만은 아주 신선했다. 그러나 이 책이 대략 신선한 소재와 접근에도 불구하고 그닥 매력있는 책으로 기억되진 않을 것 같다. 직업적 특성이랄까 아니면 전공적 특성 덕택에 나는 일본식 한자어에 익숙하다면 익숙한 편이다. 그런데도 이책의 거의 모든 문장에 사용된 지나치게 일본적인 한자어 표현들.. 그게 작자의 현학적 태도때문일까 아니면 번역자의 무성의하거나 상상력 부족때문일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익숙하다지만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표현들이고, 작자가 서술한 문장 그대로를 그저 단순 직역하여 옮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떨쳐내기 어려웠다. 작자가 현학적이거나 혹은 번역자가 상상력이 부족해 보이는 책. 지도라는 익숙한 소재에 대한 색다른 접근과 해석이 무척 매력있음에도 그 서술태도와 중반부의 방만한 내용들이 스스로의 노력을 반감시킨 아쉬움이 남는 책... 적어도 누군가 선물한다면 한번 쯤 읽어볼만 하겠다. |
| 사회학을 연구하는 저자가 지도의 세계를 만났다. 저자는 지도 그 자체보다는 지도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의미를 분석하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근대적"인 형태의 지도가 갖는 사회학적인 의미, 표상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지도가 갖는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든가, 지도의 상징이 갖는 그 시대의 신화적, 종교적 세계관에 대한 어느정도의 깊은 탐구라든가, 지도를 만들기 위해 수행되는 많은 탐험과 연구의 이야기 등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저자가 들려 주는 이야기는 제목에 나타난 바의 "상상력"이 아니라 지도가 표상하는 사회학적인 의미, 근대의 의미, 리얼리티의 의미이다. 지도를 주제로 상상을 펼치기 보다는 지도를 보며 우리가 "상상해 내는 세계", 혹은 "상상해 낼 수 있는 세계"의 의미와 한계, 특히 "국민 국가"의 한계를 들려 주고 있다. 들려 준다고 하는 것도 뭣한 것이 이 책은 재미난 신화와 상상을 "들려 주는" 책이 아니다. 기본 개념에 기초하여 "레슨"(38쪽)을 전개하고 있으며, "지도라는 표현의 구조와 역사 안에서 사회라는 장에서 구조와 역사를 발견하고자 하는 사회학적 사고의 레슨"(38쪽에서 부분 인용)을 하는 것이 이 책이 시도하는 바이다. 지도가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통하여 현실을, 세계를 모방하게 되므로 현실이 지도를 모방하게 된다는 저자의 언명과 논리 전개, 또한 "국소적 공간"과 "전역적 공간"의 구분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 지도의 의미를 찾아 내는 작업은 무척 흥미로웠다. 막연히 기능적으로만 인식해 왔던 지도, 혹은 근대 이전의 세계관이 표방해낸 "황당무계한" 지도의 형태 - 이 황당무계한 이라는 표현도 사실은 가치함축적이다. - 만을 기억해 낼 수 있던 내게 현실과 지도의 또다른 관계 가능성을 어렴풋이 알려 준다. (저자의 이 언명과 작업이 흥미로웠던 것은 사회학에는 관심이 있으나 사회학 공부는 깊이 해 보지 않은, 지리학에는 별 관심이 없던 내 인식 수준도 큰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책 중반부에 접어 들면서 근대 이후의 지도가 상징해내는 국민 국가의 개념을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참신하지 않았다. 상당 분량을 할애하면서 국민 국가라는 것이 그다지 오래된 개념이 아님을, 국민 국가의 기원과 그 함축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미 많은 다른 책에서 익히 보아 왔던 이야기였다. 마찬가지로 발견과 탐험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의 부분도 그러했다. 더군다나 이 부분은 다소 중언부언된 느낌이 있으며, 분량도 제법 많다. 지도의 새로운 의미에 제법 흥미를 갖고 열심히 읽다가 국민 국가의 의미가 반복되는 부분에서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반복을 보는 기분이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삽화로 들어간 지도가 매우 흐릿하게 나와 있다는 것이다. 지도의 사회학적인 레슨을 수행하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기는 하지만 또렷한 지도를 들여다보며 느끼는 즐거움은 안타까울 정도로 줄어 들었다. (이 부분은 최근 출간된 "세계 지도의 역사"라는 책으로 보충을 했다. 이 책은 도판 위주의 책이라 크고 화려한 도판이 매우 많다. "지도의 상상력"에 나오는 삽화 우선으로 찾아 보았기 때문에 서술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 평가할 수 없지만.) 미흡한 점은 있지만 지도를 주제로 한 사회학적인 사고라는 참신성(적어도 내게는 참신했다.), 논의 구조와 서술의 충실함, 근대 이전의 지도가 표방했던 지도의 형태가 갖는 가치 재발견, 리얼리티가 상징하는 근대적 지도의 한계 등은 꽤 재미있었고 유익한 독서의 경험이었다. |
| 지도의 상상력이란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 책의 표지 상단에 한줄 써있는 글이 있다. [지도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모방한다!] 이 책의 내용도 그러한 면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맞는 말로 보이기도 한다. 라지만 이 내용들이 지도의 상상력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뒤에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미지의 세계는 이 책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프롤로그: 제국의 지도 부분을 읽을 때 까지도 이 책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이야기들.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서를 읽을 때 이상의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게다가 1부 1장 지도적 공간을 보면 내용은 더 어려워 진다. 지도와 공간간의 상관관계와 예시가 나오지만 일반적으로 여유있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이것은 뒤에 의미로서의 세계공간과 사회등 계속 이어지는 이 책의 난점이다.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흐름)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예컨데 어휘나 문장구조가 어렵다. 이것은 지은이의 수준이 높은 것일까? 이것은 일본어를 번역출판하는데 있어서 생긴 문제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수준미달인가? 어쩌면 인문지리서를 너무 쉽게 생각한 나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 책을 쉽게 여기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을 옮긴이의 말(표지 뒷부분에도 있는)은 이 책이 우리가 지도를 보면서 가진 의문들을 풀어줄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이렇게 어렵게 설명해야할 개념인가? 라는 물음이다. 다양한 예를 들고는 있지만 그 예란 것이 일반인에게는 친숙해지기 힘든 학술적인 예로 보여진다. 이 책에게 묻고싶다. 이 책의 독자는 누구인가? 이 책이 일반인-곧 우리-의 지도에 관한 의문점을 풀어주기 위한 책이 맞는가? 이 책이 대중을 위한 책인가? 라고 말이다. |
| 지도라 하면 자연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한 지역 이해와 도식화한 표식을 통하여 지역에 관한 실상을 명료하게 파악하게 해 주는 수단이라는 관념이 워낙 강하여 이 책도 그러한 범주일 것이라 지레 짐작하였는데 한마디로 잘못 짚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도를 통하여 과거와 현재, 유럽과 동양 등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한 세계관이 반영된 시대와 지역에 대한 해석과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상상력에 주목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는 세계와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러한 세계나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며 어떤 행위나 관계를 직조했는가를 지도라는 표현의 구조와 그 역사에 입각하여 살펴보고자 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사회와 우리들의 사회적 상상력을 그러한 구조와 역사 속에 자리매김해 보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일견 얕은 상식 수준에서 이국의 풍물에 대한 호기심어린 접근을 기대하고 독파를 시도하였다가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작가와 코드를 맞추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녹록하게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대중적인 서적으로 펴냈다하지만 주로 대학에서 지리학이나 사회학의 관련 분야를 전공하는 정도의 식견이나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유용한 제한적 효용이 있는 책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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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빌자면,
지도라는 표현과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역사에서
''세계''와 ''사회'' 그리고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러한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어떤 행위나 관계를 직조했는가를
''지도''라는 표현의 구조와 그 역사에 입각하여 살펴보는 것
그리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사회와 우리들의 사회적 상상력을
그러한 구조와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라고 밝혔습니다.
글쓴이는
지도에서 표현되어 있는 것은 개개 신체의 근방을 넘어
개개 신체의 근방으로 열리는 공간이 그 내부에 자리매김되는
전체로서의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지도는 그러한 공간을 대리하는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근원적인 것처럼 하여 인간의 이해와
경험을 대리 보충하는 것이라 하구요.
지도적 공간은 그 존재 자체 안에 타자와의 환경에
관한 정보 공유와 전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도에 표현되는 공간상은 타자와 공유되고
타자에게 전달되는 ''사회적인 공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도의 공간이 확장되는 것은,
외부 세계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존재한다고 믿는 영역을 상상력으로
채워넣음으로써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그만큼 확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했기에 영국 헬리포드 성당이 소장하고 있는
13세기 말에 그려진 헬리포드 지도에서는
원형의 대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예루살렘이었고,
바빌론에서 제작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지도에선
육지 중심에 바빌론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 밖에요.
저자에 의하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상적인(창조적인) 날조에 의해
지도가 보여주는 세계의 넓이가 확장되고
그렇게 확장된 공간은 ''의미로서의 공간''으로 제작된다는 것입니다.
즉 세계의 상상적 확장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 경험이나
이용가능한 지식사이의 낙차를 과잉된 상상력의 동원으로 채워넣으려는
시도라고 파악하고 있는거죠.
글쓴이는 이런 식으로,
지도가 갖는 무게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만,
책을 읽은 뒤 들었던 소감은,,
진지함을 넘어 현학적이라는 책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독자들은 애초에 제시했던 메뉴였던
상상력이 발휘된 매체로서의 지도의 의미를 맛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상의 힘은 어느새 휘발돼 버린채,
글쓴이가 제시하는 근대국가와 권력, 시장에 관한
담론까지 살펴보는 입장에 처하게 됐습니다.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오늘날의 세상은 ''지도로서의 사회''가 동요되는 시점이고,
''상상의 트랜스내셔널 공동체''를 새로운 사회적 사실로서
낳았다''는 말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요,
''지도의 상상력'' 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느낌은,,
험난한,,그러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여행을 마친 느낌입니다.
주제를 이해하기는 커녕,
내용조차 이해하기 힘들었으니까요,
우선 용어 자체가 주는 생경스러움은
한 문장 한 문장 읽기 조차 힘들게 했구요.
명확하지 않은 주술관계때문에 같은 문장을 여러번 보게 하더군요.
(번역의 잘못인건지..원저자의 글의 난해함탓인지..,)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읽는 속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더군요.
지도에 반영된 인간의 상상력을 제재로 한 점은,
흥미로웠고, 대중들에게도 관심을
끌 소지가 많았지만,
과연 무엇을, 어떤 층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책인지가
의심스러웠습니다.
굳이 이런 제목으로 어렵고, 무겁게 내용을 풀어가야 했는지,
작가의 의도한 주제를 독자들이 알기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는지..궁금합니다.
한마디로,
지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가졌다는 이유로
대중이 읽기에는 버겁기 짝이 없는 책이었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지도로서의 사회'' 의 동요는 근대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특정 ''지도로서의 사회'' 위에 그것과는 다른 사회적 현실의 차원을 부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