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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견과 제도에 물들기 이전의 아이였다면, 그 아이 역시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자시의 행복을 유지하는 데 자유를 활용했을 것이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나약함 때문에 그러한 자유는 제한된다. 스스로 능력이 되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욕망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다. 아이가 그렇다. 아이는 자연의 상태에서조차 그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불완전한 자유밖에 향유할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어른이 사회의 상태에서 불완전한 자유밖에 누릴 수가 없는 것과 같다. - p.70
드디어, 애증의 대상이던 에밀을 완독했다. 그런데, 나 정말 완독한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에밀은 나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내겐 물론, 아이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육아의 측면에서 바라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휘연님의 질문 "루소는 자연을 무엇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자연을 따라서 클 수만 있다면 아이는 올바르게 자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바이다. 루소가 자연을 무엇으로 생각했는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지 안 자랄지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내가 자신있게 이거다 하고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아에 대한 많은 배움이 필요하지만, 에밀의 육아에 대해서는 어떤 동의나 또는 반대도 나는 할 수 없다.
2.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 독서는 하나의 재앙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끊임없이 이 행위를 강요한다. 에밀은 빨라도 열두 살이나 돼야 책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사람들은 그 나이쯤이면 읽고 쓰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독서가 유익하다고 깨달았을 때 읽을 수 있으면 된다. 그 전까지 독서는 아이를 귀찮게 할 뿐이다. - p.111
독서에 대한 강요가 없어도 잘 읽는 아이도 있는가 하면, 책을 읽으라 억지로 강요해야 읽는 아이도 있지만, 나는 에밀의 이 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억지로 책을 읽게 되면, 책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스스로 읽고 싶은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어쩌면, 나 역시 그래서 책과 가까워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3. 이때 당신은 곤경에 빠질 수 있다. 아이의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단지 위기만 모면하려는 생각에서 이해도 할 수 없는 관념만을 나열한다면 '유용하지 못한' 그 답변에 아이는 실망할 것이다. 당신을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라, 힉생의 질문을 회피하는 선생이 어디 있을 것이며, 답변이 요령 있게 전달되지 못했다 해서 그 잘못을 인정하는 선생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그와 같은 일이 있을 때, 스스럼없이 그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원칙으로 세우겠다. 그렇게 되면 나의 가르침은 항상 정확한 것으로 인식되어 학생에게 믿음을 줌은 물론, 그렇지 않은 선생들과 비교됨으로써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185
에밀은 육아서의 개념으로 보는 분들에게는 육아서이겠지만, 선생님의 태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교육서라고 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선생님이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 루소의 철학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 그런 선생님은 거의 본 적이 없긴 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잡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4. 부유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부유한 자의 마음에 일으키는 그 영향 때문이지. 그녀는 부유한 사람에게는 항상 재산이 먼저라는 것, 인간의 가치보다 돈이 우선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 두려움 때문에 마음을 못 여는 거야. 그러니 에밀, 그녀의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네가 할 일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보렴. 재산을 없앰으로써 목적을 이루려 하지 말고 새로운 재산을 보여줌으로써 그녀를 사로잡을 생각을 해. 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봏석, 그 어떤 재산보다도 가치 있는 재물을 보여줌으로써 말이야. 물론 그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 않지. 영ㅍ혼이 지닌 고귀한 보물의 힘으로 그녀의 저항을 극복하도록 해봐. 크고 넓은 사랑으로 그녀를 감싸 안도록 해. 일시적 열정이 아닌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보살피고 섬기면 돼. 그래서 그것이 무너지지 않는 원칙의 결과임을 그녀에게 증명해보렴. - P.331
에밀에게 주어진 과제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
5. 에밀은 내게 어떤 감흥을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그 어떤 감흥도 없는 것일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고전의 힘이라는 것이, 언제 어느 때 불현듯 튀어나와서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거니까. 아니면, 아예 아무 영향도 안 끼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시간이 의미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삶이 항상 의미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도, 1년 365일 24시간 내내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다. 때로는 행복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또, 아무 의미없이 지나가는 시간이라도 그 시간에 대해 "쓸데업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냥, 그런 날도 있지, 라며 여유있게 받아들이는 삶. 그런 삶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행복한 삶은 더 큰의미를 띄고 내게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라도, 곧 오게 될 즐거운 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그 휴식 속에서 나는 더욱 더 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고, 행복추구라는 위대한 쾌락에 나를 집어넣을 준비를 할 것이다.
- 이 리뷰는 [일고십-일년에 고전 십이권만 읽자]의 2018년 12월 도서로 선정된 도서로 작성된 리뷰로 직접 구입한 도서로 작성하였습니다. 아, 이놈의 리뷰어클럽 데자뷔...왜 이렇게 재밌는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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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게임은 RPG다. 게다가
스킬 트리 제대로 타서 내가 원하는 대로 캐릭터가나와준다면 크으~ 그 맛은 정말. ㅋㅋㅋㅋ (이래서 게임 중독이 무섭습니다, 여러분. - 전 게임 중독자) 이
책은 루소가 RPG 게임을 상상 속에서 어떻게 멋지게 해내는지를, ‘철학적’으로 이야기 한다. 교육학 책으로 꽤나 유명한, 그리고 요즘 각광 받는 많은 철학들이 녹여져 있어 고전으로 불리며 읽힐 만하다.
읽으면서 ‘와, 맞아!!’ 했다가, ‘엥? 이게 뭐야?’ 했다가. 이렇게
한 권의 책에서 급격히 마음이 왔다 갔다 한 건 처음인 것 같다. 공감하는 부분은 극단적으로 공감했고,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극단적으로 부정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만 잘 받아들여서 가지고 가야겠다.
그의 이야기에 놀라운 것은 현재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이들을
어른처럼 대한다든지 루소가 세태를 비난하는 내용들이 있었다. 그게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걸 보니 루소의
사상이 더 제대로 전파되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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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이며 행복한 삶인지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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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를 전망하면서 현재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얼마나 미친 짓인가!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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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도를 남의 도움 없이 행동으로 옮겼을 때만이, 진정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행복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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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 행복한 것처럼
보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238)
루소가 이 책 내도록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아이의 ‘자유’, 그리고 ‘행복’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에밀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가 일일이 열거하는
모든 것이 아이의 행복을 위한 일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 ‘자유’. 자유로운 하나의 인격체만이 자신만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위해 어릴 적부터 압박하지 말 것이며, 본인이
호기심을 보이는 것만 가르칠 것이며, 알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호기심을 유발하며 질문 하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아주 사소한 방법들도 나와 있어서 읽을 만하다.
엄마로서, 그리고
한 명의 어른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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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여, 제발 인간다워라. 그것이 당신들의 첫째 의무이다. (61)
나 스스로 인간다웠는가? 내 아이에게 부끄럼 없이 떳떳할 수 있는가? 물론 흑역사는 누구나 있다. 아이와 함께한 순간에도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아이가 하지 않았으면 하는 행동은 나 또한 하지 않는 것. 그것만은 항상 지키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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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경솔한 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로 인한 불리함으로 잘못을 깨닫게 하라.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기보다는 예방하는 데 주력하라. 아이
스스로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의지를 심어주어라. (71)
뭔가 맞는 말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부분이었다. 당연히 아이가 잘못을 하기 전에 도와줄 수 있다면 하지
않도록 이끄는 게 맞지만. 나도 ‘안돼, 하지마’를 달고 사는 엄마로서 어떻게 하면 그런 말을 안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ㅠ 최대한 그럴 여지를 배제하고 있다. 그래도
창문을 깨도 그 상태로 내버려 두고, 감기에 걸리도록 내버려 두고 할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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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좀 더 안답시고 스스로 좋다고 판단한 관념 하나를 주입하기 위해 중언부언하지 말라.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으로 꽉 찬 당신의 관념이 아이에게 제대로 전달 될 것이라 자신하는가? 아이가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87)
‘야이 자쓱아, 단디 들어라!’ 하고
시작하는 듯한 부분이다. 내가 알고 있는 관념이 정확한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나의 편견과 사상에 버무려져 찐득찐득한 그 관념을 아이에게 올바른 것이라고 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아이와 살아온 경험치가 다른데 내가 느끼는 그대로 아이가 알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무척이나
버거운 일일 것이다. 사실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는 이 책을 통해서 명확히 잡히지는 않지만, 좀 더 신경 써야 하고, 그 방법에 있어서 고민하고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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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을 어린애 취급한다든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모든 면에서 자신과 학생을 구분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런 식으로 학생의 용기를 꺾지
말라. (261)
아이가 실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많은 부분에서 아직 발달이 안 되어 있는 아이에게 어른과 같은 동작의 완성도를
요구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실수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학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학생 아닌가? 지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상황에서 그를
깎아 내리거나, 짓누른다면 자랄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조심해야 하고, 나의 권위와 명예가 아이와 학생에게서 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책의 마지막 장을
보면서 한 편의 가벼운 로맨스 소설을 본 것 같았다. 18살, 20살이니
얼마나 귀여운가. 그런 아이들이 결혼이라니?! 루소가 그들을
떼어 놓은 건 사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시대 분위기상 그랬을 거라 여기지만, 여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읽기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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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와 불순종은 가장 위험한 결정으로, 이 결점이
고착되면 치유하기 매우 힘들다. (중략) 남자들에게 구속
받는 것에 익숙해야 한다. (중략) 무엇보다도 예의범절이라는
속박에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훈련할 필요가 있다. (303)
명심하고 생각해
볼 것들이 많아, 왜 고전인가를 알게 해준 책이다. 나만의
십계명을 만들었다. 잊지 않고 잘 지켜나갈 수 있기를.
1.
거짓말을 하게 만들지 말 것
2.
자연을 되도록 많이 경험하게 할 것
3.
작은 실패와 고통도 겪으며 참아낼 수 있게 할 것
4.
어른의 시각을 강요하지 않을 것
5.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느긋하게 기다려 줄 것
6.
나의 관념을 마구 넣으려고 하지 말 것
7.
아이가 똑바로 하고자 하는 말을 하게 할 것
8.
역사를 공부할 때 주의해서 시킬 것
9.
아이를 나의 행동으로서 가르칠 것 10. 아이가 정말 행복할 수 있도록 해줄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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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답게 길러라!
참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의미이다. 가상의 아이 '에밀'을 통해 루소가 말하고자 한 인간 교육의 중심 사상
엄마가 되고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그 어떤 것도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숭고한(?)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 나는 철저히 무너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가까스로 이 단순한 명제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내 앞에 놓인 작은 생명체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전히 어렵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을지.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의 무너짐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자유로운 영혼을 빛바랜 부모의 '자연'속에서 자유로이 뛰어 놀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진정 '자연'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참된 인간을 키워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부모, 양육자로서의 마음
루소는 '참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의미'라고 역설한다. 그의 교육론의 전제에는 '자연주의 사상'이 깔려있다. 즉, 자연 상태에서의 발육과정과 본성의 자연스러운 흐름속에서 참된 인간상을 형성해 나가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통념과 편견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 평등한 인간 본성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적 , 물리적, 신체적 조건으로 계획된 루소만의 교육적 자아 '에밀'을 탄생시킨다.
출생에서부터 성인이 되어 결혼에 이르기까지 성장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단계별 인간 본성의 특성, 그에 따른 양육자의 태도와 학습관, 가치관을 열거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자연'상태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는 아이가 태어나서 이루어지는 본능적인 행동들을 자연상태에 두라고 강조한다. 그의 '자연' 안에서는 인위적인 학습이나 판단, 정념은 배제되며, 권력과 통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중심으로 한 자립형 인간상이 존재한다.
"최고의 행복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통제되지 않는, 물리적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자유에는 규칙이 있으며, 그 규칙의 중심에는 독립된 개체인 '나'가 존재한다. 양육자로서 부모는 심판자 혹은 권력을 행사하는 개입자로서 중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인 '나'가 사물을 관찰하고 감각을 익히면서 스스로 체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조언해주는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본질을 떠나서 행복해질 수 없다. "
성장 단계별 아이에게 주어지는 본성의 특성을 설명하고, 사물에 대한 호기심, 인지, 언어에 대한 학습, 욕망과 결핍의 균형, 지식과 판단의 자연적 교육방법론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의 방법론 안에는 양육자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와 가치관이 담겨 있으며, 더 나아가 존재의 이유, 삶을 대하는 자세까지도 엿볼 수 있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가 제시하는 조건들, 자연의 상태, 역할론적 관점 등이 지금의 가치와 동일할 순 없다. 다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을 분별력 있게 받아들이는 지혜를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갈 뿐이다. 이에 더해 현재의 교육에서 루소의 교육관이 갖는 의미, 지금 교육에 얽매어진 한계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덧붙여,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교육이념이 유효한 건, 교육의 근간에 '자유' 와 '행복'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되고 바른 인간, 인간을 인간답게 살아내게 하는 것. 그 궁극의 목표에 끝엔 '행복한 삶'이 존재한다. 우리의 존재 이유 위에 '행복'의 가치를 얹음으로써, 자기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의도를 남의 도움 없이 행동으로 옮겼을 때만이, 진정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행복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이것이 나의 원칙이며 교육에 접목시켜야 할 핵심이다. p.68
◈ 담고 싶은 이야기
자연을 관찰하고 그 길을 따라가라. 자연은 아이를 훈련시킨다. 온갖 종류의 시련을 겪게 함으로써 체질을 강화하고 고통이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눈앞의 역경에 겁내지 말라. 어려서의 시련을 극복하면서 아이가 지닌 생명의 뿌리는 더욱 튼튼해진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p.23
생명이 있는 존재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지혜로 삶을 개척한다.
아이로 하여금 습관에 물들지 않도록 하라. 가장 좋은 습관은 어떠한 습관에도 물들지 않는 습관이다. p.43
아이는 어른을 통해서 자신을 판단한다. 내가 두려워하면 아이도 두려워하고 내가 침착하며 아이도 차분해진다. p.59
아이는 고통을 알아야 하고 위험이 무엇인지 겪어봐야 한다. 자유가 주는 즐거움엔 적지 않은 상처가 생긴다.
아이들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기쁨을 만끽하게 하고, 행복이란 언제나 그가 겪는 고통의 최소량에 의해 측정되지 않는다. 모든 고통은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모든 쾌락은 그것을 누리고자하는 욕망과 결부된다. p.62
아이 스스로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의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p71
자연은 아이를 사랑받도록 만들었지, 그를 두려워하거나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만들지 않았다. p.75
아이는 보고 느끼는 데 그 나이에 맞는 사유방식을 활용한다. p78
자유를 잘 규제하기만 하면 된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에 대한 규칙을 일깨워라. p81.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라. 서둘러 가르치지 말라.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아이의 신체와 감각을 단련시키는데 힘쓰되 정신만은 한가하도록 내버려둬라. 아이로 하여금 그 안에서 어린 시절이 무르익도록 하라. p.84
한 인간을 교육시키기 전에 선생 자신부터 인간이 되어 있어야 한다. p.85
체험을 통해 얻은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 p.89
모든 것을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익한 것만 아는 것이 중요하다.p.167
지식이 깨달음을 끌고 가게 하지 말고, 깨달음이 지식을 끌고 가게 하라.
인간은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 p.249
자신을 낯선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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