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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이다." _ 레몽 크노(프랑스의 작가)
이 말은 지금 읽고 있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에서 발견했다. 이 책을 읽으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서구문화의 근원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조금씩 발견해가고 있다. 그리고 호메로스의 존재와 그가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내가 이 책들에 대해 분석한 책을 먼저 읽게 된 것은 갑작스레 읽게 된 이 책 《처음 읽는 일리아스》덕분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로 《일리아스》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졌고 《일리아스》에 대해 소개한 책들도 몇 권을 더 보기도 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된《일리아스》에 관한 책 중에 《처음 읽는 일리아스》를 구입해 먼저 읽게 된 동기는 이 책을 추천했던 안상헌 작가의 《인문학 공부법》때문이다.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된 《처음 읽는 일리아스》는 이야기체와 서사시를 함께 사용했다는 점에서 호메로스의 문체를 느끼면서도 전체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_<인문학 공부법> 중에서
오랜 기간 내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들 중 한 권이 천병희의 《일리아스》다. 이 책은 《인문학 공부법》에서 안상헌 작가도 이야기 했지만 술술 읽히는 텍스트가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서사시라는 형태로 쓰였기 때문이다. 문체도 문체지만 알다시피 이 책의 두께도 읽어내기 만만치 않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신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라면 생소하기만 한 등장인물들 때문에 질린다. 익숙하지 않은 인명과 신들의 계보까지. 그 덕분에 쉽게 손에 들지 못하고 오랜 기간 내 책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선뜻 읽지 못할 책을 나는 왜 구입해 두었던 것일까? 독서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책을 소개한 책이 대부분인데 어쩔 땐 구입하고 싶어 안달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특히 《일리아스》는 고전을 소개한 책들이 무조건 다루는 책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서른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손에는 『일리아스』가 들려 있었다. 아마도 그는 부하와 백성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는 인문고전 독서로 얻은 특별한 두뇌의 힘으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내가 이룩한 대제국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거든 나처럼 독서하다가 죽어라!"_<리딩으로 리드하라> 중에서
이지성 작가는 이 책 뿐아니라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에서 존 스튜어트 밀 식 독서법을 소개하면서 존 스튜어트 밀이 어릴 적 읽었던 책들 중에서도 《일리아스》가 있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최근 고전읽기 열풍을 가져온 책의 중심에는 이지성 작가의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있었다. 이 책을 읽었던 덕분에 아마 충동적으로 천병희의 《일리아스》를 구입했던 것 같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을 때까지 읽었던 고전 중의 고전이자 나의 두뇌를 천재로 만들어줄 책이라고 믿었으니 어찌 안달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구입해 둔 책을 언젠가는 읽어야지, 꼭 읽어야지 하고 책장에 여러 권의 고전들과 함께 장식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일리아스》를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게 한 책을 만나게 된다. 그 책이 바로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였다. 이 책이 《일리아스》를 읽어야 할 이유를 내게 전해 준 것이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좀 특이한 선택을 합니다. 이야기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전사들이 죽어 가는 순간에, 마치 영화에서 과거 회상 장면이 나올 때처럼 현재의 전쟁 장면을 잠깐 멈추는 겁니다. 그러곤 전사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 전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중략> 시인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는 누구도 엑스트라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_<삶을 바꾸는 책 읽기> 중에서
정혜윤 작가는 《일리아스》를 정리하면서 그 내용이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부분을 일깨워준다. 그 전까지는 나 역시 《일리아스》를 읽고나서 '나도 《일리아스》를 읽었어. 나도 교양 좀 쌓았어' 라는 뿌듯함을 느끼는 게 이 책을 읽는 목적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삶과 책이 만났을 때 둘은 더 강한 목소리를 낸다고 했던 정혜윤 작가의 말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목적이 달라진 것이다. 작가는 이어서 말하기를 우리 인간은 원래 서로 다른 인간의 이름을 부르는 존재라는 것. 동료 인간의 슬픔을 헤아리고 그 슬픔에 경의를 표하는 존재라는 것. 우리 인간은 슬픔과 절망과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또 맞서 싸우기도 하는 존재라는 것. 운명에조차도 맞서 싸우는 존재라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그걸 뛰어넘으려 밀고 나가는 존재라는 것. 이런 것들을 깨우쳐 알게 했기 때문에 《일리아스》는 잊을 수 없는 책이라고 표현했다.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 그것은 바로 우리 삶과 연계해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일리아스》를 읽고나서, 치열한 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문득 '이게 바로 일.리.아.스구나' 하고 절실히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반드시 있을거란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이 책이 불멸의 고전인 이유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일리아스》를 우선 읽기로 결심했고, 먼저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고른게 이 책 《처음 읽는 일리아스》였다. 내가 고른 것이 아니라 안상헌 작가의 《인문학 공부법》덕분에 알게 된 책이긴 하지만. 《일리아스》를 처음 읽으려는 독자라면 그나마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 너무 많은 등장인물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 이 책은 아예 책 서두에 등장인물들을 그리스 편, 트로이아 편으로 나누어 정리해 뒀다. 신들까지 가세해 양 쪽으로 갈라지니 신들의 계보나 이름에 익숙지 않은 독자라면 애로점이 없잖아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리아스》의 내용과 인물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니 호기심과 흥미가 더해져 갔다. 《일리아스》를 처음 읽는 독자라면 아주 쉽게 쓰여진 책들을 위주로 대충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파악하는데 일차 목표를 두고 읽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들 대상으로 한 책들과 최근엔 만화책으로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어 이런 책들을 먼저 읽으면 훨씬 접근이 쉽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과 인명에 익숙해지고 트로이아 전쟁의 배경까지 다 파악이 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원전을 번역한 책을 읽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난 이 책 《처음 읽는 일리아스》를 끝내고 최근에 출간된 책으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그리고 작가 호메로스의 존재를 파헤친 책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를 읽고 있다. 그래서 이지성 작가는 고전을 읽는 일단계로 먼저 고전 저자에 관해 쉽게 설명한 책을 읽어라고 했던 것같다. 조금 알게 되면 더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천병희씨가 쓴 《일리아스》를 펼쳤다. 꼭 읽어야 했지만 읽을 수 없었던 책이다. 이 책을 더 일찍 읽도록 한 것은 예스24에서 진행한 '문화 버킷리스트 축제' 때문임을 밝혀야겠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을 몇 권 꼽으라면 그 중 한 권은 《일리아스》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축제 기간 내에 다 읽지도 못할 것이고 한번 읽었다고 해서 리뷰를 쓰진 못할 것이다. 심지어 제대로 된 《일리아스》를 찾아 읽을 수도 없다는 걸 알베르토 망구엘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를 읽으면서 알게 됐다. 단지 읽고 또 읽으면서 누군가가 감명을 받은 것처럼 이 책이 내게 의미가 있는 이유를 나 스스로 발견해야 함을 알게됐다. 불멸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 책은 인류 문화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버킷리스트가 될 것이고 제대로 읽는다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어를 알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중략> 그리고 이 낯선 사람들과 우리 자신 사이에는 인종과 말의 차이뿐만 아니라,'전통'이라는 어마어마한 간극도 있다."_<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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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인 책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고 읽어 본 얘기일 것이다. 내경우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를 묶어 편집한 동화를 어릴 적 보고 트로이 전쟁에 관련된 몇편의 영화를 봤지만 정작 제대로 된 걸 책으로 읽어보지 못했었다. <일리아스>를 읽고 있으니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삼국지>가 떠올랐다. 이야기의 분량, 등장인물, 전쟁의 수준 등을 비교하면 삼국지가 훨씬 뛰어나게 보이지만 <일리아스>도 나름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니 그 영향력에 있어서는 쉽게 비교하기가 힘들었다.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은연 중 삼국지가 유비를 중심으로 한 촉을 우리편으로 생각한다면 일리아스의 전쟁에서도 그리스를 우리편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책을 읽어나가며 꼭 내가 그리스인들의 편만 드는게 아니라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리스와 트로이아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축약된 트로이 이야기들을 보며 안타까워 하고 정의롭게 보이던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오디세우스 등 그리스 영웅들의 모습과 안타까운 사연들만 내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이번엔 오히려 어찌보면 패자로 남은 헥토르에게 내 관심이 쏠렸고 트로이아 쪽으로도 애정을 가진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내가 제우스가 아니니 전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순 없었지만...- 그가 죽어가며 지키고자 했던 조국 트로이아와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과 헌신 그리고 운명에 맞서 싸우는 용기는 어린 시절 잘못한 나쁜편 트로이의 얄미운 장군의 모습은 더이상 아니었다. 24권 1만5천여字의 방대한 서사시가 2000년이 넘는 세월 전해져 내려오면 인류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독일의 슐리만이 터키에서 트로이의 옛유적을 발견했다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전쟁이 정말 일어났던 일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리고 구술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이이야기가 정말 호메로스의 이야기인지도 알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해져 오며 유럽을 중심으로한 서구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파리스라는 철없는 왕자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헬레나의 이야기를 중국의 역사에 옮겨놓으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말로 요약이 되겠지만 10년간의 전쟁에서 싸우며 목숨을 잃은 영웅들과 올림푸스의 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인간이고 신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신들이 정해준 운명엔 힘없이 쓰러지는 영웅들이지만 그들이 살아서 싸우는 동안은 신들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용맹함을 보여주었으니. <일리아스>가 주는 매력과 미덕은 방대한 내용의 전쟁 속에 벌러진 영웅들의 무용담이 아니라 그속에서 신들과 인간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 속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찾을 수 있어서가 아닌지 모르겠다. |
| 기원전 7-9세기의 이 작품은 여전히 서양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쉬운 점 먼저 이야기 해야겠다. 아직까지는,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잘 모르겠다. 미술사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눈으로 확인되는데, 또 다수의 시인들이 호메로스의 이 작품을 인용하고 각색했다는 것도 알겠다. 이 작품은 여전히 영화로 만들어지고 소설로 쓰여진다. 하지만, 역시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여전히,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인간과 운명의 대결이다.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에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궁금증은 남는다. 왜 항상 운명은 옳은 것일까? 또는 신은 옳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철학사를 뒤적이다 보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안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이전에 운명은 왜 존재할까 라는 문제이다. 운명이 어느 순간 사라지면, 정말 '사건'들만 남는 것인가? 이 작품은 특징은 이렇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왜 죽었을까? 이 작품은 죽은 이유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신이 운명을 정해 놓았고, 가끔 변덕을 부리기는 하지만, 큰 틀은 바꾸질 않아, 결국 인간은 운명에 순응할 수 밖에 없다. 왜 툭하면 신과 운명을 들먹일까 생각을 해 봤다. 근데, 생각해 보면 신과 운명을 들먹이지 않고 이해되는 세상사는 얼마나 될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했다고 믿는 것이고, 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신과 운명을 개입시크는 것은 아닐까? 편집이 최고다. 지루한 작품에 너무 쉽게 다가서게 해 준다. 호메로스의 운문을 산문으로 바꾼 원문과 사이사이에 호메로스의 운문을 실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본문 옆에 도움말을 실었다. 번역된 우리말이 너무 읽기 쉽게 만든다. 물론, 원문과 비교해서 얼마나 정확하게 번역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기는 쉬웠다. 아쉬움은 일리아스에 대한 해설을 조금 성의있게 실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본문 요약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꽤 괜찮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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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서양 문학의 기원이라고 말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현대적 감각으로 번역하고, 늘어지는 부분들을 줄여 주요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편집해 놓은 책이다. 그리스 제일의 미녀인 헬레나를 유혹해 트로이로 데려간 파리스에게 분노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해 그리스 전역의 귀족들과 함께 공동전선을 꾸려 트로이를 공격한다. 이에 파리스의 형이자 트로이의 총사령관인 헥토르를 위시한 연합군이 맞서 싸운다는 이야기가 핵심적 뼈대. 수많은 이름 있는 귀족들이 싸움터에서 쓰러져 가는 가운데, 그리스의 신들이 각기 한 쪽 진영을 편들며 개입하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진행된다.
2. 감상평 。。。。。。。
고전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 원전을 그대로,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원어로 된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것이겠지만, 워낙에 대작인 작품들의 경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서양문학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리아스도 마찬가지. 그리스어 원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애초부터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번역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거대한 장편 서사시를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한 두 단락으로 구성된 요약 정도만 보고 그 내용을 접하고 말 것인데, 그럴 바에야 이 책처럼 줄거리를 그대로 살리면서 좀 더 현대적인 번역과 구성으로 된 책을 보는 것도 차선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본문 사이사이에 삽입된 원전의 시를 직접 번역한 구절들을 읽으면서 원전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 찾아 읽게 되었다면, 그거야 말로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삼국지의 초기 전투의 양상에서도 언뜻 볼 수 있지만, 그보다 족히 1,000년 이전에 쓰인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전투의 방식도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귀족, 혹은 장수 중심의 싸움이었다. 흔히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영웅이란 건 다수의 대중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사실 이 시기 그리스는 대부분 귀족중심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일단 전쟁이 터지면 가장 앞서서 싸웠기 때문에 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평소에는 온갖 미사여구로 자기들만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외쳐대면서도 정작 위기에는 보신책만을 고민하는 오늘날 정치인들과 비교한다면, 과연 민주주의라는 게 더 ‘발전된’ 것인지 헛갈리기도 한다.
아무튼 그렇게 영웅들(귀족과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개인)의 이야기를 강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개인의 가치에 대한 고양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성불가침의 국가와 같은 가치가 강조되기 시작한 건 근대에 들어서니까, 개인적인 원한을 이유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아킬레우스에 관해 누구도 명예를 들먹이며 비난하지 않는 것도 딱히 이상한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행동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인정되는 상황일 정도다. 국익을 위해, 또는 국격이라는 생뚱맞은 추상적 개념을 위해 국민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국가주의자들(의 탈을 쓰고 그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그 시대로 돌아갔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대로 읽어볼만 하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추천해도 괜찮을 것 같고, 서양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필독서다. 물론 꼭 이 책이 아니어도 되긴 하겠지만, 이 책도 꽤 괜찮게 만들어졌다. 특히 고대 유물들에서 발견된 미술양식을 본딴 일러스트가 참 마음에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