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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에서 슬로우불릿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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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대환은 지역작가로 인식되어 있다. 지역작가라...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아주 쓸모없는 분류이기는 하지만 당시 나에게 그 분류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주었다. 그 나이 또래의(이대환은 58년 개띠로 알고 있다) 작가들이 80년대 학생운동에서 벗어나 서울 시내 오피스텔을 거점으로 삼은 세련된 문학을 구가할 때, 내가 알기로 이대환은 여전히 고향 포항에 머물며 억센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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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대환은 지역작가로 인식되어 있다. 지역작가라...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아주 쓸모없는 분류이기는 하지만 당시 나에게 그 분류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주었다. 그 나이 또래의(이대환은 58년 개띠로 알고 있다) 작가들이 80년대 학생운동에서 벗어나 서울 시내 오피스텔을 거점으로 삼은 세련된 문학을 구가할 때, 내가 알기로 이대환은 여전히 고향 포항에 머물며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상처받은 이들의 초상을 그려갔다. 철강단지 안의 작은 공장에서 노조를 만들어가던 이들의 이야기나 생선장수의 이야기, 고문(노동운동으로 인한)의 후유증으로 깊이 상처받아 결국 자살을 택한 젊은이의 이야기라던가, 그도 아니면 해직교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래서 나에게 이대환은 소설가라기보다는 운동가라는 느낌이 짙었다. 스물한살에 장편으로 데뷔를 한 사람답지 않게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후에야 창비에서 소설집을 내고, 그 이후로는 물론 활발히 활동한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슬로우불릿은 그동안의 이대환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고엽제라는 소재가 주는 방대함과 가족사가 얼킨 문제라 그러했겠지만 그전의 날카로운 문장들은 보이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는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화문도 부쩍 많아졌다. 예전에 이대환은 문장이 아주 긴 편이었지만 명확하고 냉철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느낌은 없다. 작가 이름을 보지 않았다면 포항이라는 지명을 보았어도 이대환의 작품이라고 생각치 않았을 것이다. 책표지에 영화감독 박찬욱의 서평이 올라온 것을 보고는 조금 놀랐다. 더군다나 얼마 후 신문에서 슬로우불릿을 박찬욱이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욱 찜찜했다. (박찬욱이 왜 슬로우불릿을 영화화하는지는 접어두자. 속내가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는 영화 사이트가 아니니까.) 책상태에 점수를 박하게 준 것은 어디까지나 양장본이기 때문이다. 손때가 잘 묻지도 않을 뿐더러 한 번 묻기 시작하면 그 두꺼운 표지가 덜렁 하고 찢겨나가기 일쑤라서. 사족이지만, 장편소설에서 장면 전환을 하는 것, 그러니까 현실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플래시백에서는 그런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을까. 익수는 생각에 잠겼다...익수는 회상에서 깨어났다...뭐 그런 식 말이다. 스토리에 연연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로 인해 문장마저도 산만하고 부정확해지지 않았을까. 사족이다.

[인상깊은구절]
익수는 읽기를 그쳤다. 콧잔등이 시큼했다. 자신도 자신의 아들도 글쓴 시인이 차마 붙이지 못하겠다는 그 '마리'에 포함될 수 밖에 없다는 탄식이 그의 속을 울렸다. 마리. 그래,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한밑천을 장만하러 갔다고 하지만. 인간을 짐승처럼 다룬 인간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만 무사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의 일념에 빠져 있었으니 나 역시 '한 마리'일수 밖에 없겠지. 그 대가로 밥만 축내고 있는 밥벌레, 아들에겐 너무 잔인하고 미안하지만 내 아들인 죄로 역시 밥벌레로 있을 수 밖에 없겠지. 밥벌레와 괴상한 벌레. 흥, 그래. 우리는 같은 종족의 '마리' 들이지.
p******d 2001.10.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