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망, 그 아름다운 힘''이라니...제목은 꽤 식상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책은 표지 사진부터 범상치 않다. 최민식의 사진은 걸쭉한 생의 한장면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전쟁통의 가난한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은 가슴 한켠을 찌르르 울린다. 생생하게 잡힌 아이들의 표정에 내 마음의 등불마저 켜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하성란이라는 소설가의 작품과는 일면식이라도 있었지만, 최민식의 사진은 명성만 들었지 접한 적은 없었다. 책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사진은 나를 전율케 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가난하고 남루한 인간들의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포착한 그의 사진은 경이로웠다. 가슴을 한대 후려치는 느낌이랄까? 아름답고 화려한 이미지의 사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요즘같은 시대에 그의 사진은 걸쭉하고 끈끈한 인간사의 단면을 잘 묘파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옆에 덧붙여진 하성란의 글도 좋았다. 지난한 삶의 편린들을 꿰뚫은 하성란의 짤막한 글들은 사진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너무나 명쾌하고 묵직해서 하나의 아포리즘처럼 느껴지는 하성란의 글들 역시 감동적이었다. 사진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켜 준다고나 할까?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삶의 단면들을 단 한문장으로 묘파해낸 하성란의 감각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이 책은 절대 소망에 대해 교훈적이고 식상한 목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온갖 인간사의 희비극이 어우러진 인간의 얼굴을 그림으로써 자연스레 소망이란 무엇일까 생각케 한다.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우리의 생을 이끌어 갈 소망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코 소망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이 책은 소망이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에 묻어 가려 하지 않는다. 걸쭉하고 끈끈한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인간 개개인의 얼굴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 주기만 한다. 그로써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소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소망이 왜 우리에게 아름다운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 아무리 생의 짐이 무거워 그림자가 축 처진다 해도 끝까지 소망할 수 밖에 없는가? 물론 최민식의 사진은 인생의 남루함과 고단함을 보여 주지만, 우리는 그 처절함과 비극성을 통해 소망의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 이 책은 소망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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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게서 사진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늘상 하는 말이 있다. 진정한 사진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치열한 고민과 사색, 그리고 체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친구들은 정신적 수련을 싫어하고 미를 뽐내는 기교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각성이 없는 예술은 공허한 놀음에 불과하다. 진실한 사진이 갖는 감동은 모두, 현실의 행간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연출하지 않은, 생생한 인간의 모습을 렌즈에 담고자 한 것은 그 현실 자체속에 이미 예술이 추구하는 진실이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최민식 ]
나는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 예전부터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대단한 취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요즘 들어 아이가 생기면서 아이의 성장과정을 가끔 렌즈에 담는 것이 고작이다. 어떤이들 처럼 사진기를 항상 끼고 다니며 생활의 일면을 차곡차곡 렌즈에 담는 정성과 극성은 아예 찾아볼수가 없다. 당연히 휴대전화에도 사진은 거의 없는 편이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없고 게으라다는 말일 것이다. 당연히 사진을 감상하는 심미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나에게 사진은 지극히 관심밖의 분야였고, 매우 정적인 분야라고 생각했다. 증명사진, 풍경사진만을 알고 있는 나에게 사진이 정적인 이미지로 고착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수많은 움직임속에서 지극히 짧은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것이 사진이라면 정적이라는 나의 관념은 오류임에 틀림없다. 나는 단지 눈에 보이는 사진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배우들로 대표되는 수많은 광고사진들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정도의 절경을 뽐내는 일출,일몰등의 풍경사진만이 내가 알고 있는 사진의 전부였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진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정적이며, 관념적이고 상업적인....
사진은 분명히 시대를 기록하는 대표적인 수단의 하나이다. 80년대 민주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것중의 하나도, 너무나 유명한 사진한 장 때문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그 사진은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우리 시대의 기록이다. 그래서, 사진은 진실되어야 한다. 피사체를 표현하는데 있어 기교도 중요하지만 진실이 결여된다면 그만큼의 감동도 감소할 것이다. 최민식의 사진집 '소망 , 그 아름다운 힘'은 솔직하다. 피사체 하나하나의 모습이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나올것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기에 그 모습들은 더욱 정겹다. 그래서 진한 감동이 있다. 멀게는 50년대에서부터 가깝게는 2000년대 초반까지의 사진들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은 작가의 활동지였던 부산을 주된 배경으로 하고있는 흑백 사진첩이다. 사진 한장 한장에 작가 하성란의 단상들이 곁들여져 있다. 그런의미에서 포토에세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자칫 이런류의 책에서는 사진의 감동을 쓸데없는 사족으로 인해 반감시켜 버리거나, 알수없는 사진들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유려한 문체로 그 재미를 배가시키는 언발라스한 경우를 볼수 있다. 누구의 탓도 아닌 서로간의 궁합이 맞지않는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최민식이라는 거장에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한 하성란의 경외감을 느낄수 있다. 두 줄 안팎의 짧은 글들이지만 그 글에는 사진을 느끼기에 충분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감히 사진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사진에 대한 느낌의 연장을 글로써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책을 보는 시간들은 최민식의 글을 읽는 것이고 하성란의 사진을 감상하게 되는것이다. 그만큼 , 두 사람의 사이는 밀착되어 있다.
이뿐 것 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닌, 진실된것이 더욱 아름다울수 있다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명제를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진실된 모습이 비록 추하고 비루한 모습일지라도 우리는 삶의 연장선으로 모두 보듬어야 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실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삶이란 사람들의 준말이다'라는 하성란의 말을 되새겨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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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것을 보아도 깨우칠 때가 따로 있다. 최근에 사업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쳤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그러면서 뭔가를 해야하는 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몽롱했다. 에이, 머리나 식히자! 그럴 때면 사진집을 찾는다. 사진집은 그림으로 읽는 또 다른 세상살이이다. 그리고 그 사진집을 보면서 ‘나의 미래 사진집은 어떻게 만들면 좋겠네’하는 구상도 한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사진집의 형식은 좀 출판하기에는 형식상 많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다른 내용으로 해야지 하고 막연히 구상만하고 있었다. 사진에 대하여 아직 많이 연구하거나, 좋은 장비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등산과 걷기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진집을 내보고 싶다. 그 형식은 이미 블로그에 몇 번 써보았는 데 사진만 많이 들어가고 내용은 별로 없이 출판 분량만 많아져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그 깨달음이 왔다. 그래 사진 하나에 글 몇줄. 그걸 왜 이제사 깨달았을까? 사실 많은 사진집들이 그런 형식으로 되어있는 데. 특히 최민식의 사진집은 대체로 그런데. 최근에 본 사진집중에 ‘노익상의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 있다. 그 책은 사실 사진집이라기 보다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집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르포집’인 데, 그 형식이 마음에 들어서 한동안 그렇게 만들어 볼까도 했었다. 하지만 사진위주라기 보다는 글위주라서 사진집을 내고 싶어하는 나로서는 ‘아니다’싶었고, 그렇게 잘 쓸 자신이 없었다. 이 책은 몇 7개의 ‘소망’을 시간적 흐름을 무시하고, 하성란작가가 자신의 의도에 맞는 사진을 골라 이야기로 풀어갔다. 수많은 사진작가가 있는 데, 유독 최민식의 사진이 마음에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