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애서광 이야기」에는 장서 수집에 몰두하는 애서광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책이라고 무조건 수집하는 게 아니라 희귀하거나 가치 있는 책만을 찾아 광적으로 소유하려 한다. 책을 사는데 몰두하느라 막대한 재산을 탕진하여 거지가 되기고 하고, 결혼까지 포기하여 약혼녀를 평생 늙도록 내버려 두기도 한다. 책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는 그들이다. 이 책을 보면서 애서광들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만약 그들의 눈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 시리즈’가 띄었더라면 그들은 이 시리즈를 향해 번쩍이는 섬광을 비추지 않았을까. 처음 이 시리즈를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비록 「애서광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집광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서가를 유람할 때 기쁨과 자부심으로 충만해지고 입술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오르는 점에서는 그들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피와 무게를 핑계 삼아 빈손으로 서점을 나오며 자꾸만 눈은 뒤로 향하고, 한동안 이 시리즈에 대한 짝사랑에 시달려야 했다. 드디어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 그 기쁨이란! 「유네스코 세계고대문명」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시리즈 3권 중 마지막 권이다. 1978년에 지정하여 2004년까지 유네스코에 등록되어 있는 세계유산은 총 788개라고 한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는 788개의 유산을 전부 싣지 않고, 3백 개의 유산을 선별하여 각 권에 100개씩 소개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라 있는 고대유적지는 총 188개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100개만 소개되어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고대유적지를 전부 소개했더라면 책이 어마어마하게 방대해지거나 깊이 없이 전체적인 개괄에 그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불국사와 석굴암이 소개되었다. 책 뒤쪽의 전체 ‘유네스코 세계고대문명’ 목록을 보니, 우리나라는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 2000년에 고창과 화순, 강화의 고인돌이 등록돼 있다. 이 책은 판형이 큰 만큼 사진을 보다 크게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고대 문명에 관심이 많아 관련 책들을 사 모으곤 했는데, 그 동안은 글로만 읽거나 비록 사진이 나와 있다 하더라도 작은 판형으로 인해 그냥 이런 유적이 있구나, 하는 데 그쳐야 했다. 고대문명에 관한 책들의 저자는 고고학자나 인류학자인 경우가 많아 사진자료 보다는 글에 치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고대문명에 관한 전문가라기보다는 여행전문 기자로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론적 내용보다는 사진 자료에 더 큰 비중을 든 듯하다. 이 책을 넘기면서 글도 물론 흥미롭게 읽었지만, 사진 보는 즐거움이 더 컸다. 크고 선명한 도판으로 인해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스터섬의 거석상의 크기를 좀 더 실감할 수 있고, 고대 동굴 벽화의 그림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한 유적지라도 여러 방향으로 찍어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편집했다. 대부분의 유적지는 각각 2-4쪽에 걸쳐 소개하는 반면, 고대 로마나 폼페이 등의 유적지는 8-10쪽이나 할애한 점은 저자가 이탈리아 출신이어서 일까. 고대인들이 남긴 문명의 잔해를 감상하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일종의 놀이 같은 즐거움을 주지만, 유적이 발견되어 공개된 후로 그 폐해도 큰 것 같다. 라스코 동굴벽화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때문에 그림이 손상되고 오염으로 인해 결국 동굴을 폐쇄하여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알타미라 동굴벽화도 관광객들의 입김으로 그림에 훼손이 생겼다고 한다. 에이브버리의 거석 일부는 주민들이 집을 짓는데 사용하였고, 트로이어의 로마 유적지 중 원형경기장은 중세 때 다른 건물을 짓는데 석재로 사용하였다는 일화는 안타깝게 다가온다. 고대의 유적들을 한 장 한 장 보고 있으면, 오늘날의 우리가 고대인보다 더 기술이 발달해 있다고 결코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현대의 극장이나 축구장은 고대의 원형경기장 모습을 모방한 듯 보인다. 심지어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에서는 홍수로 인해 현대식 철교는 쓸려 내려갔지만, 2000년 전 세워졌던 가르교는 그 자리에서 약간 밀려 올라갔을 뿐 거친 물살에도 건재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기술과 과학은 고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한 인류학자의 글이 떠오른다. 옛 인류를 과거에 존재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폄하하거나 과거는 현대보다 미개하다는 편견은 현대인의 오만이 아닐까. 스톤헨지 시대의 사람들이 발전된 지식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단정하는 저자의 주관적 시각은 그래서, 약간의 거부감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