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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장수집가이면서 문장성애자이다. 책을 좋아하고 좋은 문장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쓴다. 『호모 부시마니쿠스』는 읽는 내내 그런 나를 몇 번이나 흥분시켰고, 그때마다 나는 책을 펼쳐 둔 채 문장을 옮겨 적느라 바빴다.
시인이 쓴 책은 달랐다. 시인의 문장은 인문학서를 시로 만들었다. 시와 같았던 문장들은 칼라하리와 부시먼에 대해 무지했던 내게 사막에 사는 그들의 문화와 역사, 생활을 세세하게 알려 주는 친절한 다큐멘터리가 되었다.
저자는 '원시原始'라는 낡은 이름을 뒤집어 '시원始原'으로 다시 읽자고 말한다. 글자의 순서를 바꾸는 순간 부시먼의 삶은 뒤처진 야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시작된 기원으로 장엄하게 복원된다.
가장 먼저 있었으나 가장 나중까지 밀려난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에서 시작된다.
제자리에 돌려놓는다는 그 말 앞에서, 오래전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한영애의 〈조율〉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 듣던 시절이 있었다. 〈조율〉은 내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을 바라는 기도와도 같았다. 그 기도 속에는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원통함과 불편함이 가득했다. 물질에 대한 강한 소유욕은 결국 돈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 시절 내 가슴에는 왜 다른 사람에게만 있고 내게는 없는가에 대한 불만이 풀지 못하는 넋두리로 쌓여 갔었다. 그 시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많이 일그러져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아프리카의 눈물〉을 보면서 '소유하지 않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인간 생활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없는 그들의 삶.
그런데도 그들은 세상 어떤 사람보다 행복한 미소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이 우리보다 뒤처진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는 것을 느낀 뒤, 나는 다른 문명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호모 부시마니쿠스』는 그때 겨우 떴던 눈을 더 깊고 넓게 열어 주었다. 그들은 눈물로 기억될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를 지켜 온 사람들이었다.
부시먼은 짐승보다 빨리 달리려 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들 줄 알 뿐이다. 하루의 끝에서 그들은 “오늘은 이만 충분해”라고 말한다. 그들은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 가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아는 사람들이다 자랑은 조금만, 나눔은 끝까지. 저자는 현대인의 비극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충분함을 인지하는 감각을 잃어버린 데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 문장 앞에서 나는 일그러져 있었을 그 시절의 내 얼굴을 떠올렸다.
『호모 부시마니쿠스』에는 부시먼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함께한다. 칼라하리에서 공존하는 모든 생명이 다양한 색채와 형태로 보는 이의 흥미를 끈다. 알려지지 않은 고대 벽화를 보는 듯하다가도, 다채로운 각도와 구도는 현대 추상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중 타마에 카쉐의 〈기린과 진드기들〉(2001) (호모 부시마니쿠스 3장 슬기로운 사막 생활 p. 170)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거대한 포유류 곁에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진드기까지 그려 넣은 그림. 순환을 바라보는 그들의 깊이에 감명을 받았다. 자연의 품 안에서 모든 존재가 고귀하게 대접받는 평화로운 질서가 그 안에 있었다.
문자가 없던 그들에게 그림은 곧 글자였다. 모래 위 발자국은 바람에 지워지고 모닥불 곁의 이야기는 새벽안개와 함께 흩어지지만, 돌은 느리게 늙는다. 바위는 언젠가 그 자리를 스칠 누군가에게 영혼을 전하는 가장 견고한 우편함이었다.
제국의 침략과 군대의 전쟁 속에서 그들은 사냥터를 잃고, 우물을 잃고, 마침내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마저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붓을 들었다. 1990년 조상들의 암각화가 빼곡한 초딜로 언덕 앞에서 누군가 툭 내뱉은 한마디, “천과 물감만 주면 우리도 저런 그림 그려낼 수 있어.” 그 한마디는 주술처럼 쿠루 아트 프로젝트의 씨앗이 되었다.
“우리는 실수로 남겨진 사람들이 아니라, 누군가가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부시먼의 예술은 이제 '있었다'가 아니라 '있다'로 쓰인다.
그 이야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건너온 것은 2004년 여름이었다.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시원으로의 여행〉전에서 쿠루 작가 열여섯 명의 판화 80여 점이 처음 소개되었고, 그 전시를 기획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정해종 시인이다.
스무 해도 더 전에, 전시의 제목에 이미 '시원'이라는 말이 들어 있었다. 오랜 세월 그들 곁을 지켜 온 사람의 문장이기에, 이 책은 낯선 이의 관찰기가 아니라 오랜 벗의 증언처럼 읽힌다.
책의 끝에서 저자는 나직이 말한다. 비록 신발을 신고 아스팔트 위를 걷고 있을지라도 네 안의 사막을 기억하라고, 그 리듬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더 가지려 애쓰느라 오늘을 미뤄 온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갖지 못한 것을 세느라 마음이 허기졌던 날들을 지나온, 나 같은 사람들에게.
내 생을 다시 조정해 주시길 바라며 듣던 그 노래를 오늘은 칼라하리의 모든 호모 부시마니쿠스들에게 가닿길 기도하며 듣는다. 한영애 선생님의 노래 가사처럼 잠자는 하늘님께서 그들이 사는 칼라하리와 우리가 사는 이곳을 함께 '조율'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며…
시원으로의 아름다운 여행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길 빌며 부시맨 부족 판화전 8일부터 성곡미술관 – 2004년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0407050068508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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